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교회메세지

2026년 2월 8일 주일예배 - 전도자의 검 (딤후 3:10~17)

by 별종외계오동 2026. 2. 8.

 

 

전도자의 검(딤후 3:10~17)

 

우리 교단에서는 복음 전하는 것을 두고 우체부 비유를 종종 합니다. 우체부는 편지만 잘 전달하면 된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우체부의 인격이나 외모 상관없이 편지만 잘 받으면 된다. 이런 말씀들 하잖아요. 이처럼 우리가 낯선 사람한테 전도할 때는 복음만 잘 전달하면 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전도해서 관계하면서 양육할 때는 좀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때는 말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양육할 때는 복음이 실제 어떻게 양육하는 자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거 보고 영향받는 거죠. 피 양육자가 복음만 듣지 않고 양육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이 말이에요. 바울이 쓴 서신을 보면 어떤 서신은 교리 중심으로 기록된 서신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에베소서, 로마서 같은 경우가 교리 중심이잖아요. 그런데 또 어떤 서신들을 보게 되면 바울 자신의 간증이 참 많이 나와요. 바울이 실제 당했던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했는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해 어떻게 통치하셨는지 이런 체험담을 간증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서신이 빌립보서 또 지금 우리 보고 있는 디모데후서도 그런 형식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여러분 자신을 먼저 변화시킵니다. 제대로 복음을 받으면 여러분의 삶에 중심과 체질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사실 사단의 영적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의 모든 삶의 체제가 인본주의 체제였어요. 근데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 되면 체제가 바뀝니까? 안 바뀝니까? 정말 우리 중심과 기준 자체가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과 기준으로 바뀌는 게 구원받은 거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방법도 바뀌게 된다고요. 삶의 체질도 바뀌게 된다고요. 그걸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우리 안에 와 계시는 거예요. 이게 되는 사람은 성장하게 돼요. 영적인 성장이 되면서 이 사람이 전도자가 되고 또 양육자가 되고 또 사역자까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변화시켜 쓰신 것을, 어떻게 자기 일생을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셨는지를 성도들이 알기를 원했던 거예요. 교회에다가 편지 쓸 때마다 자기 고백을 항상 포함시킵니까? 안 시킵니까? 설교는 하나님 메시지만 전해야 된다 이렇게 강조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근데 설교자의 삶이 묻어서 나오는 거죠.

 

이제 사도 바울이 자기 순교를 앞두고 쓴 최후 서신이 디모데후서 아닙니까? 그러면서 디모데후서는 굉장히 어떤 면에서는 엄숙하고 장엄해요. 오늘 보고 또 다음 주에 볼 내용이 순교를 앞두고 엄중히 디모데에게 명령하는 내용이 나와요. 그러니까 사실 본서는 초심자용은 아닙니다. 이거는 지금 여러분 같은 분에게 적중해서 여러분이 자기 걸로 받아야 할 메시지예요. 그러면 이미 여러분이 사실 그만큼의 자리에 올라가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사도 바울이 가장 지금 원하는 부분은 뭐냐 하면 단순히 전도하라는 게 아니고 그것도 강조하지만, 충성된 사람들에게 바울이 부탁한 것은 그들에게 가르치라는 겁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그렇게 만들라는 거예요. 올해 저와 여러분은 이 관점을 가지셔야 돼요. 한 사람을 전도해서 그 사람을 생명 얻게 만들고 양육 확립해서 이 사람이 또 다른 사람한테 전도할 수 있도록 제자 삼는 거죠. 재생산하는 거죠. 이 방향으로 올해 저희가 철저히 가기를 바랍니다. 아멘 입니까?

 

1. 오늘 본문 10~11절에 보자.

1)“나의 교훈과 또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그런 말씀이 나오잖아요.

