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요 8:1~11)
두 주 전에 한동대 현장에 가서 전도했다. 흡연 장소에 가서 담배 피우는 학생을 또 만났다. 이 학생은 한동대 와서 예수 믿게 되었다고 하더라. 근데 얼굴은 밝지가 않았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데 더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때 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학생은 오늘 주님이 만나도록 예비한 학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도서관 2층 토론방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넓은 방인데 혼자 있었고 공부를 마치고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무슨 공부 하냐고 물으면서 말을 걸었다. 이 학생은 불신자고 포항 출신이더라. 기독교 문화에 좋은 이미지가 있어서 본 대학에 들어왔다고 하더라. 1학년 때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들었지만 아직은 안 믿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왜 성경에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 이유 두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첫째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역사에 개입한 하나님도 살아계신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또 한 가지는 성경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도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 주셨다고 전했다. 이 학생이 신기하게 말씀을 듣더라. 그래서 정확한 복음을 다 전했다. 한번 더 만남을 갖자고 제안하고 폰 번호를 교환했다. 돌아오면서 하나님이 오늘 이 친구를 만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자기 백성이 누구신지 아시고 구원하시는 일에 우리를 쓰신다. 저는 이것을 믿는 것이다. 내가 믿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제 속에서 저를 쓰시는 것이다. 저는 주님이 제 속에서 진두지휘하셔서 전도하도록 기도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전도하신 내용이다. 어떤 사람을 전도하셨는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간음 중에 붙잡혀 온 여인이다. 이 여인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 여인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단순히 용서했다고만 보지 말고 구원을 이루신 것으로 봐야 한다.
1.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
본문 4~6절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여인을 잡아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고자 했다. 치라고 하면 로마 법에 위배 되고, 치지 말라 하면 율법에 위배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다. 율법에는 증인이 먼저 돌로 치게 되어있다. (신 17:7). 아마 생각이 깊은 어른들부터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가고 젊은이들도 하나둘씩 나갔을 것이다. 다 나가고 여자만 남았다. 이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다. 정죄 받고 죽을 판인데 이 여자는 구원받은 것이다. 이 여인이 그 후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믿지 아니했겠는가? 예수님은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 우리는 율법일지라도 남을 치고 죽이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의 주특기가 좋은 말로 남 죽이는 것이다. 좋은 말로 나를 방어하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주장하다 보니깐 남을 죽이게 된다. 아주머니들이 까페에서 하는 말이 뭔가? 주로 자기 자랑과 남 죽이는 얘기와 자식 자랑하는 얘기들이다. 남 까고 비판하는 말을 빼면 별로 할 게 없다. 율법을 통해 자기 죄성은 성찰하고 남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이것이 복음 가진 자의 자세이다. 그럴 때 주님의 구원 사역에 통로가 된다.
2. 여러분은 전도자의 관점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1) 다른 사람을 놓고 기도할 때 그 사람의 조건이나 수준과 행위 보고 중보 기도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행위가 한참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중보기도가 잘 안된다. 이건 전도 대상자나, 중보 기도해야 할 성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 기도할 때 오직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놓으신 것을 근거로 기도해야 한다. 주님이 완전히 대속해 놓으셨기 때문에, 어떤 죄인도 구원받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도 여러분의 조건이 하나도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놓으신 것을 근거로 구원받은 것이다. 여러분 이성의 능력으로 믿어낸 것도 아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구원의 조건을 이루어놓고 여러분의 문제, 현실 상황 속에, 성령으로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죄인도, 어떤 영적 문제자도, 우상 숭배자도, 병든 자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놓으신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택한 백성에게 적용, 체험, 성취 시키신다. 간음한 여자는 돌로 맞아 주어야 하는데 택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주님은 그것을 구원의 기회로 바꾸어 주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의 하염없이 목마른 상태에 있었는데 그걸 알고 예수님은 정오에 만나러 오신 것이다. 제가 이걸 모를 때는 사람의 상태나 조건이나 행동을 보면서 기도하다 보니, 기도가 잘 안 되었다. 이제는 그런 점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전도자의 관점과 자세를 갖게 되었다. 사람의 수준이나 조건으로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수준이나 조건을 보지 않고 십자가를 근거로 봐야 한다. 어떤 죄인도, 어떤 영적 문제자도, 병든 자도 주님이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도 예수님이 저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셨기 때문에 저 귀신을 내쫓으실 수 있고 성령으로 영적 문제, 정신 문제 해결하실 수 있다. 이렇게 믿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이 복음 성가를 자주 부른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 이루셨네.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에서~”. 십자가에서 어떤 죄인도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진짜 주님이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성령으로 깨닫게 해 주시고 영의 생각이 들게 만들고 마음 문이 열리게 하셔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는 이미 대속하신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영접하면 그의 죄를 사하시고 그 안에 들어오셔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자녀 삼으시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 되시고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하셔서 자녀의 삶이 누려지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2) 전도에도 살전 5:16~18절의 말씀을 항상 적용하기 바란다.
