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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2년1월16일 주일예배 - 엘리사와 아람군대

by 현상금 2022. 1. 16.

 

 

엘리사와 아람군대(왕하6:8~23)

 

우리는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놓쳐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주시는 핵심 메시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실패와 고통은 하나님의 능력 없으시거나 부재하심이 아니라 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믿음의 종들을 세우셨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우리는 시대가 어두울수록 그 흐름 따라 가서는 안되고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세우신다는 것을 믿어야 된다. 사사기 말기에 사무엘을 세우셔서 미스바 운동을 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계속 블레셋에 의해 고통을 당했다. 그 때 이스라엘의 군대 정체성과 사명을 잘 알았던 다윗을 하나님은 쓰셨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전쟁에 이기고 짐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그를 통해 증명케 하셨던 것이다. 아합시대에는 누구를 세우셨는가? 엘리야를 세우고 그를 이어 엘리사를 세우신 것이다. 엘리사에게는 특별히 성령의 역사가 갑절로 임하게 하셨다. 지난 주에는 엘리사가 나아만의 불치병을 고치는 사건을 보았다.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안다고 나아만이 고백했다. 이것은 아람과 이스라엘 전체에 주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였다.

오늘 말씀은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군대에 대한 이야기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보좌의 축복과 시공간 초월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다. 이 말씀을 사실적으로 받기 바란다. 저와 여러분이 영의 눈을 떠야 한다. 영의 눈을 하나님을 증명하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육으로 반응하느냐, 영으로 반응하느냐의 싸움이다. 한 주간 살면서 이 싸움을 싸워야할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한 주간이 고스란히 말씀을 적용해야 할 현장이다. 제대로 적용해서 살다가 주일 예배 온다면 매주 믿음이 자라나게 된다. 오늘 다시 한번 보좌의 축복과 시공간 초월의 축복을 확인하기 바란다.

 

1. 보좌의 축복과 시공간 초월의 축복

1) 보좌의 통치 축복

103:19~22의 말씀을 우리는 믿는다. 천사의 특징이 뭔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한다. 지으심을 받았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서 수종들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수많은 천군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믿지만 엘리사는 실제적으로 보았고 체험했던 것을 오늘 성경이 전하고 있다.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러 왔다. 도단성을 포위했는데 하늘 군대가 그를 지켜 주셨다. 아람군대 보다 더 많은 숫자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했던 것이다. 엘리사가 그 사환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이것이 우리가 누릴 보좌의 축복이고 시공간 초월의 축복이다. 실제 문제에 적용해야될 말씀이다. 12:22에는 천만 천사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수많은 천사가 나온다. 18:10에 보면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천사를 부리시면서 영계와 보이는 현상계를 다스리고 계시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떻게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2) 성령의 통치 축복

엘리사가 실제 영안이 열려서 보좌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속의 성령의 통치를 충만히 누렸기 때문이다. 영안이 열린 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의 보좌통치를 누릴 수 있다. 동시에 우리 속에 주님의 현재적 통치인 성령의 통치를 누릴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통치를 날마다 힘입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살았던 삶의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사탄의 함정 속에서 형성된 인본주의 체질을 날마다 버려야 한다. 문제와 일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할까 염려하며 이전 체질로 빠졌던 것을 치유받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소원에 방향 맞추면 내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성령님을 힘입을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문제가 치유 기회요 응답의 기회가 된다. 그리스도께 뿌리내려서 문제치유, 일치유, 관계치유, 전도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일에 승리하며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된다. 실제 성령님을 힘입어 기도가 되야 보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보좌의 축복과 시공간 초월의 축복을 주신 것은 불신자처럼 살지 말고 사람 살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 살리는 자로 바뀌어야 한다.

