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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3년 9월 3일 주일예배입니다.“양과 목자의 비유”( 요 10:1 ~ 21) -요한복음 시리즈 10

by 별종외계오동 2023. 9. 3.

요한복음10장 

 

양과 목자의 비유(10:1~21)

 

지난주는 마 6:31~33의 말씀을 가지고 렘넌트 헌신예배를 드렸다. 렘넌트가 성공할 참 이유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죠지 뮬러 선교사님이 고아 사업한 세 가지 이유를 기억하지요? 청년들이 특히 이 세 가지를 잡기 바란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시거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시면 절대로 믿지 마라. 그 증거가 역사 속에, 교회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절대 믿지 마라. 아까운 시간 내서 소비할 필요가 없다. 예배드릴 필요가 없고 여러분 마음대로 살기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맞다면, 어떻게 하면 나를 통해 하나님 소원이 이루어질까, 어떻게 하면 나를 통해 말씀이 성취될까 하는 것에 생을 걸기 바란다.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언약은 주님이 이루시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순종만 잘하면 된다. 인본주의 체질을 믿음의 체질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오늘 본문은 목자와 양에 대한 말씀이다. 양은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요한복음에서 분명히 밝히고 계시다.

1)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뜻은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것이다. 자기 양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탄, , 저주, 지옥 운명에서 건지는 것이다. 십자의 대속으로 사탄, , 저주, 지옥 권세를 깨뜨리러 오셨다. 우리에게는 이미 이것이 이루어진 사실이다. 믿음으로 내 것 삼으면 된다. 믿기만 바로 하면 3 저주를 3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영적 저주,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가 영적 축복으로, 환경의 축복으로, 육신의 축복으로 바뀔 줄 믿기 바란다. 믿음이 없으면 인본주의로 애써야 한다. 주님께 정말 모든 능력이 있다면 주님께 믿고 순종만 잘하면 된다. 그러나 안 믿어지고 염려되고 불안하면 내가 해야 한다. 가만있을 수가 없다. 주님이 내 속에서도 인도하시고 내 밖에서도 인도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내 속에서 인도받지 못하면 불안의 동기가 올라온다. 그러면 자기 방법과 자기 안간힘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계속 자기가 이루어야지, 하나님의 응답은 못 받는다.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 못 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분수령이다. 분명히 내면에서도 인도하시고 현실에서도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사람이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사람이다. 그게 안 된 상태에서 교회는 다니고 예수를 믿고 신앙고백도 한다. 그런데 주님을 완전히 믿고 의탁하는 것이 안 되고 염려가 되니깐 불만, 불평이 나오고 내 체질이 나오고 내 동기와 내 방법이 나간다. 그러면 아직 예수님이 주인이 안 되신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오늘 왜 양과 목자 비유를 하는가 하면 정말 목숨까지 주시는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양 되라는 말이다. 그러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 지난주에 북한은 교회를 없애고 성경을 없애고 김일성 세습 정권을 우상화했기 때문에 지금 국가적 3 저주를 받고 있다고 했다. 분명히 우상 숭배하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가문적으로, 국가적으로 저주받는다는 것이 입증된다.

2)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3 저주를 3 축복으로 바꾸는 분이신 것을 입증해 보이셨다.

4장 수가성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시는 분으로 자기를 알려 주셨다. 생수가 뭔가? 성령이시다. 이 여인에게 영적 저주가 제거되고 영적 생명이 주어진 것이다. 5장에서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일방적 은혜로 고쳐 주셨다. 이것은 무슨 저주를 꺾으신 것인가? 육신 저주이다. 6장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해 주셨다. 이것은 경제 문제니깐 환경의 저주를 꺾어주신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은 여러분의 환경에 역사하실 수 있다. 8장에서는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셨다. 영적 저주를 해결해 주신 것이댜. 9장에서는 나면서 소경 된 자를 고쳐 주셨다.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은 부모의 죄나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우리는 율법의 눈으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영적 문제로 잘못한 일이 있어도, 이제 그것도 하나님이 하는 일을 나타내실 일로 보라고 했다. 여러분이 창세 전부터 택정함을 입었고 십자가로 구속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신분이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의 과거 일과 현재 일까지 다 포함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으신 것이다. 그러니 속지 말고 정죄 의식에 빠지지 말고 복음으로 승리하기 바란다. 그게 영의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문제도 정죄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눈으로 보기 바란다. 그래야 영적 파수꾼이다.