한동대 전도가면서, 전도에 대한 부담을 안 갖고 간다. 주님이 전도에 백프로 주인이시다 하는 것을 기뻐하면서 갔다. “뭔 말을 하지, 못 만나면 어떻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올 수 있다. 이게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인 것을 알기 때문에 안 빠진다. 전도의 결과에 대해서도 영향받는 생각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럴 때 그 생각에 빠지면 지는 것이다. 사탄이 공격하니깐 이런 생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안 빠지고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주님께 모든 능력이 있고 계획이 있고 방법이 있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믿음의 전도를 한다. 이것이 주의 일이며 주님은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는 믿음을 딱 갖어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누가 구원받을 자인지, 제자 될 자인지 주님이 아신다. 환경과 상황과 만남도 주님이 연출하시고, 또 내 안에 역사하사 전도케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을 기뻐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전할까... 그게 아니다. 내가 못 만나면 어떻게 할까... 이게 아니다. 이게 전부 내가 주인이 되니깐 그런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때까지 전부 내 생각으로 살아왔고 내가 어떻게 할까, 내 방법과 내 노력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육신의 본성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이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육신의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과 구분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물론 성령충만 했버리면 기쁘고 막 전도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이 구분이 필요하다.
누가 구원받아야 할 자인지, 제자될 자인지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고 환경과 상황과 만남도 연출하시고 또 내 안에 역사하사 복음을 올바로 전하게 하시고 만난 상대에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사 믿게 하신다. 그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루디아에게 하신 것처럼 행하신다. 행 16:14에 보면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다”고 되어있다. 요 6:44에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실리리라”하셨다. 이 말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 이성으로 하나님 못 믿는다. 여러분의 영이 살아나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영이 절대 거듭나지 못한다. 여러분을 어떻게 믿게 하셨는가 생각해 보라. 환경과 상황과 마음까지 연출하셔서 예수 믿을 상황에 이르게 하시고 그리고 말씀 들을 때 성령께서 귀 문을 여시고 마음 문을 여시고 그래서 믿고 받아드리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믿지 아니하면 거듭남의 확신이 안 생긴다. 우리가 알 것은 구원받을 사람의 영접과 양육과 교회화와 제자화와 그 인생 전체에 대한 계획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그 성령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 오신 주님께 집중이 되면 믿음이 확 자라날 수 있다. 여러분을 향한 절대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주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다음 주에 얘기하겠지만 미리 정해놓고 부르셨다. 여러분을 파수 망대로 정해놓고 부르셨다. 그런데 확신도 없고 육신적으로 살고 전도도 못하고 그렇다면 왜 그렇겠는가?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되게 안 하고 여러분 자신이 자꾸 살아서 그렇다. 딴 이유없다. 이미 축복과 권세는 다 주어져 있다. 그러니 구원받을 사람이 구원받고 양육되는 것도 주님이 절대 계획과 절대 능력을 갖고 인도하시는 것이고 여러분을 향한 천명, 소명, 사명이 이루어지는 것도 주님이 절대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다. 여러분은 불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령님과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의탁하는 집중이 필요하다. 그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안 그러면 광야 생활이 오래 걸린다.
전도에 대한 부담은 내 본성이 갖는다. 내가 하려고 하니 부담을 갖고 결과에 영향받기 때문에 부담 갖는다. 이건 우리 본성이 그러는 것이고 전도는 주님의 일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전도하러 오셨다. 그래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쫓아내셨다. (막 1:38~39) 여러분이 주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여러분도 귀신을 쫓아내게 된다. 주님의 권세가 여러분을 통해서도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서 일하심을 믿기 바란다. 전도에 대해서도 살전 5:16~18을 적용되는 것이 맞다. 전도만 아니라 모든 문제, 모든 일에서도 다 적용된다. 이 전도는 십자가에서 구속사업을 다 이루어놓으신 것을 주께서 택한 백성에게 적용, 체험, 성취시키시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를 통해서? 이걸 믿는 교회와 전도자를 통해서 하신다. 전도자를 통해 사람들의 운명과 소속과 신분과 권세와 통치체제를 통채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부터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이걸 알 때 전도에 대해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희열을 갖는다. 이것이 전도자의 관점과 자세이다. 많은 날 동안 사탄은 전도에 대해 부담을 갖도록 우리를 눌렀다. 여기에 속지 마라. 주님의 관점과 믿음의 자세를 가지기 바란다. 우리는 누가 구원받을 사람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중보 기도 대상자이다. 그러나 여러분과 관계성이 있는 사람은 중보기도 대상 1번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수준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저를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놓으셨기 때문에 그를 잡고 있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다. 누가? 주님이 성령으로 하시는 일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3. 이 모든 일이 여러분 안에 주님을 믿음으로 가능하다.
