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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6월 14일 주일예배 - 요일서의 기록 목적(요일 5:4~13)

by 현상금 2026. 6. 14.

요일서의 기록 목적(요일 5:4~13)

 

https://youtu.be/GauiVj5j1ug

 

 

지난주에 여러분 기도로 필리핀 세부 집중 훈련을 잘 다녀왔습니다. 최고로 편안히 다녀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관련된 말씀을 좀 더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요한일서 기록 목적인데 다음 주 1시간 더 남아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려면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의 믿음이라고 그랬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자 외에 누가 세상을 이기겠느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또한 세상을 이기려면 필요한 것이 세상이 지금 빠져 있는 죄의 성격과 죄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하는 겁니다. 35절에 보면 사단은 뱀을 통해서 하와를 꼬이는 내용이 나오고 있죠. 이걸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다시 말해서 네가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 네가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꼬인 거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지금 전혀 이 죄를 인식을 못 한다는 거예요. 지금 인간은 전부 양심 윤리적인 의를 오히려 갖고 있고 저 사람보다 나는 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그래도 교양이 있고 나는 그래도 질서를 지키고 난 그래도 성실하고 착해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양심 기준으로 생각하니까 내가 노력하면 더 선해질 수 있다 이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성경은 지금 뭐라고 그래요? 기준점 자체가 잘못됐고 방향 자체가 왜곡됐다. 방향이 왜곡되면 아무리 성실해도 잘못 가는 거예요. 한마디로 지금 사단이 철저히 속게 만들고 있어요. “너희는 마귀에게서 났나니 너희도 너희 아비 맞게 욕심을 행하는 도다. 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그 속에 진리가 없고 살인자라고 얘기했어요. 또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온 천하를 꿰는 자라고 돼 있어요. 속이는 자다. 그래서 지금 전부 속고 있는데 몰라요. 문제는 교회까지도 죄 그러면 죄의 경중 과 다소와 얼마나 죄질이 나쁘냐 그런 쪽으로만 얘기하고 있지. 지금 선악의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얘기 안 하고 있어요.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거 그래서 인간이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있다는 거 이런 거를 죄로 얘기를 안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영적인 죄와 양심적인 죄를 잘 구분을 못하고 막 섞어서 우리가 많이 살았어요. 만약에 영적으로 보면 우리는 다 반역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말이에요. 사단의 욕심을 따라, 사단의 거짓말을 따라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초등부에서 얘기했지만, 이 영적인 죄의 결과로 양심적인 죄도 윤리적인 죄도 범하게 되는 거라고 했어요. 세상은 왜 니가 양심을 안 지키냐? 네가 왜 그렇게 윤리적으로 안 사냐?” 이것만 요구하고 있지. 그 사람이 지금 마귀의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는 것을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얘기를 못 하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양심 윤리적인 의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께 굳이 돌아갈 이유를 몰라요. 내가 지금 진노하에 있고 심판하에 있다는 걸 몰라요. 이 말이 굉장히 중대한 얘기입니다. 조선시대에 왕명을 어기게 되면 사형이에요. 통치권자가 왕이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어기면 통치실현이 안 되기 때문에 죽이게 돼 있어요. 근데 우리는 왜 이런 인식을 하나님에 대해서는 못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절대 통치권자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준엄한 재판장이라는 거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에 대해 조금만 뭐라고 해도 반동이 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갑니다. 그들은 곧잘 최고 존엄을 무시했다고 그래요. 최고 존엄이라고 하면서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 그러면 벌벌 떨거나 김정은 그러면 열광한단 말이에요. 왜요? 그걸 놓고 교육하고 세뇌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인식이 없어요. 하나님의 선악의 기준을 어기고 그분의 통치를 거역하는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걸 알게 되면 내가 성실하든,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착하든 상관없이 내가 지금 반역하고 있는 죄인이고 사단의 종노릇하는 죄인이고 진노하에 심판하에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실제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겁니다.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지금 빠져 있는 운명 속에서 인간을 건져내고 하나님과 관계의 질서를 회복하고 언약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예요. 뿐만아니라 우리가 사단에게 속아서 그 욕심 속에서 살아온 죄의 본성이 있고 그래서 형성된 인본주의 체질이 있잖아요.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그리스도가 되어 주시고 계속 통치해 주셔야지 바뀌어요. 우리의 성실이나 양심으로 우리 체질이 안 바뀌어요. 영이 살아나야 해요. 말씀으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믿어지고 그분이 내 안에서 행하시는 삶을 체험해야 체질이 바뀌어요. 이걸 깨달아야 진정한 구원의 의미가 알게 되고 진정한 회복이 되고 또 세상을 향해서 증인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사단의 함정과 체질에서 완전히 빠져나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 갱신이 회복돼야 할 사람들이에요. 영적인 죄에서 영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그래서 양심, 윤리적인 죄도 범하게 되는 거고, 지금 온 세상이 창 3611장의 본성을 따라 살고 있는 거예요. 이게 정말로 여러분 문제라고 고백 되고 이것이 본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이 인식되어야 합니다.