여기서 나의 교훈 그랬는데 이 교훈은 뭐예요? 사도 바울이 말과 서신서를 통해서 전달한 복음의 교훈이죠. 그다음에 행실은 바울이 본을 보인 그 행실을 말하는 거예요. 바울의 모범 그러니까 사역자는 이런 걸 가지고 증거하는 거거든요. 그다음에 의향 그랬잖아요? 의향은 바울 내면의 동기와 의도를 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의 진정한 동기와 의도까지 디모데랑 통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전도자로서, 사역자로서 그의 의향과 동기까지 얘기해 주고 있는 거예요. 사실 많은 성도가 자기 동기, 의도 이런 거는 숨기고 말 안 하는 경우들이 참 많거든요. 사실 여러분이 진정한 포럼이 되려면 여러분 내면까지, 사실 부끄러운 것까지도 말할 수 있는 그런 포럼이 될 때 진짜 귀중한 포럼이 되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이 말하기 어려워하고 싫어하죠. 되는 것만 딱 얘기하고 안 되는 건 얘기 안 하고 근데 그러면 좀 발전이 없어요. 사실 포럼을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진짜 주인이 되어서 그 앞에서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수준인지, 어떻게 그분이 우리를 만지시는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강단 메시지 포럼만 하지 말고 자기 속에 있는 것도 좀 얘기하기 바래요. 어떤 분은 이거 굉장히 못 하거든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이걸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요. 근데 도전해 보세요. 사실은 목회자와 전도 제자 간에는 이런 것까지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돼야 하는 거에요서로 마음을 아는 거예요. 제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제대로 받고 여러분이 또한 그렇게 한다면 정말 내면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생명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이런 것까지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겪었던 일들을 보았고 또 들었어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사실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앞을 보면 이게 1차 전도 여행 지도인데 여기 보면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구브로 섬을 거쳐서, 총독이 저기서 예수 믿었죠? 그래서 쭉 올라가서 아달리아,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 전도 여행이 1차 전도 여행이에요. 근데 저기 비시디아 안디옥 또 이고니온 여기서 핍박당해요. 누구한테 핍박당해요? 회당에서 복음 전하잖아요. 그러면 항상 공격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유대인들. 그래서 루스드라에 갔을 때는 이들이 루스드라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돌로 쳐죽이려고 했어요. 돌에 맞아서 실신하잖아요. 거의 죽은 줄로 여김을 받게 되잖아요. 근데 다시 살아나서 더베로 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여정이 1차 선교 여행이에요. 그러니까 디모데가 바울을 따라붙은 것은 2차 선교 여행 때예요. 1차 때는 아마 디모데와 그 가족이 복음을 받았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2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를 다시 갔거든요. 거기에 가보니 디모데가 준비되어 있는 거예요. 제자로, 사역자로 준비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나와 같이 선교 여행에 같이 하지 않겠느냐이렇게 제안했을 것이고, 그때 디모데는 따라붙었던 겁니다. 디모데는 사실 고난 중에 얻은 영적 아들과 같은 거예요. 일평생 같이 했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그 가슴에 있는 진짜 아들 같은 그런 사역자가 디모데가 아니겠습니까?

 

2)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때 박해가 많았어요. 우리나라 조선 시대도 사실 예수 믿는다면 박해 많았거든요. 나라의 종교, 관습, 인습 이런 게 안 맞잖아요. 그러니까 박해를 받는다고요. 말세가 기독교인들이 왕따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예상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진짜 예수 생명을 가지고 예수 계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박해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일찍이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15:18~19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오.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미워하는 이유가 뭐라고 하신 겁니까? 소속이 다르다는 거예요. 만약에 세상이 자기 거면 자기 거를 사랑한다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은 세상이 볼 때 자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세상이 저거는 누구야? 저거는 내 의도대로 따르지 않는구나이러면서 미워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이게 다음 주에도 얘기하겠지만 우리는 진짜 신앙의 본질을 정확하게 해야 해요. 본질에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셔야 해요. 제가 성경 본문을 가지고 많이 설교하잖아요. 반은 현장 얘기하고 반은 또 성경 얘기하고 그러잖아요. 현장 얘기는 여러분이 실제 현장에서 겪으면서 여러분이 승리하고 또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부분에 포인트가 있는 거고 성경 본문을 보는 거는 진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분이 뭔지, 그 영적인 사실과 복음의 진리에 여러분의 신앙이 확립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 본문을 보는 거예요.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죠.

