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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3년 2월 5일 선교헌신예배 - 스데반이 경험한 25시(행7:54~60)

by 별종외계오동 2023. 2. 5.

심재문선교사

 

 

스데반이 경험한 257:54~60

 

1.“오직복음으로 돌아가자(7:54~55)

1) 쇠퇴의 길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가 좀 부흥하고 성장하고 나서는 꼭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유럽교회가 그랬고 미국교회도 그랬고 한국교회도 그런 위기 속에 있다. 중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영적 전쟁에서 밀려서 그런 것이다. 복음이 삶과 연결이 안 된다. 복음이 삶 속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교회는 부흥했다가 쇠퇴의 길을 걷는다. 교회는 항상 흥왕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사회와 사람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망했다. 그럴 때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경건주의가 일어나 세속을 떠나는 거룩한 경건한 삶을 가르쳤다. 그리고 은사주의가 일어나 방언, 예언, 치유를 가르쳤다. 비록 이러한 운동 속에 종이를 불로 사르는 것과 같은 순간적인 부흥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성령의 역사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오직 복음이라는 인식이 약한 것이다.

2) 복음의 빛

거듭남의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사람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거듭남의 역사는 오직 복음을 듣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과 새로운 인생관이 생긴다. 나의 선택이 달라진다. 예전엔 남을 속여도 조금 이득이 생기면 기뻐했는데 이제 불의한 이득에 관심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한다. 강단에서도 계속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복음을 계속 들으면 구원이 이해 되어진다.

 인생의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는 죄의 문제다. 둘째는 마귀의 문제다. 셋째는 하나님 떠남 문제다. 결국 하나님 떠났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단절되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영적인 죽음과 육신적인 죽음과 지옥에 가는 둘째 사망이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이다. 거기에 마귀가 역사한다. 마귀만 강조하면 다 마귀 탓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다. 왕하 17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가 나와있다.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 왜 졸다 망했는지를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반면 죄만 너무 강조하면 정죄만 받는다. 내가 죽일 놈이지, 내가 나쁜 놈이지 하면서 정작 영적 문제는 모른다. 인생의 근본문제는 죄와 마귀와 그 결과로 온 하나님과 분리된 사망이다. 사망의 상태가 불신자 6가지 상태이다.

 다락방은 이런 복음을 정확히 회복했다. 복음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어 진다. 내가 완전 망한 죄인이구나. 내겐 어떤 의도 없구나 여겨진다. 3장의 범인이 나 이구나... 이렇게 복음의 빛이 들어간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죄성이 가득한 패역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 배후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상숭배 배경을 통해 마귀가 짓누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런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항상 그 은혜에 감사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관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게 된다. 믿음은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난다. 복음의 빛이 계속 비추어져야 이런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반면 복음을 많이 들었는데도 안 깨달아지고 적용이 안 되면 안다는 것만으로 교만해져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된다. 반대로 복음을 계속 깨달으면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변화가 일어난다.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기다려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려 주셨기에 나도 다른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마귀와 싸우게 된다. 복음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가 진짜 주인이 되어진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줄 믿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판단해도 50, 100보 차이이다.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서 자꾸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으면 미워하고 엄격하다. 그러나 자기 죄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용적이다. 위선자다. 신바리새인이 된다. 10:17 믿음은 복음을 들음에서 난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죄를 사하신 참 된 제사장,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유일한 분, 선지자가 되어서 성령을 주셔서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

3) 복음의 능력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다. 지진 일어날 때 자기만 살려고 뛰어나간다. (지진 예화) 그래서 우리는 오직 복음이 되고 계속 복음을 들어야 한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죄성은 남아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죄성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주신다. 미운 사람을 향해 용서가 된다. 삶이 바뀐다. 그리스도 복음으로 주어진 구원의 위대함을 알고 감사하기에,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음은 능력이다. 심지어 모두가 나를 공격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나왔으며 성령을 받고 이 땅에서 천국 백성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배워가며 거듭남의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복음에 대한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25시를 체험할 수 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입만 복음이다. 로마서에서 믿음과 행위가 배치되지 않는다. 진정한 믿음은 행위를 수반한다. 이기적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보상으로 위로해 주신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복음에 순종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4) 의미 없는 노력을 버리자. - 복음으로 돌아가자. 많은 교회들이 말이 많다. 서로에게 상처준다. 왜 그런가? “오직복음이 아니다. 아무리 경건주의과 은사주의를 외쳐도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다. 만약 우리 안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복음을 놓쳤음을 의미한다. 오직 복음으로 가서, 19:30 다 이루었다의 의미안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않고 기도할 수 있다

