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문제와 그리스도 아는 사람만 가능한 일(골 1:13~14)
모든 사람은 교만과 열등감을 갖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가 구원받았어도 교만과 열등감 속에 있으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 왜냐? 교만과 열등감 갖고 있는 내가 주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을 때 교만과 열등감이 없었다. 믿음과 의탁과 순종의 인생으로 살 때는 교만과 열등감이 없었다. 사탄의 꾀임을 받아 욕심에 빠진 결과 그때부터 교만과 열등감의 내가 된 것이다. 하나님 중심, 타자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이 된 거다. 그런 자아로 자기를 방어하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처세해 온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도 당연히 교만과 열등감 속에 있다. 실패자는 열등감이 더 심할뿐이다. 이게 왜 그런가? 사탄의 욕심에 빠졌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자존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본주의 자아로 인본주의 동기, 기준, 방법으로 산다. 이런 자아가 주인이 될수록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는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교만과 열등감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것이 분명히 창 3장의 결과인 줄 알고 자신도 창 3장의 눈과 복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이 사람이 치유되고 증인 된다. 그래야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 아는 사람만 가능한 일에 쓰임 받게 된다.
1. 성경은 영적 문제의 시작과 그 결과를 잘 알려주고 있다.
영적 문제란 인간이 죄에 빠져서 영이 죽고 사단의 지배 당하는 운명이 된 것을 말한다. 창 3장에 보면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속아서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 두려움의 시작은 죄책감에서 시작되었다. 거기다 환경의 저주까지 오니깐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가 일상이 되었다. 압박감이 심하면 시달리며 각종 정신병 같은 것들이 오게 된 거다.
1) 창 3:16 - 여자에게는 임신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고 부부 관계의 고통도 시작되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남편을 원한다는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나 욕구를 의미한다. 아내가 하나님 못 누리면 남편에게 집착하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고 했다. 또 남편이 너를 다스린다는 것은 남편이 군림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말한다. 한쪽은 집착하여 자기 소유로 딱 잡고 싶고, 한쪽은 군림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그래서 부부 관계의 고통이 시작된 거라 했다.
2) 창 3:17~19 - 삼 저주가 시작되었다. 영적인 저주, 환경의 저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저주가 오게 되었다.
3) 창 4:1~8 – 최초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가인이 시기심과 분노 조절 장애로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4) 창 4:16~24 – 가인의 족보와 그 후손을 통해 문명이 발생한다.
이때부터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문명을 발전시키는 셈이다. 신자 계열보다 불신자 계열이 문명이 앞선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피곤하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5) 가인과 아벨 사건 이후에 창 3장의 문제에 빠진 두 가문이 만난다. - 가문을 통해서 영적 문제가 계속 후손에게 전달된다. 자연스럽게 우상 숭배하면서 지역과 국가와 가문과 부모를 통해서 지금까지 창 3장의 영적 근본 문제는 후손에게 전달되는 거다.
→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불안한 마음과 목마름을 돈과 명예와 쾌락에 집착하게 된다. 아니면 남편이나 자녀나 사람에게 집착한다. 이 집착은 고통과 중독을 낳게 된다.
2. 창 3장 이해가 돼야 인간 이해가 된다.
1) 인간은 범죄해서 영이 죽고 사탄에게 잡혔다. - 불안한 영적 상태가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마음과 생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근데 인생에 고난과 문제와 충격이 온다. 그때 더 불안에 잡히고 분노에 잡히고 돈에 잡히고 충격에 잡히게 된다. 가문의 흑암 세력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 문제가 오게 만든다. 사고도 오고 우환도 오게 만든다.
2) 우리는 창 3장의 눈과 그것을 해결하시는 복음의 눈으로 이런 걸 봐야 한다. - 이 눈이 없으면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이해 못 한다. 중독자나 사기범이나 강간범이나 살인자들 이해 못 한다. 단순히 성격이 악해서가 아니다. 다 영적 문제로 말미암은 정신 문제에 잡힌 거다. 영적 문제를 모르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3. 예수님은 앞서 말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어주셨다.
1) 세상에 최고 범죄자가 당하는 그 저주와 형벌의 자리까지 예수님이 내려가셨다.
그러니 중독자도, 전과자도, 강간자도, 살인범도 살릴 수 있디. 주님은 이런 사람들조차도 그 무너진 자리에서부터 그를 용서하시고 받아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실제로 주님은 그런 사람을 만나주셨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가장 사람들이 거리감 두고 안 좋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예수님은 만나주셨다. 그 무너진 그 자체로 용서해 주셨고 받아주셨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거다. 죄사 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주면서 생명을 얻게 만드시고 성령으로 치유 회복시켜 주시는 일을 하셨다. 무너진 사람도 치유 회복해서 주님은 제자로 삼으셨다. 이게 복음의 능력이다. 마치 참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다.
2) 우리도 주님의 눈과 마음을 갖고 구원 역사의 통로가 되길 원하신다.
오늘 본문 13,14절은 구속의 교리인데 이것은 어느 종교에도 없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서론에서 말한 교만과 열등감의 자아에 빠지지 않고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으며 답 줄 수 있는 전도자로, 제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의 육신의 본성으로는 이런 사람을 받아낼 수도 없고 답 줄 수도 없다. 성령께서 보는 눈과 은혜와 능력 주셔서 이런 일을 하게 만드신다. 우리가 “심하다” 간주하는 사람도 자기 영적 문제를 알고 복음을 바로 알면 이 사람도 큰 사명자가 될 수 있다.
결론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 아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 있다.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 아는 교회만 가능한 일이 있다. 그것이 불신자 6가지 상태에 빠진 사람 건져내는 일이다. 종교인이나 율법인이나 세상 학자도, 대통령도 못하는 일이다. 근데 우리는 불신자 여섯 가지 상태에 빠진 사람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 답을 줄 수 있다. 복음 받을 자, 구원받을 자를 놓고 만남을 위해 기도해라. 그리고 전도자의 축복을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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