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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9월 22일 주일예배 - 바울과 동행한 제자들(행 20:1~12)

by 현상금 2024. 9. 22.

바울과 동행한 제자들(20:1~12)

 

 

 

 

지난주에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참된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인도 역사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삶이란 그리스도 밖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다. 내 동기, 내 방법, 내 힘으로 사는 것은 주 안에서 사는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요, 말씀 따라가는 삶도 된다. 23:19에 보면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바를 이루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이 실현될 말씀 잡고 기도하는 삼 집중이 되면 삼 응답이 온다.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백프로 하나님의 계획과 언약 속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갈등은 갱신의 기회요, 위기는 영적인 사람에게는 최고 집중의 기회다. 가장 깊은 곳을 터치 받으면서 하나님 능력을 체험할 기회가 된다. 일반 교회에서 이걸 표현은 다르게 하지만 은혜롭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더라.

지난 98일에 부산 해운대에서 초교파적으로 10만 명이 모이는 대형 집회가 있었다. 거기에 이찬수 목사라는 분이 설교하셨다. 이분이 부모님 간증을 하시더라. 자기 아버지는 목사님이신데 너무 말을 더듬으셨다고 한다. 하도 더듬으시니깐 주일 11시 예배를 놓고 새벽부터 11시까지 줄곧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좀 낫다고 한다. 근데 예배 전에 누가 아버지 속을 좀 긁어 놓으면 그날에는 너무 심하게 더듬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교회 부흥이 안 되니깐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금식 중 17일 만에 소천하셨다.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어머니는 남편 생전에 설교할 때마다 늘 조마조마하셨다고 한다. 늘 긴장하면서 사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작년에 소천하셨다고 한다. 슬하의 5남매가 있는데 장례를 치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의 영성은 우리는 못 따라간다. 죽어도 못 따라간다. 그 인격은 발꿈치도 못 따라간다. 이런 말에 자녀들이 다 동의했다고 한다. 5남매 중 막내가 이찬수 목사님인데 목사님이 한 번 생각해 봤다고 한다.우리 부모님은 목회가 그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그런 영성과 인격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아버지가 목사로서 말을 더듬는 결핍이 있었다. 어머니는 남편 때문에 예배 때마다 가슴 조려야 하는 결핍이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 결핍을 우울로 끌고 가지 않고 낙심으로 끌고 가지 않으셨다. 우울로, 비교 의식, 절망, 분노, 불신앙으로 몰고 가지 않으셨다. 그들의 결핍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재료로 쓰셨다. 자기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의지하는 재료로 쓰셨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런 영성을 얻으셨고 그 모범을 자식에게 보여주셨다고 하더라. 이찬수 목사님은 사랑의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셨다. 2002년 분당우리교회를 개척했는데, 학교 강당을 빌려 교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6년 만에 교인 수가 만 명이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부흥의 이유가 뭘까? 일평생 기도하신 부모님 때문이구나. 아버지는 금식 기도 하다가 돌아가셨으므로 본인은 열매를 얻지 못하셨다. 대신 그 막내 아들이 그 열매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찬수 목사님은 2만 명이 되었을 때 일만 성도 파송 운동. 현재 29개 교회를 분리 개척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생각되는가?

 

1.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전부 기회로 삼는 사람은 생명 건 제자가 된다.

1)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바울과 동행한 제자들이 나온다. 이들도 이런 생명 건 제자들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에베소를 떠난 바울이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의 교회를 방문하였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 때문에 고린도 후서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는 교회가 다행히 안정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3개 월간 머물면서 그 유명한 로마서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수리아로 돌아와야 하는데 유대인들이 죽이고자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마도 항해 중에 죽이고자 한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배로 수리아로 직행하지 못하고, 왔던 길로 빙 돌아 밀레도로 왔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니깐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는 구제금을 가지고 가는 각 교회 대표자였다(고전 16:3). 3~4절을 보면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소시바더인지 분명치 않음),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예루살렘까지 동행했고, 후일에는 로마까지 동행), 세군도(여기만 등장), 더베 사람 가이오(아마도 디모데와 아는 관계인 듯 함), 디모데 아시아 사람 두기고(6:21, 4:7 - 가장 신임한 조수로서, 로마 옥중에도 같이 있었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전달한 인물), 드로비모(에베소 사람, 아리스다고와 같이 예루살렘까지 동행).

