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 사용에 대한 가르침(눅 16:1~13, 19~31)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치면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우리가 곧잘 네비게이션을 잘못 보아 갈림길에서 길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재탐색이 나와 목적지로 또 인도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샛길 같은 곳으로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이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믿고 가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네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해 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어주셨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속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다. 그런데 몇 차례 아브라함이 현실을 보고 잘못된 결정을 한다. 그때마다 낭패를 만난다.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잘못 선택한 것을 깨닫게 하시면서 바른 길로 가도록 수정해 주신다. 그래서 그는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가만 보면 야곱 같은 경우도 그렇고, 다른 족장들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이스라엘을 민족을 선택하셔서 출애굽 해서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도 그렇게 인도하셨다. 구름 기둥, 불기둥이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그들을 인도하였다.
지금은 누가 네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해 주시는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속에 성령님으로 그 일을 행해 주신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실제적으로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와 그 언약의 말씀을 먼저 바로 붙잡게 만드신다. 그게 믿어지고 따르도록 인도하신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뭔가 잘 안되게 해서 기도로 자기 점검을 하게 하신다. 그리고 깨닫게 하시면서 바른 길로 인도받게 하신다. 그래서 지난주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할 일을 무엇인가? 항상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어야 한다. 제1 순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해서 여러분의 영이 살아나야 한다. 주님을 주인 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의 통치를 받게 된다. 여러분의 삶의 주체와 체질을 자꾸 바꾸어 나가라. 이게 되면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주님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여러분을 인도하시게 된다. 여러분이 염려할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왜 그런가? 여러분 속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신 주의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어져야 한다. 이것이 믿어지면 여러분이 연약해도, 지혜가 부족해도, 문제를 만나도 괜찮다. 여러분이 제1 순위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해서 자꾸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삶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여러분을 통해 주님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게 된다.
지난 주에는 탕자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이 비유의 핵심이 뭔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었다. 전도자에게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늘 16장은 재물 사용에 대한 가르침이다. 여기에 두 가지 비유가 나온다. 하나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이고 또 하나는 여러분 많이 들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이다. 두 가지 다 재물에 대한 올바른 사용을 교훈하신 말씀이다. 이 부분도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가 재물과 분리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1. 불의한 청지기 비유
1) 무슨 뜻의 내용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이나 종들을 주관하고 자녀교육까지 맡는다고 했다. 본문에 나오는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맡았는데 낭비하는 일을 한 것이 주인한테 들킨 것이었다. 그래서 잘리게 되었다. 그때 이 청지기가 머리를 썼다. 채무자들을 불러놓고 그들의 빚을 깎아 주면서 문서를 새로 작성하게 했다. 그의 의도는 뭘까? 선심을 쓰면서 자기 살길을 찾는 것이었다. 근데 이것은 사문서 위조죄에 해당한다. 사문서 위조하면 우리나라는 5년 이하의 징역 및 천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근데 8절에 보니깐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주인이 칭찬했다는 말이 나온다. “지혜 있게”라는 말은 용의주도하게 했다는 말이다. 주인이 그의 사기성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용의주도한 지혜를 칭찬한 것이다. 그 주인도 세속적이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말은 이 세대에서는 신자보다 불신자가 더 지혜롭다는 말이다. 불신자 처세술이 더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 신자는 어리숙하다.
2) 9~13절까지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에 대한 교훈이다.
9절은 무슨 의미일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불의한 재물이란 무슨 말이겠는가? 돈 자체가 불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농간으로 불의하게 쓰일 수 있는 재물이라는 의미이다. 그걸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그런 세상 재물로 너희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는 말이다. 선한 일, 구제하는 일에 쓰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 도와주었던 친구들이 영주할 처소로 영접한다고 한다. 재물이 없어질 때는 죽을 때를 말한다. 죽을 때 그 친구들이 천국에서 영접한다는 말이다. 이게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다. 천국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면 그것이 돕는 인맥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배경되어 주심을 믿는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배경 되어 주겠다는 것이 구약의 약속이다. 여러분이 대상 29:11, 12 은 암송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절대 배경이시다. 가만 보면 건강, 재능,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 것이다. 다윗은 자기 인생을 통해 대상 29:11~12의 말씀을 철저히 터득한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권능, 영광, 승리, 위엄이라는 단어를,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하나하나 씩을묵상해 봐라. 여러분이 돈 걱정 들어올 때, 위 구절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나의 고백입니다”하길 바란다. 이 고백을 못하고 계속 걱정 속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이 고백 못 하면 돈에 대한 걱정이 여러분 심령을 찌르며 육신의 생각이 각인된다. 이걸 고백하면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뀌면서 불신앙이 깨지게 된다. 염려는 절대 사탄의 통로지 성령의 통로가 아니다. 말씀을 붙잡고 성령으로 기도할 때 바뀌는 것이다.
10절에 보면 지극하 작은 것에 충성 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 되고... 여기서 지극히 작은 것이란 세상 재물을 말한다. 11절의 불의한 재물은 좀 전에 말했던 세상 농간으로 불의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재물을 말한다. 12절의 남의 것이란, 청지기에게 맡겨진 재물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놓은 돈이 남의 것이다. 하나님이 청지기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13절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돈 벌고 하나님을 위해 돈 쓰기 바란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돈에 대한 염려가 많다. “이번 달에는 어떻게 하나, 노년에는 어떻게 하나?” 하는 돈에 대한 염려가 여러분 심령의 자유를 뻬앗는다. 이 부분 놓고 깊이 기도를 해 보기 바란다. 이 부분에 아주 결론 날 수 있도록 기도해 보기 바란다. 우리가 경제에 대해 얘기하면 자꾸 그래도... 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건 하나님 말씀이고 현실은 그래도.. 한다. 그러면 여러분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통로가 되기 어렵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이 증명된다.
