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동행한 제자들(행 20:1~12)
서론) 성령 안에서 삼 집중되면 삼 응답이 온다고 했다.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적저주(영적 죽음, 영벌) | 죄악 담당 | 영적 생명, 영생 |
환경 저주(의식주 문제) | 징 계 | 평화(보좌 축복, 성령으로 내적 인도) |
육신 저주(질병) | 채 찍 | 나음(만물 복종시키는 그리스도께서 치유의 권세) |
문제-답(승리)/ 갈등(미움 다툼 원망이 아닌 자기 갱신)/ 위기(기도의 사람에겐 최고 집중, 깊은 내면 치유, 하나님 능력 체험의 기회) |
그 예로 이찬수 목사님 부모님 간증을 했다. 아버지가 목사로서 말을 더듬는 결핍이 있었다. 어머니는 남편 때문에 예배 때마다 가슴 졸여야 하는 결핍이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 결핍을 우울로 끌고 가지 않고 낙심으로 끌고 가지 않으셨다. 비교 의식으로, 절망, 불신앙으로, 분노로 몰고 가지 않으셨다. 이것이 성령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들의 결핍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재료로 쓰셨다. 자기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의지하는 재료로 쓰셨다. 그 결과 깊은 영성을 얻으셨고 그 모범을 자식에게 보여주셨다고 했다. 그 아버지는 금식 기도하다가 돌아가셨지만, 그 막내 아들이 그 열매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본론)
1.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전부 기회로 삼는 사람은 생명 건 제자가 된다.
1)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제자라고 했다. 그 예로 아시아까지 바울과 동행한 제자들을 언급했다. ① 베뢰아 사람 소바더 ②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예루살렘까지 동행했고, 후일에는 로마까지 동행), ③ 세군도 ④ 더베 사람 가이오 ⑤ 디모데 ⑥ 아시아 사람 두기고(엡 6:21, 골 4:7 - 가장 신임한 조수로서, 로마 옥중에도 같이 있었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전달한 인물), ⑦ 드로비모(에베소 사람, 아리스다고와 같이 예루살렘까지 동행).
→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는 구제금을 가지고 가는 각 교회 대표자였다(고전 16:3)거 했다. 7명 중에는 바울이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하고 따랐던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특징은 다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 사는 자들이고 1,3,8 언약이 확고한 자들이다. 이들은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다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생명 건 제자들로 볼 수 있다. 바울과 함께 가는 것이 위협이 되는 줄 이들도 알았다.
2) 바울은 무수한 상황에서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겪었지만, 그것을 능가할 수 있었다.
1,2,3차 선교 여행 중에 줄곧 유대인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그런데도 성령께서 그 핍박과 죽음을 능가하게 하셨다. 실제 상황을 생각해 봐라. 우리의 본성은 공포심에 눌리고 시달린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한 성령 충만이다. 그의 능력의 비결은 환경에 있지 아니했고 자기 안에 보배 되신 그리스도께 있었다(고전 4:7). 밀레도에서 3층 다락에서 말씀 듣다 떨어진 유두고가 죽은 줄로 다 알았는데, 바울은 그에게 생명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태연히 식사할 수 있었다. 그 밤 날이 새기까지 이어 강연하였다. 이것은 유두고가 살아날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24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행하시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영적 상태를 가졌다. 이런 바울에게 7명의 제자를 붙여 주셨던 것이다. 우리도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전부 기회로 삼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2. 이러려면 전도자의 눈으로 세상 볼 줄 알아야 한다.
- 창 3,6,11장의 세상의 본질을 보는 눈이 너무 중요하다.
1) 세상은 사랑의 원리가 아닌 힘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했다.
(1) 고대부터 중세까지 - 무력으로 힘이 더 센 사람이 지배했다.
(2) 근대 -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생겼다. 민주주의란 법 앞에서 왕이나 종이나 평등하다는 건데 근대 민주주의는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자본가와 지주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다. 1517년 종교개혁, 신 구교 백년전쟁, 17세기에 계몽주의가 시작되고 인간 평등을 강조했지만,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고 인본주의 쪽으로 발전한다. 이걸 정말 하나님 앞에 평등하도록, 법 앞에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만든 것은 종교개혁자들의 영향이었다. 칼빈주의가 들어간 나라들이 최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런 나라들이 스위스, 화란, 미국, 영국 등이다.
(3) 현대 민주주의(모든 사람에게 선거권, 기본권, 완벽한 삼권 분립) - 정착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없애고 모든 권위와 전통을 무너뜨리는 혁명이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자유 박애 평등이다. 그래서 왕과 귀족과 신부와 수녀들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반면에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미국은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었다. 미국 노예해방선언은 1863년이다. 그러나 노예제도가 척결된 것은 더 시간이 흘러서다
→ 과학과 문명과 정치 제도는 발전하지만, 그러나 인간은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힘의 원리로 지배했지만, 지금은 지식과 정보와 기술력과 돈을 가지고 지배한다. 세상 성공 기준도 이것을 많이 획득하는 것이 기준이다. 이것을 좀 더 확보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안과 열등감 속에 산다. 세속주의 가치관 속에 있다. 모든 사람은 결핍 속에 있다. 이걸 사탄이 다툼과 원망과 분쟁 속으로 몰고 간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 이끄셔서 구원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이 되게 하신다. 먼저 영적 회복이 되게 하시고 생활 회복이 되게 하신다.
→ 세상은 여전히 3,6,11장의 본성과 그 욕구로 산다. 믿음의 현주소가 하나님께 있지 않고 보이는 환경과 물질과 돈에 있게 만들었다. 그 배후에 사탄이 역사한다. 사탄은 분쟁과 원망과 미움과 시기와 살인과 전쟁 쪽으로 몰고 간다.
→ 산업인이 경제가 많이 어려울 수 있다. 이걸 원망과 불평으로 몰고 가는 쪽으로 빠질 수도 있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쪽으로 가는 재료로 쓰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식 회복이다. 우리는 개인도, 세상도 사탄이 어떻게, 그 함정에 빠뜨려 사람들을 몰고 가는지 영적인 눈으로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래야 진정한 전도자의 눈과 마인드가 생긴다.
(1) 가장 크고 근본적인 결핍은 하나님을 떠난 결핍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파생된다. 세상은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 안에, 성령님 안에 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단지 환경의 결핍, 돈의 결핍, 건강의 결핍, 재능의 결핍, 능력의 결핍만 문제가 되는 줄 알고 있다. 사탄은 이런 결핍을 통해서 우울하고 연약함과 상처와 비교 의식과 원망과 분노로 몰고 간다.
(2)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배경과 권세가 회복된 자들이다.
완전한 해답 되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인 인생이 되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도록 구별된 자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파하였다(20:25).
결론
우리는 각각의 달란트로, 주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통치를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는 렘넌트와 세상을 살리는 망대가 되어야 한다. 전도 운동하면서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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