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면서 소경 된 자의 치유 (요 9:1~12) - 요한복음 시리즈 9
요한복음(9장)
지난주 간음한 여자를 구원하여 주신 것에 대한 메세지를 전했다. 예수님은 전도하러 오셨다. 지금도 이 일에 쓰시려고 우리를 시대 살릴 영적 파수꾼으로 정해 놓고 부르셨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정해 놓고 부르신 것과 마찬가지다. 정해 놓고 부르셨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이게 우리 정체성이다. 이게 우리 교단 메세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을 바로 알고 속지 않고 올바로 언약에 뿌리내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 정체성 속에는 이미 주어진 축복과 권세가 있다. 여기에 뿌리 내리는 방법이 기도다. 그래서 기도의 망대를 세우라는 것이다. 망대를 세우는 방법은 내 안에 주님을 항상 기뻐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체질이 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어떤 문제, 일이라도 내가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모든 능력이 있으신 그리스도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의탁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이든, 사역이든, 전도이든 다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의 함정과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을 가지고 내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것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내 안에 그리스도를 항상 인정하고 기뻐하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이게 기도다. 이에 대한 성경 구절이 많다. 골 2:6~7, 골 3:17 이 그런 말씀이다.
1. 오늘 본문
1) 오늘 본문에 나면서 소경 된 사람을 고치는 사건이 나온다.
2절에 제자들이 이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를 질문 하였다. 이 질문이 각종 장애자나 문제 만난 자를 보는 일반적 율법관이다. 저거 누구 죄 때문이지? 율법의 눈은 모든 저주가 부모나 본인의 죄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외의 파격적 대답을 하셨다. 비록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저주가 들어온 것은 맞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 계획이 무엇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계획이다. 복음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실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갖고 있었던 율법관으로는 이런 관점을 결코 가질 수가 없다. 죄의 원인을 밝혀 정죄하려고만 했지 그 이상의 생각을 못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율법관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이다. 갈보리산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기 위해서 오셨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기 위해 오셨다. 창 50:20~21에 보면 요셉은 형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였다. 이게 복음 아닌가? 요셉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전수 받은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언약 자체가 복음이었다.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으리라는 언약을 전수 받았던 사람이다. (창 12:3) 요셉도 이 언약을 전수 받았다. 비록 그가 형들의 죄악으로 애굽에 팔려갔지만, 하나님은 그걸 통해 많은 백성을 살리는 기회로 삼아주셨다. 요셉이 그걸 알게 되었다. 그는 복음의 관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 살리는 망대가 되었다. 가문과 타민족(세상)의 보호자, 구원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요셉은 선조의 언약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보았기에 악을 선으로 바꾸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확실한 언약을 받은 자들이다. 완전한 1,3,8의 언약을 받은 자들이다. 율법의 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창 3장의 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어떤 저주도, 문제도 역전시키실 수 있으시다. 여러분 자신이 당한 일도 복음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죄책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갈보리산 언약을 통과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복음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과거의 잘못도, 실수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낼 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는 일로 보기 바란다. 과거에 뼈아픈 일이 있었던 사람도 있다. 내가 과거에 잘못했기 때문에 내 인생은 이렇게 안 되는구나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는 눈이 있어야 세상 살리는 자가 된다. 전도자의 마인드가 되고 진정한 중보 기도자가 될 수 있다. 여러분 속에 주의 성령께서 이런 마음과 생각을 주신다. 9: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했다. 여기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이란 구원하는 일이다. 사탄 죄 저주 지옥 운명에서 빼내고 자녀 신분 권세를 얻게 만드는 일이다. 주님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의 (구원의) 빛이로다 하셨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2. 여러분은 전도자의 관점, 복음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1) 먼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실히 해라
서론에 예수님은 전도하러 오셨다고 했다. 구원의 일에 쓰시려고 시대 살릴 영적 파수꾼으로 정해 놓고 부르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지금 보좌에 계시면서 자기가 하는 일에 교회와 성도를 쓰시는 것이다. 복음 아는 자, 복음을 누리는 자, 복음의 관점을 가진 자를 쓰시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걸리면 감정이 상하고 그 사람을 미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게 된다. 마음에 담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그것을 터뜨리게 된다. 네가 언제 나한테 이랬지? 이렇게 되면 사탄의 통로가 된다. 그러고 있다면 속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전도에도 살전 5:16~18의 말씀을 적용하라고 하였다. 내가 어떻게 전도할까 생각하지 말고 전도에도 완벽한 계획과 방법과 능력이 있으신 우리 속의 그리스도를 기뻐하라고 했다. 전도의 만남도 연출한다고 했다. 복음 전하는 여러분 속에서도 역사하시고 상대방 속에도 역사하신다고 했다. 이걸 정말 믿으면 전도에 대한 내 부담이 훨씬 없어진다고 했다.
