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화목교회 예배입니다. 2023년 9월 17일 주일예배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요 12:1 ~ 19)- 요한복음 시리즈 12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요 12:1~19)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나온다. 그 전에 먼저 사 40장의 말씀을 좀 살펴보고자 한다. 사 40:27절에 보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탄식하는 내용이 니온다. “내 길(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원통함)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수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느냐” 이런 탄식을 왜 했을까? 그들의 범죄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들이 자력으로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은 전혀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지배받았을 때 상황과도 유사하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회복의 말씀을 주신 것이 사 40장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먼저 말씀해 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으며 누구와 비기겠느냐” 하셨다. 사 40:15~18, 21~26의 내용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다. 그래서 27~31절까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실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포로 귀환이 되게 해 주셨다. 그것이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를 통해 귀환이 된 것이었다. 출바벨론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력으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운명에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그리스도를 보내사 사탄, 죄, 저주, 지옥 권세에서 출 바벨론 시켜주신 것이다. 여러분은 현재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기가 막힌 문제가 있는가? 내 길(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원통함)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수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탄식이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사 40장의 하나님을 붙잡고 그의 그리스도를 의탁해라. 인간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 불신자의 생명, 건강, 재능, 돈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잘 못 하고 항상 내 노력으로 산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다가 내 노력으로 안 되는 문제에 딱 봉착하게 되면 당장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곤란한 생각에 잡혀 기도도 잘 안 된다. 기막힌 일을 당하면 고통당하고 시달리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극한의 환경 속에 집어넣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도록 하신 상황이 그런 상황이었다. 왜 그런 상황에 넣어서 하나님이 훈련시켜겠는가? 그래야 여러분의 혼의 이성이 깨진다. 합리적 이성이 얼마나 센지 모른다. 거기에 잡혀 그것에 관계된 생각만 계속 하게 된다. 그러면서 영의 생각을 못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극한 상황에 집어넣어서 혼의 생각이 깨지게 만드신다. 하나님이 이런 문제를 허락하시는 것은 문제를 통해 그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다. 영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할 때 인간 인력으로 안 된다. 백프로 믿음과 순종이 되어야 한다. 믿음과 순종이 안 되는데 가나안 정복하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그러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고 만다. 그러니 여러분 현실이 좀 편안하다고 그것이 안주의 조건이 되면 안 된다. 우리는 현실이 좀 편안하면 육신의 소욕으로 들어간다. 육신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면 절대 이 세상 임금 사탄을 못 이기게 된다. 오늘 그런 내용이다.
여러분은 불신자가 아니다. 여러분 안에 모든 능력의 그리스도께 계시다. 그걸 의지하는 체질로 하나님은 바꾸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서도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않고 영의 생각으로 행하면 안팎으로 인도받는다. 안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밖으로는 보좌에 계신 분이 인도하신다. 이걸 진짜로 체험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교회 뒤집어진다. 예수님은 우리를 출 바벨론(로마) 시키기 위해서 오셨다. 영적 로마의 주인인 이 세상 임금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오셨다. 출 로마시키기 위해서 오셨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1. 입성의 분위기
1)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날은 베다니의 잔치 후 이틀 지난 때다.
베다니 잔치란 죽은 나사로가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고 베다니에서 잔치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잔치 후 이튼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이다. 이날을 종려 주일이라고 한다. 예루살렘 주민이 종려나무로서 환영했기 때문이다. 이때 나사로의 부활 사건으로 고무되었던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호산나(오, 구원하소서) 찬송하리로다. 주(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였다. 절박한 심령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땅의 생각만 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생각과는 땅과 하늘만큼이나 차이가 났었다. 유대인들은 육적인 생각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을 열망했지만 예수님은 사실 죽으러 오셨다. 사탄과 죄와 저주와 지옥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십자가 지실 일을 생각하셨다. 유대인들은 개선장군으로 로마를 타도해 주기를 갈망하며 환호했지만,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십자가 지시러 성안으로 들어오셨다. 이것은 이미 슥 9:9절에 예언되어있는 내용이다. 개선장군 같은 세상 군왕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인간 구원을 위해 겸손하게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2) 이때 예수님의 심정을 27절에 잘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 앞에 마음의 큰 짐과 번민함이 있었다. 27절,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막 14:34절에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도다“ 하셨다. 이것은 너무나도 큰 압박감을 표현하신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압박감을 당한 적이 있는가? 그게 경제 문제든, 사람 문제든, 남편 문제든 딱 봉착했는데 이성의 논리나 계산으로는 해결 안 되는 문제라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이런 문제에 계속 시달리면 육신의 본성에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어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거다. 어쩔 수 없는 육신의 한계에서 오는 극심한 시달림이다. 기도 못 하면 지게 된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다 시달리게 만든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절 하반절에,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 왔나이다” 하셨다. 이것은 영의 생각으로 그 극심한 압박감을 이기고 아버지께 순종하신 것이었다.
2.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말미암아 초래될 결과를 잘 알고 계셨다.
1) 28절, 자기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아셨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하셨고 이미 그의 순종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다. 또 십자가 지실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한 사람의 희생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진리이다.
