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 (요 21:1~25)
1. 본서의 기록 목적 – 요 20:30~31절에 밝히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맏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위해 7가지 표적과 함께 주님의 교훈들이 나온다
→ 3장 : 니고데모와의 대화/ 4장 : 사마리아 여인 전도/ 6장 오병이어 표적/ 8장 : 간음한 여자 용서하심. 나는 세상의 빛이다 하시면서 하신 교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어둠 가운데 다니지 아니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10장 : 양과 목자의 비유(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을 내 손에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3장 –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새 계명 / 14~16장 – 다락방 강화에서 중요한 교훈과 약속 / 17장 – 대제사장의 기도
3. 21장은 부록과 같다. - 이 부분을 덧붙인 이유 두 가지가 있다.
1) 주께서 베드로를 어떻게 그의 권위와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는지 밝히기 위해서다.
2) 당시 사도 요한에 대해 와전된 말을 시정하기 위해서다.
본론
1. 자신의 천명 소명 사명을 확인해라.
천명 소명 사명 따라 살아야 한다. 단지 자기 필요에 따라 믿는 사람은 종교인이다. 주님의 사랑을 정말 아는 사람만 천명 소명 사명을 위해 살 수 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모르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도 할 수 없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다시 찾아오셨다.
1)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처음 소명 받았을 때인 눅 5장과 같은 상황을 연출해 주셨다.
그때와 같이 밤새 수고했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 했다. 그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셨다. 가득찬 큰 물고기 153마리가 잡혔다. 주님이 베드로가 소명 받았으 때 같은 상항을 연출해 주신 것이다. 그때 그가 처음 부르실 때 상황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지난 3년간이 주마간산 식으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2) 주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미리 해 주신 말씀 때문이었다. (눅 22:31~32)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뭔가? 가룟 유다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회개할 수 없었다. 반면 베드로는 회개했고 주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힘을 다시 얻었던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과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다.
딤후 1:12 – 사도바울은, 내가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하였다. 우리는 세 가지 기본 체험이 있어야 한다.
→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 구원하심에 대한 확신, 나의 사명을 주님께 이루게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있는 사람은 자기 천명 소명 사명을 위해서 살게 된다.
2. 베드로와의 대화 (15~19)
1) 주를 세 번 모른다고 한 베드로에게, 주님도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다.
먼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셨다. 가슴 뜨끔한 질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했다. 이 사람들보다라는 말은 빼고 말했다.
2) 질문과 대답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을 세 번 하셨는데 두 번은 아가페 사랑으로 물으셨고 마지막 한 번은 필레오 사랑으로 물으셨다.
베드로는 - 세 번 다 필레오 사랑(친구 간 사랑)으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이걸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였다. 세 번째 같은 질문을 하시니깐 근심하여 말했다. 모든 것을 아시오매...→ 의미 있는 질문이었고 진실 된 답변을 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제 자기의 수준을 알았고 거기다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진실한 고백을 한 것이었다. 자기의 참모습과 주님의 참사랑을 바로 안 것이다.
3) 이에 대해 주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양을 그에게 위탁하신 것이었다. 이어 19절에 그의 장래를 말씀하시면서 나를 따르라 하셨다. 베드로는 초대교회 대표자로 쓰임받았고 64년 7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 (네로 황제 때)
→ 여러분은 예전에 주님을 아는 것보다 지금 더 알고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주시는 것이 계속 발전되므로 주님이 모든 것이라는 체험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주가 되신 아버지와 구속자 되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므로 창 3, 6, 11장의 본성을 이기게 하시고, 사탄을 이기며, 그분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된다.
→ 구원의 체험이 확실해도 그것만 아니라 구원해 주신 주님이 내 안에서 인도하시는 것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영의 말씀과 영의 사랑과 영의 능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깊어지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이 된다.
3. 나 중심의 세계관을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꾸어야 한다.
1) 사람을 볼 때도, 세상을 볼 때도 인간 조건으로 본다.
무슨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내 수준, 조건, 공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영 육의 능력을 받아 쓰이면 부러워한다. 비교하면서 교만과 열등감에 빠진다. 나 중심의 세계관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2) 그 시대, 그 현장에 구원받을 자들을 위해 다시 말해 주님의 필요를 위해 각 사람의 모양대로 은혜와 은사를 주셔서 쓰시는 것이다. - 우리 민족에게 선교사들을 보내신 것도 캄캄함 가운데 있었던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그 현장의 고통받고 있는 택한 백성을 위해 선교사들을 택하셨고 소명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쓰신 것이다. 그 사명 받은 사람들은 충성하므로 상을 받은 것이다. 과거 베드로를 쓰셨고 요한을 쓰신 것처럼 조선에 언더우드 선교사를 쓰셨고 한국 교회사의 여러 인물을 쓰신 것이다. 조용기 목사님은 조용기 목사님대로, 류목사님은 이 시대 성경적 전도 운동과 렘넌트 운동을 위해서 쓰시는 것이다.
결론 -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겠는가?
주님이 자기 종들을 택하여 쓰시는 것은 그 시대, 그 현장에 구원받을 자들 때문이구나. 우리 조건 공로 때문이 아니구나. 우리는 현장에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 성령 충만과 영 육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구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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