 

2. 이스라엘과 주변국 관계

1) 아람 군대를 살려주는 엘리사

지난 주에 이스라엘과 주변국 관계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오늘도 연관된 말씀이 나온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아람 군사들의 눈을 멀게해서 그들을 사마리아성으로 들어오게 하는 내용이 나온다. 눈을 떳을 땐 이미 사마리아성에 포위된 상황이였다.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다. 이스라엘 왕이 저들을 치리이까 물으니깐 엘리사가 만류한다. 떡과 물을 주어 먹게 하고 그냥 돌려보내 주라고 한다. 우리 생각 같으면 죽여야 되지 않는가? 왜 살려주는 것일까? 지난 주의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은 주변나라들을 징계의 몸둥이로 사용하신 것이지 원래는 이스라엘이 선교해야할 나라 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지난 주에 봤던 나아만을 고쳐준 사건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람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모르면 햇깔린다.

2) 우리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내 편 니 편, 우리 편 남의 편, 좋은 편 나쁜 편으로 가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 편의 이익은 옹호하고 다른 편은 배척하거나 대적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 생각이 나 중심이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이것이 창3장의 산물이다. 3장 사건 이후 나 중심, 내 가족 중심, 내 민족 중심으로 뭉친다. 다른 사람, 다른 가족, 다른 민족과는 대립의 관계가 되었다. 과거에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잡아먹는 관계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내가 방어 안하고 선점하지 않으면 내가 잡아 먹히지 하는 것이 세상 논리다.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근대 시민 사회가 형성되어 서로 교류하면서 사회계약이 생기고 인류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근대 17~18세기) 그래도 최고 나은 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지금도 보면 3,6,11장의 본성 속에는 내 편 니 편, 내 교회 니 교회, 여당 야당, 우리 나라 다른 나라로 나누어 자기 이익을 위해 다툰다. 자기 편은 좋은 편이고 반대 편은 나쁜 편의 논리가 많이 작용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힘들고 사회가 힘들다. 두려움의 영, 불안의 영에 잡혀 보좌의 축복, 시공간의 축복을 못누려서 그런 것이다.

과연 하나님도 우리처럼 생각하실까? 하나님은 본래 인류를 한 혈통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해 선민 삼고 의로운 나라, 제사장 나라 삼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열방에 자기를 알려서 돌아오도록 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얻어 터지는 것이다. 선민이라도 해도 언약을 깨뜨리고 범죄하고 사명 감당치 못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이방민족이라 해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람나라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람나라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3. 우리가 사명 감당을 위해서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1) 나의 방향과 나의 관심과 생각을 삼위 하나님께 계속 맞추는 인생이 되어져야 한다.

주인을 빨리 바꾸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사명을 교회를 통해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다. 우리는 과거 모든 것을 3,6,11장의 나로 반응했다. 이제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반응해야 한다. 모든 문제와 일은 전부 그리스도께 더욱 뿌리 내리는 기회가 되야 한다. 그러면 주님이 하나님 소원을 위해 우리 속에 지혜와 말씀과 주의 마음과 능력을 주셔서 처리토록 해 주신다. 우리 동기를 하나님 동기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가페 사랑이 안되는 이유 4가지가 있다.

2) 아가페 사랑이 안되는 이유 4가지

(1)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몰라서 그렇다. 여호수아서로부터 왕하까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생각해 봐라. 그런 분이 인간이 상상치 못할 아가페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2) 나의 3,6,11장의 본성을 잘모르고 극복하지 못해서 그렇다. 여기에 사람들이 늘 걸려 산다. 저도 걸린다. 그런데 근방 느끼고 돌릴 수 있는 기도를 할 수 있다. 걸리는 사람을 허락하시는가? 그리스도를 제대로 의지해서 뒤집기를 하라는 것이다.

(3) 다른 사람 이해를 못해서 그렇다. 모든 사람이 사탄의 함정 속에서 형성된 체질이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불신자는 일생 못빠져 나오고 지옥간다. 아버지 관점으로 보고 주님이 죽어주신 대상으로 모든 사람을 봐야 한다.

(4)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능력을 몰라서 그렇다. 지금도 주님이 아가페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주님과 같은 사랑으로 주님의 구원역사에 통로가 되고 손발이 되는 여러분 되기 바란다.

 

결론

여러분에게는 보좌의 축복과 시공간 초월의 축복이 주어져 있다. 여러분의 동기도 바꿀 수 있다. 아가페 사랑이 안되는 이유 4가지를 기도로 묵상해라.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할 수만 있으면 브로커를 사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려고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능력을 주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은 그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