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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2월 15일 주일예배 - 바울의 유언적 명령(딤후 4:1~2)

by 현상금 2026. 2. 15.

바울의 유언적 명령(딤후 4:1~2)

 

 

 

 

구정 주간이지만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현장을 봐야 하겠습니다. 현장을 영적으로 얼마만큼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삶의 가치 기준이 달라지게 됩니다. “보이는 것만 다다, 또 물질이 다다. 돈이 다다.” 이런 사람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믿는 사람의 가치관이 어떻게 같겠습니까? 성도라도 영적인 눈이 안 열려서 복음이 심령에 부닥치지 않은 사람은 전도 메시지 할 때마다 사실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왜 사도 바울이 이런 얘기를 하는지 그 이유를 여러분이 붙잡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고 한다면 결국은 하나님은 이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시겠구나. 이런 믿음의 관점으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영적인 아들이며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유언적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용에 보면 엄히 명한다이런 표현을 해요. 여러분한테 엄히 명한다고 하면 그걸 탁 받아낼 사람이 있고, 부담이 팍 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죠. 오늘 말씀을 한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말세의 현상

1) 우리가 말세의 현상에 대해서 31절부터 우리가 봐왔습니다.

말세의 특징이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인간성의 타락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인가요? 과학 기술의 발전이 끼치는 영향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가 발전돼서 정확하게 언제 올지는 몰라도 기술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초지능 시대가 와요. 초지능 시대가 오면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벌써 과학자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인간이 노동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왜 해방될까요? 로봇으로 다 대신 된다는 거예요. 이제까지 고치지 못한 질병의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얘기해요. 유전자 정보 속에는 질병의 인자가 있기 때문에 유전자에서 질병 인자를 제거해버리면 그 병에 안 걸린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노화를 지금 막는 기술이 지금 발전하고 있어요. 인간의 수명 연장까지도 가능하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창세기 3장의 저주로 인해서 노동의 저주, 질병의 저주, 죽음의 저주가 왔잖아요. 근데 지금 이거를 인간의 기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술만 있으면 하나님은 필요 없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심지어 요새 AI 종교라는 것도 만들어지고 있대요. AI가 종교를 만들어요. AI가 이제 모든 것을 다 하는 초지능이 되면 사실 AI가 그리스도나 마찬가지예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거예요. AI가 이게 지금 공상과학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막바로 들어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생활과 기술과 경제가 하나 되는 통합 시스템이 운영되는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기술과 경제가 통합된 시스템 속에서 삶이 운영되다 보니까 우리가 기술을 사용하고 경제 활동을 하려면 그 통합된 시스템 속에 들어가서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거래하려고 해도 지금 은행에 안 가도 되는 시대잖아요. 앞으로는 카드가 필요 없어진대요. 카드 필요 없어지고 사람 몸에 칩을 하나 심으면 모든 정보 처리가 다 되는 거예요. 몸에 칩이 있으니까 그냥 그것만 인식되면 경제 활동도 제공되는 거예요.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되는 것 같은데 정말 편리하고 좋기만 하겠습니까? 근본적인 악은 안 없어져요. 이미 바울이 말한 고통하는 때가 오고 있고 와 있는 거죠. 313절부터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희는 배우고 확신하며 진리의 말씀에 견고히 서라 이 말씀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시대는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이 가만히 있는 시대가 되겠습니까? 사람을 속이고 욕심을 집어넣은 사단은 마지막 활동을 하는 시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단은 모든 통합 시스템을 이용해서 역사하고자 하는 겁니다.