 

지난주에 범용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고 그다음에 초지능 시대가 다가온다. 그러나 절대 유토피아가 오지 않는다. 왜 안 올까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성경에 돼 있잖아요인간성이 더 악해진다고 성경에 돼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러냐면 인간이 지금 사단의 욕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사단이 인간을 속였고 사단이 자기 욕심을 인간에게도 심었거든요. 그래서 말세가 되면 인간성은 더 악해지고 더 사단에게 잡히게 돼요. 완전히 3, 6, 11장으로 더 잡히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단은 오히려 말세가 될수록 전 세상을 장악하여서 권세를 부리고자 해요.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한 줄 알고 발악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긴 싸움을 하는 거고 사단은 지기 때문에 발악한다 이렇게 보셔야 맞는 거예요. “아이고 세상이 무서워지는데 어떡해?” 이렇게 생각하면 져요. 그렇게 들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진짜 우리에게 영광의 하나님 나라가 이제 다가오고 있구나이렇게 봐야 돼요. 2210~11절 한번 읽어볼까요?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그러니까 세상은 창 3장 이후로부터 시작된 두 계열의 싸움이 세상 종말까지 갑니다. 두 계열의 싸움이 뭐라 그랬어요? 사단의 계열과 여인의 후손의 계열 그렇죠. 한쪽은 뱀의 후손이고 또 한쪽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성도를 말하는 거예요. 이 두 계열이 창세기 3장부터 시작해서 세상 끝까지 간다는 거예요. 이 말씀 하고 우리가 이웃 사람들하고 잘 지내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의와 선을 행하라는 말은, 서로 안 맞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세상 본질을 보면서 전도자로서, 복음 가진 자로서 살아야 할 도리를 해야 해요. 사실 우리가 의를 행하고 선을 베풀면 세상은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가 사람 이해력도 없고 같이 싸우고 이러면 저게 기독교인인데 하는 짓 봐라이런다고요. 저는 본질적인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두 계열의 싸움은 공존이 안 되는 거예요. 영적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솔직히 이거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에요. 영적인 세력끼리 충돌하는 거예요. 우리가 강하면 빛을 비추어서 그쪽을 살려내는 거고요. 우리가 연약하면 그쪽에 우리가 흡수돼요. 그 사람들이 대세가 돼버려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한 주간의 신앙생활을 할 때 늘 영적 상태를 최고로 회복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번 주가 더 회복되고 다음 주는 더 진전되고 이런 신앙생활을 하셔야 하는 거예요. 신앙생활은 막 열심 냈다가 또 식으면 그냥 믿음이 없어지고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거는 복음부터 정립이 제대로 안 돼 있는 거예요. 언약 신앙 자체가 정립이 잘 안 돼 있는 거예요. 주님은 언약 백성을 놓친 적이 없어요. 끝까지 인도해요. 여러분이 상속자란 말이에요. 양자란 말이에요. 우리가 가진 자유 의지와 책임성을 굉장히 성경은 강조해요. 그렇기에 우리가 어느 걸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주님은 변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느 걸 더 사랑하고, 어디에 더 관심 갖고, 어디에 더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사실 주님과의 교제는 달라지는 거예요. 사단은 첫 번째 계열의 사람들을 통해서 성도를 이 죄악된 세상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거예요. 세상 문화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문화적으로 빠지도록 유혹하다가 그게 잘 안 되면 또 핍박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에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레마의 말씀으로 확 잡아야 돼요. 레마의 말씀이 뭐예요? 심령에 부닥치는 말씀을 레마의 말씀이라 그러는 거예요우리가 메시지를 보통 이해력으로 듣는다고요. 이 성경 자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게 내가 밥을 먹어서 힘을 얻는 것처럼 말씀이 내 심령에 부닥치고 내 상황에 딱 적용되어서 믿어지고 깨달아지고 체험되는 그 말씀을 레마의 말씀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2. 오늘 제목이 전도자의 검이에요.

