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역사의식(수24:29~33)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는 아브라함이다. 나라의 기반을 닦은 사람은 모세다.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는 여호수이다. 그러나 이들을 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해 나온다. 110세에 죽었다는 말씀이 나온다. 모세처럼 그는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전달하고 죽었다. 여호수아만한 인물이 찾기 어렵다. 31절에는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했다는 말이 나온다. 요셉의 유언대로 한 것이였다. 그가 묻친 세겜은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에게서 산 땅이라고 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야곱도, 요셉도 다 가나안 땅을 정녕히 주실 것에 대한 언약을 확실히 살다 죽었다는 말이 된다. 후대에게는 언약의 바톤을 전달하고 죽은 것이였다. 우리도 언약을 확실히 후대에게 계승해야 하겠다. 31절의 말씀에는 그 후 세대가 여호와를 제대로 섬기지 못했다는 말이 암시되어 있다. 우리는 언약신앙을 후대에게 전달하되 어떻게 전달해야 하겠는가?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의식을 올바로 갖고 언약 전달을 해야 되겠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많다. 두 민족 다 작은 민족이다. 수적으로나 영토적으로나 작은 나라이다. 약소국이다. 강대국의 침략을 참 많이 받은 나라이다. 지리적 위치가 그런 위치에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사방으로 선교하기 좋은 나라가 된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민족이다. 남북이 갈라진 역사를 가진 것도 유사하다. 물론 국가적으로 선민으로 택한 받은 민족은 이스라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선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이제까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한량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를 좀 살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참된 역사의식과 삶의 본이 되어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해야 하겠다.
1. 미전도 종족 조선
1) 가장 어둡과 깜깜한 조선의 상황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 매해 흉년으로 굶어 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때만 그런게 아니라 5천년 역사가 그렇다. 그런데 작년 수출 5위, 경제력은 10위, 군사력 6위다. 2차 대전 후 신생 독립국가 140개 나라다. 140개 나라 중 경제력이 139위였다. 6,25 후에는 140위가 되었다. 유일하게 선진국 되었고 원조국이 되었다. 세계선교 2위 국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와 복음을 전했고 부흥이 일어난 결과이다. 그리고 나라를 세울 때 지도자가 이 나라를 잘 세웠기 때문이다. 오늘 이것이 왜 그런가를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후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겠다.
2) 선교사 입국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개신교 선교사로 처음 조선에 오게 된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오다가 대동강변에서 관군의 공격을 받아 배는 불살라졌다. 그는 중국어 성경을 뿌리다가 참수 당해 죽었다. 그 성경을 받아든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걸 갖고 자기 집에 가서 도배지로 사용 했다. 그 집이 여관이 되었는데 선교사가 와서 묶다가 그걸 본 것이였다. 그래서 여관집 주인이 예수를 미고 그 집이 나중에 평양 최초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다. 그 교회 종소리를 듣고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쳤던 박춘권이라는 사람이 마음이 찔려 회개하고 교인이 되었다. 나중에 영수(교회 모든 일을 관리하는 직책)까지 되었다고 한다. 널다리골 교회는 훗날 평양 대부흥이 일어난 장대현교회가 되었다. 이걸 우리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18년이 지나 1884년 알렌 선교사 의사로 입국하였다. 그리고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함께 입국한다. 그래서 개신교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 대부흥의 역사
1) 원산에서 평양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온지 18년 정도 지나 1903~1907년 원산에서 평양에 이르기까지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시발점은 원산에서부터 였다. 로버트 하디라는 캐나다 의사가 있었다. 한국에 와서 풍토병으로 자녀들이 죽었다. 의사면서도 강원도에 들어가서 3년 정도 선교사역을 했다. 그런데 잘안되고 실패했다. 1903년 감리교 여선교사들이 기도회를 열었는데 거기에 하디 선교사를 초청했다. 설교 세 편(그리스도 안에 거함, 그리스도를 믿음, 성령의 체험)을 준비는 했는데 정작 설교할 자신이 없었다. 신학적 지식은 갖추었는데 정작 자신에게 체험이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회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조선인들을 무시하고 낮추어 본 것, 자기 학벌을 자랑했던 것들을 회개하기 시작했다. 밤을 세워 기도하다가 새벽에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시는 체험을 했다. 마음에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준비한 것 설교하지 말아라. 네가 선교 실패한 것과 그 원인을 말하거라 하셨다. 그것은 자존심이 상하고 챙피한 일이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시키시니 순종하여 기도회에 가서 자기 잘못과 실패의 원인을 고백 했다. 듣고 있었던 선교사들이 은혜받으면서 자기들도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일이 다가와 하디 선교사가 원산 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한국 사람 앞에서도 니가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설교를 해라 하셨다. 여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조선인들에게도 회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원산에서 시작된 회개의 역사가 평양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1907,1월에 평양에서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열렸다. 첫날부터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다. 저녁집회가 끝났는데도 기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밤 2시까지 진행이 되었다. 특징이 성령께서 역사히시니 사람들이 나와 자발적으로 공개 회개를 했다. 이것이 평양 시내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이런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거의 같은 시기에 한성감옥에서는 조선을 이끌어갈 지도자들을 하나님이 준비시키는 일을 하고 계셨다. 이승만이 회개하고 감옥에서 애국 지사들에게 전도하고 있었다.