 

2) 사람들은 선악의 기준이 왜곡된 것이 죄악의 본질인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본질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죄의 본질 그러면 보통 죄의 경중을 얘기하고 얼마나 파렴치하냐, 얼마나 죄질이 나쁘냐 이런 것들을 주로 얘기하잖아요. 그리고 여러 가지 죄의 목록들을 열거하면서 죄인이라는 것을 많이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것도 필요하지만, 인간이 선악의 기준이 왜곡된 것이 진짜 죄악의 본질이고 사단이 인간을 넘어뜨리고자 속였던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사탄은 창 35절에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였잖아요. 그리고 인간 속에 진짜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하는 그 욕심을 딱 집어넣었잖아요. 거기에 인간은 딱 걸렸고 온 세상은 지금 악한 자 안에 처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한 자가 얼마든지 인간을 지배하고 마음과 생각을 틈타고 지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나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했어요. 그 욕심이 뭐예요? 인간이 자기 포지션을 떠나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떠난 결과 지금 결핍과 목마름과 갈등 속에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다른 것을 의존하고 그것을 심지어 우상으로 섬기게 되는 거예요.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된 인간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의를 세우고 있어요. 하나님 선악의 기준은 거역한 상태에서 자기 기준의 의를 세우고자 애쓰고 있다 이 말이에요.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았다는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이 자기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자 역할을 하고 심판자 자리에 앉은 거예요. 인간의 이성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서 하나님도 인간 이성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주권이나 하나님의 왕권이나 통치권을 인정합니까?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명, 건강, 기능, 물질, 하나님이 주신 복이 있잖아요.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이거는 원래 내 것이니 내가 알아서 쓰면 된다고 하면서 자기 욕심을 위해서 쓰는 거죠. 하나님이 주신 것은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거거든요. 재능을 주셨으면 청지기적 용도로 쓰여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도록 주신 생명, 건강, 은사, 돈인 거예요. 근데 그런 개념이 전혀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않습니다. 이런 게 본질적인 죄다 이 말이에요.

 

