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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10월 13일 주일예배 - 갈망과 열망의 차이(행21:1~16)

by 현상금 2024. 10. 13.

갈망과 열망의 차이(21:1~16)

 

 

두 주전에 구미 예광교회에서 노회 캠프 차원에서 세 가지 뜰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거기서 제가 아는 중직자 부부를 오랜만에 만났다. 부부가 다 헌신 되었는데 아내 분이 많이 얼굴이 안 좋아 보이더라. 그래서 물어보았다. 그 아내가 집사님인데 하는 말이 어떤 일로 두려움 증이 왔는데 그때부터 시달림이 왔다고 하더라.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하기를 9개월이나 그랬다고 하더라. 그게 어떤 만남을 통해 두려움이, 영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시스템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6개월쯤 되니깐 꺾여나가는 걸 체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번에 다 꺾이는 게 아니고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하더라. 제가 그럴 수 있음이 이해된다고 했다. 그 두려움 증이 오면 쉽지 않지만, 그 두려운 감정과 성령님과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이기려고 하면 진다고 했다. 계속 그리스도의 싸움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격려하는 말을 해 주었다. “분명히 이 문제를 선용하실 겁니다. 지금 시대에 이런 영적 문제와 정신 문제를 겪는 분이 많은데 집사님을 시대 사명자로 쓰실 겁니다 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 문제, 정신 문제 다 올 수 있다. 우리는 원치 않아도 보이지 않는 영적 사실과 보이는 환경의 영향을 늘 받는다. 그런데 불신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사실은 모르니깐 환경이나 보이는 문제만 탓하기 쉽다. 보이는 문제가 강한 영향력을 준다. 그러나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제가 아는 어떤 남매가 있는데 다 성장 환경이 안 좋았다. 세 명은 상처를 지금도 갖고 있는데 한 명만 상처가 없다.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임마누엘을 누리면서 문제가 상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 상태에 따라서 해석과 생각과 처세가 다 달라진다. 그래서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를 매일 하면서 여러분이 행복하셔야 한다. 그런 사람은 문제 하나하나가 다 기도 응답이 되니 믿음이 자라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다. 편치 않는 상태에서 가고 있었다.

 

1. 바울은 불안과 두려움을 어떻게 이겼을까?

1)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각 지역 제자들이 예언하면서 자꾸 만류한다.

세 팀이나 예언하면서 만류했다. 두로의 제자들, 가이사랴 빌립집사의 처녀 딸들, 유대로부터 온 아가보 라는 사람. 이 아가보 라는 사람은 바울의 띠를 가지고 체포될 것을 시연해 보이면서 만류했다(11). 바울은 그런데도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다.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각 성에서 걷은 구제 헌금 전달과 선교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이방인 선교의 문을 하나님이 여신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었다. 아직 유대교 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다. 그렇기에 그의 선교 보고는 중대한 사명이었다. 아직 이방인들을 품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구성원으로 많이 있었을 때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생각을 교회가 바르게 가져야 하기에 바울은 이 선교 보고가 사명이었다.

그는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의 압박감을 극복했을까? 성령께서 체포될 것만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사명에 매인 바 되게 해주셨다. 20:24절의 고백이 있었고 12~13절에도 보니깐 나는 결박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2) 우리는 히 11장에 나오는 두 가지 믿음이 다 필요하다.

