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이브 초청 잔치 전도 메시지
지난주에 서울에서 큰 형님과 셋째 형님이 포항 투어하기 위해서 내려왔어요. 저는 5 형제의 막내입니다. 근데 큰형님이 나이가 벌써 78세예요. 그리고 셋째 형님이 70이에요. 그래서 마음에 형님들에 대한 전도의 부담이 있었어요. 어떤 부담이 있었냐 하면 특별히 셋째 형님은 교회를 다니시고 계시고 큰 형님은 어릴 때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일평생 하나님 떠나서 사셨어요. 포항에 이제 내려오셔서 아침에 10시 50분에 내려오셔서 저녁 6시에 돌아가신다는 거예요. “하나님, 7시간 동안 포항 여행도 시키지만, 특별히 큰 형님께 꼭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고 제가 기도를 했어요. 큰 형님이 복음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그래서 포항에 잘 내려오셔서 투어하고 떠나기 전에 숲 카페에 가서 한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어요. 숲 카페에서 제가 큰형님에게 정확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그 전한 복음의 내용을 잠시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한동대에 가면 고 김영길 총장님이 남겼던 그 슬로건을 학생들이 그걸 붙잡고 자기들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김영길 총장님이 재직 때부터 학생들한테 가르쳤던 내용인데 첫째가 “공부해서 남 주자” 두 번째는 “와이 낫 체인지 더 월드”“세상을 바꾸자” 그게 학교 슬로건이거든요. 김영길 박사님은 그렇게 사셨어요. 그리고 멋있게 가셨어요.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고 천국에 갔다고 생각듭니다. 제가 형님에게 그렇게 물었어요. 학교에 그런 슬로건이 있는데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쉽냐고 물어봤어요.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부해서 나 살기 바쁜데 그리고 “세상을 바꾸자”라는 슬로건이 있는데 세상 바꾸는 거 쉽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웃었어요. 사실은 세상 바꾸는 것보다 나 자신 하나 못 바꾸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한테 왜 이렇게 못 사는 이유를 형님이 혹시 아십니까 라고 물었어요. 형님 전혀 그런 거 생각 안 해보셨기 때문에 대답 못하시지요. 형님이 형수님이랑 싱가포르 가서 여행하는 배, 크루즈 선 타고 여행 일정을 정해놨더라고요. 큰형님은 지금 어떻게 하든지 재미있게, 마지막까지 잘 즐기다가 죽으면 끝난다 이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더 안타까운 거예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했는데 뭐 큰 형님은 대답할 수가 없죠.
그래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 욕구 중 가장 센 욕구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이 욕구에 다 잡혀 있기에 공부해서 남 주는 것도 안 되고, 또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안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알 텐데 첫 번째 욕구가 뭐냐 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 욕구예요. 그게 생존의 욕구예요. 안전의 욕구예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돈 벌기를 원하고 돈을 어떻게 하든지 모아서 자기를 위해서 쓰고 싶지, 돈이 많이 있어도 사실 또 불안의 동기가 있기 때문에, 이게 없어지면 어떡하나? 이런 동기가 있기에 돈이 많다고 남들한테 잘 주는 것도 아니에요. 이렇기 에 세상은 더 힘들어지고 세상이 변하지 않아요.
또 한 가지는 뭐냐? 진짜 돈도 있고 충분히 살 수 있는 보장이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 때문에 때로는 죽기도 해요. 두 번째 인간에게 가장 센 욕구가 뭐냐 하면 명예와 자존심의 욕구예요. 그래서 전부 다 사람들은 자기 명예를 실현시키려고 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도 거기에 걸려서 자살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큰형님도 거기에 해당되실 겁니다. 근데 이 두 가지 욕구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욕구지 이게 잘못된 게 아닙니다. 우리 몸뚱아리가 있으니까 자기 생존을 위해서 욕구를 가져야 하잖아요. 잘못된 게 아니에요. 또 명예 자존심의 욕구도 인간이면 얼마든지 가져야 하는 부분이에요.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욕구를 위해 욕심을 부린다는 거예요. 불안 때문에 자기가 충분히 돈 벌어놓고도 난 못 줘요.
