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소양(딤후 2:1~7)
소양이라는 말 많이 안 쓰죠. 소양이란 말은 지식이나 마음가짐을 다 포함하여서 어떤 자질을 갖추는 것을 소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도자의 소양의 첫 번째는 뭘까요? 첫 번째는 믿음이에요. 믿음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절대 권위, 예수님의 절대 권위에 대한 믿음을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믿으면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 안 할 수 없는 거죠. 그 하나님 말씀이 순종이 안 된다는 거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못 믿는 게 가장 큰 이유예요. 마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내용이 나와요. 사실 엄청난 기적이고 센세이션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소원이 유대인들에게 생긴 거거든요. 그 사건 이후에 연결되는 사건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그런 내용이 마 14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마치고 나서 혼자 따로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 거예요. 예수님 없는 상태에서 가는데 밤 한 4경 정도 됐다고 돼요.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밤 3시에서 6시 사이래요. 그러니까 아주 칠흑 같은 그런 밤이 아니겠어요. 근데 예수님이 기도 다 마치시고 물 위로 걸어오시는 거예요. 제자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어요. 전부 다 놀래서 유령이다 이렇게 소리를 친 거예요. 그러니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랬을 때 베드로가 엉뚱한 반응을 합니다. 베드로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서 굉장히 감동을 받은 것 같아요. 이분 진짜 하나님 아들 맞다. 그래서 그랬던지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여서 물 위로 걷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요청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허락을 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베드로가 인류의 최초의 인간으로 물 위에 섰는데 안 빠지는 거예요. 물 위를 걷는 거예요. 기적이죠. 근데 그때 갑자기 바람이 확 분 거예요. 물결이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무서워서 빠져가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순간에 베드로를 건져내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렇게 얘기를 해요.
여러분 베드로가 만약에 이렇게 바람이 확 불고 물결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 현실에 안 놀라고 계속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유지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안 빠졌죠. 그러니까 이게 메시지예요. 말씀에 대한 믿음,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믿음이 전도자의 첫 번째 소양입니다. 사실 이거 있으면 거의 다 승리하거든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소양이 뭐냐? 그것은 이제 사람 살릴 수 있는 주님의 사랑, 주님의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믿음, 사랑이거든요. 거기다가 소망이 더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를 건져내셨어요. 십자가에서 그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서 죽어주셨어요. 근데 그 사랑을 하도록 우리에게도 성령을 주신 거예요. 그렇죠? 베드로처럼 여러분에게도 부는 바람이 있어요. 인생 바람이죠. 그 바람이 여러분을 빠뜨려 죽일 바람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오히려 그 바람은요. 여러분을 키우고 세우시고자 의도하고 있는 바람이에요.
오늘 말씀이 잘 받아지기를 바랍니다. 그 바람이 여러분을 빠뜨려서 죽일 바람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의 믿음이 점검되도록 그리고 정말 환경에 있었던 믿음,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믿음을 내려놔라 이거예요. 믿음을 옮기라는 거예요. 누구한테 보좌에 계시면서 지금 내 안에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 믿음을 옮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적으로 여러분이 그 불안할 때 그 바람 불 때 기도가 더 필요한 거예요. 기도 안 뚫히는 사람은 다 자기 생각에 빠져요. 끊임없이 자기 생각과 계산에 빠져서 죽어요. 인생 살다가 위기와 급박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어요. 그런 경우에 현실과 환경을 보고 본능적으로 우리는 어디로 빠집니까? 본능적으로 이성의 논리와 계산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우리의 합리적인 이성이 얼마나 빨리 작용을 합니까? 이것이 지금까지 사단이 여러분에게 형성시켜 놓은 체질이에요. 지난주 말씀처럼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그 감정과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성령이 주시는 이 감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돼요. 기도로 이게 구분이 돼야 해요. 그래야 기도가 돼서 기도 응답을 받지. 이 기도를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안 자라나요. 오히려 문제 앞에서 밀려 버려요. 성령께서는 두려움을 주지 아니하신다고 그랬어요. 디모데한테 얘기했잖아요. 성령이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이 말씀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고 믿도록 성령께서는 영의 생각으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에, 절대 이정표가 있기 때문에 이게 여러분을 죽도록 만드는 바람이 아니다. 이 바람을 통해 주님은 여러분을 최고의 자녀로 키우기를 원하셔요. 사단이 여러분을 함정에 빠뜨려서 3, 6, 11장의 본성과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로 어릴 때부터 크게 만든 거거든요. 이제 성령님이 영의 생각으로 영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교훈하시고 깨닫게 하셔서 그 육신의 논리와 사고와 생각에 빠지는 그 부분이 극복되도록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때 필요한 게 바람이에요.