2)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31절,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내쫓겨나리라” 하셨다. 이 세상은 본래 하나님의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였다. 그러나 아담 범죄 이후 세상은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세상도 심판의 대상이 된다. 마 12:28~29에 보면 이 세상은 지금 사탄이 점거하고 있는 사탄의 집과 같다. 거기에 있는 사람은 집의 세간과 같다. 그 집을 지키는 강한 자인 사탄을 성령으로 먼저 꺾지 않으면 사람을 건져낼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 임금부터 쫓아내시는 것이다. 어떻게? 갈보리산 십자가 대속으로 사탄, 죄, 저주, 지옥 권세가 깨지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그 일을 실제화하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적용시키시는 것이다.
3)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셨다.
땅에서 들린다는 말은 십자가에 매달려 들리는 것과 부활, 승천하는 것도 포함한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포함한다는 말이다. 그들을 다 구원으로 이끌겠다는 말씀이다. 재림 시에는 땅에 있는 모든 성도를 하늘로 이끄실 것이다.
3. 현재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1) 십자가 죽음의 결과를 잘 알고 믿음의 싸움, 이긴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가 불신자처럼 삶이 평안하게 윤택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걸로 안주하면 큰 착각이다. 진짜 대부분은 그걸 목적으로 산다. 수단일 뿐이다. 사탄의 권세는 깨졌고 예수 이름 앞에 패배하고 정복당하도록 만드셨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 이름 앞에, 그 이름을 믿는 자 앞에 정복당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다 한다. 근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기막힌 상황 속에서도 자기 속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했고, 그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늘과 땅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자기 안팎에서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체험했다면 그런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가 모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이름과 이런 걸 체험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지식과 이론으로 알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면 사탄은 안다. 사탄 왈, 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사용하네 한다.
사탄이 패배하도록 되어있지만 지금도 사탄은 여전히 세상에 역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싸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싸움이 아니다.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는 싸움이다. 이건 공존이 안 된다.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는 공존이 안 된다. 힘이 있는 쪽이 힘없는 쪽을 먹게 된다. 그런데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먹히는 것도 모를 수 있다. 우리의 기준이 육신적으로 편안하냐, 일 잘되냐는 것을 기준 삼으면 먹히는 것도 모를 수 있다. 응답받아서 좀 살만하면 그러면 편안한 걸 기준으로 해서 이제는 세상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그건 정복당한 것이다. 이 싸움은 휴전이 없고 그리스도 재림 시에 가서야 종전이 된다. 영적 싸움 안 하고 육신의 것으로 만족하고 추구하면 정복당한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긴 싸움을 보장받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을 분명히 이긴다는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신앙 생활해야 한다. 우리는 이기고 그 가운데 빠져있는 사람을 건져내야 하는 사람이다. 우리 육신의 본성으로 “아, 저 사람에게 어떻게 전도 말을 꺼내지~”, 마음 속에서는 성령님이 전도해라 하시는데 본성으로는 “아, 나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게 힘들어, 안 믿는다고 하면 어떻게~” 등 이런 것이 육신의 생각이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에 져버리는 거다. 성령님은 그 사람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갖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 주님이 행하기를 전하신다. 가나안 정복을 하나님이 완전한 계획을 갖고 정복하시는데 믿음있는 여호수아 군대를 통해서 하신 것이다. 우리가 직접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할 때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고 상대 속에도 역사하셔서 택한 백성을 건져내시는 것이다. 그런데 내 이성적인 생각이, 인본적인 생각이 내 영의 생각을 눌러버리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전도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직장인인데 전도자다. 전문인인데 전도자다. 내가 하는 일 잘하면서 그건 수단으로 삼는다. 이게 승리하는 방법이다. 사탄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 권세와 세력을 가지고 인간을 죄와 3 저주로 몰아넣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도 이론과 이해력으로만 복음 전해서는 안 된다.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를 붙잡고 흑암을 꺽고 사람은 건지시는 것이다. 그 영혼과 몸과 삶에도 역사해서 3 저주를 꺽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2) 우리 시대는 예수님의 능력이 약해지셨거나 필요 없어졌는가?
그 능력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불신자가 4가지 운명에 빠져 숱하게 죽어가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근거로 싸워야 한다. 이것을 근거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크신지 믿어지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주님은 영적으로 죽은 것을 위해 영적 생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환경의 저주와 질병도 담당하셨다고 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요 14:13~14) 우리의 기쁨은 환경과 현실 조건 때문에 기쁨이 좌우되지 않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있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자기 안에 그리스도를 항상 기뻐하고 기뻐했다.
결론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 하면 영적 성장이 된다. 이제까지 묶여 있고 속고 있고 체질 되어있었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데 왜 안 떨어져 나가겠는가? 누구한테 상처받았다. 감정이 상했다. 돈에 묶여있다. 이런 것들이 전부 창 3,6,11장의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직 성령으로 사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전부 그러는 것이다. 정말 뒤집어지는 축복이 있기 바란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적 출 바벨론, 출 로마 시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1. 주님이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하셨고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이끌겠다고 하셨다. 저와 여러분은 그 일에 쓰임 받을 사람이다.
2. 십자가 죽음의 결과를 알고 믿음의 싸움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 40장의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그리스도 누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는 애굽의 바로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광야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가나안 정복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영적 가나안 정복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 마 12:28, 29절이 가능케 하신다. 갈보리산 언약을 믿음으로 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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