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에 지은 집, 반석 위에 지은 집(눅6:39~49)
요새 보면 우리 교단에 세 종류의 교회가 있다. 부흥하는 교회가 있고 부흥하다 시험든 교회가 있고 한계를 느끼는 교회들이 있다. 여러분이 이 한계 속에 있지 않아서 감사하다. 어떤 사모님이 교회가 부흥이 안되는 것 때문에 고민하고 탄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류목사님 메시지 따라 왔는데 안된다는 것이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른 비결을 찾아서는 안된다. 성령님께 순종하면 된다. 가나안 정복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지역복음화로부터 땅끝 복음화까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신 성령님으로 하시는 것이다. 거기에 일환이 되는 산업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인본주의를 제거시켜야 한다. 류목사님이 땅끝이 유대인일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성경에도 마지막에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죽인 예수님을 믿고 돌아온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주님은 지금도 절대계획을 갖고 구원역사를 이루고 계시다. 거기에 합당한 이 땅의 교회와 자기 종들을 쓰시는 것이다. 12차 집중훈련이 시작되었다. 주님이 이루시는 구원역사에 여러분이 쓰이는 합당한 종들이 되기 바란다. 여러분이 남 살리고 현장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1.세 가지 교훈
1) 첫째 비판하지 말고 자기 잘못부터 보라고 하신다.
이상하게 우리들은 남의 잘못은 잘 보이면서도 자기 잘못은 잘 안보인다. 왜 그런가? 남의 잘못은 객관적으로 보이는데 자기 잘못은 자기 동기와 욕구에 빠져서 잘 안보이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남의 눈의 티를 빼기 전에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빼라 하신다. 들보는 천장의 무게를 수평으로 지탱하는 자재들을 말한다. 대들보는 그 중에서 제일 굵은 것을 말한다. 6:37에 보면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아니할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되어있다. 비판하는 말로 자기가 비판받지 않을려면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의 비판은 거의 창3장 나 중심의 본성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비판이 아닌 것이다. 나 중심의 비판의 특징이 뭔가하면 살리는 비판이 아니라 까는 비판이다. 우리가 이렇게 변명할 수 있다. 우리가 “그냥 남이 그렇더라 말하는 것뿐이지 꼭 비판하는 거는 아니라”한다. 그러나 그것도 살리는 것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듣는 사람에게 색안경을 끼게 만들어 준다. 사람이란 누구의 험담을 들으면 그 안경으로 그 사람을 보게 된다. 부부관계에서 남의 말하기 쉬운데 서로 조심해야 한다. 주로 안좋은 얘기를 비판조로 전달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끝처리를 살리는 쪽으로 해야 한다. “그러 그러하니 우리가 그를 위해 기도해 주자, 그게 사실이라면 불쌍한 것 아니냐 중보기도해 주자”이렇게 말해야 한다. 왜냐? 여러분은 아가페 사랑을 받은 자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기 때문이다.
2) 둘째 나무는 열매로 안다고 하신다.
보통 사람은 마음에 쌓인 것이 언행으로 나온다. 답답함이나 상처가 쌓이면 원망이 나오고 감사가 쌓이면 감사가 말로 나온다. 육신의 통치를 받느냐, 성령의 통치를 받느냐에 따라 그것이 열매로 나타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무는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고 그 나무의 상태도 안다고 되어있다. 평상시 여러분이 어디에 통치받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평소 남 의식해서 포장하고 예의 차리고 해도 어떤 상황 만나면 실제 본성이 드러난다. 그러니 우리 속사람이 변화를 받아야 되고 심령이 항상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여러분의 속사람이 중요하다. 3,6,11장의 본성에 입각한 감정 느낌 생각으로 반응하지 말고 성령으로 반응해야 한다. 신앙생활의 2단계 중의 5단계를 잘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분이 12차 집중훈련을 하는 것이다. 류목사님도 다락방 초창기 때는 세 번 정시기도 하셨다. 그것이 점점 발전되어서 24시가 된 것이다. 예수 생명이 있는 사람은 발전하게 되어있다. 결국 여러분의 관심과 생각을 어디에 두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육신의 생각에 늘 두고 사느냐, 아니면 성령께 늘 관심과 생각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오늘 나무는 열매로 안다는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3)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될 수 있다 하셨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말씀을 들으나 듣기만 하지 실천치 아니한 사람과 같다. 바람이 불고 홍수나면 이 집은 무너진다. 모래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외형이 아무리 그럴 듯 하더라도 문제가 터지면 버틸 수가 없다. 티비에서 태풍이나 쓰나미에 떠내려가는 집을 봤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받았음에도 믿음과 순종이 안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복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중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 뜻을 정하여 실천하는 것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같다. 반석에 지은 집은 태풍이 치고 홍수가 나도 괜찮다. 오만 문제가 와도 기회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나가면 문제에 승리하고 사탄을 이기고 정복자의 길에 서게 된다. 여러분의 수준이 아닌 성삼위 하나님의 수준으로 사는 인생을 체험하게 된다. 성령의 24시 통치와 능력으로 사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옥토와 같은 사람이 된다. 씨가 좋은 밭에 뿌려지니 100배, 60배, 30배 결실했다고 하였다.