여러분 세상 부모도 자녀를 최고 자녀로 기르려고 하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까? 낳기만 하고 키우지 않는 부모는요. 못된 부모죠. 못되고 악한 부모라고 얘기하는 거죠. 부모는 자녀를 길러서 교육해서 최고 수준의 자녀로 키우기를 누구든지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더하지 않겠냐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워서 부모의 경영을 맡기기를 원해요. 만약에 부모가 경영하는 만약에 큰 회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어떡하겠어요? 경영권을 넘기는 거예요. 그럼 경영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상속까지 하는 거예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에덴을 창조했을 때 아담을 경영자로 세운 거예요. 경영자로 대리 통치자로 세운 거예요. 그 나라를 주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믿고 따르는 백성,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우상과 절대 비교가 안 되는 그 우상을 따르지 않는 백성 그런 백성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1. 여러분의 정체성과 여러분의 삶의 방향과 사명을 항상 확인하셔야 돼요.
1) 여러분은 하나님 자녀요 전도자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그 나라 소원을 위해서 내 인생의 방향을 맞췄습니다 라고 고백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의 사명은 불신자처럼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세상 성공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주님이 붙잡아주옵소서” 정확하게 그렇게 기도하셔야 돼요. “저는 이 산업을 발전시켜서 나를 위해서 살지 않을 겁니다. 전도 선교를 위해서 살 겁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해서 살 겁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내 일이 아닙니다. 내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하셔야 돼요.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요. 세상 삶의 전도자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언약적 인도를 받도록 돼 있어요. 주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여러분 머리 좋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셔요. 여러분의 지혜와 여러분의 능력을 갖고 내 일을 하라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경영을 맡기고 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돼야 될 게 이런 부분이에요. 엡 4:13, 15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무엇을 원하셔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사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자라나도록 하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리스도는 철저히 아버지께 순종했잖아요. 그렇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평생 사명 감당을 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는 24시 교제하셨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것과 아는 일이 먼저 회복돼야 해요. 그게 이제 머리로 아는 게 아니거든요. 성령으로 아는 거예요. 믿어지는 거예요. 그게 되어지면 여러분이 영이 편안해져요. 그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교제가 여러분에게 행복한 시간이 돼요. 부모는 최고의 자녀로 길러서 부모의 경영을 맡기기를 원하며 그 기업까지 상속하기를 원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누가 그럼 영광을 받아요? 부모가 영광을 받죠. 하나님 아버지도 여러분을 통해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환경이나 현실 보고 눌리지 말고 거기에 불안 떨지 말고 주님을 믿고 기뻐하라는 겁니다. 그 말은 “주님이 이 문제의 주인입니다. 이 문제보다 크십니다. 이 문제가 주의 손에 달렸습니다”. 이런 고백하는 아들, 딸이 되라는 거예요. 만약 그게 안 믿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게 안 믿어지면은 항상 내 머리 믿고 내 능력으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요? 자기가 했는데 뭔 영광을 돌려요?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것이 아니에요. 주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면서 지금 여러분 속의 주인이셔요. 그리고 그분이 통치자요. 연출자십니다. 풍랑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기를 원하셔요. 여러분 기도할 때 기도가 이제 뚫려야 돼요. 저 같은 경우에 이제 기도 막힐 때 많거든요.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에 기도가 막힐 때가 참 많았어요. 그럴 때 기도를 먼저 뚫어야 되잖아요. 