1) 전도자의 검이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이렇게 돼 있죠.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이것이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부닥쳐라이 말씀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창 3, 6, 11장의 본성과 그 속에서 올라오는 두 가지 욕구를 극복을 못 해요. 3, 6, 1장의 본성은 세상 문화랑 본성이 똑같아요. 그래서 따라가게 된다고요. 재미있는 거, 호기심이 있는 거, 육신적으로 편안한 거, 육신적으로 즐거운 거 그쪽으로 쫓아가게 돼 있어요. 우리가 세상 콘텐츠로부터 자녀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영적인 메시지, 복음 메시지가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성경의 진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고 돼 있거든요. 여기 보세요.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이렇게 돼 있죠. 여기서 구원이란 단순히 생명 얻는 것이 아니라 최종 구원을 위해서 자라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구원이에요. 성화가 포함되어 있는 구원입니다. 여러분이 사명까지 깨닫고 사명자의 삶을 사는 것까지 포함된 구원이에요. 16절에는 전도자의 검이 되는 성경의 권위와 그것의 네 가지 기능을 설명하고 있어요.

 

2) 성경의 권위와 4가지 기능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이렇게 돼 있잖아요. 여기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랬는데 이 감동이라는 거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서 받은 계시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다. 이 말이에요. 사람의 지식이나 머리로 생각해내서 만든 그런 기록물이 아니라 이 말이에요. 계시와 영감을 통해서 이 성경을 기록한 거예요.

 

여기에 네 가지 기능이 있어요.

(1) 첫 번째가 교훈이에요. - 진리의 교훈, 복음의 교훈을 주는 거예요. 이 교훈 속에는 인간 문제의 진정한 원인과 그 결과 그리고 그 해결책을 바로 알려주는 교훈이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또 복음 받은 자에게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가르치는 교훈이 여기 포함돼 있는 거예요. 이거는 전도할 때 복음 제시만 하는 게 아니라 성장하도록 하는 교훈이 다 포함돼 있다 이 말이에요.

(2) 그다음에 두 번째 책망이에요 - 책망은 뭐냐 하면 구원받은 자가 죄의 본성대로 살면 책망하고 고치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진짜 우리가 어떤 죄에서 빠져나왔는지를 알게 되면.

헛짓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면 성령님이 찔림을 줘요. 회개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3) 세 번째가 바르게 함이에요. - 바르게 함은 하나님 자녀답게 바르게 살도록 이끄는 거예요.

(4) 네 번째가 의로 교육하기에요. - 성도가 의로운 백성이 되고 치유 회복되어서 의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거예요. 진리와 말씀 따라가는 삶을 살도록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거에요. 이게 성경의 네 가지 기능이라는 말이에요.

 

최종 목표를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어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서 최종 목표의 첫 번째는 사람이 먼저 온전하게 회복되는 거예요. 교회에서 봉사는 많이 하고 사역은 많이 하는데 내가 너무 사역한다고 힘들어. 그거는 그가 온전하게 되어서 사역한 게 아니라서 그래요. 전도를 열심히 했는데 뭐 별로 전도되는 것도 없고 낙심되네. 그건 아직도 온전하게 되지 못한 상태에서 전도하려고 하니까 전도가 버거운 겁니다. 주님은 그냥 열매 맺게 하는 게 아니고 우리를 치유 회복시켜서 열매 맺게 하시는 거예요. 최종 목표는 먼저 사람이 회복되는 거에요. 그런 다음에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함이라 이렇게 돼 있죠. 여기서 선한 일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고 주의 계명을 이루는 게 선한 일이죠.

