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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3년 8월6일 주일예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44)

by 현상금 2023. 8. 6.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7:37~44) 요한복음 시리즈 7

요한복음(7장)

 

여러분 35 ~37도 날씨에 잘 지냈는가? 한 가지 질문하겠다. 살전 5:16~18의 반대가 뭘까요? “항상 염려하라. 쉬지 말고 애써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것이 창 3장 안에서 너희를 향한 마귀의 뜻이니라여러분이 불신자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자녀라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가 맞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우리 본성에 잘 맞을까? 안 맞는다. 그래서 여러분이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 생각에 속지 말고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저에게도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감정이 매순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분별하고 안 받아드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생각을 의탁하여 승리한다. 사도 바울의 애용구가 그리스도 안에서다. 주 안에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보좌 통치하시는 주님이 여러분 안에 성령으로 오셨가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눌리므로 영의 생각이 잘 안 나고 기도가 막힐 수가 있다. 그래서 보통 기도를 잘 안 한다. 그러나 이때 나의 상태가 눌렸다는 것을 깨닫고 이 상태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기도를 결단해야 한다. 여러분 안에 주님이 성령으로 와 계시기 때문에 고백을 올바로 하면 다시 영적 상태가 회복된다.

저는 자꾸 이렇게 바꾸고 있다. 항상 제 안에 계신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신 주님이시다. 보좌에 오르셔서 영계와 만유와 만물과 만사를 다스리시면서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시는 주님이시다. 이런 주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나의 왕, 나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저의 육신의 본성은 이제까지 항상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십팔 번이었다. 그런 제 안에, 오신 그리스도는 전능하시며,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보좌 통치하시며, 내 안에서 모든 능력의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나는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과 방향을 맞추고 주님의 관심과 생각에 맞춘 이상, 주님이 내 인생의 책임자요, 언약 성취자요, 주인이시기 때문에 내가 염려하면서 내가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것은 이제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근데 여러분이 곧잘 사람의 영향, 환경의 영향, 돈의 영향을 받을 때 여러분 안에 주님을 기뻐하는 것을 놓쳐버린다. 사실 여러분 안에 주님이 모든 능력이 있으신데, 환경, , 문제 다 주관할 수 있으신데, 이걸 모르고 살았을 때가 많은 것이다. 여러분의 수준으로 살았을 때가 참 많았던 것이다. 여러분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대로, 감각되는 대로 놀라고 눌리고 조이고 근심하고 살았던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니 주님이 여러분 안에 오셔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는데도 안 기뻐하는 것이다. 내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감정에 거의 좌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 없다고 하면 근방 육신의 본성은 , 돈이 없는데하면서 걱정이 탁 온다. 이게 육신의 본성이다. 그러나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은 돈 때문에 걱정할까? 그분의 성령께서 눌리실까? 눌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보좌 통치하시면서 여러분 속에 성령의 통치하실 수 있는 주님이 되신다. 그래서 그 주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 여러분 속에서 기도 권세를 누리게 하시면서, 기도 응답을 받게 하신다. 이것만 제대로 터득되면 진짜 인생의 굉장한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오늘 그런 이야기를 좀 더 해 보겠다.