무조건 뭐 내가 필요한 걸 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일단 성령님이 이끄시는 기도가 돼야 되잖아요. 근데 이제 성령님이 다시 임재 통치하시려면 내가 나를 점검해야 되잖아요. 가장 뭐가 문제냐 하면 내가 주인으로 산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주인으로 사니까 자꾸 영적으로 막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 내가 또 주님을 놓치고 내가 살았네요. 그 부분을 회개하기 원하셔요. 또 성령님이 성령님을 거스르게 하는 죄를 지을 수 있거든요. 그럼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 소멸 당해요. 기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항상 코드를 맞춰야 되거든요. 주님과 사실 그게 기도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깊게 자기 내면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것을 자꾸 고백하고 회개하게 만드셔요. 그러면 기도가 뜷려요. 그래서 풍랑이 선용 됩니다. 모든 연출을 통해서 여러분을 최고의 자녀로 만드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만드시는 거예요.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이제 주님이 믿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육신의 본성으로는 불안이 들어와요. 근데 보좌 통치하시면서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게 믿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훨씬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좀 더 세게 믿어지면 문제는 여전히 있는데도 주님을 인정하면서 기뻐하게 돼요. 제가 예전에 기도 잘 못했을 때는 자주 늘리고 무기력하고 육신적인 뭐 재미있는 거 없는가? 그런 것만 찾고 저도 많이 그랬거든요. 이런 영적 상태를 안 바꾸고 영적 상태가 성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수가 없어요.
2) 여러분의 인생 방향과 사명이 무엇인가?
여러분 인생의 방향과 사명이 어디 있습니까? 진짜 하나님 소원인 하나님 나라와 그 통치 실현과 전도자의 삶에 있어야 해요. 진짜 내 인생이 방향이 맞춰져 있으면 그동안 들었던 메시지 생각해 보세요. 내 일이 내 일이 아닌 거예요. 내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닌 거예요. 자꾸 하나님의 방향과 안 맞추니까 내 일이 내 일로 계속 처리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것은 스톱 시켜야 되잖아요. 방향을 하나님의 소원에 맞춰야 되잖아요. 근데 정말 이 사람이 방향 맞췄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니 인생의 책임자다. 내가 니 안에 성령으로 임재 통치해 주겠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도 문이 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들어와도 나 너무 피곤해 죽겠어. 진짜 일도 잘 안 되고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나자빠지는 게 아니고 “오늘도 주님이 인도하셨어” 이렇게 들어가는 거잖아. 정말 건수가 한 건 두 건 터지는 게 아니라 막 터지면 사람 반 죽잖아요. 근데 그때가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걸 고백해야 하는 시간이에요. 근데 눌리니까 잘 안 되잖아요. 불안하니까. 근데 정말 믿음의 딱 중심을 가지고 딱 기도하는 거예요. “주님, 내 본성으로는 지금 너무 지금 시달립니다. 그렇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그리스도시고 내 인생 방향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소원에 맞췄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주님이면 이 문제 풀 수 있습니다. 주님이면 이 사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개인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딱 고백하게 되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간섭이 들어와요. 내가 생각 못했는데 그 당일에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어요. 일주일 기간 속에 그 어려웠던 문제가 딱 해결이 되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 자녀는 이런 걸 맛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제일 잘 응답이 안 오는 게 사람 바꾸는 게 제일 응답이 잘 안 와요. “불신 남편 돌아오게 해달라” 이러면 시간표가 있잖아요. 근데 여러분 일이나 사건들은 빨리빨리 응답받을 수 있어요. 오늘 여러분이 이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어제 핵심 메시지도 아침, 낮, 밤 그 시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핵심 메시지 또 하시더라고요. 원단 메시지니까 이게 사실은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만약에 이게 되는 사람은 자기의 정체성, 방향, 사명이 날마다 확인되고 그 사명대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오늘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메시지가 맞아떨어져요.
2. 디모데에게 준 메시지
1)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하라고 한다.
