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를 제자로(딤후 1:1~5)
지난주 말씀이 “오네시모를 제자”로 이런 제목이었는데, 오늘의 제목은 “디모데를 제자”로 이런 제목입니다. 제가 지금 다락방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3명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들이 다 엘리트고 기존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출석하고 자라난 모범적인 학생들이에요. 그러니까 디모데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죠. 제가 그들의 약한 부분 또 기존 교회에서 정립 안 되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다락방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잘 들어요. 이들과 다락방 하는 저의 이유는 순전히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예전에 어떤 우리 교회 집사님이 목사님은 한동대 애들 하나도 안 오는데 한동대 사역 그만하세요. 저한테 직접 말 못 했지만 사모님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그래요. 뭐 진담은 아니겠죠. 우리는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사역해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사역하고 있는 학생들이 세워진다면 이 학생들이 또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제 전도하면서 주님이 붙여주시는 대로 하나님 소원의 도구가 되고자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창 3장의 사단의 꼬임으로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겨지게 됐다 이런 얘기를 요새 하고 있습니다. 이게 타락의 가장 핵심이다. 타락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죄성이 깊으냐, 얼마나 이기적이고, 좀 흉악하고 이런 얘기를 주로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기준을 사단이 왜곡되게 만들어 놓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인식이 정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헷갈리는 게 뭐냐 하면 예수 안 믿어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하게 사는 사람들도 구원받을까 말까? 뭐 이런 좀 헷갈림이 있잖아요. 인간의 가장 타락한 죄의 핵심이 뭐냐? 자기가 하나님 되는 거예요. 인본주의 자아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삶의 전 체제가 인본주의 체제로 뒤바뀌어졌다 이 말이에요. 그래놓고도 성실히 살라, 열심히 살아라, 부지런히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얼마든지 그 얘기한다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 선악의 기준을 전혀 알지 못해요. 그리고 인간이 지금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 영광을 취하고 있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 안 하고 하나님께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에요. 이들에게도 이런 눈이 열리도록 메시지하고 있거든요.
사실 영적인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면 이건 알아듣지 못할 얘기예요. 그래서 영적인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은 솔직히 그리스도가 절대 필요하다는 걸 잘 모른다는 얘기가 됩니다. 근데 감사하게도 애들이 이 말씀을 잘 듣고 한 친구는 선교사 아들이라고 그랬죠. 이번 주 태국에 갔어요. 태국에서 부모님들이 사역하고 있는데 지난주에 다락방을 마치고 이 친구가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하면서 “목사님 한번 껴안아도 돼요”. 이러더라고요. “이 친구가 진짜 감사해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또 공대 대학원생을 어제도 만났는데 이 친구 메시지 하는데 눈시울이 뻘개지는 거예요. 은혜가 되니까 눈시울이 뻘개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대학원생도 하나님이 건드리시는구나. 자기한테 지금 너무 필요한 부분이 건드려진다고 자기가 감사를 해요.