두 가지 믿음 중 첫 번째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세상 축복과는 정반대의 일을 당하는데도 그걸 감당하는 믿음이다. 예를 들어 암이 걸렸는데도 감사하는 것이다. 선교사님이 선교지에서 자녀를 잃었는데도 감사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처럼 핍박당하고 순교하는데도 감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이 응답 주시고 세상 복 주시는 경우를 말한다. 절대 위기 상황 속에서 구원도 해 주시고 응답도 해 주시고 그래서 능력과 기적도 체험하는 경우이다. 암이 치유되든지, 선교사 자녀가 죽을병에서 낫든지,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건져주시는 경우다. 성도에게 이 두 가지 믿음이 다 필요하다. 근데 이 두 가지 믿음은 다 성령 충만해야 가능하다. 탈북자 간증의 경우에서도 그렇다.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은 이 두 가지 믿음이 다 가능했다. 각각 다르게 하나님이 역사해 주셨다. 초대교회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도 이 두 가지 믿음이 다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은 빨리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 여러분이 주인이면 이 두 가지 믿음은 결코 안 생긴다. 여러분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을 하나님 소원과 주의 관심과 생각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의 일이 여러분 일이 되지 말고 주님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주객을 바꾸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주체가 되면 맨날 염려, 걱정밖에 안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사람을 자기 동기에 끌어당기게 된다. 주님은 싫어하지 않는데, 내가 싫은 사람은 싫은 거다. 나에게 안 맞는 사람은 싫은 거다. 주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나는 너도 만들었고 그 사람도 만들었다 하신다. 내가 주인이 되면 두 가지 믿음이 불가능하다. 주님이 주체가 되셔야지 책임자가 되어주시고 성취자가 되어 주신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주님을 주인 되게 하면 여러분은 믿음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믿음의 사역, 믿음의 전도, 믿음의 경제, 믿음의 대인관계를 할 수 있다. 내 생각, 내 기준, 내 동기가 아니라 주님의 생각과 기준과 동기로 주님이 여러분 속에 통치해 주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두 종류의 믿음이 가능하게 된다. 우리가 주인이면 자기도, 환경도, 사탄도 못 이긴다. 주님이 주인이면 이것들을 다 이긴다. 그러니 우리 속에 성령께서 24시간 통치하시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런데 한꺼번에 24시 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집중훈련을 하는 거다.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두 가지 믿음이 다 가능하게 해 주신다. 현장에서 각종 문제를 처리하는 믿음의 역량이 계속 성장하게 하신다.

 

2. 갈망과 열망의 차이

1) 주의 일을 하더라도 은혜받아서 생긴 열망과 자기 결핍에서 생긴 갈망은 다르다.

은혜받아서 생긴 열망(목표나 비젼을 향해 갖는 뜨거운 마음)은 자신을 드리며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결핍에 의한 갈망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자기 동기를 위해서 힘을 다하며 그것이 성취되기를 갈망한다. 다른 사람을 자기 필요의 도구로 끌어당기며, 자기 욕구가 안 채워지면 불평과 원망하게 된다. 자기 것을 드리면서도 감사하며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

2) 바울의 열망

바울은 갈망한 것이 아니라 로마까지 가기를 열망하였다.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를 열망했다. 주의 은혜를 받아서 자기를 기꺼이 드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늘 결핍이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이것이 해소되었다. 4:13절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3차 전도 여행 시에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에 갔을 때 거기서 3개월 머물면서 로마서라는 대작을 집필하였다.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확실히 구분하면서 복음을 가르쳤다. 자기 동족을 향한 간절한 마음도 전달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의 구원을 원하는 바로라 했다. 1: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했다. 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8:38, 39에서는,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할 만큼의 체험과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성령께 잡혀서 열망하기를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기를 원했다.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지만 로마 복음화에 대한 비젼을 주셨기에 자기를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을 각오도 되어있었다.

여러분은 갈망하고 있는가 열망하고 있는가? 보통의 경우, 결핍된 것이 채워지면 갈망이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결핍될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다 통치하고 계신 것을 믿었다. 갈망하고 있다면 주객이 바뀌어야 한다, 결핍된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막 몸부림치면, 내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아주 갈급할 수 있다. 그게 아니다. 지금도 평안해질 수 있다. 지금부터 자유 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을 펼치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실제 복음 안 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 기준과 내 동기와 내 방법으로 내 자아 실현과 욕구 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신앙 생활을 하면 이런 삶을 살 수 없다.