 

본론

1. 지난주에 세상을 이기는 증거는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니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여러분은 하나님께로 난 자가 맞습니까? 그 말은 하나님께로 부터 났다. 위로부터 났다. 성령으로 난 자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는 거예요. 이 세상이라는 건 뭐예요? 사단이 빠뜨려 놓은 세상 가치관, 세상 기준, 모든 인본주의 체제와 삶 이걸 다 합쳐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가 그 속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어요. 말씀 기준이 아니에요. 하나님 기준이 아니에요. 거기서 또 사단의 욕심에 빠져서 두 가지 기본 욕구를 갖고 살아온 거예요.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는 오직 내 능력과 보이는 곳에 있었어요. 삶의 방법은 내가 애쓰고 노력하고 긴장하고 내 힘으로 하는 인본주의 체질로 살아온 거예요. 그러니까 총체적 난국입니다. 여러분이 영이 살아나고 근본 뿌리 본질로부터 뒤집어지는 체험을 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은 알아듣는데 이 삶으로 잘 안 들어가요. 왜요? 실제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이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요한일서를 통해서 증거 받습니다.

(1) 6~8절에 보면 그분은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셨고, 물과 피와 성령으로 증거가 되는 분이시라고 돼 있어요.

예수님께서 물로 임하셨다는 것은 물세례를 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그랬죠. 그래서 예수님이 죄인의 자리에 앉으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분은 죄가 없으시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면서 세상을 이기신 분이에요. 그런 분이 우리의 참 왕이 되시고 참 제사장이 되시고 참 선지자가 되신 것이에요. 물세례를 받으신 이후에 광야에 나가서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 시험을 이겨야지 진짜 그리스도가 되시는 거예요.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나서 그분이 본격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들어가시는 거예요. 복음서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최종적인 사역이 피 흘리는 십자가의 사건이었어요.

(2)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십자가에 피 흘리심을 말하는 것이에요.

대속 사업을 완성하신 것을 말씀하는 거죠.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 후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보내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성령으로 알게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와 구원을 위한 것이고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게 복음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이잖아요. 이걸 듣는 사람이 마음 문이 열려서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성령께서 알게 하시는 거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행위 조건으로 주님의 복음에 덧붙이는 게 하나도 없어요. 영적인 죄에 완전 빠져 있는 인생을 예수님이 피로 임하셔서 속죄와 구원 사업을 완성하셨고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도록 하시는 거예요.

(3) 성령께서는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에요.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요 1426절에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생각나게 하리라그랬어요. 사도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할 때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나는 약하고 두려워 떨었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얘기했어요. 사실 이게 복음의 핵심이잖아요? 인간 죄의 문제를 얘기하고 그걸 구원하는 복음을 말하는 것이지 다른 걸 얘기 안 하겠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내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복음 전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과 나타남으로 하겠다이렇게 얘기했어요. “이는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에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성격, 복음의 성격을 오늘 더 확실하게 정립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물과 피 이것을 성령님이 우리 속에 증거해 주시는 것이 우리 구원을 이루는 필수 조건입니다.

