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한 나, 교회(단1:1~20)
서론)
1) 주전606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의 1차 침략 - 다니엘과 3친구 포로(15세~17세)
2) 주전597년 2차 침략 – 에스겔
3) 주전586년 3차 침략 – 예루살렘 함락, 성전 불탐
70년만에 귀환의 두가지 연도 계산법(606~536년, 586~516년)
- 이렇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니엘과 3친구의 믿음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시는 것이 단1장~6장까지 내용이다. 단7~12장까지는 다니엘에게 계시해준 미래사
- 바벨론 제국과 민족들과 열방을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증명하시는 것이다.
1. 왕궁교육을 받았던 다니엘과 3친구
1) 그들은 율법에 금지된 부정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먹자니 율법에 걸리고 안먹자니 자기 안전과 신변의 위협에 걸리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나라의 멸망의 이유를 알았기 분명히 알고 있었던 그들이였다. 그래서 먹지 않기로 뜻을 정하였던 것이다. 먹지 않도록 환관장에게 먼저 부탁했고 받아드리지 않자 그 다음엔 감독자에게 부탁했다. 우릴 10일간 채식을 주어 시험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2) 뜻을 정한 결과?
네 소년에게 - 학문과 모든 서적을 깨닫는 지혜를 주셨다.
다니엘 – 거기에다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도록 해 주셨다.
이들의 지혜가 다른 이들보다 10배나 뛰어났다.
2. 제가 요즈음 계속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감정, 생각에 빠지지 말고 속지 말라는 것이였다.
1) 어떻게 가능한가? 자기 생각, 감정과 성령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느낌과 기분과 계산 판단 생각에 안빠지고 역전시키고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모든 상황 속에서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에 방향 맞추고 있으면 내 문제, 내 일이 내 문제, 내 일이 아니다. 이것이 다 주님의 문제요 일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 소원을 위해서 주님이 우리 속에서 주인되시고 처리자 되시고 언약 성취자 되신다. 이런 주님을 기뻐하고 신뢰하고 의탁할 때 주님이 우리 안에서 무한하신 진리와 생명과 지혜와 아가페 사랑과 능력의 원천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신다.
2) 이걸 계속 적용, 발전시키면 모든 것이 기회가 된다.
(1) 간단한 예 - 핸드폰 교회 두고 온 건
(2) 경제 건 –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했는데 보좌통치와 배경 믿는 성령의 생각으로 가능. 돈이 없으면 육신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늘 눌릴 수 있다. 계속 기회 라고 고백 필요.
(3) 인간관계 건 – 남에게 안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 좋은 사람 없다. 육신의 본성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변명하고 방어한다. 자기 입장에서 항상 논리를 펴게 된다. 상대 이해는 안되고 비판하게 된다. 이런 우리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을 성령님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빠지고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사탄은 꺽고 상대를 중보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오히려 살리는 기회가 된다.(다락방 교회)
(4) 사탄이 내가 생각지 않은 염려의 생각이 탁 들어오게 할 때, 이유없이 비상식적인 억압이 올 때. 다 기회다.
(5) 일 때문에 염려, 불안, 눌림, 부담이 들어올 때
(6) 전도 현장에서 공격이 들어올 때
(7) 다니엘과 3친구와 같은 위기상황이 우리에게 닥쳐도 역시 기회로 간주할 수 있다.
3.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서 뜻을 정해야 한다.
1)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보좌 통치하시면서 우리 속에서 성령 통치하고 계시다.
그러니 육신의 본성에 빠지지 않고 성령으로 반응하도록 뜻을 정해야 한다. 다니엘과 3친구는 자기들의 안전과 목숨과 신변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뜻을 정했다. 그 만큼 영의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반응하는 삶이 체질되도록 뜻을 정해야 한다.
2) 왜 뜻을 정해야 하는가?
뜻을 정하지 않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육신의 체질로 빠지기 때문이다. 머리로 알아도 실제 상황에서 밀리기 때문에 그렇다.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도 뜻을 정하지 않고서는 안된다.
3) 뜻을 정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겨놓으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내 안에 통치하시는 보좌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2:20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좌화가 되는 사람이 시공간 초월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 사람이 주의 형상이 회복되게 된다. 이 사람이 성령충만을 얻게 된다. 그 사람은 에덴의 축복을 누리게 된댜. 하는 일과 업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나의 전무후무, 업의 전무후무가 된다. 이걸 맛본 제자들로 인해 교회의 전무후무를 이루어진다. 그 결과로 3,9를 누리는 목사, 중직자, 렘넌트들이 나온다. 이걸 3시대의 축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러분과 교회가 플렛폼이 되고 파수망대가 되고 복음 송출하는 안테나가 된다.
결론
자신이 뜻을 정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결단해라.
1) 육신의 본성과 거기서 올라오는 대로 빠지는 부분에 뜻을 정해야 한다.
청년들만 아니라 장년들도 육신의 재미난 것, 습관적인 것 그러나 영적으로 도움 안되는 것에 뜻을 정해야 한다.
2) 나의 관심과 생각이 주님께 24시 안되는 부분에 뜻을 정해야 한다.
3) 주님이 분명히 내게 원하시고 있는 것이 있는데 못하고 있는 것에 뜻을 정해야 한다.
2. 뜻을 정하는 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정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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