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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9월 15일 주일예배 -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행19:11~40)

by 별종외계오동 2024. 9. 15.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 19:11~40)

 

참된 영성은 귀신도 알아본다. 거짓 영성은 귀신도 깔보고 우습게 여긴다(오늘 본문). 참된 영성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주 밖의 삶과 주 안의 삶의 차이를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 밖에서 성실 근면 착실한 사람 많다. 그러나 주 밖에 있기에 주님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지금도 주 밖에서 내가 노력해서 이루려는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말씀 듣고 깨달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체질은 주 밖에서 살았던 바 내 힘으로 사는 체질이 문제다. 인본주의 체질로 주의 일도 이루고자 한다. 자신의 3,6,11장의 본성으로는 체질도, 사탄도, 큰 문제도 이기지 못한다. 이걸 인식해야지 성령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된다. 주 밖의 삶은 아무리 열심 내고 성실히 주를 위해 살아도 그것의 주체는 나다.

지지 난주에 한동대 운동장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전자 키타 치는 학생이 있어 대화했다. 얼굴이 눌려 보였다. 1학년 학생인데 자기는 대인 기피증이 있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었더니 주일 학교 때 교회에서 앞에 나가 뭘 발표하는데 생각이 안 나서 한 2분 동안 머리가 하해 진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때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있어서 자기가 그걸 극복 못 한다는 것이었다. 제가 좀 이해된다고 했다. 대표 기도할 때 떨었던 경험을 얘기해 주면서 그걸 영적인 것으로 파악했고 극복하게 된 얘기를 좀 해 주었다. 그리고 재 만남을 약속했다. 그 다음날 이 친구 놓고 기도하다 카톡을 하고 싶어 했는데 마침 대구에 갔다고 하더라. 군 입대 신체 검사의 심리 검사 결과를 보러 왔다는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지난번에 불합격 판정이 나서 재검을 봤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불합격 처리되면 큰 타격이 될 것 같고, 하나님 원망할까 봐 두럽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전날 했던 말을 다시 해 주었다. 불안하고 긴장하는 나와 성령님은 같지 않으니 분리시키라고 했다. 내가 불안한 거지 성령님이 불안 안 하시다. 불안 안 하려고 애쓰지 말고 얼마든지 나는 불안할 수 있음을 인정하라고 했다, 불안한 느낌, 쿵쾅거림이 와도 괜찮다. 그건 네 느낌이지, 주님이 그러신 게 절대 아니라고 했다.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도움을 얻더라. 제가 결과 보는 시간에 맞추어 기도했다. 그런데 카톡이 왔더라. 합격 1급이 나왔다. 그래서 추석 지나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건드려 보면서 상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 예비되지 않은 사람은 내가 아무리 충만해도 믿게 하지 못 한다. 죽은 영은 듣는 귀, 관심 자체가 없을 수 있다. 우리가 말 잘해서 믿게 하는 게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 된 사람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걸 믿고 나가는 거지 오늘 내가 나가서 영접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고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전도 지속 못한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했는데, 이 복음의 가치를 알아 듣고 믿을 사람을 만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전도를 해야지 지속이 가능하다. 그 현장에 정말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 백성이라고 한다면 내게 성령 충만함을 주실 것을 믿기 바란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참된 영성을 가질 수 있다. 금주가 추석 기간이다. 이 나라가 가장 흑암 가운데 빠질 수 있는 기간이다. 참된 영성을 가지고 답주고 불쌍히 여기고 중보기도 할 수 있는 기간이 되기 바란다. 주 밖의 삶과 주 안의 삶을 늘 구분해라. 교회 나온다고 다 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 안에 거해야 주 안에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의 삶으로 모든 걸 승리 할 수 있다. 그게 참된 영성이다. 여러분은 행복한 전도자, 행복한 전문인, 행복한 직장인이 될 수 있다.

 

1, 에베소 사역

1) 거짓 영성과 소요 사건

오늘 본문은 렘넌트 헌신 예배 때 보았던 본문에 이어지는 에베소 전도 내용이다. 바울을 통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시험 삼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아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4절에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다. 15~16절에 보면 악귀가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면서,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벗은 몸으로 도망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이 구분된다. 거짓 영성은 주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없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는 일이다. 여러분 주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 통치 역사를 힘입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참된 영성이 아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예수 이름으로 명했지만, 귀신이 아는 것이다. 여러분이 귀신도 초자연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이들이 성령님이 주시는 믿음이 전혀 없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뛰어올라 눌러 이겨버린 것이다. 지식적인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참된 영성을 가지기 위해서 매 순간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통치받는 영성을 가져야 한다. 이게 발전이 되어야 한다. 영적 상태는 생각의 상태를 바꾼다. 영적 상태에 따라 상처도 받고, 감정도 상하고, 나쁜 습관에도 빠진다. 이것들이 따지고 보면 전부 영적 문제가 원인이다. 그래서 영적 문제를 이론 지식으로 알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태생으로 수 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야 한다. 이게 잠수함이 깔아앉아 있는 것처럼 안 보인다. 있었던 영적 문제를 알아야 한다. 그게 성령님이 여러분 속에 영의 생각으로, 영의 말씀으로 깨달음과 교훈과 가르침을 주시고, 감동하실 때 보인다.

