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동기 (왕상19:19~21,왕하2:1~18)
참된 동기(왕상19:19~21,왕하2:1~18)
올해 본부 주제가 제123 RUTC 응답의 24이다. 원단기도회 1강이 나의 24였다. 이것은 보좌의 축복이 내 속에 24시 누려지는 것을 말한다. 저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보좌통치하고 계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성령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을 기도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주 강단 말씀이 기억나는가? 제목이 네가 어찌 여기있느냐 엿다. 네가 왜 그러고 있느냐 하신 것이댜. 이걸 통해 정말 문제치유, 일치유, 인간관계치유, 전도치유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엘리야가 낙담하고 이제 넉넉하오니 그만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 내용을 살펴 보았다.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은 호렙산으로 인도하셔서 능력을 보여주시고 세미힌 음성으로 사명을 말씀해 주신 것을 살펴 보았다. 엘리야는 분명히 어둡고 캄캄한 시대에 하나님 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세운 사람이였다. 하나님은 잇라엘만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힐 아람 왕도, 아합 왕조를 전멸시킬 예후라는 인물도 세우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엘리야는 이런 절대주권과 절대능력과 절대언약의 하나님을 믿으며 그런 하나님의 종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러분도 그런 정체성을 가지기를 바란다. 오늘은 그의 제자 엘리사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엘리사 통해 주시는 교훈을 내 것으로 받고 올해 목표가 성취되는 여러분 되기 바란다. 오늘 제목이 참된 동기이다. 이것은 내 동기를 주님의 동기로 바꾸는 것을 말하는 거이다.
1. 갑절의 성령을 구한 엘리사
1) 승천하는 엘리야
엘리야가 자신이 승천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선지생도들과 엘리사까지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엘리야는 자기를 따르는 엘리사를 머물러 두고 홀로 조용히 승천하고 싶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스승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이유가 뭘까? 당연 스승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었고 또 그에게 구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이걸 알고 엘리야가 물었다. 내가 올리워지기 전에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이걸 엘리야가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네가 어려운 걸 구하는도다. 그러나 네가 나의 승천하는 장면을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안 이루어질 것이다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엘리야가 회호리 바람으로 불말과 불수레에 태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소리쳤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소리쳤다. 엘리야는 실제 이스라엘을 지키는 병거와 마병과 같은 역할을 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떨어뜨려 놓은 겉옷을 갖고 요단강 언덕에 와서 물을 치면서 소리쳤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요단강물이 갈라졌다. 엘리사가 능력을 받은 것이 입증이 된 셈인 것이다.
2) 엘리사가 행한 기적들
2장부터 8장까지 보면 엘리사의 기적과 그가 행한 일들에 대해서 나온다. 그가 엘리야의 성령을 두 배로 받은 것을 증명해 주는 말씀들이 나온다. 16가지 정도의 기적이 소개된다.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물이 좋지 않아 열매를 떨어지게 하는 물의 질을 바꾸는 일을 했다. 엘리사의 제자인데 죽고 그 남은 과부가 있었다. 이 여인의 빗을 갚도록 한 병의 기름병을 갖고 빌려온 모든 그릇에 가득 채우는 기적을 행하였다. 또 애기 못낳는 수넴 여인이 있었다. 그녀에게 애기를 낳게 해주고 그 아들이 자라 죽자 또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다. 여러분 아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도 고쳐 주었다. 물 속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기적도 행하였다. 아람군대 엘리사를 잡으러 와서 도단성을 에워싸자 하나님은 불말과 불병거를 보호해 주셨다. 그리고 잡으러 온 아람군대를 싹 다 눈멀게 해서 생포하는 기적도 행하게 하셨다. 엘리야가 행한 것과 유사한 기적도 있지만 두 배나 더 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도 유사하다. 여러분 이런 성령의 역사가 가능하다고 믿는가? 하나님은 왜 엘리사에게 이런 능력을 허락하셨을까? 그 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을 증명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2. 엘리사는 왜 성령의 역사를 두 배 받기를 구했겠는가?
1) 스승의 시대도 악했지만 자기 시대는 더욱 악해질 것을 알았다.
더 악해지고 참담해지고 피폐해질 것을 알았다. 엘리사의 시대는 아합왕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북이스라엘에 시행되는 싯점이다. 참 어두운 시대다. 이 때 하나님이 능력 없으시거나 하나님이 부재하심 때문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엘리사를 성령의 능력의 도구로 쓰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2) 엘리사가 두 배의 성령의 역사를 구한 것은 개인의 욕구 만족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을 증명하며 그 시대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엘리사만 아니라 시대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쓰임받은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 시대 현장의 멸망당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성령의 능력을 받았던 종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 중심의 관점에서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을 구하며, 일의 성공을 구하며, 전도 운동의 동기가 나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장을 살리는 하나님의 동기가 되야 한다. 그 하나님의 동기가 아가페 사랑인 것이다. 우리의 동기가 순전히 하나님의 아가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신 것도 아가페 사랑 때문이었다. 지금도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건지시는 것도 아가페 사랑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동기가 주님의 동기와 맞아야 하는 것이다.
3. 올해 목표
1) 본부 주제가 RUTC 응답의 24이다.
이걸 위해 우리의 방향이 하나님의 소원에 맞추어지고 우리의 관심과 생각이 주님의 관심과 생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이것이 24시 되기 바란다. 그러면 내 문제나 내 일이 내 문제가 아니고 내 일이 아니다. 주님의 문제요 주님의 일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이 아버지 소원 이루기 위해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 속에서 역사해 주실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문제치유, 일치유, 인간관계치유, 전도치유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의 갈등이 많다. 왜 그런가? 나 중심의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동기에 안맞다. 이것은 알아도 못고치는 경우가 많다. 24시가 되면 내 중심의 생각을 그 만큼 주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가장 깊은 숨은 동기까지 바꿀 수 있다. 그래야 주님의 진정한 통로가 될 수 있다.
2) 올해 우리 교회는 작년 목표가 그대로 지속된다.
그런데 이걸 이루기 위한 좀 더 실제로 들어가는 올해 되기 바란다. 그것이 우리 동기까지 주님의 동기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운동하고자 하는 이유가 뭔가? 우리가 성령의 능력과 충만을 구하는 이유가 뭔가? 우리가 성공을 구하는 이유가 뭔가? 청년들 공부하는 이유, 돈버는 이유가 뭔가? 예수 생명받은 우리가 예수 능력을 구하는 동기가 뭔가? 전제가 예수 사랑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은 자다. 우리 속에 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주님의 영을 모신 자들이다. 아가페 사랑이 동기가 될 때 성령의 능력을 주시기에 가장 합당하게 된다. 능력 주어도 교만치 않게 되고 주님의 순종의 모범을 가장 잘 따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개인전도와 다락방 말씀운동을 펴는 해가 되기 바란다. 우리는 보좌 축복을 내 속에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결론
엘리사는 왜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했나? 스타가 되기 위해서 가 아니다. 하나님이 증명되며 그 시대 살리기 위해서다. 자기 개인 욕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 현장 살리기 위해서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아가페 사랑으로 예수 능력을 얻고 다락방 전도운동으로 들어가는 해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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