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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10월 20일 주일낮예배 - 신분, 사명, 방법(행 21:17~36)

by 현상금 2024. 10. 20.

신분, 사명, 방법(21:17~36)

 

우리는 지금 계속 집중 훈련을 하고 있다. 집중 훈련하면서 갈망이 열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확실히 주인이 되면 이것이 된다. 삼 집중이 될 때 자꾸 주객과 체질이 바뀌면서 갈급함이 채워진다. 결핍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주님이 주인 되실 때 성령 충만 받게 된다. 지난주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지 두 가지 믿음이 다 가능하다고 했다. 첫 번째 믿음은 성령 충만하면 세상 축복과는 정반대의 일을 당하는데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걸 감당하는 믿음이다. 우리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게 된다. 두 번째 믿음은 문제와 위기 속에서 주님의 응답과 능력을 체험하는 거다. 이런 두 가지 믿음이 가능하려면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저는 우리 육신의 본성과 체질이 이것을 자꾸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믿음이 되는 사람이 두 계열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세상은 지금 두 계열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두 가지 계열이란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간의 싸움을 말한다. 사탄의 종들과 하나님 백성 간의 싸움이다. 마지막 시대일수록 이 싸움은 치열해진다. 지금 동성애를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입법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의 목적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현저한 사탄의 역사다. 사탄은 첫 번째 계열의 사람을 이용해서 온 세상을 어두움과 캄캄함으로 몰아가고자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교회를 세상에 동화되게 하거나 아니면 교회를 핍박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계열과 두 번째 계열 간의 싸움은 싸워도 되고, 안 싸워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정복지 않으면 정복당하는 싸움이다. 주님은 교회가 정복당하는 것을 원하시겠는가? 교회는 빛과 소금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주님은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절대 감당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래야 승리하고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자기 갈급함에 빠지는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은 두 계열의 싸움에서 진다. 7, 7, 7 망대 여정 이정표를 가야 한다. 이걸 위해 복음을 내게 편집하는 집중 훈련을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드디어 도착해서 체포되기까지 내용이다.

 

1. 우리가 예수님 이름 때문에 고난이 와도 붙잡아야 할 성경 구절이 있다.

1) 5:10~12, 15:18~19, 2:18, 고전 10:13, 8:28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5:18~19, 2:18, 고전 10:13, 8:28. 이 말씀이 다 우리가 예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붙잡아야 할 구절들이다.

2) 또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의 완전한 계획과 시간표와 방법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교회(야고보와 장로들)는 그를 영접하였다. 그는 이방 가운데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이루신 일을 낱낱이 보고하였다. 구제 헌금으로 가져온 돈도 전달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해 심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바울이 각처에서 율법을 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을 권하여 서원한 사람을 데리고 가서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게 하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 말을 따랐으나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붙잡고 때리고 죽이고자 했다.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심령은 오히려 담담하였다. 이미 주께 모든 것을 맡겼고 두 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부장이 군대를 보내어 바울을 체포해서 영내로 들여보내게 된다. 그 후에 심문 당하면서 가이사랴에서 2년간을 옥에 갇혀서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로마로 가는 길이 된다.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럴 때 엎드려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러면 승리한다. 세미한 음성을 못 듣고 내 생각이 깊어지면 오판한다. 그러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면 갈등과 의심이 사라진다. 주의 완전한 계획과 시간표와 전략과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 동기가 만족 돼야 만족한다. 그게 안 되면 갈등이 많다. 내가 주인이라서 그렇다. 주객이 바뀐 사람은 이런 갈등에 안 빠지게 된다. 내 인생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을 오히려 수단으로 드렸다.

 

2, 여러분은 집중 훈련을 하면서 날마다 신분과 사명부터 확인해야 한다.