불안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또 한 가지 명예 자존심은 중요한 거거든요. 우리는 자기 인생의 자존감과 가치성을 느껴야지 만족이 되는 존재가 사람이에요. 근데 문제는 뭐냐? 자기는 높아지기를 원하고 딴 사람은 낮추려고 하는 욕구를 갖고 있어요. 이거는 못된 자존심이죠. 그래서 밑에 있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위에 있는 사람은 기득권 안 놓치려 하고 권력을 휘두르기를 원해요. 자기를 높이고 남은 낮추는 자존심의 욕구를 가지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셨다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에덴동산에 인간을 두셨을 때 인간은 어떤 존재냐? 성경에만 얘기하고 있는데 인간은 “God,s Image”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자식을 보면 누구 형상이에요? 부모 형상이에요. 민규는 우리 아빠의 형상이에요. 엄마의 형상이에요. 맞죠?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지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얼굴이 있으신 분이 아닌데 하나님의 어떤 부분을 인간이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지 이거 잘 몰라요.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형상이냐 하면 하나님이 갖고 있는 신적 속성이 있어요. 하나님이 갖고 있는 지, 정, 의를 닮아서 인간도 지, 정, 의를 갖고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은 거예요. 동물보다는 탁월하잖아요. 또 한 가지는 동물에게 없는 하나님의 형상 부분이 있어요. 그게 인간에게는 도덕 윤리적으로 살 수 있는 양심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지으신 거예요. 만약에 양심이 없으면 완전히 세상은 짐승 판이 되는 거예요. 그렇죠? 마지막으로 최고로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은 스피릿이 있어요. 그거를 영 또는 영혼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본성을 인간이 타고난 거예요. 근데 지금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몰라도 인간은 여전히 종교 행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는 하나님이 인간과 교제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이 정말 배경 되어 주시고 모든 에덴의 축복을 주시니까 안전에 대해서, 생존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었어요. 맞죠?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에덴동산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받았어요. 하나님이 왕이시라고 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예요. 그러니까 인간은 얼마나 존엄한 존재고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일지 몰라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어떤 문제가 생겼냐 하면 하나님께 범죄한 문제가 생겼어요. 제가 대구에서 한 3년 있다가 포항에 내려왔는데 대구에는 교회보다 무속인 집이 더 많더라고요. 성경에는 이 무속인 속에 들어가는 영이 조상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거를 소위 귀신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챗 지피티로 물어봤어요. 우리나라에 지금 무속인 인구가 얼마나 되는가? 물어봤거든요. 최소 30만 명이 된다는 거예요. 지금 현재 무속인들이 30만 명이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에게 신병이 생기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을 몸에 받아들이는 거거든요. 그러면 무당이 되는 거예요. 귀신이 영감을 줘서 점괘가 나오게 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도 이 귀신이 나오는 거예요. 이 귀신이 타락한 천사라는 거예요. 이 천사의 우두머리인 천사장이 있는데 그거를 소위 성경에서는 사탄, 마귀 라고 하는 거예요.
이 에덴 동산에서 문제가 일어나게 됐는데 이 사탄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꾀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되 인간에게 딱 한 가지 절대 지켜야 할 명령을 주신 거예요. 그게 뭐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에덴동산을 다 다스릴 수 있지만 딱 한 가지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이 피조물이지, 하나님은 아닌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자기 위치, 자기 포지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것을 명령한 거예요. 이거는 인간에게 생명과 죽음이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걸 잘 모르는데 성경에는 분명히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선악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 나다. 그래서 선악의 기준인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말씀을 따라 살면 영생을 얻게 된다. 의롭고 거룩한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그러니까 니가 선악의 기준이 되면 안 된다” 이게 명령이에요. 근데 이 사탄이라는 놈이 인간을 꿰이는 거예요. 어떻게 꿰이냐 하면 니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해도 죽지 않고 오히려 니가 눈이 밝아지고 굉장히 지혜롭게 되어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선악과라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꿰인 거예요. 그런데 아담이 자기 포지션을 지키지 못했어요. 정말로 하나님이 선악의 기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인간이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서 하나님처럼 된다니까 욕심에 빠져서 불순종을 해버리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축복을 못 누리도록 인간은 실낙원 했어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게 성경의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 죽음이 왔어요. 그때부터 인간에게 고통의 문제가 오게 된 거예요. 환경의 저주가 와버렸거든요. 그때 생로병사가 다 온 거예요. 인간은 아까 말한 두 가지 기본 욕구에 빠지게 된 거에요. 이 기본 욕구는 필요한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했으면 전혀 문제가 안 됐는데 지금은 이게 너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이것을 위해서 처세하고 투쟁해요. 지금 돈 때문에 사람도 죽여요. 국가 간의 전쟁도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이 세상에 드러난 모든 문제는 사실은 그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유혹했던 마귀에게 꼬임을 받아서 인간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