 

2. “오직복음을 증거하자(7:56~60)

복음과 그 구원의 가치를 아는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자들을 용서했다.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진 자들은 스데반처럼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있다. 무엇이 진정한 복음의 체질일까? 진짜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향은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서로 이해해야 한다. 성도들이 저에게 온갖 불평 불만의 쓰레기를 쏟아낸다. 그럴 때 들어준다. 그들 마음의 아픔을 공감해 준다. 그리고나서 복음의 길이 뭔지 알려준다. 어떤 자매가 회사에서 기독교인이라는 것에 대해 누군가 고소했다. 남편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둘 다 짤릴 위기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복음을 선택하고 회사에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대로 말했다. 회사에서는 없던 일로 덮어 주기로 하였다. 25시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매우 쉽게 받는다. 다른 사람의 눈과 말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복음과 그 구원을 믿는다면 우리는 달라진다.

만약 스데반이 오직 복음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고, 그냥 윤리와 도덕 그리고 사랑과 헌신을 이야기했더라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스데반은 죽는 길임을 알고도 그 길을 갔다. 그는 복음에 순종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되었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복음의 능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3. “오직복음은 꼭 열매를 맺는다(7:60)

복음의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저는 영접운동을 많이 체험했다. 은근히 체험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그러나 영접한 것도 가만보면 내가 영접시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씨를 뿌려놓은 것에 대해 열매를 내가 얻었을 뿐이다. 열매를 가지고 평가하지 말고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만 관심을 써라.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열매를 맺는다. 55장이 내 말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직 복음에 순종하고 있느냐, 정확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했는데 우리가 기대했던 25시의 역사는 없었다. 이때 예수께서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셔서 스데반을 구원하셨다면, 우리는 하늘 보좌의 25시에 대해 찬양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반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늘 보좌의 25시 능력을 체험했다. 그들은 불구덩이에 떨어졌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구원했다. 그들의 신앙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우상을 숭배하지 않겠다는 신앙이다. 그들은 구원을 얻었다.

그런데 오늘의 스데반은 그대로 순교하고 교회와 성도들은 그 때문에 통곡했다(8:2). 그러면 스데반은 25시를 체험하지 못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25시를 경험하고 기도 응답도 받았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대로 스데반을 죽인 자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바울을 구원하셨다(7:58). 하나님은 스데반을 대신하여 바울을 사용하시며 세계복음화를 이루셨다. 스데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지금 응답이 없어도 화목교회가 정확한 복음을 전하고 있고 오직 복음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열매는 하나님이 걷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열매가 오는데 나중에 오는 열매일수록 더 큰 열매가 온다. 중국 26년 사역을 돌아보면 10프로만 제대로 뿌렸던 것 같다. 그것이 열매를 맺고 있다. 저는 모든 기도에 기대감을 갖고 있다. 오직 복음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기대와 소망을 갖기 바란다.

 

결론 및 실천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공인생

우리는 25시 그러면 주로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어느 장소, 어느 직업과도 상관없이,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하며 전도하는 자는 성공한 인생이다. 모세 출생시 십브라, 브아 라는 산파는 자기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쓰임받았다. 그들도 스데반과 같이 하나님께 쓰임받은 인생이다. 보이는 열매가 전부가 아니다. (1:15~21). 강단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 잡고 정시기도부터 배워라. 약속과 순종할 부분을 찾아서 기도해라. 정시기도만 제대로 해도 25시를 체험한다. 전도의 계획을 짜서 실천하기 바란다. 실천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말씀과 기도와 전도는 하늘 보좌 25시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다. 정리하겠다. 오직 복음으로 돌아가라. 오직 복음을 증거해라. 오직 복음의 열매를 기대해라. 25시 응답을 체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