2) 데메드리오 사건

이어 데메드리오 사건이 나온다. 이 사람은 아데미의 은장색으로, 은 세공업자이다. 아데미는 에베소의 수호신으로 12개의 유방이 달린 여신이다(그림). 인간이나 동물의 모든 생식을 주관하는 여신이다. 데메드리오는 작은 아데미 상을 만들어 집집마다 팔아 수익을 올리는 일을 했다. 아마 조합장 정도 된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바울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것이다. 마귀는 이권에 걸린 상인들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소요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이 소요 사건으로 바울은 큰 봉변을 당할뻔했지만 서기장이 다행히 이 소요 사태를 무마시켰다. 이 일로 인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되었다. 바울은 이때 이미 로마 복음화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다음 단계로 인도받을 수 있었다(19:21). 그는 1차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의 교회들을 순회하고 구제금을 모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서 로마까지 가고자 하는 소원을 품었다(지도).

 

2. 참된 영성

1)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히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사, 삼 저주를 끝내신 것을 믿게 해 주신다. 지식으로 아무리 많이 들었더라도 지식은 이해력이지 성성령으로 심령을 살리고 믿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이 심령으로 믿어지고 깨달아지게 해서 삶을 움직일만큼 영향력을 주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시간표다. 예수님이 사 53:5~6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영적 저주,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를 다 담당하신 것이다. 주님이 죄악을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영적 생명과 풍성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이 환경의 저주를 위해 징계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주님이 우리의 병을 담당하사 채찍에 맞으셨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합법적인 기도 응답의 권세를 얻었다. 성령님이 이것을 믿게 해 주신다. 여러분 중 질병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해라. 주님 이 질병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고 책임자십니다. 이 질병을 주님이 이미 채찍에 맞아 나음을 입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나음을 입을 수 있는 합법적 권세가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그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낫게 할 병을 성령께서 믿음과 감동을 주신다. 응답할 기도는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다. 그러면 응답이 주어진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다. 주의 말이란 하나님 소원과 약속을 붙잡게 하는 주의 말씀이다. 그럴 때 성령께서 응답하실 기도는 감동과 믿음을 주시면서 이끌어 주신다. 하나님이 안 들어주신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다. 요셉이 팔려갔을 때 아무리 기도해도 그가 노예에서 해방 받지는 않았다. 애굽의 총리가 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간증 영상을 보도록 권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양한 역사를 보도록 하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것과 사역자는 이런 다양성을 깨닫고 자기 체험에만 국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체험이 약한 사람은 간증 보기를 권한다. 그리스도께서 삼 저주를, 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것을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신다. 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기 때문에 삼 응답이 올 수 있다. 문제에 답이 있고, 갈등이 갱신의 기회요, 위기가 하나님 능력을 체험할 기회가 된다. 위기가 오면 집중케 하셔서 우리 깊은 곳의 창 3장을 건드리신다. 그러면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위기를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만드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가 감사할 것밖에 없다. 보장되어 있는 배경과 권세를 가지고 기도 응답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 인본주의 이성으로는 영적 사실이 안 믿어진다.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이성이 되어야 한다. 영이 죽은 이성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왜곡한다. 우리는 3,6,11장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속는 거다. 현실에 속고 환경에 속고 내 느낌에 속는다. 내 본성에서 올라오는 느낌, 생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이제는 다 틀린 것이다. 성령으로 반응해야 한다. 참된 영성은 성령의 임재 통치를 24시 누리는 것이었다. 성령님이 주신 생각과 마음으로 살도록 되어 있었다. 진짜 어마어마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2) 여러분은 하나님 자녀 권세를 누릴 수 있도록 재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다.

