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예수님은 해답이신가?(골 1:13~17)
지난주에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 아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게 뭐라고 그랬죠? 그게 불신자 여섯 가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건져내는 일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생애”이 찬양을 불렀지만, 사실 현장이 창세기 3장의 눈과 그걸 해결하시는 복음의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사실 우리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전도하자. 애쓰자”이런 말이 아니라, 사실 여러분이 눈이 열려서 영적으로 사람 보는 이해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창 3장의 눈과 복음의 눈으로 봐야 이해가 되고 살릴 수도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계속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눈 감을 때마다 성령님이 그 기도가 되게 하시면서 그 눈으로 현장 만나는 사람을 보게 하시는 거예요.
지금 세상에는 불신 성공자와 또 불신 세상 실패자가 있죠. 그런데 그들의 영적 근본 문제는 똑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오늘 왜 똑같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블신 성공자도 영은 죽었고 똑같이 사탄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공한 사람은 IQ나 기능이나 정신력이나 집중력이 남보다 탁월한 거죠. 그런 데다가 성실히 최선을 다하게 되면 좋은 결과를 남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적으로 이 사람들이 성공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들도 창 3, 6, 11장의 본성 속에서 생존의 욕구와 또 인본주의 자존심의 욕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그 속에서 굉장히 열심 내는 거죠. 그런데 이들도 비교 의식이나 상처나 트라우마의 걸릴 수 있습니다. 이들도 나 중심적이고 육신 중심이기 때문에 이들이 육신의 본성으로 살다 보니까 미움이나 상처나 비교 의식이나 죄성에 빠질 수 있는 거예요. 또 음란이나 성적 타락 같은 것에도 당연히 빠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뭐 변호사인데, 의사인데 성적으로 참 문란한 짓을 하고 그런 것들 종종 듣습니다.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정에 문제가 많고 자녀 문제가 많고 이런 것들은 뭐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들도 영적 문제는 똑같은데 부와 명예와 성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거 없는 사람보다 이 부분에 편안한 거죠. 그런데 이것들을 자기 바벨탑으로 견고히 쌓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돌아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만약 그렇다면사실 그게 더 저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성공한 게 더 저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반면에 불신 실패자는 어떻습니까? 똑같이 창 3, 6, 11장의 본성 속에서 생존의 욕구와 자존심의 욕구로 살고 있죠. 이 사람들은 이제 성공한 사람보다 훨씬 더 고통이 많고요. 비교 의식이 많고, 좌절 의식, 원망 불평 이런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거죠. 이들도 인본주의 자존심이 세요. 실패한 사람들 세죠. 근데 자존감은 또 약할 수 있어요.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는 있고 자존감은 떨어지는 거죠. 마음과 생각을 가누지 못해서 중독에 빠지기도 하죠. 우리는 이런 세상 성공자나 또 실패자를 다 창 3장의 눈과 복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이해가 되고 좀 진단이 좀 되는 거예요. 복음의 눈으로 보면 저 사람도 하나님은 구원의 대상 삼으시는구나. 또 주님은 저 사람도 건져내사 증인 삼으실 수 있겠구나. 이런 이제 복음의 관점으로 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의 갈급함과 목마름을 선용하십니다. 오히려 이걸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게 만드시는 거죠. 근데 그중에서도 복음에 들리는 사람이 있고 또 안 들리는 사람이 있는 거죠. 만약에 복음이 들려서 오히려 자기의 목마름이 하나님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면 최고의 축복입니다.