오늘 제목이 디모데를 제자로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요 동역자요. 또 훗날 목회자까지 된 사람이에요. 본서는 디모데가 에베소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바울이 보낸 서신이죠. 근데 바울의 순교 직전에 보낸 서신이다. 바울 서신의 맨 마지막 서신이에요. 제가 이거를 보게 된 이유는 옥중 서신 이후에, 1차 감옥에 갇힌 이후에 바울의 인생 마지막에 그가 어떤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지 그걸 여러분과 같이 공감하기 위해서 오늘 디모데후서를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는 아니지만 역시 전도자로 부르셨어요. 그리고 성숙한 제자가 되어서 여러분을 하나님은 사역자로 쓰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분명한 목표를 가지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해서 누군가와 다락방 할 때 그에게 정확한 영적 메시지를 해줄 수 있어야 돼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개인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또 그의 삶의 여러 영역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이거에 대한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 말이에요. 사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가 회복되도록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새 계속 메시지하고 있는 부분을 여러분이 제대로 좀 집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1. 제자 훈련 시 기본적으로 집어주어야 할 부분
1) 타락이란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랬어요.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이시니까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내가 선악의 기준이 된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필요가 없어요. 선악의 기준에 따라서 생명과 사망이 좌우되니까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절대 인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의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예요. 이 개념을 정확하게 여러분이 가지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 되어져서 선악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성화가 되잖아요. 성화란 단순히 윤리적으로 착해지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의 포지션이 원래 포지션으로 제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북한 주민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북한에서도 “동무들 열심히 사시라고요”. 이렇게 얘기 안 하겠습니까? 성실히 살고, 근면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북한에서도 그렇게 교육한다고요. 그러면서 그들은 악한 정권에 속고 지배당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 정권과 당에 충성하는 거를 선이라고 얘기해요. 세상은 인본주의가 선이라고 얘기해요. 인본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 못 하고 그냥 윤리적으로만 죄악이라고 얘기하는 경향이 참 많지 않습니까? 사실은 반역하고 있는 건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도 바울에게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이게 영적인 눈을 뜨는 거예요. 지금 어둠에 빠졌어요. 어둠은 죄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무지도 의미해요. 어둡다는 거는 앞뒤 구분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단이 끄는 대로 죄 가운데 빠져 사는 삶을 어둠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거, 이 이 눈을 떠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어떤 소속의 지배를 받고 있고,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이 누구 중심의 기준인지,이런 부분에 눈을 떠야 하는 거예요. 분명히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성령의 사역 없이는 눈도 못 뜨고 회복도 불가능합니다.
전적인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인간 성실, 열심 자체로 인간이 빠져 있는 운명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교회는 이렇게 왜곡된 기준과 죄의 본질을 정확히 말해줄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다락방 하게 된다면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서 얼마만큼 인간을 뒤틀어 놓았는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것이 정확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인간 노력 중심으로 하게 돼요. 내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믿음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걸 제가 종교 신앙이다. 종교 체질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인간이 사단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졌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자를 전도해서 그를 양육해서 제자로 세울 때 부득이 이 사단의 속임수 또는 사단의 역사, 사단의 정체를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정통교회에서는, 정통 교회라는 거는 나쁜 교회가 아니에요. 보통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 말씀으로 사수하는 교회가 정통교회예요. 근데 어떤 분위기와 경향성이 있냐 하면 사단을 너무 자주 얘기하면 마치 문제 있는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됐어요.
왜 그런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에 그래요.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치 않고 사단에게 책임성을 돌릴까 봐 그래요. 근데 그런 경향성이 사실 좀 있어요. 뭐냐 하면 “이거 다 사단이 그랬어”. 근데 자기가 사단에게 문 열어놓고 “사단이 들어오십시오”. 그 문을 열어놓는 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거든요.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근데 만약에 사단이 배후에서 역사하는 걸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럼 전부 다 내가 잘못해서, 내 자책에만 빠지잖아요. 항상 그러면 죄 밑에 살게 돼요. 원수 마귀가 이렇게 빠지도록 만들어 놨구나! 알아야 되는 거죠. 이건 구원받고 나서 사람이 양육 받는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처음부터 영적 싸움이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사단이 인간을 공격한다면 그 사단을 꺾을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님의 능력 외에는 없어요. 사람 열심으로 그게 됩니까? 우리는 인간 책임성을 강조해야 됩니다. 첫 번째는 그러니까 인간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마귀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기 때문에 사단을 너무 강조하는 거를 일반 정통교회에서 우려한다고 했어요.
또 한 가지는 뭐냐 하면 지금 불건전한 사단론, 불건전한 귀신론이 한국교회를 많이 영향을 줬기 때문에 이거에 대한 역반응으로 경계하는 거예요. 정통교회에서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사단도 절대 하나님 주권 하에 있는데 그렇게 강조할 필요가 뭐 있냐? 하나님께만 제대로 순종하면 되지 않냐? 말 되죠. 그런데 그렇게 되다 보면 사탄의 실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영적인 통찰력이 떨어지고 영적인 싸움을 잘 못합니다. 인간의 책임성을 왜 강조해야 됩니까? 하나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었어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당사자는 누굽니까?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될 책임을 맡은 대상은 누굽니까? 사람이에요. 아담과 하와예요. 결국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그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그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심판하시게 되는 거예요.