우리 1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이게 무슨 말이에요? “니 영적 상태부터 회복해라”. 그 말 아니겠습니까? “항상 기도가 되는 영적인 역량을 갖춰라” 그 말 아니겠습니까? 사실 디모데는 이때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된대요. 교회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사실 30대 후반 정도 되면 담임 목사 하기에는 아직 젊잖아요. 지금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가 맡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니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해라(딤전 4:12). 이런 말이 나와요. 디모데가 성향적으로 유약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성향적으로 대범하지 않은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바울이 2차 체포가 됐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들으면서 디모데가 위축당할 수도 있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부하는 말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약해도, 성향이 약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게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는 강점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의 약점을 오히려 거꾸로 생각하세요. 나는 이것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를 더 의지한다. 오히려 거꾸로 생각하세요. 성령께서는 인생 바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도록 진짜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를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강하게 만들어 주셔요. 성령님의 실제 이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가 중요한 거죠. 이런 성령의 역사가 안 믿어지고 안 체험 되면은 믿음 성장이 안 돼요. 염려를 못 이겨내요. 염려가 막 들어오면 생각으로 빠져요. 그러면서 “내가 빨리 어떻게 처리해야 돼지” 막 내 생각이 막 올라와요. 여러분 첫째가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강해지는 거예요. 그거는 단회적인 기도 가지고 안 돼요. 기도 체질이 돼야 해요.
2절 2절이 뭐예요? “또 니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게 뭐예요? 제자 삼으라 이 말 아닙니까? 그래서 재생산하라는 말 아닙니까? 지금 디모데에게 이 중요한 부분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여러분 재생산이 돼야지 세계 복음화가 되고 지역 복음화 민족 복음화가 돼요.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도 되는 거예요. 재생산하는 제자 이게 우리의 비전이에요. 기존 신자 중에도 충성된 자가 있죠. 불신자 중에도 충성된 자가 있어요. 사명자가 있어요. 그래서 불신자 중에서나 기존 신자 중에서 예수 믿어도 충성된 자가 결국 제자가 돼요. 재생산하는 제자가 돼요. 이 사람이 교회 제자도 되고 현장 제자도 된다 이 말입니다. 3절에서 6절까지 보면 충성된 자를 세우기 위해서 그걸 위해서 니가 먼저 세 가지가 돼라 는 겁니다. 첫 번째, 3~4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그랬어요.
(1) 첫째 그리스도인의 병사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죠.
병사는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죽을 수도 있어요. 고난도 감당해 내야 되잖아요. 전쟁하는데 고난이 있을 수 있죠. 저는 이 병사에게 담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바울은 사실은 많은 고난 당했거든요. 유대인들에게 당했죠. 이교도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했잖아요. 이걸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극복했어요. 그러면서 4절에 보면 “병사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한다”고 그랬는데 정말 방향성이 나와야 되거든요. 방향성이 나온 사람은 사실 24시간 그걸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게 만드셔요. 지금 세상 문화 따라가면 여러분 믿음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래서 연속극은 끊으세요. 그냥 재미로 보는 유튜브는 끊으세요. 이게 여러분의 관심과 생각을 얼마나 뺏어 먹는지 몰라요.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요.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그 말은 병사가 가져야 될 충성된 자세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 병사가 가져야 될 소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자기 직장 일, 가정 일을 소홀히 여기라는 게 아니라 병사로서 감당해야 할 영적 싸움을 위해서 직장도 잘 감당하고 가정도 잘 감당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예전에 제 영적인 역량에 미달하다 보니까, 육신적으로 교회 일을 하고 주의 일을 하려고 막 애를 쓰다 보니까 집에 가서는 쉬고 싶고 집에 가서는 아내의 필요를 생각 못 하는 거예요. 지금도 그런 면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강하면 자기 주 업무도 잘 감당하고 자기와 관계된 일도 잘하게 돼요.
(2) 두 번째는 경기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5절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그랬죠. 두 번째는 경기자가 되라는 말씀이잖아요. 경기자는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에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에요. 지금 여러분 중에 “나는 성공이 목표야, 나는 돈 버는 게 목표야” 이런 사람 같으면 빨리 교정해야 해요. 특별히 청년들 정말 이 부분이 교정되셔야 해요. 아직 여러분이 제대로 은혜를 못 받은 거예요. 아직 여러분의 가치관, 인생관이 안 바뀐 거예요. 경기자는 항상 훈련해야 되잖아요. 그리고 법대로, 규칙대로 해야 돼요. 여기서 법대로 규칙대로 하라는 거를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하나님 말씀의 기준대로 사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바로 경기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해요.
