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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10월 16일 수요예배 - 갈망과 열망의 차이 2 (행21:1~16)

by 현상금 2024. 10. 16.

갈망과 열망의 차이(21:1~16)

 

제가 아는 중직자 부부의 부인 얘기를 했다.

1) 시대가 점점 더 영적 문제, 정신 문제가 심해진다고 했다.

2) 두려움 증, 불안증 환경이나 문제에서 올 수도 있고, 귀신 역사로 올 수도 있다.

이 중직자 부인은 두려운 일이나 충격적인 일을 안 당했는데도 두려움 증이 쑥 들어왔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적인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분이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시스템을 가졌는데 잘 한 것이다. 이분은 승리할 수 있고 증인 될 수 있다. 분명히 이 문제를 주님이 선용하실 거라고 생각된다.

3) 우리의 뇌는 두려운 일, 충격적인 일, 고통스러운 일에 당연히 반응한다.

누구나 트라우마나, 우울증이 올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이것을 그대로 받을 수도 있고 이것을 극복할 수도 있게 된다. 그 예가 요셉이고 다윗이다. 그들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는가? 그래도 승리했다. 우리가 이런 영적인 축복을 모르면, 문제를 문제로, 고통을 고통으로, 상처를 상처로 받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을 알고 누리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다니엘과 세 친구, 바울, 주기철, 손양원)

성령께서는 마음과 생각을 잡아주신다. 그래서 삼 집중이 기본이다. 본성을 타고 올라오는 감정과 느낌 생각에 안 잡히고 성령님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삼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주님은 여러분의 경험들을 선용하여 현장에 문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답 줄 수 있게 하신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눌림과 압박감을 당했다고 여겨진다.

 

1. 바울은 눌림과 압박감을 어떻게 이겼을까?

1) 성령께서 체포될 것만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사명에 매이게 해주셨다.

(1) 구제 헌금 전달하므로 이방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 되도록 하길 원했다.

(2) 이방인 선교의 문을 주께서 활짝 여신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 그때는 아직 유대교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다. 아직 이방인들을 품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 구성원 중에 많이 있었을 때다. 그렇기에 그의 선교 보고는 중대한 사명이었다. 그래서 이 사명을 감당하고서, 로마로 가길 원했다. 12~13절에 나는 결박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2) 우리는 히 11장에 나오는 두 가지 믿음이 다 필요하다.

(1) 두 가지 믿음 중 첫 번째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세상 축복과는 정반대의 일을 당하는데도 그걸 감당하는 믿음이다. - 예를 들어 주의 일을 하다가 암이 걸렸는데도 감사하는 것이다. 선교사님이 선교지에서 자녀를 잃었는데도 감사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처럼 핍박당하고 순교하는데도 감사하는 것이다.

(2) 두 번째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응답과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는 경우이다. - 앞의 상황과 반대이다. 암이 치유되든지, 선교사 자녀가 죽을병에서 낫든지,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건져주시는 경우다.

11장에 보면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두 가지 케이스로 역사해 주셨다. 초대교회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도에게 이 두 가지 믿음이 다 필요하다. 그러려면 성령 충만한 믿음이 필요하다.

여러분에게 빨리 필요한 것이 주인을 바꾸어야 한다. 주인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두 가지 믿음은 가질 수 없다.

주님이 주인이 맞다면 여러분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을 하나님 소원과 주의 관심과 생각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의 일이 여러분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 된다. 주님이 책임자가 되어주시고 언약 성취자가 되어 주신다. 주객이 바뀌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역, 믿음의 전도, 믿음의 경제, 믿음의 대인관계를 할 수 있다.

 

2. 갈망과 열망의 차이

1) 주의 일을 하더라도, 은혜받아서 생긴 열망과 자기 결핍에서 생긴 갈망은 다르다.

(1) 열망 - 주의 은혜받아서 생긴 목표나 비젼을 향해 갖는 뜨거운 마음을 갖는 것이라 했다. 이는 감사하며 자신을 드리며 희생할 수 있다.

(2) 갈망 - 결핍에 의해서 자기 욕구를 채우고자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 동기를 위해서 힘을 다하며 열심을 다 할 수 있다. 그것의 성취를 갈망한다. 이 사람은 평안하지 가 않다. 주객이 안 바뀐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자기 필요의 도구로 끌어당기며, 자기 욕구가 안 채워지면 불만하게 된다. 자기 것을 드리면서도, 감사하며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 대부분 잘 믿는다는 신자가 갈망과 열망이 섞여 있다. 이걸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2) 바울의 열망

(1) 바울은 갈망이 아니라 열망하였다. -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를 열망했다. 거기에 자신을 기꺼이 드리기를 원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늘 결핍이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이것이 해소되었다.

4:13절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2) 9:1~2 - 바울은 자기 동족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의 구원을 원하는 바로라 했다.

(3) 1:16, 17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8:38, 39 -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했다.

그래서 그는 갈망한 게 아니라 열망했다.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성령께 잡혀서 예루살렘에 가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나서 로마로 가기를 원했다. 그는 로마 복음화에 대한 비젼을 이미 받았기에(19:21), 예루살렘에서 자기를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지 않을지라도 죽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3. 여러분은 갈망하고 있는가 열망하고 있는가?

1) 보통의 경우, 결핍된 것이 채워지면 갈망이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 그래서 계속 갈망한다. 그런데 이게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우리는 결핍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고,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된다는 것을 제대로 알 때 갈망이 해소된다.

2) 바울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보좌 통치하시며 동시에 자기 안에 성령 통치하시는 그리스도를 무한히 누렸다. 그랬기에 갈망이 아닌 열망하는 자가 되었다.

 

결론 - 갈망하고 있다면 주객이 바뀌어야 한다, 결핍된 내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갈망이 열망으로 바뀐 사람이 승리하고 증인 된다. 집중훈련의 목표를 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