그럼에도 왜 우리는 사단을 우리는 강조해야 됩니까? 이놈이 배후의 조종자고 유혹자이기 때문에, 사단 귀신이 지금도 어떻게 역사를 하며, 어떻게 사람을 속이는지, 어떻게 불신자 상태에 빠뜨리는지 알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복음 받기 전까지 형성된 성향과 체질은 전부 사단이 유도했던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이거 보는 눈이 열려야 되고 본인이 이 눈이 제대로 열려야지, 또 전도 운동, 말씀 운동하는데 여러분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이 말이에요. 한 사람을 치유 회복하려면 사단이라는 대적이 어떻게 인간을 속였는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거를 정확히 알아야지 또 치유 회복하시는 그리스도를 더 의지하게 됩니다. 신자 중에서 사단이 자기를 어떻게 속여서 죄에 빠지게 만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상처와 파생된 결과로 오는 데미지를 어떻게 입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누구한테 이를 갈아야 하겠습니까? 사단에게 이를 갈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단과의 싸움을 하지 않고 사람하고 싸운다니까요. 사람한테 자꾸 원망한다니까요. 상대도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 책임 없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구요. 만약에 사단이 대적이 아니면 내 성실이면 되잖아요. 내가 하나님 잘 믿으려고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싸움이 그런 성격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이게 지금 영적 문제에요. 그러니까 내가 넘어지고 엎어져서 피를 봤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의지 안 한다면 계속 깨지는 거예요. 그리스도를 의지해야지 성령으로 역사를 하시는 거예요. 기도 문이 열려야 영적인 삶이 되고 눈이 열려요. 역량이 길러져요. 편안해져요. 그리고 계획이 보여요. 이렇게 들어가야 된다 이 말이에요. 정통신학을 또 개혁주의 신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우리가 장로교 정통신학이에요. 정통신학의 교리에 지금 제가 한 말이 배치되지 않습니다. 이거 올바른 교리적 설명이에요. 우리는 죄의 본질을 말할 때 이 사단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필요성이 있다 이 말이에요.
골 1장 28절에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를 위해서 나도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다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 이렇게 돼 있잖아요. 내 속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의 성령이시고요. 성령께서 우리를 기르십니다. “아 내가 어떻게 속았고 내가 어떻게 영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에 넘어졌구나” 이런 게 보여야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이런 날을 주님이 속죄하셨구나. 주님이 나에게 완전한 주인이 되어 주시구나 나를 안 버리시는구나”. 그래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되게 하고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영적 삶이 회복되면 주님이 치유해 주셔요. 참 귀중한 제자로 다시 세우시는 거예요.
2. 성경은 사탄의 활동과 그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어요
1) 성경은 여러 군데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 26장 18절에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했죠. 그것뿐만 아니라 엡 2장 2절은 “그때 너희는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돼 있죠. 골 1장 3절 “우리를 그가 흑암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로 옮기셨느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또 고후 4장 4절에는 뭐라고 돼 있습니까? “이 세상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영화와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사단이영적으로 누르거나 영적으로 지배해 버리면 혼미해져요. 막 4: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사단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느니라” 길가의 특징이 뭐예요? 딱딱해져서 씨가 파고들지를 못해요. 발아가 안 돼요. 왜 그래요? 그 마음이 굳어진 사람이죠. 닫혀 있는 사람이죠. 그때 말씀이 주어졌는데도 말씀 못 받아들이잖아요. 그때 사단이 얼른 채 가버린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다 마귀 사단과 관계성이 있다 이 말이에요. 딤전 4장 1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였다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이단 사설 전부 다 귀신의 가르침이에요. 모든 거짓 철학, 사상이 귀신의 역사예요. 여러분 진짜 제가 계속 강조하는 이 부분을 여러분이 확실히 아셔야 되겠습니다.
2) 지금 이 그림에서 마음과 생각이 제일 중요한데 마음과 생각이 뇌에 있잖아요.
