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가운데 승리 (왕하19:20~37)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살고 있다.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마 죄사함을 받았다. 그리고 이신칭의로 말미암아 생명의 성령을 얻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 확장, 전승,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기독인의 삶이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현실 고난 가운데 시련을 당할 때가 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 왕은 그리스도, 하나님나라, 성령의 능력이라는 1,3,8의 신앙을 가고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한 길을 가면 축복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앗수르 당시 최강국 패권국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고난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까? 또 승리 후에는 어떻게 승리를 유지 할 수 있을까? 히스기야는 이것을 어떻게 뛰어 넘고 승리했는가? 말씀을 통해 알아보자. 두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1. 산헤립이 잘나갈 때 모르는 것(21~28):
1)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다는 것을 모름(21~23) - 우리가 복음의 길을 가는데, 산헤립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는 전형적인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그 곳의 약속도 모른다. 때로는 우리의 가족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이웃기도 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면서 교회나 목회자를 비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비방하는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종교단체, 종교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산혜립도 이스라엘을 그저 팔레스탄의 작은 나라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도 이스라엘도 언약의 백성임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을 비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있던 것이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 그들의 힘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모름(24~27) – 그런데, 그런 그들의 비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은 그들이 힘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권력, 돈, 인맥 등 힘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의 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힘을 주신 목적은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전파하고, 전승하며,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힘쓰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도 모르고, 그 주신 목적도 모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 그저 가진 힘 때문에 오만 방자하고 교만하고 어리석을 뿐이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3) 가자 잘나갈때 심판당할 것을 모름(28) - 산헤립이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멸하고 남유다를 멸하려 예루살렘을 포위 했을 때가 가장 전성기였다. 그런데 전성기 때가 바로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실 시간표였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심판할 시간표를 정해 놓으셨다. 결국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의 결말은 이런 것이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4) 우리가 가장 두려와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있어 산헤립과 같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10:28). 우리는 그들이 모르는 그들의 운명을 알고 있다. 결코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 개역개정)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두 번째 주제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히스기야처럼 현실 문제에만 연연한 나머지, 중요한 것들을 모르고 있다.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다.
2. 히스기아가 고난 가운데 모르는 것(29~34):
1) 히스기야는 고난이 우리를 정결케 함을 모름(29~30) - 하나님이 주신 고난의 목적은 정결에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고난을 통해 우리 안에 잘못된 각인, 뿌리, 체질이 뽑혀지고, 개인이 정결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교회 안에 있지만, 생명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생명없는 종교인을 솎아 내신다. 그래서 핍박과 환난 등의 고난을 통해 교회는 정결케 되어진다. 30절에 “피하고 남은 자”가 곧 렘넌트이다.고난을 통해 남은 자들이 렘넌트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이다. 사람은 고난을 겪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교회를 정결케 하신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2) 히스기야는 약속은 반드시 성취됨을 모름(31~33) - 가장 중요한 약속은 창세기 1:27~28이다. 곧 생명과 성령(임마누엘)과 하나님 나라(세계복음화)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산에서 성취시키신 것이다(요19:30).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피하고 남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함께 하시며(창1:27),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통해 이루실 것이다(창1:28).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우리를 보호하고 구원하실 것을 모름(34~37) -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그렇게, 앗수르의 18만 5천명의 군사는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산혜립은 비록 살아서 돌아갔지만 자신의 아들들에게 살해를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 마침과 실천:
1) 고난 가운데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기도다(20,35) - 하나님의 고난의 목적과 약속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목적과 약속을 이루실 수 있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 없이도 자신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까지 조금도 역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기도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 원하셨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드디어 애굽도, 재물도,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하나님 앞에 무릅을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역사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끝까지 몰아 부치시고,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무 것도 의지 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기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법을 알며,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법을 알게 하시기 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비록 고난 속에서 히스기야처럼 영적이 비밀을 모두 놓치고 있었다 하더라도,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비밀을 다시 회복하기 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그래서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항상 현실의 고난과 기다림이 존재하며, 이는 오직 기도로만 메꾸어 진다.그러므로, 기도의 사람만이 비룩 고난 가운데는 몰랐지만, 승리 후에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감사할 수 있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2) 승리 후에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아야 승리를 유지할 수 있다(30) -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어떤 이는 먹고 배부름을 위해 예수를 좇았고, 어떤이는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수를 좇았다. 우리는 전자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만족하면 안된다. 오히려 후자처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생명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 얻은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피하고 남은 자”들 처럼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위로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열왕기하 19장 / 개역개정)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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