여기서 선한 일은 그리스도 밖에서 선한 일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철저히 하나님 소원과 주님의 계명에 관계된 선한 일이에요. 일반 사람들도 선한 일을 하자는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그건 그리스도 밖에서의 선한 일이에요. “도덕 윤리 잘 지키자.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자선한 일이잖아요. 근데 그리스도 밖에서 선한 일의 특징은 뭐냐 하면 자기 공로를 세우는 겁니다. 내가 이 정도 살았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리스도 밖에서 선한 일은 아버지의 소원과 주님의 계명과 상관없어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계명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게 선한 일이거든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레마의 말씀으로 받는 거예요. 이게 표현이 좀 다를 뿐이지 강당 말씀을 진짜 자기 삶에 적용해라 이런 말씀하고 같은 말이에요.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 말씀을 계속 강조했잖아요. 1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죄로 각 사람을 가르치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오늘 본문에서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그랬잖아요. 같은 뜻이에요. 여기서 완전한 자나 온전한 사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거예요. 주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했다고 평가를 받는다면 여러분이 정말로 성령님이 말씀을 레마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가르쳐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해서 여러분을 온전한 사람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거예요. 주인이 바뀌어버려요. 흑암 세력을 꺾고 영적 문제에 빠져 있고 죄의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을 주의 눈으로 보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답을 주는 거예요. 그 사람을 양육하고 세우는 게 최고 재미있어요. 그건 싹 빼놓고 회사 일만 열심히 하더라. 이게 아니라니까요. 돈만 열심히 벌더라. 돈 따라가더라 전혀 아니에요. 세상 가치 기준에 의해서 그 성공 평가에 연연하더라. 온전해지지 않은 거예요. 이게 아직도 세상 가치 기준에 그대로 빠져 있고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고 세상 사람들한테 보일 때 인정받으려고 거기에 빠져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온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거는 아직 육신에 속한 사람이에요. 돈이 좀 많으면 거기에 부유함을 느끼고 돈이 없으면 불안해서 연약해지고 온전한 게 아니죠. 지금 돈은 별로 없어도 늘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내가 예수님 때문에 삶의 의미를 알고 가치를 느끼면서 내 본분과 사명을 다 감당하고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되고 진짜 하나님의 상급이 있는 사람이에요.

 

3. 마지막으로 교회사에서 말씀에 붙들린 두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 다 성경을 사랑했어요. 엄청 사랑했어요.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붙잡힌 사람들이에요. 그 두 사람이 누구냐 앞에를 보세요. 그냥 일반 사람을 소개하려는 게 아니라 거장 두 사람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1) 칼빈 (1509~1564)

그는 16세기 사람이죠. 1517년 종교 개혁이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까 종교 개혁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에요. 루터보다는 조금 뒤의 사람이에요. 그리고 칼빈이 죽은 다음에 한 139년 후에 한 140년 후에 태어난 사람이 웨슬리예요. 18세기예요. 세기가 달라요. 근데 이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 자기 역할에 충실했고 자기 사명들을 감당한 사람이에요. 칼빈은 중세 카톨릭을 대항해서 개혁주의 신학 토대를 완성시킨 인물이에요. 하나님의 주권을 바탕으로 철저히 성경 중심 신학을 정립시킨 인물이 칼빈입니다. 그래서 중세 카톨릭 교회 체제를 무너뜨리고 개신교 체제를 확립한 사람이 칼빈이에요. 그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장로교예요. 그래서 칼빈을 우리가 늘 많이 강조하는 거거든요.

 

2) 웨슬리 (1703~1791)

반면에 웨슬리라는 사람은 칼빈 보다 139년 후에 태어난 18세기 영국 사람인데 칼빈만큼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에요. 칼빈은 많이 들었는데 웨슬리에 대해서는 잘 못 들었거든요. 많이 얘기를 안 해서 그래요. 왜냐? 교파가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감리교를 창시한 사람이에요. 지금 감리교가 많이 자유주의화 됐거든요. 한국의 감리교가 많이 자유화됐어요. 그런데 초창기에 웨슬리가 이 감리교를 세웠을 때는 굉장히 영성 있는 감리교였어요. 감리교가 미국에도 영향을 줘서 미국의 감리교가 초창기 때 굉장히 뜨겁게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 감리교가 그다음에 성결파에 영향을 주고 성결파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오순절에 영향을 줬어요. 오순절 교단이 그 출처를 따지고 들어가면 웨슬리까지 따지고 들어가게 돼요. 오늘 이 요한 웨슬레에 대해서 조금 얘기를 더 드리겠습니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아주 경건한 훈련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다 신앙의 인물이죠. 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 신학연구원을 졸업하고 미국 선교사로 갔어요.