사실 마음과 생각이 불안하거나 무너지거나 선택을 잘못하면 삶의 실패로 연결되잖아요. 근데 이 마음과 생각에 제일 영향을 주는 게 어느 거예요? 일단 눈에 보이는 현실 문제가 100%의 영향을 줘요. 얼마나 민감하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주로 사람들은 이것 때문이라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이 현실 문제 때문만 아니라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는 중대한 세력이 있다 이 말이에요. 여기에 원래 성령님이 위치해야 되죠. 성령님이 24시간 지금 내 안에 계셔서 통치하시는 삶이 정상이잖아요. 근데 사단 귀신은 지금 계속해서 나를 틈 타려고 하는 겁니다. 사단은 이미 인간이 타락했을 때 죄의 본성에 빠뜨려 놨어요. 창 3, 6, 11장의 본성에 빠뜨려 놨잖아요.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욕구가 있잖아요. 사탄이 속임수와 욕심에 빠진 상태에서 인간은 이 두 가지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기에 욕심내고 투쟁하는 겁니다. 인간을 지금 계속해서 마귀에게 종 노릇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깔아 놨어요. 그러면서 이 사단 귀신도 불안과 두려움 염려 줄 수 있잖아요. 우리 마음과 생각에 불안과 두려움, 염려가 들어오면 생각은 나 중심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불안하고 두려운데 누구를 용서하겠습니까? 누구를 받아내겠습니까? 못 받아내요. 그런데 보세요. 이 불안 두려움이 뇌에 있는 신경 전달 세포와 호르몬에 영향을 줘요. 이거는 과학적인 얘기입니다. 의학적인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두려움, 불안이 와서 신경 전달 세포에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이런 게 있대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는 코르티솔이라는 게 있대요. 근데 이게 정상적인 기능을 해야 하는데, 불안이 계속 오거나 계속 두려움이 오거나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상이 생겨버려요. 그래서 인간 정신에 영향을 줘서 정신병이나 뇌병을 일으켜요. 그러니까 현실 문제를 통해서 불안 두려움이 와서 정신병이 생길 수 있단 말이에요. 우울증, 조울증, 공황증이 올 수 있단 말입니다. 근데 문제와 함께 사단 귀신이 또 역사를 해요.
정신과 의사들은 이걸 안 믿잖아요. 전부 눈에 보이는 합리적인 타당한 이유를 대고 전부 다 뇌병이다. 일반 정신과 의사들은 그렇게만 얘기합니다. 또 교회에서는 정신병은 다 사단 귀신의 역사다. 그렇게 잘못 말할 수가 있어요. “저 사람 지금 조현병 같은데 저건 귀신이 들렸네” 이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귀신이 완전히 사로잡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안 두려움으로 역사하는 거예요. 간접적으로 인간 정신이 병들게 만드는 거예요. 영적 상태가 불안한데 현실 문제를 크게 당하면 그 사람 정신이 버티겠어요? 정신을 감당할 수 없게 돼요? 분열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이 양쪽 상관성을 다 여러분이 아셔야 돼요. 그래서 정신병자 사역할 때 이 사람이 너무 상태가 심하면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좀 안정시키면서 메시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완전히 잡혀 있으면 메시지 안 들어가요. 근데 한 번씩 정신이 나잖아요. 그때 메시지 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3) 골 1장 28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다시 말해서 성숙한 자, 온전한 자로 세우는 과정에는 반드시 영적 싸움이 필요해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뭐부터 했어요? 세례받으신 후에 일부러 사단의 시험을 받으러 성령에 이끌려 나가셨어요. 그리고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는 분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단 말입니다. 아담은 실패했어요. 이스라엘 민족도 실패했어요. 근데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놈을 먼저 이기고 사역을 시작하는 겁니다. 엡 6장 11절에 보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 돼 있어요. 마귀의 간계, 속임수 그거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 곧 그리스도로 무장하라는 거예요. 또 벧전 5장 8절 여러분 아시죠?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해라” 이렇게 돼 있어요. 