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마16:21~27)
서론) 오늘 말씀의 핵심은 주니이 가르치신 제자도에 대한 말씀이다.
갈릴리 사역이 무르익었을 때(로마 백부장의 하인,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 살림, 갈릴리 광풍을 잔잔케 함, 거라사인의 지역의 군대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12년된 혈루증 여인을 고침,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림, 오병이어의 기적를 행하신 후) 의미심장한 질문한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나서 비로소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제 삼일에 부활하실 것을(최종적으로 하실 일,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 말씀해 주셨다.
본론)
1. 베드로의 항변
1) 22절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 때에 예수님의 답변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게 하나님의 일(구원역사)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창3,6,11장)을 생각하는도다”그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바른 신앙고백을 해놓고는 근방 창3,6,11장의 생각으로 돌아갔던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창3,6,11장의 생각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을 간파하시고 꾸짖으신 것이다. 우리는 사탄과 3,6,11장의 연관성을 잘 알아야 한다. 사탄의 통로가 3,6,11장의 체질이다.
2) 기도할 때는 영의 생각을 하다가도 평상시에는 내 중심의 생각, 육신 중심의 생각, 보이는 것 중심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끊임없이 우리는 생각을 돌려야 한다. 생각을 돌리는 것이 기도로 가능하다.
3) 3,6,11장의 생각을 1,3,8의 생각으로 돌려야 한다.
영의 생각으로 돌려서 직장생활, 학교생활, 가정생활을 해야 한다. 그럴러면 하루 세 번 정시기도가 좋다.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 나라 중심, 성령의 충만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기도생활이 발전되면 성령으로 말씀이 믿어지고 정립되어지는 것이 발전된다. 이것이 여러분의 기준과 동기와 믿음의 현주소와 삶의 방법과 자기 실현의 욕구를 바꾸어 버리게 된다.
4) 우리가 언제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이 약해지거나 영이 눌리면 근방 육신의 본성으로부터 느낌, 감정, 생각이 올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이 약해지면 육신의 본성을 따라 불안, 염려, 긴장, 조급, 짜증, 연약, 무기력, 조임이 온다. 이런 상태에서 불신앙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 비판 원망하는 생각과 말이 올라온다.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라 했다. 나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나 내 안에 계신 주의 성령께서는 결코 그러신 법이 없으며 모든 능력이 있으심을 고백하는 거다. 그러면 육신의 느낌, 감정, 생각을 성령께서 이기게 하시고 극복케 하신다. 더 나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권세, 말씀의 권세, 일의 권세, 전도의 권세를 누리게 한다.
- 예수님은 장차 죽으실 일을 예고 하시는데 제자들의 수준은 아직 3,6,11장의 상태이다. 예수님은 이런 상태인 제자들을 보시면서 제자도에 대한 말씀을 해주신 것이였다.
2. 제자도란? - 제자가 가야할 길 두 가지 핵심 말씀을 해주셨다.
1) 첫째 - 24절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다.
(1) 날마다 갈2:20이 되라는 말씀이다. -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실제 처형당할 죄인이 자기가 죽어야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말한다. 그 십자가는 자기가 죽어야할 십자가인 것이다.
(2) 십자가는 어려운 문제나 고난이나 타인이 나의 십자가가 아니다. - 창3장의 나는 죽었음을 시인하라는 말이다. 창3,6,11장의 내가 사탄의 함정에 빠져 산 나임을 알고 내가 주인 되는 것을 부인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통치하시게 된다.
(3) 성령께서는 제게 내 기준, 내 동기, 내 잘못된 믿음의 현주소, 내 방법이 다 3,6,11장에 빠졌다는 것이 보여주셨다. 그러니 나를 의지해서는 안된다. 내 열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안된다. 성령께서 기준, 동기, 현주소, 방법이 바뀌도록 인도해 주신다.
2) 둘째 -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셨다.
(1) 생득사, 사득생인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득생 되라는 말이다.
(2) 여기서 제 목숨은 이 땅에서의 제 목숨이다. -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 제 목숨을 위해 산다. 이걸 위해 좀더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생을 건다. 이걸 위해 공부, 취업, 결혼, 돈, 성공도 하려 한다. 이걸 위해 투쟁하는 것이 창3장에 빠진 이후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보좌 배경 잃고 자기 안에 성령의 통치 잃어버리게 되면 남는 것은 나 밖에 없다. 제자들도 이 땅의 자기 목숨을 위해 예수님을 좇아 나선 것이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자기들도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3. 이것을 뒤집으라고 하신다. - 어떻게 뒤집을 수가 있겠는가?
1) 25절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잃는 자는 구원하리라는 것은 창3장의 동기에 빠져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동기로 살으라는 말이다.
(1) 한동대 슬로건 - 한동대에서는 공부해서 남 주자는 슬로건과 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가 라는 슬로건이 있다. 그래야 글로벌 리더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의 근원이다. 신자는 복의 통로이다. 복을 흘러보내는 것이다. 이타심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게 구약에 서 사회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약속을 하고 계신 것이다. 보좌 배경과 마르지 않는 원천의 복을 약속하고 계신다. 이것이 신약에서도 기독교의 핵심 원리이다. 창3,6,11장의 본성과는 안맞다. 성령으로 가능하다.
(2)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예수 사랑이 깊어진다. - 자기에게 불가능한 삶이 예수님으로 가능해지니깐 그렇다. 그 사랑 때문에 드디어 목숨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드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 땅에서 제 목숨과 그 만족을 위해 산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가 수고한 것들이 가치 없이 된다. 다 잃는 것이 될 것이고 상이 없고 부끄러운 것이 될 것이다.
2) 26절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는가”하였다.
이 말은 이 땅에서도 진리가 된다. 하늘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천하를 얻은 나폴레옹이나 징키스칸과 같은 사람이 되었어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과 면류관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로마황제가 되든, 시진핑과 같은 중국 주석이 되어 온 천하를 얻는다 해도 영생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하는 대로 갚으리라” 하였다.
결론)
주님의 제자도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배경과 받은 신분과 권세를 바로 믿을 때 가능하다. 육신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꿀 때 가능하다. 제자들 오순절 이후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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