동생이 찰스 웨슬레인데 찰스 웨슬레 아세요? 찬송가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지고그 찬양도 찰스 웨슬레가 지는 찬송입니다. 아무튼 존 웨슬 리가 미국의 선교사로 갔는데 그는 엄격한 신앙 속에서 율법주의 신앙이 굉장히 뿌리를 내려있어요. 그래서 사실 선교사로 갔는데도 자기 죄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을 못 봤어요. 율법주의 신앙이면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선교사인데도 때로 구원의 확신이 없었어요. 그거는 철저히 살려고 하는데 누가 정확하게 복음을 얘기를 안 해주니까 내가 하나님 뜻대로 못 산 거에 대해서 늘 힘들어 하는 거예요.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있을 수 없죠. 그래서 미국 선교사로 갔는데 완전히 실패했어요. 처량하게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됐는데 근데 하나님이 그 인생에 중대하게 개입해 주시거든요.

 

그래서 그 인생에 세 번의 은혜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첫 번째는 선교 실패 후에 영국으로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났어요. 바울처럼 풍랑을 만났는데 자기는 죽음의 공포가 막 오는 거예요. 불안이 덮치는 거예요. 그때 배 한편에서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진짜 편안한 얼굴로 찬송을 부르고 있는 일단의 교인들을 보게 됐어요. 그 교인이 누구냐 하면 모라비안 교도라고 해서 그 당시에 굉장히 신앙적으로 성숙돼 있고 신앙의 확신과 내면의 체험을 굉장히 중요시하던 그런 교파예요. 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안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인데도 충격을 받아서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편안하지그리고 영국에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나중에도 이 모라비안 교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이 모라비안 교인들은 전도 선교도 열심히 했어요. 심지어는 만약에 노예에게 전도해야 할 것 같으면 자기가 노예같이 되어서 전도하겠다는 결단까지 했던 사람들이에요.

 

두 번째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을 해 주셨냐 하면, 영국에 돌아왔는데 이 웨스레는 늘 은혜를 갈망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연히 한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게 인생을 바꿔버렸어요. 거기서 진짜 회심을 하게 된 거예요. 구원의 확신이 그때 와버렸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 집회를 올더스케이트 거리라는 그런 거리에 한 기독교 집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참여했는데 그 예배를 인도하던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어주는 거예요. 루터가 로마서 주석을 쓸 때 이신칭의에 대해서 강조하잖아요. 그 서문을 읽어주는데 듣는 중에 마음 문이 열리고 감동이 오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거기서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 자기는 오랫동안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했거든요. 이게 로마서 주석 서문을 딱 들으면서 성령께서 레마의 말씀으로 역사하신 거예요. 그때 그는 진짜로 구원의 확신과 함께 굉장한 뜨거움이 오게 됐어요. 그게 두 번째 체험이고 모라비안에게 영향받은 거는 그냥 충격받은 거고 이 올더스케이트 거리에서 받은 구원의 체험은 회심의 체험으로서 자기 인생의 제1의 은혜 체험이다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이분은 자기 속에 죄의 본성이 있잖아요. 이걸 굉장히 고민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은혜받고 나서도 이거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을까? 그러니까 사실 성화는 끝까지 가는 거잖아요. 근데도 마음의 갈망이 이거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단계의 성화는 안 되나? 이걸 굉장히 고민하다가 드디어 이분에게 사건이 일어납니다.

 