여러분 잘 아시는 요 13장 2절에 보면 가롯 유다 마음에 “예수 팔 생각을 넣었더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리고 요 13장 27절에 보면 가룟 유다가 “떡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해서 제자로 세우는 과정에서 이 영적 싸움을 바로 알도록 해줘야 되는 거예요. 어제도 공대생한테 얘기했는데 우리가 착각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뭘 착각하냐면 우리가 설교를 많이 들어서 많이 알면 내가 죄의 본성과 마귀를 이길 줄로 착각해요. 이해하는 것 가지고 여러분이 이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왜 역부족이에요? 여러분이 이해해서 여러분의 정신력과 의지력을 동원해서 사실 마귀를 못 이겨요. 이미 여러분 속에 들어와 있는 본성과 본성에서 올라온 욕구 있잖아요. 안전에 대한 욕구 그다음에 자존심 명예심의 욕구 거기에 여러분이 공격당할 때 여러분은 본능적인 반응을 하잖아요. 그게 이해력과 정신력보다 훨씬 세요. 여러분 자꾸 정신력과 자기 의지력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면 될 줄로 생각하는데, 아니라는 말이에요. 왜 아닌 줄 아세요? 지금 말한 사단이 더 세고 본성과 욕구가 더 세다고요. 거기에 오히려 지배를 당해요. 이걸 이기는 방법은 여러분 가장 깊은 속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부분이 영이잖아요. 그 영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님이 그 영을 감동하고 그 영에 울림을 주고 은혜를 베푸는 거예요. 그 영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마음과 생각에 막바로 영향을 줘요. 성령님이 임하는 은혜가 깊게 터치가 되면 감동이 오고 눈물이 나면서 여러분이 몇 날 며칠 여러분 의지력으로도 해결 안 됐던 습관성도 해결이 돼 버려요. 마음의 원한도, 미움도 녹아져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으니까 그래요. 여러분이 성령의 24시 제자로 서도록 하길 원하시는 거예요. 목요일 성탄 감사 예배 때 얘기했던 것처럼 반영이가 한 말처럼 다락방 청년들이 메시지는 많이 들어서 복음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근데 현실에서 기도가 너무 약하다는 거야. 그럼 져요.
그러므로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해서 제자로 세우는 과정에서 이 영적 싸움을 바로 알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단에 대한 말을 너무 남용하는 게 아니에요. 계속 본질적인 얘기를 하다 보니까 사단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문제의 탓을 사단에게 돌리는 게 아닙니다. 사단은 사단대로 심판받는 거고. 인간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겁니다. 여러분이 자꾸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해서는 진짜 회개시켜요.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꾸 알면서도 번번이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대해서 성령님께 그냥 “죄송해요”. 이게 아니에요. “나는 뭐 다 용서받았으니 괜찮아” 이거 아니라고요. 여러분이 그 죄에 대해서 아픔을 느껴야 돼요. 아픔을 느끼고 진짜 속에서부터 회개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회개가 중요해요, 안 중요해요? 중요해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이렇게 지금 계속 사단과 관계된 영적 메시지를 하잖아요. 이걸 여러분이 제대로 안다면 인간을 윤리 기준으로 안 봐요. 도덕 윤리 기준, 행위 기준으로 안 본다니까요? 저 사람이 잡혀 있는 것을 영적으로 보는 거예요. 잡혀 있고 평생 굳어져 있어서 복음도 전혀 안 들어가는 것이 탄식스러운 거예요. 그렇게 봐야 돼지, 한 번씩 과거 일을 끄집어내서 막 사람에 대해서 씹어대는 거 하잖아요. 아직도 영적인 눈이 안 열려서 그래요. 한 번씩 추억해서, 누가 그랬다 그러면서 막 사람에 대해서 원망하고 흉보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단한테 오히려 도와주는 꼴이에요.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야 되는 거예요. 그만큼 성령의 통치 받는 인생으로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치유되고 회복되고 여러분이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인생으로 바뀌고 문제보다 더 크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점점 더 믿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가 점점 수월해져요. 그러면 원망 시비 안 하게 돼요. 그렇게 되면 오네시모 사역도 할 수 있고 디모데 사역도 할 수 있어요.