결과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행 26:17~18에 보면 바울 사도가 받은 사명이 나온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려 하리라”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바울을 정해 놓고 택하신 것이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바울 속에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이 일에 쓰시는 것이다. 여러분도 처음부터 이런 영적 파수꾼으로 정해 놓고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이 믿음만 회복되면 신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는 염려하시거나 눌리시거나 하는 법이 없으시다. 그러나 누가 주인되면 눌리고 시달리는가? 바로 내가 살면 그렇다. 그런 내가 내 안에 주님을 인정하고 기뻐하고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이 기도의 망대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주님이 갈보리산 언약을 다 이루시고, 감람산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도 마가다락방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다. 지금 보좌 통치로 만유 만물 만민 만사를 다스리고 계시다. 그리고 아버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분 속에서 성령으로 주인 되신 것이다. 그러니 이 방향에 맞추면 여러분의 업을 잡아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업이, 여러분이 고민할 업이 아니다. 아침과 밤에 이걸 놓고 뚫리는 기도 해라. 업의 주인이시고 주님께 모든 지혜와 아이디어와 벙법과 능력이 있다는 고백을 하기 바란다. 여러분 업에서 승리해야 교회에서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업에서 먼저 승리해야 한다. 의탁했는데도 문제가 빨리 해결 안 되고 특별한 응답도 없는 것 같은데요 할 수 있다. 여러분 쉽게 눈에 보이는 결과에 영향을 받기 쉽다. 내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기준과 성공의 동기가 있다 보니깐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거야. 내 경제 큰일 났어 한다. 근데 이 부분에서 주님이 하실 일을 못 믿고 들어가는 것이 문제이다. 주님이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전략과 완벽한 능력의 주님을 믿으라고 했다. 그 분이 여러분 인생 전체에 대한 계획을 갖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라고 했다. 안 좋게 보이는 결과까지 맡길 수 있는 여러분 되어야 한다. 그게 진짜 믿는 거다.
2) 사람을 보고 중보기도 할 때 수준과 상태를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세상에 그 사람의 수준과 상태가 좋아서 구원받는 사람 없다. 그 사람의 이성으로, 능력으로, 수준으로 구원받는 사람 없다. 다 창 3장이다. 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이다. 전도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적용. 성취, 실현시켜 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완전 죄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완전 사탄에게 잡혀있는데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이걸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의 일을 하시며 여러분을 손발로 쓰시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의 관점을 갖고 있으면 쓰겠는가? 사회적 기준을 딱 갖고 보니 그게 나에게 딱 걸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성령 충만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 땅에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행 1:8의 언약을 주셨고 그것을 지금도 이루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중보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첫째, 주님은 어떤 영적 문제자도, 범죄자도, 우상 숭배자도, 병든 자도 주님이 갈보리산 언약을 근거로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둘째는, 지옥이 실제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마 10:28, 막 9:47~49) 그래서 우리는 중보기도를 쉬 포기할 수 없다. 우리 가족, 친족, 아는 사람들이 지옥에 만약 갔다면 우리 보고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왜 내게 말해 주지 않았냐고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끝까지 중보기도 해야 한다. 벧후 3:8에는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셨다.
3. 우리 교회가 가질 비젼
1) 주님은 저에게 처음부터 전도 제자 선교운동의 비젼을 주셨다.
전도해서 제자를 세워 재생산하는 것이 세계 복음화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인 것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그 뜻에 맞아서 저는 다락방 전도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영적 근본 문제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믿음의 전도를 배우게 하셨다. 전도 못 하게 하는 놈이 사탄이기 때문에 일단 현장에 가는 것은 제 의지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현장에 가서 그날의 만남과 전도의 일체를 주님께 맡기는 믿음의 전도를 하였다. 그래서 효과적 만남과 영접과 그 중에 얼마는 재만남과 교회화 되었다. 그러나 제자화까지는 되지는 않았는데 그때 말초 신경 장애를 주셨다. 전도를 멈추게 되면서 집중의 시간표를 갖게 하셨다.
2)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더 자신을 성찰하고 언약신앙이 정립되게 하셨다.
사탄의 함정에 빠져 그 속에서 형성된 창 3,6,11장의 내가 주인 된 것을 근본 뿌리 체질로부터 보게 하시고 뒤집는 일을 하게 하셨다. 주객과 체질이 180도 뒤집히고 믿음과 순종과 의탁의 24체질의 제자로 세워지도록 인도해 주셨다. 제가 할 수 없는데 성령께서 하게 해 주셨다. 이제는 더 확실히 1,3,8의 언약을 주님이 이루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을 하셨듯이 이제 주님이 영적 가나안 정복을 하실 수밖에 없음을 믿게 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성경적 전도운동의 모범이 되고 모델이 될 것을 믿고 나갈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결론
1. 여러분을 정복자로, 세상 살릴 파수꾼으로 정해 놓고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이게 실제 되도록 여러분 속에 1,3,8의 주님을 기뻐하며 집중하면 된다.
2. 오늘 질문한 제자들처럼 율법 관점으로 안 된다.
요셉처럼 복음의 관점으로 바꾸어라. 살전 5:16~18을 전도에도 적용하기 바란다.
3. 기도의 망대를 세워서 교회 비젼에 동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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