 

2) 9~13절에는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이 나와 있죠.

1112절이 결론적인 말씀이에요.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절이 기록 목적이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그랬어요. 여러분, 아들 안에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주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잖아요. 이게 영적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거듭나는 생명이죠. 그리고 이 생명이 있으면 아버지와 아들과 영적 교제가 됩니다. 생명적 교제가 되는 거고 아들과 아버지와 영적 연합이 되는 거예요. 이 생명이 들어오면 첫째 영적 교제가 되고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영적 연합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영생이 보장되는 겁니다. 이거를 다 합친 말로 생명이 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생명이 있으면 당연히 아버지와 아들과 영적 교제가 되겠죠. 아버지 아들과 생명적 관계를 갖고 날마다 연합의 삶을 맛보게 되겠죠. 임마누엘의 삶을 맛보게 되겠죠. 그게 생명이 있는 증거예요. 우리가 이미 영생을 가졌다고 돼 있어요. 영생을 가졌고 영적인 연합이 되고 생명적 교제가 되고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우리는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도록 되어진 거예요. 이게 누려지고 깊어지는 방법이 우리가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내 안에 주인을 바꾸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삶이 더 발전하게 되고 더 깊게 체험되는 것이에요.

 

2. 제가 전에 안 되었던 것이 지금 좀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여러분도 한번 오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에는 진짜 잘 안됐던 것이 지금 그리스도 통치의 삶을 살면서 좀 되는 게 있어요.

1) 나의 낮아짐이 돼요.

예전에 저는 제 인본주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았어요. 인본주의 자존심을 지키면 낮아집니까? 높아집니까? 높아지죠. 항상 내 자존심을 옹호하며 방어하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내 속에는 은근히 높은 마음을 갖고 살았어요. 저 사람보다 낫다. 문제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 사회적인 지위가 낮고 또 무슨 사회적 범죄를 행했으면 그 사람보다 당연히 우리가 나은 거죠. 우리는 건실한 시민사회 시민이고 그 사람은 사회적인 규칙도 어기고 질서도 무너뜨리고 생활도 무너졌다면 내가 당연히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교에서도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비교 의식 가운데서 컸잖아요. “저 사람보다 내가 공부를 좀 더 잘해, 저 사람보다 내가 체육을 잘해”, 이걸 우리가 항상 자랑하고 좀 인정받고 드러내고 싶어서 살지 않았어요. 그게 인본주의 자존심이에요.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할 줄 아심이라한 그 꼬임에 넘어간 거예요. 그래서 남 판단 참 잘해요.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무시해요. 이렇게 하면 그만큼 내가 높아지는 거예요. 이게 타락한 창 3장의 죄의 본성인 줄 저는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이 죄의 본성을 잘 몰랐고 인본주의 관점에서 보니까 저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영적인 죄, 양심 윤리적인 죄 구분이 안 됐어요. 영적인 죄와 그로 말미암아 생긴 영적 문제를 모르다 보니까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낮추는 거예요. 이게 타락한 죄의 본성이에요. 제가 누구를 만날 때 보면 자동으로 그 사람 판단하는 작동이 되는 게 느껴져요. 여러분 누구를 만나 처음으로 볼 때 성령의 생각을 따라 보지 않아요. 본성으로 딱 봐요. 사회적 기준으로 딱 봐요. 외형으로 딱 봐버려요. 그 사람의 소유, 기능, 능력 이런 걸로 딱 봐버리거든요. 저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이런 죄의 본성을 따라 계속 살 것이고, 일평생 사실 마귀에게 속아 종노릇하다가 지옥 갈 인생이었어요.