오늘 본문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셨다. 4장에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한 말과 유사하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하셨다. 여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럴까? 예수 믿어도 목마를 때가 많다. 그런데 제가 점점 터득하는 것은 내 안에 모든 능력의 주님이 성령으로 통치 인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 기도가 되어지니깐 영혼의 목마름이 훨씬 없어진다. 영혼에 계속 생수가 나온다. 영혼의 생수가 나오면 그게 보좌와 직통이 된다. 실제로 돈이 없으면 육신의 본성으로는 염려해야 한다. 개인 경제나, 교회 경제가 어려우면 합리적 계산으로 주판을 놓게 된다. 그러면서 그 염려의 생각이나 감정에 묶여버리게 된다. 이건 영의 생각이 아니고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다 그렇게 빠진다. 왜냐하면 성령의 통치받는 삶의 체질이 안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까지 들은 지식은 많다. 근데 신앙생활은 지식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주님과 주님의 성령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목마르지 아니하고 실제 보좌 통치와 시공간 초월의 응답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지난주 말씀인 6장 오병이어의 표적 후에도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는 자는 결단코 주리지 아니하고 (나를 마시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요, 생명의 물이 되시는 것이다. 이걸 실제 경험해야 한다. 이걸 경험하면 한 명이라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기쁨과 희열과 자신감과 감사가 있어 중보기도가 된다. 실제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하는 일을 잘못할까? 주님이 그 일에 주인 되셔서 그를 붙잡고 일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무능력하지 않게 된다. 자기가 주인 되니깐 맨날 염려와 스트레스와 짜증 낸다. 말씀의 능력 못 믿고 하나님의 능력 못 믿으니 신앙생활이 세상 사람 사는 범주 속에서 그 체질대로 살아가는 것이 된다. 오늘 출애굽 여정의 세 단계의 삶을 통해서도 이것이 설명될 수 있다.

 

1. 출애굽 한 자의 삶

출애굽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구원받은 자이다. 그날은 해방의 날이었다. 바로의 지배하에 빠져나오고 운명이 바뀐 날이었다. 바로의 권세에 빠져나오는 길이 양의 피 바름에 있었다. 양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영접만 하면 우리도 사탄의 운명과 소속과 지배체제에서 완전히 빠져 나와서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체제로 들어간다. 북한에서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들어오면 대한민국 통치체제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구원받는 순간에 이런 축복이 통째로 주어진다. 이제 이걸 얼마만큼 누리는가가 관건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영접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떤 축복이 주어졌는지 아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 돈에 대해 매여있는 사람이 돈에 대해 자유하게 된다. 돈을 헤프게 써서는 안 되지만 남을 위해 쓸 수 있다. 귀하게 헌금할 수 있다. 헌금할 때 염려로 설정해 놓은 자기 선이 있을 수 있다. 주님은 그 선까지 무너뜨리기 원하신다. “왜 너는 이것 없으면 안 된다. 이것 없으면 우리 자식 못 키운다, 그렇게 묶여있느냐? 그것도 너의 틀린 생각이다하신다. “내 이름으로 한번 해봐라. 내가 너에게 역사하는지 봐라하신다. 물론 이것은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아직도 여러분이, 내가 주인으로 살면서 묶여있는 부분이 많다. 이게 정말 사탄이 함정에 빠뜨려 놓은 것이다. 내가 주인으로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러분의 운명, 소속, 신분, 권세, 통치체제가 통째로 바뀌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여러분의 체질 바꾸어서 어떻게 누리느냐가 관건이다.

 

2. 광야 연단의 삶

1) 광야는 가나안 정복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여정이었다.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문제를 허락하시는 것이 광야다. 믿음이 자라나게 될 때 문제가 선용이 되는가 안 되는가? 문제없이 믿음이 안 자라난다. 문제를 겪을 때 여러분 안의 능력의 그리스도를 얼마나 주인으로 여기며 기뻐하느냐를 하나님이 보신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모든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3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도착했을 때 주신 언약이 출 19:5~6이다. 그리고 시내산 밑에서 9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십계명과 율법과 제사제도와 성막과 세 절기를 받은 것이다. 성막이 완성되고 그다음 해 221일에 성막의 구름이 떠오르면서 가나안을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도착했던 곳이 가데스바네아였다. 거기서 가나안 정탐이 이루어졌다. 만약 불신앙만 안 했더라면 막바로 가나안으로 입성했다. 그러나 불신앙하므로 광야 생활 38년이 연장되었다. 그 세대는 다 죽고, 블신앙 안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았다. 그들이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를 데리고 가나안 입성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 보실 때 불신앙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 안 하는 것이고 그 통치를 거부하는 것인 만큼 가나안 기업을 얻을 수 없다. 광야에서 그들은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늘 하나님을 시험했다.