1.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1) 여러분도 영적 문제가 있고 정신 문제의 조건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정신 문제의 조건을 다 갖고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 현실 문제가 겹치게 될 때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애쓰게 되잖아요. 우리 본성이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그러잖아요. 여러분도 과거에는 인본주의 자아로 창 3, 6, 11장의 본성 속에서 생존의 욕구와 자존심의 욕구로 여러분이 애쓰며 살아온 거예요. 그 욕구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그 욕구를 성취시키는 것을 마치 자아실현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왔단 말이에요. 여러분이 그 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또 문제가 터지면 못 견디는 거예요. 예민해지고 원망하게 되고 죄의 본성에 잡히게 돼요. 과거에 우리가 참 많이 그랬고 지금은 이제 그런 것들을 영적인 분별을 가지고 보면서 기도가 되어지는 만큼 승리하게 돼 있어요. 이런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죠. 이제 여러분은 지금 말씀드린 불신자들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종종 빠지는 그런 영적 상태, 마음 상태, 생각의 상태에서 치유 회복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적으로 여러분이 지금 내 속에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로 행복한 삶을 사셔야 돼요. 아까도 강 권사님이 이긴 싸움을 하도록 주님이 하신다고 기도했는데 실제로 우리가 이제 이긴 싸움을 하도록 만드시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경험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간 상태를 잘 알고 거기에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현장을 보시면서 탄식하셨어요. 왜 탄식하셨어요? 영적인 눈으로 보시니까 현장이 탄식이 되는 거예요.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렇게 얘기하셨죠. 마 9장 36절,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로라” 그랬어요. 여러분은 이제 왜 사람들이 고생하며 기진하는지 그 이유를 안다 이 말이에요. 영적인 문제에 빠져서 마음과 생각이 지배를 받는 거예요. 거기다가 현실 문제가 겹치게 되니까 그거를 자기 안간힘으로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안 돼고 자꾸 실패를 당하니까 고생하며 기진하는 거다. 그 속에서 원망과 또 인간관계 미움과 상처 이런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는 사람이 진단이 되잖아요. 오늘 제목이 예수님은 과연 해답이신가 예요.
2) 왜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죠?
예수님만이 인간 죄의 문제로부터 이제 영적 문제가 시작되었는데 죄의 문제 해결하시죠. 성령으로 오셔서 영적 문제를 해결하시면서 영적 문제로 파생된 정신 문제, 마음 생각 문제를 치유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생각이 치유되면 육신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생활의 문제를 문제도 치유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것 때문에 삼중직을 감당하시러 오신 그리스도로 오신 거예요. 그래서 제사장으로 오셔서 참 제사장이시죠. 모든 사람 죄의 문제, 원죄와 자범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의 길을 여신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노와 저주와 지옥의 형벌에서 우리를 빼내신 거예요. 이게 얼마나 큰 거예요. 구원받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돼요. 참 선지자로 오셔서 예수님은 그야말로 구원의 말씀이에요. 그야말로 생명의 말씀이에요. 진리가 되시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성령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교훈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런 게 선지자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또 예수님이 참 왕으로 오셔서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사단의 지배 권세를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의 영계와 현상계를 다스리시고 계시는 왕이세요. 주의 천사들이 다 복종하고요. 그리고 사단 귀신도 부리신다고 돼 있어요. 어떻게 부리셔요? 허용도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허용하시고 통제하시고 주관하시고 그리고 그 활동 시한까지도 하나님이 정하고 계십니다. 맞습니까? 그런 분이 인생을 사탄, 저주 권세에서 이제 해방하신 거죠.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 권세에서 해방받게 해 주신 거죠. 그래서 요 14장 27절에 보에서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평안을 주노니 너희는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가 성령으로 이제 하나님 아버지가 믿어지게 된 사람이에요. 그리스도가 믿어지게 된 사람이에요. 그래서 근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치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 전에 두려워하지 말라. 