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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4월 8일 수요예배 - 제자의 요건2 (눅 17:1~10)

by 현상금 2026. 4. 8.

제자의 요건(17:1~10)

 

서론)

제자의 요건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또 우리 교단에게도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엊그제 경북 영양 참평안교회에서 있었다. 오전에 노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참평안교회(권용훈) 설립 및 입당 예배가 있었다. 영양군은  6개 면이 있다., 영양군은 인구소멸 지역이다. 그럼에도 주님이 내적인 음성을 들려주셔서 개척했다고 한다. 6개 면에 지교회 세우도록 기도 부탁했다.

 

본론)

1. 제자는 살리는 자이다. 그래서 본문에 실족시키지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1) 작은 자란 - 영적인 어린아이 곧 믿음이 연약한 성도,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천대당하기 쉬운 범죄자, 사형수, 무속인, 창녀, 중독자 같은 사람에 해당한다.

2) 실족시킨다는 것 구원의 길을 막는 것,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리 연약하고 작은 자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믿고 뿌리내리도록 도와줘야 한다. (18:10 그들의 천사들이 내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느니라)

그 대가는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 곧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셨다.

3) 이렇게 말씀하시는 배경이 있다. - 당시 종교인이었던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죄인, 창녀, 세리들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을 비난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죄를 범할 수 있다.

15장부터 보면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의 비유가 나온다. 이것은 예수님이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것의 기쁨을 말씀하신 것이다. 16장에는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하면서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다. 이런 맥락에서 17:1'실족하게 하는 죄'를 다룬다. 이는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막는 바리새인들의 악함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율법적 의로움을 내세워 죄인들을 정죄했다. 이는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중대한 범죄를 행하는 것이다.

4) 우리에게 적용 - 경제 수준, 학력, 세련된 문화를 갖춘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사회적 약자나 전과자, 중독자를 배타하는 경우, 자기 의를 가지고 율법주의적 정죄를 하는 경우,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는데 용서치 못하는 경우도 실족시키는 죄다.

5) 그렇다면 권면이나 옳은 말, 바른 말 일체 하지 말라는 것인가?

3절에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말이 나온다. 죄를 묵인하라는 말 아니고 무조건 죄를 덮으라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전제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고하는 것이다. 책망하는데도 사랑함으로 그 일을 하라는 것이다.

 

2. 즉각 제자들의 반응 - 믿음을 더하소서

용서하는 거는 계명 지키는 거다. 계명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커야 한다고 제자들은 생각했다. 이때 예수님은 겨자씨 믿음을 얘기했다. 그것은 외형적으로 보여주는 바리새인의 믿음이 아니었다.

1)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의 효과를 얘기하셨다.

이 비유의 핵심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겉으로 보이는 믿음이 아니라 생명력 있어야 한다. 그 생명의 본질은 성령이 계셔서 말씀과 기도로 자라나게 하는 믿음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는 믿음이다. 창조주의 배경과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자란다. 이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한다.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은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넘어져도 회개하면 용서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은 겉으로 보여주는 과시용 믿음이었으나, 그 안에는 생명이 없었다. 이런 능력을 체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2) 외형적으로 아주 작아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은 창조주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

뽕나무가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능력을 무수히 체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영이 죽었기에 불신앙, 불순종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합리적 이성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생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영의 생각을 선택해야 한다. 그럴 때 창조주 능력을 체험하는 것을 일반화할 수 있다.

 

3.  간증 (스텔리 템 간증)

 미국 국적(오하이오주 리마)이고 1915년에 태어났다. 107세까지 살았다. 중국계 이민자로 부모가 가난했고 자기도 가난했다. 어릴 때부터 신문 배달했고 21살 때 은 제품에 도금하는 일을 배워 사업을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거래처가 끊기고 한계에 내몰렸다. 비관하고 유서 쓰고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근데 하나님은 믿고 있었기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때 마음의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들렸다. “너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 네 지혜를 믿지 말고 내 지혜를 구하라. 나를 주인으로 삼으라 그러면 내가 너를 세우리라.”이 말씀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고 새 마음이 생겨 하나님께 고백했다고 한다. “하나님, 이 사업은 당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직원으로 일하겠습니다. 이익이 나면 51%는 당신 것입니다. 49%는 제가 가지겠습니다. 하나님이 대주주, 저는 소주주입니다.” 그때부터 거리를 걸으면서 막막하지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오늘 뭘 하면 될까요? 저는 당신의 직원입니다. 지시해 주세요.” 그날부터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최선을 다했고 그러자 돈이 벌렸다. 그때부터 두 개의 통장을 만들어 51%는 하나님 통장에 넣었다고 한다. 모은 돈을 선교 사역에 드렸다고 한다. 그렇게 사업을 재미있게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고 한다. “51%는 부족하다. 100%를 내게 드려라.” 솔직히 순종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나님 100%를 드리면 저는 뭘 먹고 삽니까? 가족은 어떻게 부양합니까?” 그걸 결단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40살 때 비로소 실행했다고 한다. 자기는 어떻게 먹고 사느냐? 재단이 설립되어 재단에서 중간 관리자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분이 장수해서 107세까지 살았다. 42개국 600명 이상의 선교사를 도왔다고 한다. 은퇴하고는 십자가 목걸이를 만들어서 그걸 건네주면서 전도했다고 한다. 성령의 직접적 음성을 들으면 이게 가능하다.

 

결론) 이 사람이 고백할 말은 무엇이겠는가?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이다.” 수고했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했네, 라고 내세울 수 없다. 우리가 빠진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를 바로 안다면 이 고백밖에 할 수가 있다. 출발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중요하다. 이 믿음은 자라난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을 일상화 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오히려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성령으로 반응해야 할 좋은 기회다.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실 일에 진정한 그릇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간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