1) 여러분 안에 주님을 항상 기뻐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걸 처리하는 체질로 바꿔야 한다.
전도 체질까지도 이렇게 바꿔야 한다. 주님으로 말미암는 체질 안 되면 어떤 체질이 될까요? 모든 걸 내가 염려하며, 내가 긴장하며, 자기 동기를 항상 갖어야 한다. 그러니 자기 원대로 안 되면 실망하며 사람에게 원망과 불평한다. 사실 여러분을 향해 완벽하게 계획을 주님은 갖고 계시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도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그 일을 통해 여러분이 세계복음화에 쓰이도록 정해 놓으신 것이다. 근데 여러분이 이걸 제대로 못 믿는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렇게 복음 메시지를 정확히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제가 율법이나 종교나 인본주의 메시지를 하면서 열심 내자 하면 여러분은 헷갈리게 만들어 놓게 된다. 근데 이 복음 메시지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들린다. 사람이 열심내어서 하자는 이런 메시지가 아니다. 여러분이 믿자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가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고, 성령의 능력을 믿는 것이 여러분 이성으로 믿어질 게 아니다. 성령으로 믿어져야 할 사실이다. 이제 주님은 모든 것을 믿음의 삶으로 환원하기 원하신다. 그게 원래 상태였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임마누엘 믿음의 삶으로 살도록 만들어 놓으셨던 것이다. 근데 지금 다 뒤집힌 것이다. 완전히 인본주의로 빠진 것이 창 3장이다. 이게 왜 이런가? 인간은 아담 자손으로 사탄의 함정인 창 3, 6, 11장의 본성 가운데 태어나서 그런 것이다. 3, 6, 11장의 렌즈를 끼고 3, 6, 11장의 동기와 기준과 믿음과 방법과 욕구로 살게 된다. 그러니 살면서 3, 6, 11장의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 느낌, 생각, 계산, 논리, 판단으로 모든 삶을 살게 된다. 믿음의 생각을 못 한다. 성령의 생각을 못 한다. 그러니 문제를 문제로, 고통을 고통으로, 상처를 상처로, 미운 사람을 미움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문제가 계속 오게 되면 내 인생이 왜 이래? 왜 하필이면 나는? 이렇게 들어간다. 그때 받은 불안이나 상처나 고통이 각인 된다. 영의 생각을 못 하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조차 인식 못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주인 되시고 통치하시는 삶을 맛보기 전까지는 구분도 안 된다. 내가 몸이 아프면 본성은 아파, 아파~ 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십자가에서 다 끝내신 것을 믿어라. 네 병도 이미 다 끝내신 것을 믿으라 하신다. 성령님은 자꾸 그렇게 얘기 하신다. 내 생각과 감정, 느낌, 판단이 구분되고 뒤집히는 것은 내게 오신 그리스도를 기뻐하며 누릴 때부터 가능해진다. 구원받은 자가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리면서 기도의 망대를 세우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결론
1. 살전 5:16~18을 전도에 적용해라.
2. 기도의 망대를 세워라.
그러면 모든 일, 관계, 사역, 전도까지 싹 다 뒤집는 체험을 하게 된다. 내가 주인되어 살아왔던 것이 다 문제이다. 그 체질이 다 문제이다. 이걸 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3. 모든 문제는 주님께 뿌리내릴 기회든지 아니면 주의 영광 드러낼 기회다.
그리스도가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믿을수록 그렇다. 성도가 세상에서 지거나 문제에서 지는 것은 그리스도께 덜 뿌리내려서 그렇다. 나의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눌림이나, 각종 사탄의 공격까지 다 주님께 뿌리내리는 기회로 바꾸어라. 계속 뿌리내리면 치유되고 주의 영광 나타낼 기회가 된다. 정복자의 삶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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