돈 버는데 불의를 행하고 돈 버는데 죄악을 저지르고 이러면 안 되잖아요. 법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자리 싸움하고 있고 법대로 하는 거 아니잖아요.
성경 한 군데를 좀 더 찾기를 바랍니다. 고전 9장 24~27절 같이 읽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지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여기 중요한 메시지가 참 많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를 경주자에 비교하고 있죠. 그런데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원칙을 설명하고 있어요. 첫째 절제하고 썩지 아니할 관을 얻고자 한다는 거예요. 둘째는 향방 방향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않고 허공을 치지 아니한다고 돼 있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정말 정체성과 방향과 사명이 정확히 나와야 하는 거예요. 불신자는 지금 얼마나 성공하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근데 그게 뭐예요?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 살고 있는 거예요. 허공을 치고 있는 거에요. 거기에 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살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향방 없는 방향 없는 인생을 살지 말고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거든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그 상급을 받게 된다고요. 그걸 정말 전제하고 살라는 거예요. 마지막 셋째는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이어서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먼저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그랬는데 이 몸은 단순히 육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죄의 본성이 지배하는 몸을 말하는 거예요. 이 몸을 죄의 본성에 드리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다락방에서도 그래야 되는 거죠. “이 몸을 쳐” 그랬는데 죄의 본성에 지배받는 몸의 물욕이 있죠. 명예욕이 있죠. 성욕이 있죠. 자아 욕이 있죠. 이거 다 치라는 거예요. 그리고 쳐야 될 이유는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 함이로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이게 뭔 말입니까? 구원을 상실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종이 된다는 거예요. 사명 완성에 실패한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나는 이렇게 이렇게 목회하고 이렇게 이렇게 기도 많이 하고 이렇게 이렇게 나는 믿음 생활을 잘했습니다” 하는데 주님이 “너, 상 없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저도 가봐야 알겠죠. 그러니까 사실은 내적 성찰이 참 중요해요. 항상 깨어 있어야 될 필요성이 있는 거예요. 은혜 받을수록, 큰 일에 쓰임 받을수록 뭐라고 그랬어요? 겸손해져야 한다고 그랬어요. 은혜받을수록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야 되는 겁니다. 경기자는 법대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자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좌의정 우의정 자리에 앉혀주세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뭐라 그랬어요? “천국은 오히려 섬기는 자가 높은 자고 섬김 받는 자가 낮은 자다”. 거꾸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천국의 원리라는 겁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수고하는 농부와 같이 되라는 말씀을 하고 있죠.
6절에 보면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농부는 수확을 바라보면서 참고 견딥니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우리는 아직최종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근데 우리에게 최종 보상이 있어요. 수확한 열매가 우리의 보상이 돼요. 농부는 추수한 곡식을 통해서 제일 먼저 기쁨을 맛보게 되는 사람이 농부죠. 전도자는 씨를 뿌리는 기쁨이 있고 자라나는 기쁨이 있어요. 우리가 말씀 사역하는데 성장하는 거 보면 되게 기뻐요. 하나님은 자기 소원에 딱 방향 맞춘 사람에게 주인 책임자가 되어 주셔요. 그 사람의 필요까지도 채워주셔요. 그리고 계속 하나님 소원의 방향 맞추면 영적인 성장이 돼요. 하나님 일꾼의 영적인 성장을 주님이 계속 이끌어주시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데 충성을 내 힘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강해지는 게 제일 중요한 원칙이에요.
결론
아침 낮 밤 기도하라는 거예요. 환경 상황에 육신의 계산으로, 머리로 들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생각으로 인생 살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 인기, 사람의 평가에 좌우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권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의 권위를 믿고 진정 그 말씀 따라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전도자의 소양입니다. 오늘 이 소양을 갖추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래요. 일단 방향이 안 맞으면은 내가 뭣 하러 절제해요. 내가 육신으로 만족하는 인생을 산다면 오늘 말씀처럼 살 필요가 전혀 없어요. 오늘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어가서 역사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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