1) 신분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는 결핍과 갈급함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갈급할 수 있지만 모든 능력의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 이제 여러분의 신분 자체가 결핍과 갈급함 속에서 시달려야 할 신분이 아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재산과 기대하는 성공을 하지 못했어도 여러분은 평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친 아들, 친 딸이 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성령으로 여러분 안에 통치 인도하는 분이 되셨기 때문이다. 심 집중 훈련이 되어서 평상시 기도훈련이 된 사람은 문제 상황 속에서 기도로 승리할 수 있다. 내 머리로 계산해서 행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먼저 확인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답을 딱 주신다. 그래서 믿음과 의탁과 순종만 잘 하면 된다. 성령께서 어떤 문제에도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 소원을 위하여서 정확하게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다윗과 같은 고백,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가 안 되면 영의 생각을 할 수 없기에 인본주의 이성의 논리와 계산만 하게 된다. 그러면 안연할 수가 없다. 대상 29:10~11, 8:3과 사 40:26과 마 31~33 말씀을 심령으로 붙잡기 바란다.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신분이다.

2) 사명

여러분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다. 이 땅에서 먹고 사는 것을 위해 살도록 부르지 않으셨다. 육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도록 부르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였던 것처럼 여러분도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 2:9). 여러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통치 실현과 전도자의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 15:7, 15:16처럼 여러분에게는 기도 응답의 권세가 주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 영적 상태가 안 좋으면 이 권세를 사용할 수가 없다. 우리 본성은 눌림과 염려와 연약함과 답답함과 비교 의식이 얼마든지 올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는 이런 감정에 속았고 거기에 얼마나 빠졌는지 모른다. 이것은 정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얼마나 좌우되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여기에 속지 말고 나는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항상 영적 진리를 붙잡고 영적 상태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영적 진리를 붙잡고 삼 집중하는 거다. 그 사람이 사명을 감당할 사람이다. 삼 집중, 삼 응답, 삼 셋팅이 되게 된다.

 

3. 사명을 이루는 방법이 확실해야 한다.

1) 이미 말씀드렸던 빌 2:13~14처럼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살았다. 하나님이 자기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였다. 불신자는 이런 삶을 전혀 알지 못한다. 영이 죽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 오직 자기 머리와 힘을 짜내서 일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그러나 사탄의 종 노릇하고 사탄의 망대가 된다. 우리도 그리스도가 안 계시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항상 내가 주체가 되어서 애쓰고 스트레스 받아야 한다. 잘되면 자기 바벨탑을 쌓고, 못 되면 낙심과 좌절 속에 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런 결핍 속에 있는 신분이 아니라고 했다.

2) 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주객을 바꾸고 성령께서 통치하시는 영적 상태로 바꾸어서 일해야 한다. 그게 삼 집중의 취지이다. 이것이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게 일하는 방법이다. 사명을 이루는 방법이다. 불신자는 기도 안 해도 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우리도 일의 결과만이 목적이라면 기도 시간 줄이고 일에만 집중하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회사 직무를 더 감당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탄의 함정과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대로 계속 산다. 결국 사탄의 의도대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동기와 자기 방법으로 사는 인생이 된다. 구원받았는데도 불신자처럼 산다. 두 계열의 싸움에서 동화되거나 핍박 당하면 배도할 사람이 된다. 여러분은 빌 2:13~16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걸을 때 그들은 하나님은 자기 소원을 속에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이스라엘은 원망하고 시비했다. 하나님과 지도자에게 원망, 시비하였다. 우리는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고 믿음의 눈을 떠서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한다. 우리를 생명 운동, 다락방 운동하도록 부르신 것이다.

 

결론

오늘 성도의 신분, 사명과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바울 사도가 체포되었지만 이것에 전혀 흔들지 않았다. 환경, 상황, 문제 때문에 좌지우지 말기 바란다. 일 속에서 임마누엘을 누리기 바란다. 아침에 의탁하고 낮 시간에는 동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밤 시간에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며 재 충만 받으며 말씀이 체험된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빌 2:13~16의 말씀이 적용 성취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