2. 다락방 전도운동
저는 이번 집중훈련의 목표를 우리 교회가 주객과 체질이 바뀌어 24믿음과 순종의 체질되는 제자되는 걸로 두었다. 다락방 전도운동이 뭐냐? 류목사님이 다락방 운동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 다락방 전도운동은 평신도 운동인데 종교가 아닌 생명운동과 능력운동이다.
지난 주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왜 종교인인지 말씀드렸다. 그들은 외형적 율법의 규칙 준수에 초점을 두었다. 그들은 남들보다 열심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그래 놓고도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도 영적사실 모르고 복음의 언약 모르면 자동으로 종교인이 된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시기하게 된다. 종교적인 규칙을 지키는 열심으로는 창3,6,11장의 본성과 그 속에서 형성된 영적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오직 복음으로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 주의 성령께서만 사탄을 이기고 생명과 권세를 누리게 만드신다. 그래서 다락방은 생명운동이요 능력운동이다. 이걸 체험하면 기도가 절로 되고 가만있을 수 없는 것이 전도이다. 이때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입이 열려진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적절한 말이 나오게 된다.
2) 다락방 전도운동은 제도나 율법에 매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축복과 힘을 누리는 운동이다.
복음은 여러분에게 자유와 축복과 힘을 준다. 오순절을 통과한 마가다락방의 제자들은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대행했고 주님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도 기뻐했다. 물질도 헌신했다.
3) 다락방 전도운동은 사람이 애쓰는 운동이 아닌 백프로 주님이 이루시는 것에 통로되는 믿음운동이다.
내가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식이 아니다. 우리 본성은 지금도 내가 고민하는 체질로 반응한다. 그러나 거기에 빠지지 않고 계속 주의 성령을 인정하고 힘입는 전환이 일어난다.
4) 다락방 전도운동은 방법이 아닌 증인되는 운동이다.
여러분이 24 믿음과 순종의 제자되면 권세를 누리게 된다. 실제 기도권세와 말씀의 권세, 중보기도권세, 일과 사역의 권세, 전도와 전도운동의 권세를 누리게 된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에 응해서 자기 능력을 나타내셔서 복음이 증거되게 하신다. 이번 12차 집중훈련의 메시지를 잘 경청하면서 녹취해 보라. 또 북한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들어보라. 여러분이 이미 받은 권세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여러분도 다락방 전도운동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결론
우리는 우리 교회만 아니라 우리 시찰, 노회 교회들이 다 다락방 전도운동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세 가지 교훈을 기억해라. 첫째 비판하지 말고 살려라. 둘째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우리 속이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 일에 승리하고 사람 살리는 열매를 맺게 된다. 셋째 말씀을 듣지만 말고 순종함으로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라. 그러면 다락방 전도운동의 4가지 특징이 여러분에게도 나타난다. 다락방 운동은 생명운동과 능력운동이다. 자유와 축복과 능력을 누리는 운동이다, 주님이 이루시는 것에 통로가 되는 믿음운동이다, 방법이 아닌 증인되는 운동이다. 이번 12차 집중훈련이 이런 축복을 받는 여러분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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