3. 디모데를 제자로
1) 바울은 디모데를 제자로, 사역자로 삼았어요.
그리고 목회자로까지 세웠어요. 바울이 본서를 쓸 때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목회했던 때예요. 언제 디모데가 에베소 가서 목회했을까요? 로마에서 바울이 1차 투옥이 됐어요. 근데 석방이 됐어요. 석방이 돼서 스페인으로 간 겁니다. 그렇게 염원하던 스페인 선교를 떠난 겁니다. 그러고 돌아서 지중해로 쭉 와서 여기가 그레데 섬이에요. 디모데와 디도와 같이 동행했다가 여기다가 디도를 떨어뜨린 겁니다. “너 여기서 목회해라”. 그리고 또 출발해서 이게 소아시아거든요. 소아시아 지역에 에베소가 있잖아요. 에베소서에 디모데를 떨어뜨린 거예요. 에베소 교회를 맡긴 거예요. 그러면서 본인은 계속 선교하는 중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써서 보낸 겁니다. 목회 잘하라고 선교 여행 중에 편지 쓴 겁니다. 그러다가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다 불을 질렀어요. 그리고 기독교인이 불 질렀다고 뒤집어 쒸었어요. 그렇게 기독교인을 박해하기 시작했어요. 로마를 중심으로 대박해가 일어난 거예요. 그러는 상황 속에 바울은 기독교의 수장이잖아요. 우두머리잖아요. 여행 중에 어딘지는 몰라도 바울이 체포된 겁니다. 체포돼서 다시 로마로 압송된 거예요. 그래서 2차 투옥이 된 거예요. 2차 투옥은 중죄인으로 투옥된 거예요. 1차 때는 아직 재판받기 위해서 중죄인 취급 안 받았어요. 근데 이제는 사형 언도 받은 죄인으로 머물게 된 거예요. 얼마나 쓸쓸했겠어요, 그때 쓴 편지가 디모데후서다 이 말입니다. 근데 그가 어떻게 이 상황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디모데후서를 보면 얼마나 사도 바울이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 속에 있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만큼 영적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만큼 그리스도를 알고 누렸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디모데가 그리운 사도 바울
2절 한번 봅시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그리고 3절 “내가 밤낮 간구한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기서 청결한 양심이라는 것은 회개한 양심을 말하는 거예요. 항상 회개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선상에 서 있는 그 양심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4절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내 눈물을 생각하여 그랬는데 아마 바울하고 헤어질 때 디모데가 울었던 것 같아요. 안 그렇겠습니까? 그걸 기억하면서 너 보기를 원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5절 “이는 내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하니라”. 이거는 이제 바울이 그동안 디모데를 겪어 보니까 아주 순수한 믿음의 아들이거든요. 영적 아들이죠. 이 믿음은 먼저 내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내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외조모는 외할머니잖아요. 이들이 다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던 경건한 유대교 집안이었어요. 근데 다 같이 복음을 받은 거야.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간 거고 그 할머니와 그 엄마는 계속 기도를 했겠죠. 이런 상황입니다.
결론
디모데 하면 우리 교회에 딤사원이 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디모데로, 또 사무엘로 키우고자 한다는 거죠. 아무튼 핵심은 어릴 적부터 영적 메시지, 복음 메시지가 들어가는 거예요. 영적으로 이게 안 들어가면 그냥 지식이에요. 이 영적 메시지, 복음 메시지가 들어갔다가 이게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결정적인 체험이 있게 되는 거예요. 그 인생의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디모데로, 사무엘로 자라나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여러분이 이제 복음으로 정립된 제자로 세워져서 그만큼 복음 누리는 삶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럴 때 당연히 자연스럽게 나 중심의 인생을 안 살고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로 갑니다. 내가 불안하면 나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잖아요. 이타적인 인생을 이제 살게 된다고요. 생명 없는, 지금 죽어 있는 현장을 영적으로 보면서 여러분이 전도자로, 사역자로 살게 된다 이 말이에요. 정말 그쪽으로 들어가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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