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야손(행 17:1~9)
오는 7,30일과 8,2일에 전경무 선교사님이 민다나오섬에 가서 두 지역에서 목회자 전도 훈련을 하게 되셨다. 두 주 전에 선교사님에게 이런 내용의 통화를 했었다. 이 섬은 알준 목사의 고향이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주님이 그곳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선교사님에게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선교 후원회장이니깐 재정 논의했다. 그런데 제 육신의 본성에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 “선교사님이 사역 시마다 재정이 필요할 텐데 그때마다 요청하면 어떠하나? 우리의 필요에도 부족한데”. 그러나 성령께서 곧 이런 말씀을 주셨다. “이 일을 너의 일로 여기지 말고 내 일로 여기고, 내게 필요를 구하라.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라” 하셨다. 그리고 “선교 현장을 영적인 눈으로 봐라.” 하시더라. 주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믿음의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죠지 뮬러가 고아 사업할 때 믿음의 기도를 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보좌 배경을 믿고, 선교사님의 필요에 응답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는 데살로니가 전도에 대해 나와 있다. 이 데살로니가 지역을 전도할 때 바울은 궁핍했다고 한다. 그때 도운 교회가 신생 교회인 빌립보 교회라고 한다. 저와 여러분은 주의 일을 위해 사역자 마인드를 가져야 하겠다.
1. 사역자의 마인드를 가지려면?
창 3,6,11장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는 거다.
1) 성령으로 반응하여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아야 한다
주체를 바꾸는 거다.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춘 사람은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일에 우리가 쓰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사탄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이 눈으로 봐야 하고 상대에 대해서도 이 눈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전도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행 26:18). 전도할 때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그 사람의 이성에 설득하는 게 아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서 복음 전해야 한다. 저는 전도하기 전에 이것이 주님의 전도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기도를 한다. 두 주 전에 한동대에 담배 피는 곳에 갔더니 한 여학생이 담배를 피더라. 그런데 내가 가니깐 의식이 되는지 얼른 가버리더라. 그 여학생은 오늘 주님이 붙이시는 사람이 아니다. 그날 도서관에서 한 학생을 만나 정확한 복음을 전했다. 만남을 주님이 연출하시는 것이다. 만남도 연출 하시고 내 속에서도 역사하시고 전도 받을 상대에게도 주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믿음의 전도를 위해서 전도하기 전에 믿음이 차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인본주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통치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전도도 믿음의 전도, 일도 믿음의 일을 해야 한다. 일을 기도 안 되는 상태에서 자기 머리로만 짜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삶은 내가 어떻게 할까의 삶이 아니다. 내 일이 내 일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일이고 그리스도가 주인이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는 일에 내 속에서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머리의 이해력만 가지고는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자신의 창 3,6,11장의 본성과 사탄과 환경을 못 이긴다. 성령님의 통치를 현재적으로 받아야 한다. 성령님을 힘입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힘도, 믿음도, 기쁨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성령님과 안 맞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24시간 내 생각과 관심을 성령님께 맞추어 살고자 한다. 사역자의 마인드는 창 3,6,11장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고, 창 3,6,11장의 내가 안 살고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겠다고 작정하는 것이다. 사역자는 바울과 실라처럼 재정에 대한 배경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마 6:31~33의 약속을 확실히 잡아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고 말씀 따라 사는 삶을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주관 통치하시는 것이 맞다면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맞는 것이다. 우리는 매주 현장에서 말씀 따라갈지, 환경 돈 사람 따라갈지 시험 된다. 양자 중에 선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신다고 했다. 근데 많은 사람이 주님이 내 형편 모르신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힘든 줄을 주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영의 생각을 하도록 기도가 뚫려야 하고 기도가 뚫리면 풍랑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문제가 올 때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보일 때다. 여러분은 언약의 백성이고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다. 보좌 배경을 믿고 이것이 믿어지니깐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만을 위해 사는 거다. 하나님 소원을 위해 일하는 거다.
제가 전경무 선교사님께 이렇게 문자 했다. “선교사님, 믿음의 선교, 믿음의 사역, 믿음의 경제를 운영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일에 주인이 그리스도시며 성령님이시니, 내가 어떻게 할까 하는 체질을 버리고 주님이 성령으로 아버지 소원을 이루시는 일에 통로 되시기를 기도합니다.”했다. 그랬더니 선교사님께 문자 오기를 “아멘, 가슴에 담겠습니다.”했다. 사역자 마인드는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배경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 배경이 보장 되어있는 민족이다. 이 말은 더 이상 떡으로만 사는 민족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돈 때문에 살고 죽는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와 가난 여부 때문에 살고 죽는 민족이 아니었다. 말씀 때문에 살고 죽는 민족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배경 되심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 이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길 때도 만나는 내려 주셨다. 광야에서 수십 차례 불신앙, 불순종했을 때도 하늘의 만나는 계속 내려 주셨다. 언제까지 내리셨냐? 여리고 평지에서 그 땅의 소산물을 먹기 전까지 내리셨다(수 5:10~12). 하나님은 그들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신 8:3). 사탄이 제일 공격하는 부분이 먹고 사는 부분이다. 사역자는 마 6:31~33의 약속을 확실히 붙잡아야 한다.