극히 담대하라 하신 게 생각나요. 여러분 실제 전쟁의 상황이잖아요. 가나안 원주민이 지금 이스라엘을 막아내기 위해서 철저히 대비하고 있잖아요. 그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거거든요. 보세요. 실제 본성으로 여호수아에게 얼마나 떨림과 불안과 두려움이 왔겠어요. 본성은 똑같아요. 실제 상황이 딱 들어가면 우리 본성은 금방 본성적으로 반응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싸워주실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 책에서 떠나지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할 거니까 극히 담대해라 강력하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 말씀이 안 붙들거나 안 믿어지면 지겠죠. 평안을 주노니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그분이 진정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사역이 뭐예요? 십자가의 대속의 사업이죠. 대속의 사업을 통해서 정말로 우리의 완전히 운명이 바뀌도록, 우리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으신 거죠. 그래서 그 일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거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또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성령의 확신과 능력을 주시어서 믿는 바를 더 확실하도록 그렇게 만드시는 거죠. 더 마음과 생각을 진리로 인도받게 만드시고 또 주님이 주시는 확신과 능력과 충만함을 얻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문제를 당하는 데 우리가 그 문제를 이기는 체험을 진짜로 할 수 있게 만드시는 거예요. 본성은 안 바뀌어요. 미워하면 계속 그 미워함이 계속 올라와요. 근데 계속 제가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게 분별이 된다니까요.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생각하게 되면 이게 분별이 되어져요. 내 생각이랑 다르구나. 내 감정이 성령의 감정과 참 다르구나 하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돼요. 이걸 확실하게 알아버리면 그냥 끌려가지 않아요. 이게 확실하지 않으니까 자꾸 끌리고 거기에 그냥 잡히는 거예요. 뻔히 알면서도 성령의 생각이 아닌 사단의 통로가 되는 생각에 계속 빠지는 거예요. 그런 바보스러운 짓을 이제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이 평상시에 대화하는 걸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육신의 생각이 잡혀 있는지, 육신의 말을 주로 하는지, 이제 영의 생각으로 영의 말씀으로 얼마나 사는지 이런 것들이 점검이 되어요. 성령님은 24시간 우리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생각을 하도록 하기를 원하셔요.
이제 우리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이제 우리는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죄의 본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제 주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 필요한 거죠. 여러분이 이 믿음이 이제 그리스도를 누리게 만들잖아요. 근데 사실 영이 죽은 상태에서는 믿을 능력도 없어요. 영이 죽은 인간 이성은요. 하나님을 믿어요. 아니면 하나님을 오히려 거부해요. 오히려 영이 죽은 이성은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그냥 내가 내 본위로 살겠다고 그렇게 주장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성이 영이 죽으면 이게 사단이 이용하는 이성이 돼요. 그래서 보세요. 사단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할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로라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진짜 지금 인간이 영이 죽은 인간이 자기 이성을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져서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이성이 만물의 척도가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되어져서 하나님도 내 이성으로 판단해요. 여러분 성경 말씀을 내 이성으로 판단해요. 그래서 성경이 내 이성으로 안 믿어지는 건 안 믿는 거야 이렇게 뒤집어 놨어요. 우리는 거의 다 영이 죽은 그 이성을 근거해서 계속 일해 왔고 살아왔고 애쓰고 노력해 온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배경이 되시는 것이 믿어지고 예수님의 사랑이 믿어지는 건 이성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그냥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구원을 은혜로 받은 거예요. 그러나 구원받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에 대한 절대 계획과 목적이 있는 거야. 무슨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제자 삼아 다른 사람도 구원받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영적 문제와 그리스도 아는 사람만 가능한 일을 하도록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거예요.
2. 과연 예수님은 해답이신가?
1)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구원자시면서 창조자시라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어요.
