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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6월 3일 수요예배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2 (요일 4:7~21)

by 현상금 2026. 6. 3.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7~21)

 

1. 온 세상 진단

1) 단지 양심 윤리적인 죄에만 빠진 게 아니고, 영적인 죄에 빠져있다. - 우리가 양심 윤리적인 죄만을 말한다면 성경이 진단하는 것에 못 미친다. 양심 윤리적인 죄 보다 더 뿌리는 영적인 죄이고 그래서 초래된 영적 문제이다.

2) 그런데 세상은 이를 전혀 인식조차 못 하고 있다. - 종교인, 양심가, 법조인, 교육자, 철학자 아무도 모르고 있다. 그러면서 열심히 살아라 성실히 살아라. 최선을 다해라. 선하게 살면 된다 말하고 있다. 자기 기준의 의를 쌓고 있다.

3) 실상은 속고 죄와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있다. - 세상 성공자도 그렇고 실패자도 그렇다.

 

2. 26:17~18 무조건 열심히 아니라 눈을 떠야 한다.

주님이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너를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가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셨다.

구원은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사역이다. 사람의 사역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다. 눈을 떠야지 자기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다. 구원이란 눈을 뜨게 해서 어둠 사탄의 권세 하나님께로 죄 사함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 기업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내가 너로 이 일을 하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도구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전도 현장을 가지므로 이 최고의 일에 쓰임 받길 바란다. 눈을 떠서 운명이 바뀌는 일이 얼마나 귀하겠는가?

너희가 이 아가페 사랑을 받았으니, 너희도 이 아가페 사랑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어떻게 아가페 사랑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본론

1. 내 본성상으로는 이 사랑을 할 수 없는 나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 왜 그런가?

1) 사탄의 거짓과 욕심에 빠진 채 인본주의 자아가 주인 되어 두 가지 기본 욕구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해했다고 해서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이 아가페 사랑 못 한다. 우리는 나의 의는 세우면서 다른 사람은 오히려 판단하고 정죄하는 본성이다. 자기 동기로 사람을 대하였다. 그래서 이 사랑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을 깊게 보는 은혜가 필요하다.

2) 그뿐만 아니라 상처가 이 사랑을 못 하게 한다.

상처가 있으면 남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오히려 비판심이 더 세진다. 우리는 전부 인본주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나를 합리화하고 방어하는 자존심이다. 다른 사람은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존심이다. 처녀 때 순진하고 남을 불쌍히 여기던 사람이 시집가고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나중에는 사람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1) 2:14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했다. 왜 그럴까? 13절에,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셉이 이를 체험했기에 원망과 시비하지 않았다. 50:19~21에 보면,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을 체험했기에 형들을 용서하고 형들과 그 자녀를 자기가 기르겠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임마누엘과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시는 것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본성과 수준으로 행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우리도 나부터 인정해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다.

(2) 우리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내면적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사탄의 거짓과 욕심에 넘어간 인간은 불안과 욕심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나 중심이 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내면적 조건을 다 갖고 있다.

 

2. 상대를 바꾸기 전에 내가 먼저 갈 2:20이 돼야 한다.

1)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도 갈 2:20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영적인 죄, 영적 문제에 빠진 자기의 본질 바닥까지 못 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사람은 자기 힘으로 애쓰면 뭔가 발전되고 향상될 것처럼 생각이 든다. 정말 인생 문제가 단지 행위적인 문제라면 정신력과 의지력으로 애쓰면 된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라고 하면 정신력과 의지력으로 안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알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인생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기 부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이 주인이 될 수 있다. 자기 부인이 안 되면 인본주의 자존심과 자기 기준을 못 내려놓는다. 자기 동기, 자기 고집도 못 내려놓는다. 이게 정말 사탄의 함정에 빠져서 형성된 본성과 체질인 것이 보여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내려놓게 된다.

2) 최고의 축복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인생으로 바뀌는 거다. 이게 되면 상처에서 빠져나오고 현재 승리하게 된다. 저는 오랫동안 내가 주인이 되어 주님을 잘 믿으려고 애썼던 사람이었다. 진짜 내가 주인 된 것이 영적 문제인 줄 깨닫고, 2:20이 돼야 한다. 내가 인생 핸들을 잡으면 안 된다. 내가 살면 여유 없다. 염려 체질이다. 잘하려고 할수록 더 긴장한다. 원망과 시비한다.

 

3. 그래서 갈 220절이 되면서 하나님의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1) 그럴 때 두 가지 욕구를 위해서 살지 않고 두 가지 명령을 위해서 살 수 있다.

구자빈 다락방 간증) 자기는 굳이 자기 일을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러니? 하니깐 주님은 일이 잘 안되게 해서 자기를 훈련하실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을 꼭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이면 주님이 주인이시고 책임자고 언약 성취자다. 거기에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 인생을 맞추게 되면 더 더욱 그렇게 된다. 그러면 주님께 맡기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 맡길 때 주님의 성령의 인도를 체험한다. 성령께서 모든 진리와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 되어주신다. 그걸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렇게 맡겼는데도 원치 않는 일이 벌어졌다면 그때 그 이유와 주님의 뜻을 주님께 물으면 된다고 했다. 죠지 뮬러 얘기도 해 주었다.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배경과 임마누엘을 계속 누릴 수 있는 거다.

2) 그럴 때 주님의 아가페 사랑을 느끼게 된다.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릴 때 아가페 사랑을 계속 느끼게 된다. 그 사람이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우리의 능력과 수준으로 이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아가페 사랑을 내가 받았음을 알 때 우리도 그 사랑을 하도록 인도하신다. 주님의 아가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도 구원하시는 사랑이시다. 이를위해 가장 낮아지시고 가장 참혹하고 가혹하고 극심한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다.

 

결론

아가페 사랑하기 위해서 오늘 세 가지 것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