2) 오늘 본문의 명절은 광야에서 주신 세 절기 중 초막절에 해당한다.

수장절이라고도 하는 이날은 추수해서 저장해 놓고 광야 생활을 기념해서 마당이나 뜰에서 초막을 세웠다고 한다. 과거 조상이 광야에서 체험했던 것을 회상하고 불신앙하지 말 것을 다짐하는 민족적 절기였다. 그때 실로암 못에서 금항아리에 물을 떠 와서 성전 제단 서편에 부었다고 한다. 광야 생활 중 반석에서 물을 마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런 초막절 행사를 배경으로 예수님은 8일째 마지막 날에 외쳤던 것이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이것은 그 받을 성령을 가리킴이러라 하였다. 여러분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되면 목마르겠는가 목마르지 않겠는가? 이것은 육신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다. 여러분 영혼에서 계속 하나님과 소통이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믿어진다. 성령께서 그분의 능력과 언약을 생각나게 하시면서, 문제 앞에서 적용하게 만드신다. 기도 되게 만드신다. 그래서 문제에 승리하게 된다. 응답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 누려야 할 부분이다. 불신자는 전혀 알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도 육신의 생각에 빠지면 불신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큰일 났다. 이것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의 능력을 또 못 믿게 된다. 이스라엘과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좌 통치하시면서 우리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통치하시는 왕이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우리가 생각으로 빠질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거의 육신의 생각에 빠진다. 여러분은 다락방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와서 목마른가, 목마르지 않은가? 승리하고 있는가, 걸리고 있는가?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으면 목마르지 않게 된다. 주님을 기뻐한다는 것 자체가 영의 생각이다. 인간관계 문제, 돈 문제, 일 문제에서 다 승리한다.

3) 그래서 다시 강조하는데 창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 생각과 여러분 안에 성령으로 계신 주님의 생각과는 구분하고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부부간에도 말싸움하면서 자존심에 걸려 육신의 감정과 생각에 잡히게 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잡혔더라도 얼른 깨달아야 한다. 내가 여기에 계속 잡히면 사탄의 통로가 되는 거지.. 하고 바꾸어야 한다. 성령님은 주님의 관점,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 주님의 말씀을 주신다. 주님은 걱정도 없으시고 인간관계에 걸리시는 법도 없으시다. 근데 내 체질은 계속 내가 주인으로 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걸리는 것도 많다. 인간관계도 약하고 돈에 대해서도 항상 계산적인 체질이 딱 되어버렸다. 예수님 믿는 것은 이런 걸 뒤집는 것이다. 그래야 성령의 통로가 되고 역사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된다.

3,6,11장의 본성은 여전히 믿음이 없다. 사랑도, 소망도 없다. 이걸 모르면 종교처럼 자기가 자꾸 극기하려고 애쓴다. “내가 참아야지, 내가 그러지 말아야지, 내가 사랑해야지, 내가 잘 믿어야지,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지하면서 자꾸 자기가 극기하려고 한다. 그건 종교이다.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전능자를 믿고 성령님을 믿어 통치받는 삶이 복음의 삶이다. 여러분의 힘이 필요 없다. 오히려 인정하고 나는 죽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에 내 안에 성령으로 사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임마누엘하고 계시기 때문에 광야길 가는 동안 물이 떨어져도, 양식이 떨어져도, 적이 공격해도 괜찮았다. 근데 번번이 불신앙했다. 왜 그랬는가? 심령에서 성령의 통치, 안도를 못 받아서 그런 것이었다.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에 잡혔지,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인도를 못 받은 것이었다. 기도를 못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임마누엘 하고 있는데도 못 누린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대속하시고 완전히 소속 신분 권세를 바꾸어 주시고 여러분 속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여러분 속에 주인이 되어 주신 것이다. 여러분 안에서부터 이제는 영적 문제 안 걸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불신앙, 불순종에 안 빠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기도를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사랑하는 예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인도를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라. 구약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으면 생수가 터졌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렸다. 지금 여러분 안에서 성령으로 믿어져서 보좌랑 통하게 되면 여러분에게 걸리는 모든 문제를 주님이 처리하신다. 죠지 뮬러와 같은 기도 응답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바뀌게 되는구나 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인간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 번째 단계인 정복자의 삶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가나안 정복하게 된다. 영적 가나안 정복이다.