 

제 본질과 본성을 알고 내가 진짜 영적인 죄와 따라오는 영적 문제에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 이런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어주시고 이런 체질과 본성을 극복하도록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어 주시고 통치해 주시고 살아주시는구나! 이거를 알게 되니까 갈라디아 220절의 삶이 돼야 하겠다는 그런 깨달음과 각성을 자꾸 하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이 이게 충분히 깨달아져서 그리스도가 살아주시지 않으면 나는 진짜 바닥이구나. 내가 똑같구나. 이걸 알게 될 때 겸손해지는 게 가능해집니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사람 능력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진짜 주격과 체질이 180도 바뀌게 되고 믿음과 의탁과 순종과 충성과 겸손까지 들어가야 해요. 믿음, 의탁, 순종, 충성이 필요해요. 꾸준히 충성하는 게 필요해요. 남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계속 나는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삶을 살겠다. 이게 충성이에요.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계속 살아주시는 것을 맛보게 되어요. 그러면 내가 더 보여요. 그러니까 자동으로 실제 내면에서 겸손해지는 거예요. 겸손이 될 때 최고 계명인 사랑이 돼요. 그동안 믿음, 의탁, 순종 많이 강조했는데 거기다 덧붙이세요. 충성, 겸손, 사랑까지 붙이세요. 낮아지면 사랑이 어떻게 되냐 하면 진짜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사람도 사실 영적으로 보게 돼요. 그 사람을 받아줄 수 있게 돼요. 공감해 줄 수 있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주고 살리는 일을 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제 인력으로 안 돼요. 제가 좀 더 발전하게 된 게 내가 이성적으로 낮아지자 해서 낮아지는 게 아니고 내 본질을 알게 되면서 낮아지는 거예요.

 

2) 사람 보는 눈이 복음의 관점, 주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좀 되는 겁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우열 의식으로 봤어요. 뭘 좀 뛰어나거나 훌륭한 사람은 좀 높여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낮추어 봤어요. 이게 철저히 인본주의 관점이에요. 사실 하나님이 똑같이 다 지으셨거든요. 다 자기 형상으로 지었어요. 기질의 차이, 기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근본은 다 똑같잖아요. 하나님 앞에 다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예요. 인본주의 관점은 그렇게 안 보거든요. 기능적으로 보고 능력적으로 봐요. 이제 관점을 바꾸어 봐야 해요. 전부 다 창 3장의 운명인데 그들을 주님이 어떻게 구원하고 세우고자 하시는지 그 주님의 관점으로 보자 이 말이에요. 이 사람은 습관이 안 좋다. 예를 들어 중독에 빠졌단 말이에요. 여러분 마약 중독 같은 경우 조직 폭력배들도 약쟁이라고 해서 싫어한대요. 조직에서 방출시킨대요. 마약을 하는 조폭이 있으면 숨어서 한 대요. 자기가 뽕 한다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서 조직 세계도 무섭잖아. 위계질서가 있어요. 근데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이제 우열 의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다 창 3장의 운명인데 주님이 어떻게 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지, 어떻게 그 사람을 치유 회복시키고자 하시는지 그 관점으로 보자 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어떤 사람도 다 그렇게 봐야 해요.

 

지금 조성준 씨 안 와요. 조성준 씨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그 집안도 우상숭배가 만만치 않거든요.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교의 간부급이었어요. 어머니 암 병 고치기 위해서 열심히 나왔잖아요. 근데 어머니 돌아가셨잖아요. 그때 사단이 공격할 수 있잖아요?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응답도 안 하시고 그러면서 그 가문의 역사하는 흑암 세력이 조성준 씨를 건드릴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빠져나오지 못한 습관성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사탄이 믿음을 놓쳐버리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뭐 사람이 왜 저래?” 우리 관점으로 보면 목사님 저렇게 잘 해주는데 왜 저래?” 우리는 그런 식으로 딱 봐버리거든요. 영적으로 안 보고, 주님의 관점으로 안 보고, 복음의 관점으로 안 보는 거예요. 끝까지 주님의 관점으로 봐야 해요. 이게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 내가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이 안 누려지면 내 기준의 관점과 내 이익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나한테 불필요하거든요. 나한테 도움 안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애써서 좀 사랑해 주려고 애쓴 거지, 잘 안되면 내 마음에서 놔버리게 되거든요. 아니에요? 여러분 남편도 그렇게 보면 안 돼요. 제가 주님의 관점, 복음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좀 되게 됐다는 말이에요. 왜요? 영적인 죄를 보게 되니까 영적 문제가 뭔지를 알게 되고 그래서 초래된 결과를 알게 되니까 복음의 관점으로 보게 되어요. 나도 실제로 거기에 빠져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고 내가 어떻게 치유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까 이제 복음의 관점이 생긴다 이 말이에요. 내가 치유되고 내가 회복되는 이 그리스도의 맛을 맛보면 이게 되어요.