인간은 이런 영적인 사실은 모르고 영적 소경이 됐기 때문에 양심을 가지고 인간 기준의 의를 세우고 있다 이 말이에요. 사실 이런 거를 여러분이 정확하게 알면 얼마만큼 이게 사단이 가치 체제 전체를 뒤집어놨는지 알게 되는 거예요. 인간은 지금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결핍과 목마름 속에 빠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창 3, 6, 11장의 본성을 가진 채 생존의 욕구와 성공의 욕구를 위해서 모든 인간은 욕심을 내고 투쟁하는 거예요. 나 중심의 죄를 짓는 거예요. 끊임없이 나 중심 속에서 미워하고 화내고 저주하고 용서치 못하고 증오하고 심지어 살인하는 죄까지 범하잖아요. 이익을 두고 끊임없이 싸우잖아요. 근데 만약에 하나님의 배경을 다시 회복하고 임마누엘을 다시 회복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만큼 완화가 되는 거죠. “내가 욕심 안 부려도 되는구나. 내가 안 미워해도 되는구나. 나는 계명만 지키면 되는구나. 내가 믿음이 없는 게 문제구나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매일매일 여러분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거, 믿는 것이 성장하게 되면 여러분이 다시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지는 거예요. 그게 되도록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런데 세상은 지금 사단의 함정인 창 3, 6, 11장에 빠진 상태에서 종말이 올수록 더 이 본성이 심화가 되는 거예요. 과학 발전으로 인해 전 세계는 통합 시스템이 되고 있는데 제2의 바벨탑을 세우는 거예요. “하나님 없이 우리가 하나 되어서 하늘에까지 이르자.” 인간이 신의 경지까지 가려고 하는 게 지금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성경 말씀이랑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다 도둑질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이런 게 진짜 죄란 말이에요. 아무리 도덕 윤리적으로 살아도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으면서 나는 착하게 살아라고 한다면 그건 종교란 말이에요. 본질적인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사단이 무너뜨려 놓은 모든 가치를 다시 뒤집어야 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온 세상이 사단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져 있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심령에 와 닿으면 어떻게 될까요? “오호 통제라는 마음이 생겨요. 하나님의 진노 하에 세상이 지금 있는 거예요. 노아 시대만 진노하에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세상이 심판하에 있다 이 말이에요. 3장의 죄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는 죄이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라니까요. 일평생 마귀에게 사람들이 속아 사는 거예요.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 바벨탑을 쌓는 거고 무너진 사람들은 파괴당하고 유린당하는 거에요. 정신적으로 파괴당하고 육신적으로 병 생기고 중독 같은 데 빠지게 되고 경제에 한계가 오잖아요. 그러니까 도둑질하고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1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가 뭔가요? 우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고 표면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하면 안 돼요. 표면적인 이유가 뭐냐 하면 예를 들어서 어떤 애가 성장하면서 상처를 받았어요. 그리고 지금 환경이 안 좋아요. 그래서 애가 굉장히 외롭고 눌리고 대인관계도 안 좋고 만약에 이렇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표면적인 이유는 심리학에서 상담학에서 얼마든지 얘기를 해요. 성장 배경에서 부모가 문제가 있었고 이 아이가 어떤 상처를 경험했고 그럴 때 이 아이가 어떻게 정서적인 문제를 안게 되었는가 이런 거요. 상담학에서 너무 얘기 잘해요. 우리보다 잘해요. 그런데 그것만 얘기해서는 안 돼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어떻게 사람의 근원적인 배경이 되고 가문적 배경이 되어서 성장 배경과 합쳐졌는지 그걸 말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이 예수 그리스도 라고 답을 줘야 하는 거예요. 그걸 이제 저와 여러분이 하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자녀를 기를 때도 자녀가 엄한 짓 한단 말이에요. 그럼 니 왜 그러냐? 니 왜 그러냐? 이래 갖고는 해결이 안 돼요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을 떠난 목마름 속에서 성경 배경 속에서 온 상처와 눌림 같은 것이 그 사람의 정서 속에 들어가 있단 말이에요. 그거를 치유시키는 거는 아무리 옳은 말, 바른말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그 속에 영이 살아나야 해요. 하나님 떠나서부터 시작된 문제고 사단이 지금 빠뜨려놓은 영적 문제부터 문제가 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이해를 돕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후대가 깨달아지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예요. 여기에 전문가가 돼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가 참 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아이가 상처가 있어도 정서적인 문제가 왔어도 주님은 그걸 역전시킨다니까요. 그 역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이 아이도 사명자가 된다니까요.

 

여러분이 이런 세상 보는 눈이 열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열리기 전에 자기 보는 눈부터 열려야 되죠. 자기를 못 보는데 어떻게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겠습니까? 이 눈이 열리면 어떻게 됩니까? 이 눈이 열리면 전도자의 마인드가 생겨요. 우리가 전도자의 마인드가 안 생기고 또 생기더라도 전도에 대해 부담이 되고 눌리는 거는 영적인 현장을 보는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더 구하라는 거예요. 저도 사실 낯선 사람한테 전도하기 불편하거든요. 부담돼요. 근데 항상 보면 내 영적 상태에 굉장히 영향받아요. 근데 현장에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너무 감사하게 내 영적 상태를 확 회복시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게 만드시고 내가 하는 전도가 아니고 주님이 지금 성령으로 행하시는 전도라는 게 믿어지는 거예요. “내 속에도 역사하시고 상대에게도 역사하시옵소서이 기도가 되면 되거든요. 이 기도를 하는데도 기도가 안 되면 전도하지 않으셔도 돼요. 현장까지 가서 하나님, 내가 이 현장에 정말 전도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께 모든 거 맡기겠습니다. 믿음의 전도를 하겠습니다하는데 기도가 안 풀리고 여전히 불안하고 눌리고 답답하고 그러면 열심 낸다고 해도 안 돼요. 그냥 안 하셔도 돼요. 그러나 현장까지는 가시라고요. 가서 그 현장에서 믿음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하나님 소원에 맞잖아요. 그러면 전도의 주인은 예수님이 주체가 되어 주시는 겁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여러분 속에 역사해 주시는 거예요. 저는 감사한 거는 현장 가서 기도할 때마다 자꾸 눈을 더 열어주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제가 한번 전도해 보자 그게 아니고 주님이 성령으로 주님이 원하는 기도가 되게 만드십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한데 그 영혼이 일평생 죄와 사단에게 종 노릇하다가 지옥의 영벌에 떨어진다는 것을 주님은 탄식하고 애통해 하십니다. 구정 기간에도 여러분은 세상을 이런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고 영적인 눈으로 기도가 되어지기 바랍니다.