이들이 구제금을 가지고 바울과 동행했던 제자들이다. 다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 사는 자들이었다. 1,3,8 언약이 확고한 자들이다. 1,3,8 언약이 확고한 사람은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성령의 통치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7명 중에는 바울이 죽을 때까지 그와함께 하고 따랐던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다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생명 건 제자들이었다.

그러면 바울의 영성은 어떠했겠는가? 우리의 영적 상태가 바울의 영적 상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자꾸 발전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 수준으로 바울을 쳐다보니 바울의 수준이 가늠이 안 된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던 삶이 여러분도 자꾸 경험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충실했던 사람인지 모른다.

2) 유두고 사건

오늘 본문에 보면 밀레도에서 유두고가 죽었다가 살아난 내용이 나온다. 다 죽은 것으로 여겼고 의사인 누가도 그렇게 보았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몸에 엎드리고 안더니 그에게 생명이 있다고 하였다. 성령님이 알려주신 거라고 여겨진다. 바울은 더 이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윗 다락으로 올라가서 그 와중(심야)에 떡을 떼어 먹었다. 그리고 날이 새기까지 더 강연을 하였다. 이것은 유두고가 살아날 것을 분명히 알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두고는 과연 살아났다. 사람들에게 적지 않게 위로를 주었다. 바울의 영성은 성령께 잡혀 있었다.

영성은 여러분의 기질과 상관없다. 어떤 기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문제는 성령께 잡히는 여부다. 24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행하실 수 있는 영적 상태를 가졌다. 바울이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잘 구분했다. 영적 상태가 좋으면 언제나 영의 생각으로 말과 기도가 된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에 임재 통치하시면 생각도 관점도 말도 잡아 주신다. 원망과 시비하는 것이 없다. 삼 응답을 실제 가능하게 만드신다. 이런 바울에게 주님은 동행할 7명의 제자들을 붙여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제자가 되어야 하겠는가? 이것은 남과의 비교할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세상 보는 눈을 떠야 한다.

 

2. 전도자의 눈으로 세상 볼 줄 아는 제자들이 돼야 한다.

1) 3,6,11장의 세상의 본질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여기에 내가 살아야 할 삶의 이유와 동기와 방법이 나온다. 방법도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의 방법을 체득한다. 세상은 사랑의 원리가 아닌 힘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했다. 무력으로 힘이 센 사람이 지배한다. 고대로부터 어느 사회든 피라미드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것은 아담의 모든 후손이 창 3,6,11장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에 그렇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계몽주의가 시작되고 인간 평등을 강조했지만, 계몽주의는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고 인본주의 쪽으로 발전한다. 이걸 정말 하나님 앞에 평등하도록 법을 만들어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만든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영향을 주었다. 칼빈주의가 들어간 나라들이 최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며 기본권을 중요시 한다. 우리는 지금 그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러나 과학과 문명과 정치 제도는 발전하지만, 인간은 본성은 지금도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3,6,11장의 본성과 그 욕구로 산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사느냐, 아니면 육신의 욕구로 사느냐의 싸움이다. 이게 개인을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배후에 사탄이 역사한다. 사탄이 이쪽으로 몰고 간 것이다. 믿음의 현주소가 하나님께 있지 않고 보이는 환경과 물질과 돈에 있게 만들었다.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가 환경과 물질과 돈에 있는 것이 영적 문제인가 아닌가? 사실은 이게 영적 문제요,. 영적 문제로 초래된 결과이다.

과거에는 힘의 원리로 지배했지만, 지금은 지식과 정보와 기술력과 돈을 가지고 지배한다. 이런 가치로 사람을 평가한다. 세상 성공 기준도 이것을 많이 획득하는 기준이다. “우리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 보좌 배경을 믿는다. 우리에게 이미 권세가 회복되었다이런 말은 우리만 하는 말이다. 세상에는 일절 이런 말이 없다. 인본주의 이성을 가지고 오직 보이는 것과 자기 능력으로만 산다. 무엇이 세상에서는 행복과 성공의 기준인가? 지금 말한 지식, 정보, 기술력, 돈을 좀 더 확보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본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이 건전한 자본주의를 형성하는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 때가 되면 건전한 자본주의가 이익을 얻어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지 얘기하겠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도 돈을 벌어야 한다. 무조건 돈에 대해서는 절제해야 하고 가난이 미덕이고 그렇게만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이 사회는 지금 말씀드린 세상 성공 기준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다. 이것을 좀 더 확보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안함과 열등감 속에 산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못 들어갔더라도 일단 돈이 많으면 나는 안전해 하면서 만족해 한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 기준에 우리도 갇힌 기준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이런 가치 기준으로 형성된 것을 뱔견하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그래야 돈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나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돈에 종이 안 되는 것이다. 사탄이 형성시켜 놓은 대로 돈 가치로, 세상을 평가하고 있고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지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 수 있다. 계층 간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결핍 속에서 사탄이 다툼과 원망과 분쟁 속으로 몰고 간다.

