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으라 2 (요 20:1~23)
1. 수장절의 의미 – 추수 알곡이 창고에 저장되는 것처럼 우리도 주의 일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2,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된다. - 그는 세상 성공을 위해 살지 않고 일생 의로운 재판장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한 삶을 살았다.
딤후 1:9~!1 - 그는 자기 소명과 사명을 잘 알았고, 감옥에서 고난받고 있지만 부끄럽지 않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딤후 4:7~8 -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여러분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면 이런 믿음의 경주 할 수 있다. 단서가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3) 우리의 삶의 이유 - 하나님 통치 실현과 전도 목적으로 사는 거다. 취업, 승진, 성공, 후대 잘 됨의 이유가 하나님 통치 실현과 전도를 위한 것 되게 해라. 모든 것을 이것을 위해서 해라. 그걸 위해 약속된 기도의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육신의 생각을 늘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1. 그래서 이렇게 살고자 할 때 영적 상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 사실을 붙잡는 것이다.
1) 영적 상태나, 느낌에 믿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 영적 사실과 삼위 하나님의 사실에 믿음을 두어야 한다. 영적 상태가 눌리는 두 가지 경우를 설명했다. 첫째 육신적으로 살면 영적 상태는 눌린다. 영적인 힘을 못 받으니 눌리게 된다. 둘째 현실 문제나 사탄의 공격에 눌리게 된다.
2) 먼저 나는 얼마든지 눌릴 수 있음을 인정해라. - 그러면서 여러분 안에 눌리지 않는, 모든 능력이 있으신 주님을 고백해라. 이때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어져 있는 영적 사실, 삼위 하나님의 사실, 언약의 사실을 고백해라. 이때 한 두 번만 하지 말고 기도가 뚫릴 때까지 계속 고백해야 한다. 주님도 사탄도 듣고 있다고 했다.
3) 언약의 말씀 잡고 기도해라.
창 3:15 –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요 12:31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하셨다. 요 16:11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하셨다.
계 12: 9~11 – 사탄과 그 사자들이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므로 밤낮으로 참소하던 자가 내어 쫓겨났다.
→ 기도란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는 거라 했다. 내 생각을 주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거다. 눌린 감정, 답답함에 속지 말고, “내 안에 모든 능력의 주님께서, 모든 진리와 생명과 사랑과 능력의 성령으로 인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고백해라.
2.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1)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 17절에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하셨다. 그의 영화 된 몸이 더러워질까 봐 만지지 말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에게는 오히려 만져 보라고 하셨다. 주님께 물어봐야 할 부분이다
또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구속사업이 완성된 결과이다. 롬 8:29절에서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라” 하였다. 이는 우리가 원래 하나님 형상이었기 때문에 다시 자녀 신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2) 주님은 40일간 7번 이상 나타나셨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 제자들이 얼마나 감동과 희열과 충만함이 컸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막바로 전도 현장에 보내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3) 성령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 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셨다. 우리는 세상에서 불러내심을 받은 자 곧 교회요, 또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보이는 것에 꽂혀 살고 인본주의 이성에 갇혀 살게 된다. 인본주의 이성은 영적 사실에 대한 믿음을 못 가진다. 그러니 보고 듣는 세상 문화와 육신의 삶에 젖어 들게 된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 늘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시면서 22절에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절에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다. 전도자에게는 사죄권이 있다. 이는 복음을 전할 때 믿는 자는 사죄의 축복을 얻게 되고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막 16:16). 전도할 때 상대가 안 믿는다고 해서 절대 낙심할 일이 아니다. 헛수고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고전 3:8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심는 이와 물 주는 이에게 각각 상이 있다.
4) 주님이 승천하시자 제자들은 막바로 마가 다락방으로 가서 오로지 기도했다. - 주님이 약속하신 눅 24:49, 행 1:8, 막 16:15~20과 마 28:18~20의 말씀을 붙잡고 응답이 올 때까지 일심, 전심으로 기도했다.
결론
1. 우리가 살아야 할 진정한 이유가 뭔가?
하나님 통치 실현과 전도 운동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배경을 믿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꽂혀 살고 인본주의 합리적 이성으로 살면 안 된다. 여러분 인생 방향이 주님과 맞으면 여러분의 일은 주님의 일이 된다. 여러분은 기도 권세를 사용할 수 있다.
2. 평상시에 영적 삶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라.
24시 하나님 소원에 방향 맞추고 주님의 생각과 관심에 맞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늘 성령님을 의지해라. 육신의 본성에 입각한 감정과 육신의 생각으로 안 빠지는 거다. 보좌 통치하시면서 아버지 소원을 이루시는 주님이 내 안에서 성령으로 주인 되시어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과 영의 사랑과 영의 능력으로 행하시기를 늘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님을 힘입어 교회에 대해서는 서로 발을 씻기고 현장을 향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창 3장의 눈과 복음의 눈으로 보며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3. 나의 전도 규례 갖기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이고, 정복하느냐 정복당하느냐의 싸움이다. 안 싸우면 정복 당한다. 사탄은 실제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의 성령님을 힘입을 수 있다. 우리는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전도 규례를 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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