 

2.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마지막 시간표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1) 하나님은 과학 발전을 허락하시고 함께 종말의 시간표가 다가오게 하시는 겁니다.

그 말은 드디어 죄악 된 세상 나라, 반역하는 세상 나라가 심판당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될 시간표가 다가오고 있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한계시록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거예요.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시간표가 아주 세밀하게 나와요. 그냥 성도가 승리하는 거다 그렇게만 알면 안 돼요. 그러면 현실성이 떨어져요.

 

2) 요한계시록은 로마 치하에 핍박당하고 있는 교회에 주신 말씀이죠.

밧모 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에게 그리스도가 계시해 주신 거죠. 심판의 집행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돼 있는 계획서에 인봉을 떼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펼쳐지게 되거든요. 그거를 누가 집행하냐 하면 그리스도가 집행하시는 겁니다. 그걸 누가 수종 드냐면 천사들이 수종 들어요.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그 시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이 반역하는 세상 나라에 계속 반복해서 적용되다가 마지막에는 그게 크라이막스로 적용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당시 로마 치하에서 로마에 있는 교회와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핍박의 대상이 됐어요.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거예요. 그걸 거부하는 기독교회가 핍박의 대상이 된 거예요. 요한계시록은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교회가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에요.

 

이 핍박을 왜 하나님이 허락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왜 이런 핍박을 허락하고 있는지 설명하는데 그것은 사단이 마지막 발악을 한다는 거예요. 자기 때가 끝날 때가 됐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허용하며 통제하고 주관하시는 분이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그것을 집행하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교인들이 알리는 거예요. 왜 성도가 구원받았는데 핍박을 당하며 그걸 그냥 하나님이 허용하고 있습니까?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요한계시록 12장에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어요. 하늘에 전쟁이 있었는데 천사장 미가엘과 용과 전쟁이 붙었어요. 하늘의 전쟁을 보면 용과 그 사자들이 패배해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쫓기게 됩니다. 12:7~9, “하늘에서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깨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이 하늘에서 용이 했던 일이 뭐라고 돼 있죠? 밤낮으로 성도를 참소하는 일을 했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을 완성하는 그 시점으로 시작해서 참소하던 사단을 하늘에서 내치니 사단이 분을 내고 이 땅에 내려갔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용이 여자의 후손인 교회를 핍박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역사 속에 공산주의를 통해서 또 중세 시대에 타락한 교권을 통해서도 핍박했어요. 진짜 믿음의 백성을 오히려 교권을 가지고 핍박도 하거든요. 모슬렘을 통해서도 핍박하고 이런 핍박의 역사가 사실은 전 역사 속에 있었어요. 그 배후 세력이 누구냐? 사단이라는 겁니다. 이 사단이 마지막으로 세상 통합 시스템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할 수 있는 겁니다. 통합 시스템이라는 말은 안 나와 있는데 얼마든지 그렇게 유추할 수 있어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두 반응이 일어나요. 하나는 위축당해요. 핍박을 우리 어떻게 감당해? 위축감이 오잖아요. 근데 사실은 로마 교회는 핍박당하고 있는 현장에 있었단 말이에요. 이들한테 지금 직접 주는 메시지가 일차적 목적이에요. 그러면서 역사 속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과 마지막 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미 사단이 머리가 깨졌다고 얘기했잖아요. 