 

3. 16차 집중훈련의 자기 훈련 목표를 세우고 자기 규례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1) 성령님의 통치 모르면 자기가 염려하며 애쓰는 삶을 산다.

성령님은 염려를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생각을 주신다. 그래서 주님과 생각이 맞도록 해 주신다. 생각이 뒤집히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복음 누리는 삶이 뭔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 회복되고 행복해지는지 체험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삶의 원리요 방법이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삼 집중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점점 주객과 체질이 바뀌고 24 체질로 발전되게 된다. 이것 때문에 집중훈련을 하는 거다.

여러분이 성령의 힘을 얻으면 자기 업을 성실하게 하게 된다. 이 업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업이기 때문이다. 그 업을 통해 얻은 이윤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게 된다. 여러분의 기능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전문성은 발전하게 된다. 인간관계, 경제 문제에 승리하면서 현장의 제자가 된다. 본부 메시지 다 탈 수 있는 현장 제자가 된다. 누림이 있기 때문에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삶이 발전되면 이제까지 사탄의 함정에 빠져 형성된 인본주의 체질이 보이게 된다. 보여야 빠져나올 수 있다. 그래서 기쁨이 환경에 있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에게 있게 된다. 우리의 기쁨의 현주소가 삼위 하나님께 있게 된다. 이런 걸 목사님과 포럼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지체들과 포럼할 때 기쁘고 감사하다. 서로 귀하게 보이면서 동역자가 된다. 갈급한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만 친하게 된다. 갈급한 사람은 안 맞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갈급하니깐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딱 갖고 있다 보니 그 기준으로 비판하게 된다.

2) 전도는 절대 주님의 일이다.

우리는 믿음의 전도를 지속해야 한다. 믿음의 전도는 자기의 부담이 없는 것을 말한다. 내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며,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어떻게 영접시키며 다락방을 열까를 내가 고민하고 있으면 믿음의 전도가 아니다. 어떤 것이 믿어져야 믿음의 전도인가? 내 안에 성령께서 다 하실 수 있어.. 이렇게 믿는 것이 믿음의 전도다. 나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절대 믿음과 의탁과 순종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는 전도 절대 불가능한 상태였다. 초대교회는 자기가 고민해서 이루어낸 전도가 아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지역이나 시대나 부흥의 역사는 사람이 열심 내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다. 백 프로 성령의 역사다. 내 영적 상태가 약하면 문제 생기면 믿음이 떨어져버린다. 믿음의 생각을 못하고 자기 생각에 잡힌다. 류 목사님이 영도에 갔을 때 영도는 낙후된 곳이었다. 그러나 류 목사님이 성령 충만하니깐 생각하기를 영도니깐 안 된다 가 아니라, 영도니깐 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포항 공대니깐 전도 된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령님이 하실 일을 믿는 것이 믿음의 전도다. 저는 공대 옆에 우리 교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대 제자를 세워서 전 세계 복음화할 비젼을 주고 계신다.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고 거기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맨날 흔들린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한다.

전도 결과에 여러분이 신경 쓰지 말아라. 자기 부담 갖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주인이신 것을 배우는 전도를 하기 바란다. 이렇게 믿음의 전도를 하면 상이 있다. 주님이 재림주로 오셔서 영광 중에 그 나라를 완성하실 때 주님의 영광에 같이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전도자와 순교자들이 상을 받을 때 우리도 같이 받는다. 전도한 것을 삼오늘 방에 그 내용을 올리기를 바란다. 전도 규례를 짜서 어떻게 시행했는지 그것만 올려도 전도 포럼이 된다.

 

결론

여러분이 집중훈련을 하면서 주님이 하실 일을 꿈 꾸기 바란다. 여러분은 갈망이 아닌 열망하는 제자 되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 되셔서 통치하시는 삶이 발전되면 이 삶이 된다. 환경과 돈을 다스리시는 분이 나의 주인이신 것이 믿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깐 돈을 믿음으로 쓸 수 있게 된다. 여러분이 하나님 소원에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통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재생산할 수 있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