 

3. 정복자의 삶

1) 불신앙의 세대가 다 죽자 여리고 성 맞은 편 모압 평지에서 율법의 말씀을 다시 주셨다.

여호와의 명령을 재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이것이 신(거듭)명기다. 여호수아에게 수 1장의 언약을 주셨다. 제가 자주 강조했던 언약이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놀라지 말고 극히 담대하라. 네가 밟는 땅을 다 네게 주었노니 너를 평생 당할 자가 없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는 것처럼 너와 함께 하리라. 이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다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게 되고 평탄케 되리라하셨다. 그리고 요단 물이 언덕까지 넘실거릴 때 요단이 위로부터 끊어지게 해서 건너가게 하셨다. 그리고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과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아니 전쟁을 해야 하는데 유월절은 왜 지키고, 왜 할례를 하냐? 전부 언약과 관련이 있다. 유월절 양의 피 바른 날 애굽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냐? 그걸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씨에 대한 약속을 믿지 않았을 때 믿으라고 명령하신 것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씨, , 복의 근원 되리라는 언약을 주셨었다. 그 씨에 대한 약속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남자는 8일 만에 할례를 행해라. 네 살 속에 내 언약의 표징이 있게 하라 하셨던 것이다. 그 언약을 이제 가나안 전쟁해야 할 마당에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이 싸움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2)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싸움이며 이겨 놓은 싸움이다.

우리도 기도할 때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고 기도할 수 있다. “나는 성경적 전도 운동이 이루어진 것을 믿습니다. 나는 병 치유가 되었음을 믿습니다. 올해 4가지 목표가 이루어졌음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5나라 세 가지 동역을 하게 된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고 너희가 기도할 때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받은 줄 믿으라 하셨기 때문에 받은 줄 믿습니다하는 것이다. 이 가나안 정복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싸움이 아니다.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전쟁이었다. 두 나라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의 나라인 가나안을 진멸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세도 하나님 나라 위해 정복해 주겠다고 보장해 주신 싸움이다. 이김이 보장된 싸움이다. 믿음으로만 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 믿는다. 영의 생각을 못 하니깐 안 믿는 것이다. 기도 못 하는 사람은 영의 생각 못 한다. 이걸 우리에게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창 3,6,11장과 행 13,16,19장이 가득한 영적 가나안 세상 한복판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가나안 현장 속에 있다. 여러분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여러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 원하신다.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와 계시고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 통치를 받으므로 살아야지, 인본주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불신자와 똑같아지라는 말이 아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통치하시는 삶을 믿음으로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제는 절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감각되는 것 중심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영적 가나안 정복을 해야 한다. 여러분의 일이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 의탁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아이디어와 형통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을 세상의 빛이라고 한다. 우리로 영적 가나안 세상에 두셔서 정복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항상 기쁘게 살지? 저 사람은 명랑하고 힘이 있어서 좋네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누리면 이렇게 된다. 못 누리면 맨 날 같이 짜증내고 같이 불평, 원망하게 되고 이익 관계에 걸리면 같이 싸워야 된다.

 

결론

오늘 출애굽 여정을 통해 3가지 단계의 삶을 말씀드렸다. (출애굽한 자의 삶, 광야 연단의 삶, 정복자의 삶) 특별히 광야의 삶을 배경으로 예수님은 오늘 본문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셨다. 여러분의 많은 문제의 상황에 승리하도록 주신 말씀이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주님의 문제이다. 생수의 강이 흘러날 때 정복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제자의 삶을 살게 되고 파수 망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