요한계시록 1210절에 보면 이미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고 얘기해요. 11절에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 저를 이겼었나니이렇게 돼 있어요. 초대교회가 어린 양의 피와 그들이 증언하는 복음의 말씀으로써 순교를 당하는데도 그건 패배한 게 아니라 승리한 것으로 계시록은 얘기하고 있어요. 사단이 제일 공격하는 게 핍박하는 거 하고 죽이는 거잖아요? 우리는 육신은 다 공포에 질리잖아요. 그런데도 초대교회가 그걸 이기거든요. 왜 이기는 줄 아세요? 하나님이 인친 사람들은 다 승리한다고 나와요. 이게 사단이 머리가 깨졌는데 최후 발악하는 걸로 나와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승리하도록 해 놓으셨기 때문에, 사단은 어떡하든지 우리를 배도 하도록 공격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싸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면 교회가 약하기 때문에 지금 핍박받는 게 아니라 사단이 졌기 때문에 발악하는 걸로 해석하고 있어요. 이게 아주 중요한 관점입니다. 인 맞은 자가 승리하고 사단과 그 통치를 따르는 불신자들이 결국 유황불 못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거예요. 교회는 성령께서 보호하고 최종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한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니까 우리는 보호 그러면 안 죽는 걸 보호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요한계시록은 안 죽는 게 보호가 아니고 핍박을 극복하는 거를 보호로 얘기해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서 그 핍박을 감당하지 못하고 배도하는 것이 보호받지 못한 거예요. 우리가 이런 시대가 도래할 것을 내다보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3.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 요한계시록을 쭉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 제 마음에 자연스럽게 난 끝까지 전도자로 살아야 된다. 그리고 지금 성도를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의 생명, 건강, 기능, 물질, 시간 다 주의 것입니다. 생명 내 게 아닙니다. 주님께 드리게 하옵소서이런 고백이 되는 거예요. 제 능력으로 이기는 게 아니죠.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믿음을 여러분의 능력으로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죠. 성령님이 붙들고 있는 거죠. 성령의 인도 없으면 넘어져요. 현실이 어렵고 문제 있는 사람들 다 자빠져요. 마음속에 믿음 없으면 불만과 원망이 막 올라온다니까요. 근데 원망 안 하잖아요. 원망 안 하고 그거를 오히려 더 뿌리내리는 기회로 삼고 더 믿음이 자라나잖아요. 순수해지잖아요. 지금도 성령님이 잡고 있는 거예요. 언약적 인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어떤 사람들은 사단의 역사를 지금 별로 얘기 안 하거든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옛 뱀,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린 이놈이 어떻게 세상 임금이 되고 공중 권세를 잡고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 속에 욕심을 넣어서 창 3, 6, 11장 속에 인류가 빠지게 만들었는지 알게 되어요. 그놈이 어떻게 세상을 향해 마지막 역사를 하다가 지옥 불 못에 영원히 떨어지게 되는지 그걸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믿음이 맞아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지금 영적 믿음이 맞는 거예요. 지금 사단을 대충 믿는 사람들 많거든요. 이론적으로 믿는 사람들 많거든요. 아니요. 죄의 책임은 우리한테 있지만, 배후의 세력인 이 영적 세력을 모르면 성도들이 져요. 그리고 사람만 원망해요. 아직도 영적인 것을 모르니까 사단하고 싸워야 하는데, 그 사단을 이기게 하시는 그리스도가 완전하신데 그 그리스도를 대충 의지하고 사단도 대충 알고 그냥 보이는 이유만 자꾸 따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진다니까요. 그래서 오늘 바울은 마지막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4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이렇게 돼 있죠? 지금 네 가지 권위적 배경을 가지고 명하고 있어요. 네 가지 권위적 명령이 뭐냐 하면,

1) 하나님 앞이라고 그랬어요.

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에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셔요.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여기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가 누구예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이 명령을 한다는 거예요.