2. 데살로니가 전도(지도)
바울과 실라, 디모데, 누가는 주님의 배경을 믿고 창 3,6,11장의 본성을 극복할 수 있는 사역자의 마인드를 가진 종들이었다. 그들에게 주님은 제자를 붙이셨다.
1) 기존 신자 중에 제자가 있다.
바울 팀이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면 먼저 찾는 곳은 회당이었다. 왜 그렇겠는가? 일단 접촉점을 찾은 것이다. 유대인 곧 기존 신자를 문으로 활용하고 기존 신자 중에 사명자를 찾기 위해서다. 바울은 본인이 유대교를 엄격히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싶었고 또한 그들을 문으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회당에 들어갔을 때는 세 안식일에 걸쳐 복음을 전했다. 거기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믿게 되었다. 그중에 야손이라는 사람도 믿었다. 야손은 유대인이었고 바울을 잘 대접하고 전도 사업에 협조한 사람이다.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던 사람이다. 롬 16:21에 보면 야손이 로마 교회에 문안한다고 바울은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야손이 바울의 충실한 제자로 세워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면 두 대상을 만난다. 기존 신자와 불신자를 만난다. 기존 신자 중에 제자 될 자가 있고 완전 불신자 중에 생명 얻을 자, 구원 얻을 자, 제자 될 자가 있다. 기존 신자는 사명자로, 현장 문으로 쓰는 것이다. 우리 교회로 데리고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자로 세워지면 된다. 그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충성하며 영향 미치도록 도와주면 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유익하도록 전도 운동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사역자 마인드를 갖게 된다. 전도 안 하는 사람은 자기 필요 중심의 신앙 생활하게 된다. 한 사람을 전도해서 영접하고 양육하고 제자로 세워 세계 복음화 속으로 들어가는 흐름을 타지 못한다.
2) 바울팀은 팀 사역 전도를 했다
야손 같은 제자를 만나면 그를 사역자로 확립시키는 것이다. 불신자 중에 구원받은 자든, 사명자든 제일 먼저 전할 메시지가 있다. 그게 인간의 참 문제와 그것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진정한 해결책인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전하는 사람이 상대가 이 복음을 받을 때 얼마만큼 그 운명이 바뀔 수 있는지를 알고 전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의 축복과 권세가 얼마나 큰지 전하는 것이다. 이걸 실제 기도로 체험할 수 있도록 다락방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미션과 사명을 전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반응하는 사람이 제자요 사역자가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루디아고 오늘 데살로니가 지역에서는 야손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고 핍박이 오는데도 그들을 보호해 주었던 인물이다.
3. 사역자가 가져야 할 전도 관점(이해)
1) 전도란 그리스도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러 현장에 들어 가시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에 잡혀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들어가시는 것이다. 거기에 나는 대사가 되는 것이다. 사탄과 귀신들을 괘씸히 여기사 꾸짖어 내쫓으시고 생명을 주시고 운명을 바꾸시려 그리스도가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아야 할 대상을 붙이시고 구원하기 위해 내 속에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동시에 전도 대상자 속에도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환경과 상황과 만남을 주님이 연출해 주신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 믿음이 먼저 채워지도록 충분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유효적인 만남이 일어나게 된다. (지난주 공대 학생 만남)
2) 주님의 전도가 믿어질수록 내 부담을 안 가지게 된다.
내가 하는 업이 주님의 일로 믿어질수록 내 부담을 안 가지게 된다. 항상 눌림과 부담을 갖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내 안에서 주님이 역사해 주실 일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하러 갈 때 사실 불신자는 믿을 능력도 없다. 그래서 성령께서 전도자를 붙잡고 역사하시고 믿을 상대에게도 역사하시는 것이다. 상대가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내가 데미지 받을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불쌍한 것이다. 내가 눌리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내 영적 상태는 항상 주님을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들 앞에 주의 사신으로, 대사로 가는 것이다. 주의 눈, 주의 마음, 생각을 갖는 것이다. 1:8 응답을 사모하면서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이 오늘 구원받을 자를 붙이시는 거다. 그리고 주님이 그를 위해 내 속에서부터 역사하시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결론
여러분은 사역자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사역자의 마인드의 첫 번째가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사는 것이다. 마 6:31~33의 약속을 확실히 잡아라. 보좌 배경을 믿고 하나님의 소원만을 위해 사는 거다. 그걸 위해 일하는 거다. 완전 불신자 중에 구원 얻을 자, 생명 얻을 자, 제자 될 자가 있다. 기존 신자 중에 하나님 나라 위하여 제자 될 자가 있다. 여러분이 계속 믿음의 전도를 하기 바란다. 성경학교를 앞에 두고 지역 전도하고 있지만 행사로 끝나는 게 아니고 나의 전도 규례가 확실히 세워지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는 진짜 영적 사실을 믿는데 어떻게 전도자 아닌 인생을 살겠는가? 한 사람을 전도해서 영접 양육해서 제자로 세울 수 있기 바란다. 이것이 없으면 결국 자기를 위해서 사는 인생이 된다. 여러분은 진정한 사역자 마인드를 가지기 바란다. 믿음의 전도, 믿음의 일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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