 

2. 오늘 본문에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

1)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가지고 설명하고 계시다.

목자들이 밤에는 양을 우리에 넣고 문지기를 둔다. 그 우리는 울타리가 둘려 있어서, 목자라도 문을 통해서만 출입한다. 울타리를 넘어가는 자가 있다면 그건 훔치는 놈이기 때문에 도적이나 강도다. 목자는 자기 양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른다. 양은 약한 동물이기 때문에 주인의 음성을 듣는데 민감하다. 양은 시력은 나쁘고 대신 청각이 발달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부르면 도망간다. 소속이 다른 경우에는 안 따른다. 이 목자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양은 내가 알고 그 양은 목자를 알고 자기 목자를 따른다는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소속이 다르면 목자를 따르지 않는다. 8:44절 말씀을 보기 바란다. 마귀가 너희 아비면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영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영으로 듣고 심령에 부딪혀야 한다. 영으로 믿어지는 것이 진짜 믿어지는 것이다. 영으로 믿어지면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을 믿게 되므로 이성으로 믿어지지 않는 부분도 극복이 된다.

9절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하셨다. 여기서 구원이란 양을 적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는 말은, 안전하게 출입하면서 양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했다. 이걸 사탄에게 적용할 수 있다. 사탄과 귀신들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행복과 생명과 축복을 빼앗기를 원하는 도둑이다. 이것들은 육신적인 것으로, 세상적인 것으로 유혹한다. 목자에게서 잠시라도 떨어졌을 때 공격한다. 양은 방어기제가 없다. 동작도 빠르지도 않고 순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에게서 떨어져서 유리 방황하면 근방 육식 동물의 밥이 된다. 반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고자 함이다. 영 육으로 복을 받기 원하신다.

11~15절에서는 삯꾼과 선한 목자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삯꾼은 유대 교권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 이익이 목적이다. 돈을 좋아한다. 이리가 오면 양을 돌보지 않는다. 반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16절에, 이 우리는 유대교회를 말한다. 다른 양이란 앞으로 믿게 될 이방인 성도를 말한다. 전 세계 시급한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17~18절에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예고하신다. 주님은 자기 생명을 이유가 있어서 버리셨고, 버릴 권세도,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시다는 말씀이다. 구약에서 참 목자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시 23편의 고백을 알고 있다. 100:3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내가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참 목자시라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인가? 오늘 본문에서는 아주 확실하게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강력한 관계인지를 말씀해 주신다.

2)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아버지와 그리스도 손에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10:27~29을 보자.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른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그래서 예수님께 위탁된 양도 예수님 손에서 못 뺏는 것이다. 아버지 손에서도 예수님 손에서도 못 뺏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어떤 문제도, 어떤 인간관계 문제도 하나님 보다, 그리스도 보다 클 수는 없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다스리는 분이시고 복종시키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요 10장을 통해서 예수님이 자기 양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이고 그들을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3. 여러분이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다.

1) 왜 기뻐해야 하는가?

환경 때문에, 돈 때문에, 잘되는 일 때문에? 그것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육신은 여기에 상당히 반응한다. 그게 조금만 흔들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곧 곤란해진다. 여러분이 환경이나 일의 결과가 기쁨과 흔들림의 이유가 된다면 매일 거기에 영향받아야 한다. 그러면 진정으로 여러분이 향상 기뻐해야 할 이유는 뭘까요? 여러분 안에 와 계신 분 때문에 그래야 한다. 여러분의 일도 처리하실 수 있고, 그 일에 얼마든지 간섭 통치 연출하실 수 있으시다. 그 문제가 잘 안 돼도 선용하실 수 있고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 있으신 분이 믿어져서 그런 주님이 기뻐져야 한다. 그런데 보통 기쁨이 어디 있는가 하면, 환경이든지 여러분의 느낌에 있다. 그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느낌이 아니고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에 보통 좌우된다.