14절에 보니깐 바래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었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하신 내용이 15~18 말씀이다. 그러고 나서 한 가지 비유를 더 하셨는데 그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이다. 역시 재물에 대한 올바른 사용을 교훈하시는 내용이다.
2.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1) 이 비유는 가난한 자는 천국 가고 부자는 지옥 간다는 비유가 아니다.
또 가난한 자를 두둔하는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통치 원리를 바로 실행하라고 주신 교훈이다. 이 부자는 하나님 나라 통치 원리대로 안 살고 있었다. 부자는 그냥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청지기로 하나님이 더 많이 맡기신 것이다. 이재용 씨나, 이건희 씨도 하나님이 돈을 맡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 약한 자를 천대, 무시, 무관심, 억압지 말고 오히려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우리 생각이 정말 인본주의 바탕이다. 하나님 주의가 아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완전 무시했다.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치 않았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부를 가지고 자기만 호의호식했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예수님은 지금 이 비유를 누구에게 하고 계신 것인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속에 묶여있는 부분들이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가지고 살아왔던 사상과 가치관과 기준이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그렇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이 그렇게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에 묶여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이 있어도 종교인처럼 살면 우리가 불신자와 똑같은 염려를 하고 똑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깐 보호하사 도와주세요” 이런 식이 된다.
2) 이 비유는 한 가지 교훈을 더 해주고 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 부자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음부에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부자가 음부에 떨어져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에게 부탁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게 뭔가? 자기 형제 다섯이 있는데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 그들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무엇인가? 29절에 보면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했다. 보통 구약성경을 모세와 선지자라고 한다. 또 3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난 사람이 천국 지옥 간증하면 다 믿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아니면 못 믿는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는 아무리 천국 지옥 간증해도 심령에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몇 주 전에 보면 눅 12장에도 한 부자 비유가 나왔다. 이 부자가 밭의 소출이 많자 새로운 곳간을 짓고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그 날 밤에 불러가시면 그 소유가 누구 것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쌓았지 보물을 하늘에 쌓을 줄을 몰랐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치 않는 자라 했다. 또 눅 12장에는 인자가 올 때 깨어있는 청지기 비유도 있었다. 그 비유의 핵심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하였다. 우리는 재물에 대해 청지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주인을 위해 잘 관리하고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을 잊지 말고 흘러보내는 훈련을 자꾸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이것을 잘못하는가? 염려 때문이다. “내 돈이 어떻게 번 돈인데, 이것이 나가면 또 어떻게 메꿀 수 있겠는가?” 계속 인간적인 논리와 계산으로 셈한다. 이것이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숙달된 체질이다. 그래서 사실 믿지를 않기 때문에 순종이 안 된다. 아무리 하나님이 배경이라고 가르쳐도, 아무리 하나님이 주권자요, 창조자라고 얘기해도 이것이 내 것이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의 믿음을 통해 자신이 증명되길 원하신다. 우리는 이걸 후대에게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후대에게 어릴 때부터 엄마의 염려를 집어넣고 있다. 오히려 헌금 생활을 제대로 못 가르친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의 렘넌트가 되겠는가?
3. 어떻게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어떤 기관에서 10억이 생기면 감옥 가도 좋겠는가 라는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예 라고 대답한 퍼센테이지가 이렇게 나왔다. 2019년 통계이다. 예라고 말한 사람의 비율이 20대 47%, 30대 57%, 40대 60%, 50대 이상이 76%로 나타났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성령이 아니시면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도 어디까지나 창 3,6,11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는 보이지 않는 삼위 하나님의 말씀, 능력, 지혜, 약속에 있어야 한다. 저와 여러분을 이 지역과 민족을 살리기 전에 확 뒤집기를 원하신다. 성령으로 확 세신 되기를 원하신다. 성령의 텃치를 심령 깊게 받기를 원하신다. 육신의 생각이 아무리 세게 들어와도 안 받아드리고 영의 생각을 고수하면 반드시 승리한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가 와도 영의 생각대로 하면 승리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서론에 네비게이션 이야기를 했다.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의 네비게이션이다. 목적을 향해 이끌어 가신다.
주님은 재물 사용을 경계하시지 재물을 죄악시하지 않으신다. 재물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캘빈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개혁주의 상공인인 위그노들은 진정한 자본주의 모델이 된다. 그들이 성령충만 가운데서 일하니깐 하는 일에 전문성과 탁월성을 띄게 되었다. 성령충만함으로 기쁘고 행복하면 일 잘하게 된다. 인간관계도 안 꼬인다. 인간관계도 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 나를 거는 사람 앞에서도 상대가 문제지 내가 문제가 아니다. 성령님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신다. 내가 위축당하지 않는다. 내가 영적으로 가난하지 않다. 연약하지가 않다. 말씀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믿어지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행복하다. 그러면 진짜 지혜도 오고 집중력도 오고 전문성과 탁월성도 생기게 된다. 위그노는 자기 하는 일에 성공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는 자본가들이 되었다. 우리가 똑같은 메시지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뒤집혀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주님 안에서 권세를 누리게 만들어서 전도운동에 쓰이도록 하길 원하신다. 정말 여러분제자 삼아 여러분과 같은 제자들을 또 만들기 원하신다.
결론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돈에 대한 교훈을 많이 하셨다. 그만큼 돈에 대해 모든 사람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돈이 인간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돈에 대한 자세가 믿음의 척도가 된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돈 벌고 하나님을 위해 돈 쓰기 바란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기 바란다. 그럴 때 진정한 플랫폼, 파수망대, 안테나가 된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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