아까 이찬수 목사님 부모님은 이쪽으로 빠지지 않고 이것을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재료로 쓰셨다고 했다. 산업인이 경제가 많이 어려울 수 있다. 이걸 원망과 불평으로 몰고 가는 쪽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상처받는 쪽으로 갈 수 있다. 반면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쪽으로 가는 재료로 쓸 수도 있다. 주님 안에서 자신이 더 발견되고 새롭게 되는 쪽으로 쓰일 수도 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달라질 수 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식 회복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보내셔서 여러분을 대속하셨고 성령을 보내셨다. 우리 인생을 사탄이 함정에 빠뜨려 놓고 형성시켜 놓은 그 체질 속에서 건져내셔서 치유 회복하셔서 대인관계도 승리하고 일에도 승리하고 문제에도 승리하길 원하신다.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가 증명되는 그런 인생 삼길 원하신다.

공대 학생들은 최고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근데 이기심이 더 세다. 이들이 전문성은 뛰어나도 인성에 문제가 많다. 인간관계 힘든 사람이 많다. 사탄이 결핍 속에 있는 사람은 다툼과 원망과 비교 의식과 열등감과 자살과 살인과 전쟁 속에 몰아넣는다. 우리는 개인도 이런 영적인 눈으로 통찰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세상도 영적인 눈으로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나의 결핍을 가지고 낙심하며 발전이 없게 된다.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계속 발전되길 원한다. 대부분 문제 생기면 자기한테 걸리게 된다. 안전의 동기, 자존심 명예의 동기에 걸린다. 따지고 보면 순전히 주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때문에 마음 아파한다. 여러분이 사역하고 전도할 때 자기한테 걸리지 말고 답을 주며 불쌍히 여기며 중보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진정한 전도자의 눈과 마인드가 생긴다. 그 마인드에 하나님은 능력을 주신다. 여러분은 일해야 하는 산업의 현장이 있기에 산업 할 수 있는 능력도 성령께서 주신다. 그 능력을 믿지 못하면 인본주의로 짜내야 한다. 짜내니깐 지치는 것이다. 안되면 원망한다. 제가 말하는 영성을 따라오면 이것을 다 뒤집게 된다.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된다. 환경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주님 때문에 행복하다.

2)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전도자의 눈을 가져야 한다.

개인과 세상 전체를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지금 결핍 속에 있다. 가장 크고 근본적인 결핍은 하나님을 떠난 결핍이다.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성령님 안에 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단지 환경의 결핍, 돈의 결핍, 건강의 결핍, 재능의 결핍, 능력의 결핍만 문제가 되는 줄 알고 있다. 사탄은 이런 결핍을 통해서 우울하고 연약함과 상처와 비교 의식과 원망과 분노로 몰고 간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배경과 권세가 회복된 자들이다. 완전한 해답 되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인 인생이다. 바울과 동행했던 제자들이 바울 속에서 그것을 보고 경험했다. 같은 성령님이 그들도 이 삶을 맛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와 정말 다르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도록 구별된 자들이다. 방법도 원리도 하나님 나라 원리로 살도록 만드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각각의 달란트로, 주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애가 부족하게 태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부족한 대로 쓰신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쓰임 받게 하신다. 그런데 부모가 믿음이 없다. “아이구 애가 이래 가지고 어떻게 살겠냐?” 걱정 충만하다. 믿음의 교육을 못 시킨다. “니가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너의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얼마나 어마어마하신 창조자이신지 아냐? 너는 세상을 살릴 수 있어이렇게 키워야 한다. 부모가 그런 관점이 없다. 부모가 세상에 찌들려 있다. 맨날 자기가 답답하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걸리지 말고 답 줄 수 있기 바란다. 상대가 안 받아들이면 낙심하지 말고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그 사람을 위해 계속 중보기도 하는 거다. 한동대 졸업생들 중에 각 분야 렘넌트 망대 팀장을 세웠다. 우리도 전도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여러분 중에도 이런 모델들이 나오기 바란다.

 

결론

여러분이 주님의 눈, 주님의 마음,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이 여러분 안에서 행하실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되길 바란다. 모든 결핍이 오히려 삼 응답을 누리는 기회가 된다. 이 일에 증인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