2) 이승만
원래 이승만은 19살에 배제학당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졸업 후 언론인이 되어 군주제 보다 민주주의를 홍보하다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거기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 당하다가 성경 읽고 싶어서 선교사님께 부탁을 했다. 전에는 성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유대 땅의 예수님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의 죽음이 나랑 무슨 상관있느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옥에서 예수님의 고난 당하신 내용을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졌다. 자신도 벌거벗겨 고난당하는 처지였기 때문이였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졌고 1899년 1월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 때 감옥이 환해졌고 마음에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양반 가운데 최초로 믿은 사람이 이승만이라고 한다. 감옥에 있을 때 콜레라가 발병되었다. 하루에 17명이 죽은 경우도 있었다. 토사 광란하고 죽은 시체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래도 살아남았다. 5년 7개월간 감옥에서 전도했고 많은 글을 썼다. 그 때 40명의 애국 지사들이 때마침 한 사람씩 감옥에 들어왔다. 이들에게 전도를 했고 그들과 함께 감옥에서 성경공부를 했다. 성경 각권을 한 권씩 읽으면서 토론했다. 그들은 은혜를 받자 자기들이 있는 감옥을 감옥이 아니라 복당이라고 했다. 우연히 40명이 감옥에서 만난 것 같았는데 아닌 것이였다. 그들이 감옥에서 기독교로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 교육에 힘쓸 것을 결의한다. 이들이 출옥해서 실제로 교회를 세우고, 교육에 힘쓰고,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되었다. 이들이 훗날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3. 우리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1) 선교사들의 고백
이렇게 감옥에서는 지도자들이 준비되고 있을 때 원산에서부터 시작된 부흥은 평양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선교사들이 이 때 감을 잡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 민족에 대한 무슨 계획이 있는가 보다. 다른 나라는 선교 100년, 200년 해도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 나라는 선교 20년 밖에 안되었는데 위 아래로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이였다. 1905년 감리교 잡지에 선교사님들이 쓰기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국을 동양을 복음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고자 하심을 믿는다. 이 때 조선은 경제적 정치적으로는 망한 상태였다.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진다. 역사적으로 가장 암울할 때, 나라가 망했을 때 하나님은 이 민족에게 대부흥의 역사를 허락하신 것이다. 평양 대부흥 이후 조선 팔도로 부흥이 무섭게 번져나갔다. 1907년을 깃점으로 기독교가 급성장하게 되었다.
2) 가장 주목받았던 선교지
1910년에 영국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다. 그 때 가장 주목했던 선교지가 한국이였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선교 역사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대부흥이다. 그것은 진정한 오순절의 역사였다. 5만 명의 한국 기독교인은 부흥의 불을 통과했다. 그 경험을 통해 오늘 한국 교회는 죄의 무시무시한 성격,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 기도의 능력,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멸망했버린 조선 땅에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였다.
평양 대부흥 후 세례받는 조건이 있었는데 첫째 글자 못읽으면 세례를 나중에 받게 했다. 성경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였다. 둘째 성경 1독은 해야 한다. 셋째 삶의 변화된 증거가 약하면 보류 되었다. 1907년 6월에 7명 목사가 배출된다. 1908년 1월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로 선교사 파송된다. 1913년에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초대 목사가 된 길선주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독립국은 못되어도 선교국이라도 되어야 한다. 조선 선교 30년만에 선교사를 파송했던 것이였다.
결론
우리는 우리나라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음 주에 대한민국 건국과 6,25사변 그 후 71년간 우리나라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 나라에 은혜를 부어주셨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하나님이 직접 언약을 맺은 선민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큰 계획을 갖고 성령으로 찾아오신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교회가 이런 역사의식을 갖고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 대해서 올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역사 앞에서, 237과 5000종족 앞에서 우리 교단과 교회가 할 일에 대해 분명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다. 그래야 후대들에게 언약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여러분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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