 

몇 주 전에 총회 교역자 수양회가 있었어요. 우리 총회에 남은 자들이 다 모였어요. 목사님 사모님들 많이 왔어요. 왔는데 다들 많이 늙었어요. 요새 한 번씩 만나면 늙었다는 느낌이 확확 와요. 남들이 저를 볼 때도 그렇겠죠. 내 육신의 본성은 목사님들도 목회 능력 관점으로 본다니까요. 내가 목회가 시원치 않아도 그 관점으로 본다니까요. 외모로 평가해요. 그러니까 제 속에는 그 본성이 지금도 조금도 없어진 게 아니에요. 그런데 영의 생각이 더 강해지고 영의 생각을 더 할 수 있게 되니까 주님의 관점으로 보게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을 주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남편도 그렇게 보셔야 해요. 지금 하나님 구원의 계획 속에 있는 내 남편 이렇게 보셔야 해요. 주님이 죽어주신 남편, 지금도 구원하고 치유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남편 이렇게 봐야 해요. 여러분 그냥 자기 기준으로 보면서 서로 주장해 버리면 부부 사이가 너무 힘들어요. 그렇게 되면 사단이 놀이터로 만들어 버려요.

 

여러분 퍼즐 있잖아요. 앞에 강아지 퍼즐이죠. 우리는 각각의 퍼즐이에요. 각각의 퍼즐은 자기 위치와 기능과 역할이 있단 말이에요. 바르게 끼어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퍼즐 은 하나를 위해서 있는 게 아니에요. 전체 퍼즐을 위해서 있죠. 그게 교회의 각 지체예요. 그럼, 전체 퍼즐을 완성하는 분은 누구일까요? 그리스도예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의 각 퍼즐은 머리의 지시를 다 받아야 해요. 자기 위치에 가서 붙지도 않고 딴 데 돌아다니면 안 돼요. 지 잘 났다고만 하면 안 돼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 제 기능, 역할, 사명을 감당하게 돼요. 여러분 우리는 자기 자랑이나 자기 영광 받기 위해서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 각자에게 은혜 주신 것은 서로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돼 있어요. 봉사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도록 하려 함이라 했어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우리가 자라나야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최고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순종한 우리의 모델이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근데 우리가 다 개성이 달라요. 성향이 다르고 기능도 달라요. 그러니 밸런스를 맞춰서 전체 몸의 통일성을 기여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진짜 교회가 배워야 할 부분이에요. 아무리 우리가 개혁 운동을 해도 개혁은 남 죽이는 개혁이 아니에요. 보세요. 몸의 원리는 강한 지체가 약한 지체를 보호하게 돼 있어요. 강한 지체가 약한 지체를 보호하도록 우리 몸 자체가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리 안에 내장 다 약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뼈로 감싸고 있고 근육으로 감싸고 있잖아요. 근육 자랑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몸에 아름답지 못한 지체가 있어요. , 콩팥 이런 거 아름답지 않아요. 근데 아주 중요해요. 아름다운 지체가 덮어주고 있어요. 가려지게 해주고 있어요. 놀랍게 디자인해 놨어요. 그래서 조성준 씨가 귀중하고 전미숙 집사님이 귀중한 거예요. 심지어 나간 분들도 귀중한 거예요. 나갔다고 지금 믿음 생활 안 하는 거 아니잖아요. 어느 지역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 몸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나간 사람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거 틀린 얘기예요. 나간 사람 놓고도 기도하셔야 해요. 주님의 관점, 복음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니까요. 만약에 이렇게 퍼즐 하나가 빵꾸 났죠. 이 퍼즐이 지기 역할을 못 하는 겁니다. 빵꾸가 여기도 나고 저기도 나고 이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오늘 교회를 전체 퍼즐로 꼭 생각하시기 바래요. 우리가 복음의 관점, 주님의 관점으로 봐야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세상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3) 제가 세 번째로 좀 안 되다가 지금 되는 게 있어요. 매사에 모든 일, 모든 문제, 모든 스케줄을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처리하고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 좀 됩니다.