세 번째 체험입니다. 1739년 그의 나이 35살 정도 돼요. 동생 찰스 웨슬리와 그의 친구 조지 휘필드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유명한 설교가가 되고 미국의 각성 운동을 일으켰던 유명한 사람이 돼요. 이 세 사람이 173911일 밤새 기도하다가 새벽 3시쯤 돼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처럼 눈에 보였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들에게 강력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됐어요. 이거를 웨슬레는 자기 인생의 2의 은혜 체험이다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이거는 강력한 능력이 임하는 체험이었어요. 그 당시 영국 사회는 성공회라고 카톨릭하고 개신교하고 섞여 있는 특징을 갖고 있는 교파가 영국 성공회에요. 교리적으로는 칼빈주의를 따라가요. 근데 의식적으로는 아직도 천주교 형식을 많이 갖고 있는 그런 교파예요. 근데 영국 성공회가 침체 되고 있는 그런 때에요. 근데 이 강력한 성령 체험 이후부터 어떻게 변하냐 하면 휘필드랑 웨슬레는 길거리 전도 설교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사실은 웨슬리는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부끄러움을 타요. 근데 성령께서 이끄시는 겁니다. 노숙자들이나,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그런 사람들한테 가서 전도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근데 놀랍게 한 번 설교 듣는데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얘기하는데도 잘 안 바뀌는데 한 번에 바뀌는 역사가 많이 일어났어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는 항상 그래요. 성령님이 한 번 설교 듣는데도 사람을 회심시켜버려요. 그런 일들이 왕왕 일어나요. 그래서 수천 명씩 모이는 거예요. 성령님이 뒤집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웨슬리는 평생 순회 사역하면서 죽을 때까지 현장에 들어가서 전도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을 조직해서 한 교파를 세운 게 감리교예요. 이렇게 성령께 붙들려서 53년간을 전도 설교를 해요. 순회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밑에서 키워진 사람들을 세워서 그 사람들을 또 파송해요. 그래서 감리교가 굉장히 영역을 넓혀요. 사역자들을 전부 다 순회 길거리 설교자로 보내요. 이 웨슬레는 88세에 돌아가셨어요. 죽기 몇 주 전까지 설교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식을 줄을 몰랐어요. 이분은 칼빈주의랑 좀 신학적인 흐름이 달라요. 이분이 주장하는 거는 완전 성화는 없지만, 죄를 정말로 극복할 만큼 성령께서 확 잡아주시는 그 은혜의 체험이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게 2의 은혜다강조하는 설교를 합니다.

 

결론으로 이분은 영국 사회를 바꿔요.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이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냐 하면 사회의 부조리나 타락한 것들을 막 바꾸는 겁니다. 이분의 영향을 통해서 노예 해방도 일어나고요. 교도소 복지가 바뀌어버리고요. 사회에 영향을 대단히 미쳤어요. 그래서 역사가들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프랑스는 사회의 빈민층들을 못 바꾸고 그 사람들이 고통당하면서 프랑스 대혁명 때 많은 사람을 죽이거든요.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은 아주 유혈 혁명이에요. 근데 영국에는 그런 유월 혁명이 없었던 이유는 웨슬리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은혜를 받아버렸어요. 그래서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가 차곡차곡 성장하는 거예요.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거든요. 한 사람을 이렇게 바꿔요.

 

결론

전도자의 검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그랬어요. 복음의 말씀이에요. 근데 성령께서 강력히 쓰시는 말씀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 말씀을 성령께서 강력히 쓰실 때는 한 사람이 그냥 한 사람이 아니에요. 사도 바울처럼 잡혀 쓰이는 거예요. 당연히 성경적 전도 운동이 일어나죠. 사실 웨슬리는 성경적 전도 운동이 한 명씩 이렇게 바뀌는 게 아니고 그냥 사회 전반적으로 부흥 역사가 일어나는 일에 쓰임 받았던 사람이에요. 역사가들은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칼빈은 진리의 기초 공사를 하고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근데 웨슬리는 정통 교리는 있는데 불이 꺼진 교회에 불을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은요. 이런 은혜 속에 들어가면 7 7 7 망대 여정 이정표는 당연히 이루어지는 사람이 됩니다. 그거 그냥 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해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했어요.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을 진짜 전도자로, 양육자로, 사역자로 세우기를 원하셔요. 또 저도 그렇게 세우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이런 정말 소원을 가지기 바래요. 진짜 이런 소원을 가지고 한 시대에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냥 흐름 따라 살지 마시고, 언제 우리에게 네 능력으로 지금 하나님 일 하라고 했습니까? 자세가 너무너무 중요해요. 체질이 너무너무 중요해요. 귀중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