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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9월 18일 수요예배 -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2 (행 19:11~40)

by 현상금 2024. 9. 18.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19:11~40)

 

세 종류의 신자

1) 확신 없는 신자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심을 낼 수 없다. 고후 13:5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모르면 버림 받은 자라고 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에 대해서 확증해야 한다. 구원의 확신. 죄 사함의 확신, 성령 내주 인도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 확신이 없는 신자는 주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육신적이고 이중적이고 종교 생활한다.

2) 확신은 있고 열심도 내는데 자기가 주인인 신자 -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자기의 노력과 애씀으로 하나님 위해 살고자 하는 신자. 은혜도 받지만, 자신이 여전히 신앙 생활의 주체가 된다. 이런 사람은 주님을 의지하면서도 내가 노력해서 이루려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 사람은 창 3,6,11장의 본성에서 나오는 열심과 성령님이 은혜 주셔서 나오는 열심이 혼잡 되어 있다. 주 밖에서의 삶과 주 안에서 삶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이 구분을 못하면 자기 기준, 동기, 방법이 성령님과 부닺치게 된다. 그러니 성령님의 온전한 통로가 될 수 없다. 많은 부작용이 생긴다.

3)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오직 믿음과 의탁과 순종하는 신자 주 안에서 모든 삶을 살고자 하는 신자다. 24시 주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인도 역사를 추구하는 신자다. 이 사람이 참된 영성을 누리게 되는 신자다.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님으로 구원받은 신자는 3)번의 참된 영성을 가질 수 있다.

 

1, 거짓 영성

1) 주 밖에서 행하는 모든 신앙 행위(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

귀신이 그들의 영성을 알아보고 우습게 여겼다. 거짓 영성은 주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없이 종교 행위하는 자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성령님의 임재 통치 인도 없이 시험 삼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자 하다가 봉변당했다. 귀신이 뛰어올라 눌러 이겨버린 것이다. 여러분이 주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역사를 힘입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2) 거짓 영성을 가지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영적 문제를 갖고 태어난다. 즉 아담의 모든 자손은 창 3장 문제로 인해서 사탄의 함정에 빠졌다. 3,6,11장의 본성을 갖게 되었고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실 근면할 수 있고 종교적 열심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기 쉽다. 우리는 사탄이 빠뜨려 놓은 영적 문제에서 형성된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게 잠수함이 깔아 앉아 있는 것처럼 안 보인다. 이걸 모른 채 열심을 내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2. 참된 영성

1)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히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증거 해 주신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증거 해 주신다. 우리는 창 3장 사건으로 사탄의 함정에 빠져서 그 속에서 체질이 형성된 자들이다. 그러니 삼 저주를 당하다가 지옥 갈 존재들이었다. 이런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사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지식적으로 믿는 것과 심령적으로 믿는 것은 다르다. 심령적으로 믿는 것은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인도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4:2에 보면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고 했다. 여러분은 성령님이 믿음으로 화합하도록 날마다 성령께서 심령에 인도 역사해 주신다. 그 믿음이 삶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러므로 심령으로 믿어지는 것이 얼마만큼 되느냐가 진정한 시간표인 것이다.

2)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사 53:5~6을 성취해 주신 것이 믿어지게 하신다.

예수님이 영적 저주,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를 다 담당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삼 저주를 당하지 않고 이에 대해 합법적인 기도 응답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은 질병에 대해 이렇게 기도해라. “주님, 이 질병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고 책임자십니다. 이 질병을 주님이 이미 채찍에 맞아 나음을 입게 하셨기 때문에 제가 나음을 입었음을 믿습니다. 나음을 입을 합법적인 권세가 있음을 믿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 소원과 약속을 붙잡사오니 역사하셔 주옵소서”. 기도해라

3)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은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왜곡한다.

그러므로 3,6,11장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인한 감정과 생각과 판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속는 거다. 현실에 속고 환경에 속고 내 느낌과 생각에 속는다. 이게 속는 것인 줄 알고 성령의 느낌과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성령으로 반응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 군인들은 창 3,5,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두려움에 잡혔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윗만 하나님 영의 감동과 생각으로 생각하니깐, 저 하나님 군대를 모욕하는 자를 하나님이 처벌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 온 것이다. 다윗은 인본주의 사고로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배경과 능력과 언약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승리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똑같다. 하나님의 배경과 그리스도께서 주신 합법적인 기도 응답의 권세를 믿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다. 참된 영성이다. 이 삶이 누려지는 사람은 현장에 사탄이 형성시켜 놓은 대로 장악되어 있는 인생이 보인다. 참된 전도 동기가 생긴다. 이런 말씀이 원론적인 얘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원론적인 얘기로부터 시작해서 실제 삶을 승리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삶을 변화시켜서 승리하게 만든다.

 

3. 1,3,8의 언약 잡고 기도 응답 누리면서 24,25,영원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1) 19:1~7까지 보면 바울을 통해 에베소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세례가 임하였다.

여기서 임한 성령의 세례는 중생의 세례가 아니라 오순절과 같이 부어지는 성령의 세례이다. 이걸 25시의 축복이라고 한다. 성령 세례가 임한 사람을 통해 성령 세례가 또 임한다. 이 성령의 세례가 임하면 북한같은 곳에서도 전도 운동이 된다. 성도가 진짜 시험들 상황인데도 시험에 안 든다. 성령께서 육신의 생각에 안 잡히게 만드신다. 여러분이 이 행복을 누려야 한다. 류 목사님이 언약 잡고 기도 응답받고 누리면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25시 축복을 기다리는 것이다. 24의 인도를 계속 받으면 잔잔하게 많은 기도 응답을 받게 된다. 아무 응답도 없이 25시 응답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2) 성령의 세례가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회개, 신유, 축사의 역사가 일어난다.

 

결론 -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을 구분해라. 주 안에서의 삶과 주 밖의 삶을 구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