제가 공대 가서 전도하는데 공대는 진짜로 서울대 수준이잖아요. 애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몰라요. 그리고 얼마나 집중시켜서 연구에 매진하도록 하는지 몰라요. 제일 여유가 없어 하는 애들이 공대에요. 그런데 제가 공대 애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과학은 인공지능이 나와서 초과학 시대로 들어간다. 그런데 지금 인간성은 점점 더 무너지고 있다. 인간관계는 더 어려워지고 타락은 더 심해진다. 제가 그런 얘기를 해요. 그러면 이 두 가지 기본 욕구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 욕구 때문에 정말로 발버둥 치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스트레스 받아요. 스트레스 받으니까 뭔가 풀 수 있는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사람들이 찾잖아요. 그래서 세상은 가면 갈수록 더 타락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 하면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라고,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그래서 하나님이 진짜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축복을 누리라고 성경은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이미 죄의 본성을 갖고 있어요. 욕심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불교처럼 닦아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닦아서 해결된다면 불교를 믿으면 되거든요. 그리고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자기 원하는 대로 살면 돼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인간이 지금 빠져 있는 죄와 고통과 죽음과 죽음 이후 지옥의 문제에서 구원을 받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미 구약 성경에 300번 이상 예언이 되어 있어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간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고 3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이 예수님을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를 못했어요. 왜요? 인간의 몸으로 낳으셨으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을 실제로 행하셨어요. 이거는 예수님이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리고 인간이 십자가에 죽으면 그 죽음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 못 해요. 죄인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어떻게 딴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근데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나의 죽음은 너희를 위한 죽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떠난 모든 죄인이 나를 의지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죽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3일 만에 부활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부활했어요. 그래서 제자들도 진짜로 믿게 된 거예요. 기독교에는 성탄절이 있고 부활절이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예수님을 진짜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믿으면 되어요. 내가 죄인이 아니면 예수님 믿을 필요 없어요. 내가 의인 같으면 예수님 믿을 필요 없어요. 그러나 제가 말한 것처럼 나도 두 가지 기본 욕구에 빠져서 일평생 욕심부리면서 투쟁하면서 수많은 죄를 짓고 있는 죄인이 맞다고 한다면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영접하는 자,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은 무속인처럼 귀신이 들어오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홀리 스피릿, 성령이라고 그래요.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머리로 믿는 게 아니고 진짜 예수님이 영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믿는 거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막혀 있었던 영이 하나님과 교제가 오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안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들어오시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 아버지라는 진짜 고백이 나오면서 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돼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들어오시게 되면 죄 사함 받고 그리고 이제는 기도가 되면서 내가 하나님이 다시 나의 보호자가 되시고 배경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이 나의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어 주시는 이 은혜를 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고 영원한 천국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큰형님한테 얘기했거든요. 형님이 끝까지 다 들었어요. 형님이 이런 얘기를 끝까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귀한 분들이 여기 와 있는데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세상에 왜 고통이 있고, 왜 인간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왜 인간은 육신적인 게 만족해도 만족이 없는지 오늘 이런 말씀을 통해서 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 중에 만약 하나님이 이 시간에 목사님을 통해서 너를 위해서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희생했다 너의 모든 죗값을 해결하고 니가 죄인인 걸 인정하고 나를 믿으면 죄사함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줬다. 하나님이 만약에 목사님 통해서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겠느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진짜로 이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오늘 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사람은 오늘 목사님 따라 한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만 눈을 감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속에 정말 예수님의 마음에 영접해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목사님 기도를 따라서 마음으로 기도를 따라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어요 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영접할 사람은 따라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지금 세상은 발전하지만,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고 악한 생각에 빠지고 수많은 죄악 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죄의 본성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제까지 내가 주인으로 살았음을 인정합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았던 죄를 인정합니다. 이 죄를 고백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님, 저의 죗값을 위해서 죽어주신 것을 믿습니다. 저도 용서해 주시고 저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주시옵소서 구원해 주십시오.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제 마음에 모시오니 영원히 주인 되어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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