나로 사는 것과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극명하게 달라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내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성령으로 반응하는 삶을 말하는 겁니다. 자기 본성이 어떤지를 정확히 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대부분 자기를 못 보기 때문에 계속 자기가 살아요. 그리스도께서 모든 진리와 생명과 지혜와 의와 사랑으로 살아주셔요. 진리와 지혜와 생명과 의와 사랑과 능력과 치유와 권능의 근원이신 성령으로 통치 인도로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는 수준이 되셔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인본주의 자아가 주인이 아니고 갈라디아 220절이 되는 사람이에요. 주격과 체질이 바뀌는 거는 기도의 삶이 발전함으로 가능한 겁니다.

 

여러분 주격과 체질이 바뀌는 기도 생활이 되면 전에 안 되었던 삶이 되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못 참았어요. 한 번 올라오면 막 성질이 나서 못 견디는 거예요. 이런 거 치유는 한 번에 안 되겠죠. 성령께서 그럴 때마다 회개시키고 또 회개시켜요. 그러면서 내가 왜 성질을 낼 수밖에 없는지를 보게 돼요. 내가 왜 고집 피울 수밖에 없었는지 보게 돼요. 사실 삶이 과거에 굉장히 불안했던 사람들이 있어요. 불안한데 그때는 그리스도를 몰랐어요. 그럼 내가 처세해야 하잖아요. 그럼 내가 얼마나 힘을 넣어야 하겠어요. 그때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긴장했겠어요. 그때 딱 들어가는 내 생각이 고집으로 형성된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잘 못 고쳐요. 그냥 인이 백이었기 때문에 나는 살기 위해서, 정말로 난 지키기 위해서, 그때 몸부림쳤기 때문에 그때 내가 행했던 그 처세는 굉장히 깊게 들어가게 돼 있는 겁니다. 지금 머리로 이해하는데도 실제로 잘 안돼요. 주님은 이제 여러분을 붙잡고 여러분 속에서부터 치유시키셔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 소원 이루기 원하셔요. 하나님의 소원은 여러분의 본성으로 여러분이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열매 맺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을 붙잡고 여러분을 통해서 주님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는 사람이란 이런 사람 아닙니까? 이게 돼야 망대가 되는 거예요. 이게 되는 게 사단 망대가 무너지고 내 안에 성령의 망대, 그리스도 망대가 세워지고 그리스도가 진짜 주인 되는 갈 220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게 되는 그 발전이 777의 삶이에요.

 

결론

오늘 요한일서의 목적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그랬어요. 그냥 영생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참된 연합이 된 거예요. 참된 생명적 교제가 되게 된 거예요. 진짜 보좌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도록 된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 220절이 돼야 하는 겁니다. 이 삶을 실질적으로 맛보고 발전시키려면 갈라디아 220절이 돼야 하는데 계속 강조하지만,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안 되는 거예요. 지금 내 생각으로,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게 보여야 하는 거예요. 지금 내가 내 본성으로 누구를 판단하는데 이게 내 본성으로 한다는 거를 순간 놓쳐버려요. 갈라디아 210절에 깊게 들어가면 이게 다 보입니다. 그러면 진짜 주님이 사시는 삶으로 우리 인생이 바뀌어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인생으로 바뀌어져요.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