제가 만난 한동대 학생에게 그런 말을 했다. 불안해지는데 스스로 안 불안하고 강해지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게 이제까지 애쓰며 살아왔던 인본주의 체질이다. 성령의 임재 통치를 경험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애쓰게 된다. 자기가 용 쓰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 자녀는 그렇게 안 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 내 힘을 다 빼고 내 안에 성령님을 실제적으로 믿으면 된다. 그러면 인도 역사해 주신다고 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기에 내 생각, 내 감정에 안잡힐 수 있다. 별 별 감정이 다 올라와도 나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다. 인정하면서 안 받아들이는 거다. 왜요? 성령의 통치가 있으니깐 그렇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치유 회복시킬 수 있다. 제가 그 친구한테, 너는 불안하고 연약한 것을 인정하고, 그것과 구분해서 네 안에 성령께서 와 계신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라고 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원과 주님의 관심과 생각에 방향 맞추었다면 여러분의 문제는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요, 주님의 문제요. 주님이 책임자시다. 언약 싱취자가 되신다. 경제 문제도, 자녀 문제도, 일도, 병도 주님의 문제이다. 이 믿음이 있으면 성령께서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신다. 그러면 문제를 이기고 기도 응답 받게 된다. 이런 걸 배우자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다 영적 문제다. 정신 문제가 영적 문제다. 하나님을 떠났기에 근본적 불안을 갖고 있는데 거기다 문제, 사건이 부닺힌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영적 상태는 모르기 때문에 저 문제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이야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영적 문제를 알아야 한다. 누구도 그 얘기를 안 해 주었다. 다락방에 와서 이 얘기를 들은 것이다. 다락방에 와서 들어왔어도 세밀하게 자신의 형성된 영적 문제를 볼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게 안 들어가면 사탄의 통로로 쓰이고 있는데도 자신이 인식을 못한다. 사탄이 주는 감정을 받아서 말하고 사탄이 지금 속이고 있는데도 그 느낌 생각 판단 계산으로 자기는 옳다고 얘기하는 거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은 창 3,5,11장의 본성과 인본주의 이성으로 생각하고 판단 계산했기에 두려워하고 했다. 우리는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과 생각으로 계산하니깐 저 하나님 군대를 모욕하는 자를 하나님이 처벌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 온 것이다. 다윗은 인본주의 계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계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 되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합법적인 기도 응답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믿는 계산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안 되니깐 전도할 마음도 없다. 내가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못 누리고 있다. 저 사람들이 사탄이 형성시켜 놓은 대로 장악되어 있는 인생으로 안 보이는 것이다. 안 믿을 것을 미리 계산해서 밀리는 것이다. 제가 지금 말해 주고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참된 영성이다. 이런 것을 깨닫는 사람은 영성이 자라난다. 말씀의 흐름을 다 타게 된다. 체험적으로 타게 된다. 그러면 이것이 원론적인 얘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원론적인 얘기로부터 시작해서 실제 승리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사람을 진짜 변화시켜서 승리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전 삶을 통치하게 된다.

 

3. 1,3,8의 언약 잡고 기도 응답 누리면서 24,25,영원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1) 에베소 사역이 1,2,3차 사역 중에 최고 절정이었다.

 19:1~7까지 보면 바울을 통해 에베소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세례가 임하였다. 여기서 임한 성령의 세례는 중생의 세례가 아니라 오순절과 같이 부어지는 성령의 세례이다.  1:5의 성취이다. 이걸 우리는 25시의 축복이라고 한다. 이런 세례가 있으니깐 북한에서도 전도 운동이 된다. 성도가 진짜 시험들 상황인데도 성령께서 잡으시면 시험 안 든다. 성령께서 내면에서 이끄신다. 육신의 생각에 안 잡히게 만든다. 여러분이 이 행복을 누려야 한다. 그 행복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재미가 없다

류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언약 잡고 기도 응답 받고 누리면서 기다리라고 하셨다25시 축복을 기다리는 것이다. 24의 인도를 계속 받으면 잔잔하게 많은 기도 응답을 받게 된다. 아무 응답도 없이 25시 응답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24로 들어가면 자꾸 성령 인도 받으면서 삶 처리하게 된다. 그러면 더 확신 가지고 25시 응답을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행 1:8의 응답을 받을 것이 믿어진다. 현장의 전도 운동의 차원에서 주님이 능력과 권능을 부어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경험할 수 있다.

2) 성령의 세례가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회개의 역사, 신유의 역사, 축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방언과 예언과 같은 은사도 동반된다.  16:18~19,  16:17~18 약속의 성취이다. 이것은 전도 운동과 부흥의 역사를 위해 주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1,3,8 언약을 잡고 기도 응답을 누리면서 24,25,영원의 응답을 받아야 하겠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 회복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과 의탁과 순종만 잘했다면 출애굽의 목적은 이루어졌다. 이게 안 되었기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이것 되도록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오신 것이다.

 

결론

참된 영성과 거짓 영성을 구분해라. 주 안에서의 삶과 주 밖의 삶을 구분해라. 주 밖의 삶은 전형적인 내가 주인 되어 나의 동기 실현과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인본주의 삶이다. 우리는 아직 이 본성과 체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구분해야 한다. 주 안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성령으로 통치하셔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삶이다. 이 삶은 감사할 것밖에 없다. 1,3,8의 언약을 잡고 기도 응답 누리면서 24,25,영원의 축복을 응답받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이번 추석 주간에 간직하고 응답받을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