우리 13절 14절은 이미 읽었잖아요. 예수님이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말씀이 있었고, 그다음에 15절부터 보면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신 것을 이제 말씀하고 있는데요. 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시는 분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빌 2장 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들과 같이 종처럼 되셨지만 하나님의 본체시다. 이런 말씀을 하고 있어요. 본체라는 말은 본질적 형체 자체라는 거예요. 똑같은 신성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요 1:18절, 하나님을 본 사람 없는데 하나님을 예수님이 나타내 보이고 계시다 는 말이에요. 빌립이 하나님 보여달라니까 나를 보면 하나님 본 거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근데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1장 15절,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여기 나셨다는 말이 문제가 되는 표현입니다. 이게 신학적인 싸움을 많이 했던 표현입니다. 여러분 “나셨다” 그러면 어떤 뉘앙스가 있어요? 피조물이신가? 피조물이 주로 나셨다 그러잖아요. 이게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초대교회가 지나서 한 300년경에 이 말 가지고 신학적인 싸움이 붙었어요. “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천사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그 정도 될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런데 뒤에 있는 구절들을 보면 그분이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올바른 해석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인간처럼 출산하며 아들을 낳으시는 분은 아니세요. 그래서 “나셨다”는 말은 유래하셨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 질서를 표현하는 것이지 예수님이 창조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유래되셨고 그래서 먼저 존재하신 분이다. 창조 이전에 선재하신 분이시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2) 예수님은 창조자시라는 말씀이 16절에 나옵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창조자라는 말씀은 여러 군데 나옵니다. 16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장 16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렇게 얘기하고 있죠. 여기서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이거는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이에요. 이것들은 천사들도 속하고 타락한 사단 귀신도 여기에 속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를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하셨다는 거예요. 물론 사단 귀신은 창조한 이후에 타락한 거지만. 예수님은 천사 중에 최고 으뜸이 되는 분이라고 가르치는 이단이 있어요. 어딘 줄 아세요? 여호와 증인입니다. 여호와 증인은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가르치니까 이단입니다. 근데 골로새 교회에서도 천사 숭배 사상이 있었데요. 천사들이 능력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영적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거예요. 천사를 경배하라 이런 말씀은 없어요. 천사들이 경배했다는 말은 있어도 그래서 바울은 이런 모든 영적 존재들을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다는 거예요. 요 8장 58절에는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느니라”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하고 계시거든요.
결론
오늘 예수님은 과연 해답이신가? 그분이 구속자가 아니시거나 그분이 창조자가 아니시면.
그분은 해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해답이 되시기 때문에 여러분 모든 문제를 예수님 통해서 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와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이성은 안 괜찮다고 얘기하죠. 이성은 영적인 사실을 못 믿잖아요. 이때까지 이성은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거기에만 꽂혀서 항상 논리와 사고와 계산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도 여러분의 이성은 거부해요. 믿지 못해요. 문제 앞에서 이거는 문제라고 이성은 소리쳐요. 큰일 났다고 얘기를 해요. 근데 거꾸로 얘기하면 더 큰 문제는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이 사람의 연약한 믿음이 깨지고 성령께서 깊게 역사해 주실 믿음으로 바꾸는 기회예요.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많이 강조했던 것이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을 맞추었다면 나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랬어요. 내 일은 내 일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책임자요 해결자요. 하나님 소원을 위한 언약 성취자가 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여러분이 창 3장의 눈으로 현장을 보잖아요. 또 복음의 눈으로 현장을 보잖아요. 그것까지 돼요. 근데 많은 전도자들이 어디서 걸리냐 하면 내가 생존의 문제나, 내가 자존심에 문제가 오면 나한테 딱 걸려버려요. 이 눈이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딱 걸려버려요. 그러니까 올바른 통로가 안 되는 거예요. 나한테 안 걸리는 문제를 지금 하나님은 훈련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전부 다 나한테 걸리잖아요.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만 아니라 더 큰 계획과 목적을 갖고 부르셨어요. 그것이 주님의 구원 사역에 여러분을 쓰시고자 하시는 거예요. 어떤 문제도 이 부르심 목적에 선용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상처에 묶여 있고 과거에 묶여 있고 철저히 인본주의 체질대로 살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답 주어서 건져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의 창조자시여 구속자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내가 지금은 구속자와 창조주를 누리는데, 과거 보는 눈이 그때는 내가 이걸 못 누렸기 때문에 다 당했구나 이렇게 보셔야 돼요. 지금 내가 구원받고 임마누엘을 누리면서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치받고 행복한 삶을 맛보게 되면 과거 해석이 싹 달라져요. 그때 내가 사단에게 당한 거구나 이렇게 이제 보인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그때 안 붙잡아주셨죠? 그것까지도 쓰실 계획이 있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그것까지 쓰실 계획이 있는 거예요. 내가 겪었던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상의 문제라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여러분이 겪은 문제와 여러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도 숱한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예요. 거기에 여러분은 진짜 공감대를 이루고 답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쓰시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근데 지금 내가 그리스도 못 누리면 그 과거에 여전히 묶여 있고 지금도 시달리면서 지금도 행복이 없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도 사탄한테 속는 겁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전도자로 하나님은 세워지도록 하기 원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이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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