예를 들어 제가 집사람과 싸웠다고 해 보자. 의견이 안 맞아 주장하다가 열이 낫다고 하자. 그럴 때 제가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럴 때도 제 안에 주님을 기뻐할 수 있나? 근데 제가 아멘 했다. 얼마든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처리하실 수 있고 제가 잘못했으면 저를 고치실 수 있고 아내가 잘못했으면 아내에게 깨달음을 주실 수 있고 인도하실 수 있으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어떻게 하는가? 이때까지 그렇게 안 살았으니깐 확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거의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따라 가버리는 것이다. 경제 문제 오면 그냥 이제까지 살아왔던 경험과 이성에 근거해서 행하지,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기뻐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성이 없으면 승리하지 못한다.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는 부분이 워낙 체질 되어 있다 보니,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신뢰하고 즐거워하는 체질이 안되면 정말 팡팡이 깨진다.

2) 근데 신뢰하고 의탁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진짜로 승리하게 된다. 그걸 배우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영적 생활이 안 되니 이걸 못 배운다. 못 배우면 어떻게 되는가? 매일 보이는 것만 쫓아간다. 빨리 이 일이 잘되도록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그러면 불신자지, 인본주의자이지, 진정한 신자는 아니다. 그래서 체질을 바꾸라는 말이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들을 내게 주신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했다. 영생을 주노니 라는 말은 현재형으로 현재로부터 계속 주는 것을 말한다. 칼빈은 이것을 근거로 구원의 안전성과 성도의 견인(堅忍 - 굳을 견, 인내할 인 굳세게 인내한다는 뜻)을 주장했다. 견인이라는 말은 견디어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왜요? 만물보다 크신 분이 내 아버지시오, 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을 이길 사람도, 문제도 없다. 마귀도 못 이긴다는 것이다.

3) 저는 어릴 때부터 참 염려 체질이었다.

어릴 때부터 숙제할 때, 발표할 때, 시험 준비할 때 염려하며 애쓸 때가 너무 많다. 내 이익의 동기, 인정과 자존심의 동기 때문이다. 이 본성은 커서도 마찬가지다. 설교 준비할 때 생각 안 나면 염려한다. 전도할 때도 내 본성은 염려한다. 염려되니깐 내 힘이 들어가고 애쓰고 긴장한다. 정말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방법과 능력으로 세상을 움직이시고 구원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러면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신 분을 믿으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 믿고 맡기면 된다. 내 안에서도 인도하시며 보좌에서도 통치하시는 분이 내 주인이시면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내 동기로 안 들어가도 된다. 그러면 주님의 동기로 주님이 언약을 이루실 것을 믿고 들어갈 수 있는 인생이 된다.

제가 어릴 때부터 염려하는 체질인데 어느 날 이것이 영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사탄이 임마누엘을 잃어버린 나를 창 3,6,11장의 함정에 빠뜨려 놓고 인본주의 체질로 반응하면서 열심과 애씀으로 살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깐 염려하는 내 동기, 인정받고 자존심 만족시키려는 내 동기 갖고, 내 육신의 기준과 육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가지고, 내가 몸부림치는 인본주의 애씀과 노력이 완전히 체질 된 것이다. 여러분 염려하고 긴장하고 눌리고 화내고 성질내고 짜증내고 그러는 것이 전부 거기에서 체질 된 것이다. 지금도 너무나 묶여있어서 말씀은 듣는데 이 체질 극복 못 한다. 언제 극복이 되는가?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의 눈을 열어주어야 이것이 극복된다. 여러분 속에 영의 생각이 와서, 영의 믿음이 와야 이것이 극복된다.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은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결론

오늘 소바가 왔다. 아놀 아들로 인해 걱정이 많다. 아들로 인해 죄책감이 있다. 집사람이 아니다. 그 일 아니면 네가 예수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로 너를 예수님 믿게 했고 하나님이 네게 하실 일이 있다고 했다. 소바 하는 고백이, 나는 아직 하나님께 중독이 안 되었다고 했다. 여러분 중독 좀 되기 바란다. 일심 전심 지속만 되면 된다. 지금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다고 하지 않는가?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요한복음의 여러 부분에서 예수님은 내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