2)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명령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초림 때는 구원하러 오셨지만, 재림 때는 심판하러 오셔요. 여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는 뭐냐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자를 말하는 거고, 재림하실 때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도 포함돼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하는 거죠. 그들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이 명령을 한다는 거예요.

3) 그의 나타나실 것을 두고 명령한대요.

예수님이 재림하셔요. 성도를 휴거시키고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니까요. 그 앞에서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령한다는 겁니다.

4) 그분이 완성하실 나라를 두고 명령하신다는 겁니다.

드디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겁니다. 이게 구속사의 목적이에요. 불신자는 그의 나타나실 때 불로 심판당해요. 그들은 한 번 죽고 두 번 죽어요. 요한계시록 분명히 두 번째 사망을 당한다고 돼 있어요. 두 번째 사망이 불신자가 지옥 불 못에 떨어지는 그 사망을 말하는 거예요. 반면에 성도는 예수님 재림할 때 휴거가 돼요. 휴거가 되어서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거예요. 휴거 돼서 올라가서 세상에 불로 심판당하는 것을 하늘에서 봐요. 모세가 홍해를 가르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나오고 뒤에 애굽 군대가 추격하잖아요. 이쪽에 나온 후 물이 덮이잖아요. 그때 미리암이 찬송하거든요. 말 탄 자들을 다 수장시키는 걸 보고 찬송하는데 그걸 모세의 노래라 그래요. 근데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거기서 모세의 노래를 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어린 양 혼인 잔치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땅에 같이 내려와요. 이런 거는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나와 있거든요. 주님은 지금 네 가지 권위적 배경을 두고 엄히 명령하신다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 현장이 진짜 사단의 욕심과 속임수에 철저히 빠져서 모든 사람이 지금 도적질 당하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도적이 온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러 왔다고 돼 있잖아요. 한쪽은 바벨탑을 쌓고 한쪽은 파괴되고 유린당하고 있거든요. 지금 그런 현장을 보면서 감성적인 사람의 애통이 아니고 이게 사실적으로 믿어지니까 전도의 필요성, 당연성, 절대성이 느껴지면서 갖는 애통입니다. 사실 지금 이게 디모데한테 하는 얘기잖아요. 사역자에게 주는 메시지잖아요. 이거 초신자 메시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디모데에게는 이게 심령적으로 부닥치는 거예요. “전도 부담스럽네이렇게 들리는 게 아니고 그냥 완전히 자기 메시지로 들리는 거예요. 저도 예전에 이거 읽을 때는요. 부담스러웠어요. 근데 지금 읽으니까 그대로 부닥쳐요. 내 걸로 부닥쳐요. 주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키우기를 원하셔요. 지금 억지로 전도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어요? 안 되는 게 되도록 하는 게 복음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진짜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춰서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삶을 살게 되면 계속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니까요. 그래서 안 되던 게, 묶여 있던 게요. 풀려나가요. 이해 안 되는 게 이해가 되고요. 사랑 안 되는 게 사랑이 되고 용서 안 되는 게 용서가 돼요. 여러분을 주님이 뒤집어요. 자신이 잘 보여요. 영적 문제로 내가 이렇게 속았구나, 내가 이렇게 당했구나.” 사람 원망할 게 아니라 하나님은 속은 나에게 복음을 주셨다. 여러분 구원받은 것만 해도 엄청난 은혜입니다. 근데 거기서 또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키잖아요.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잖아요. 주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고 주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게 복음입니다. 올해 이렇게 성장하시면 돼요.

 

결론

이번 구정 기간에도 이런 관점으로 구정을 영적으로 보자 이 말이에요. 그럼 여러분이 점점 바뀐다고요. 이 축복 누리면 여러분이 정말 밀리지 않는 삶을 살게 돼요. 살리는 사람, 살리는 삶을 살게 되는 전도 제자의 삶을 살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