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모든 것을 참는 이유(딤후 2:8~13)

우리 모두는 과거 불신자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얼마나 바로 알고 거기서 빠져나오느냐가 관건입니다. 과거에 빠졌던 상태를 정확히 알고 빠져나오는 전환이 확실해야 됩니다. 저는 1980년도에 구원의 체험을 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영적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성령이 들어오시니까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믿어지는 게 되고 또 성령님이 교제가 되도록 이끄시는 삶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가 잘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구원받아 놓고도 이 영적 상태가 안 좋을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구원받고도 육신적으로 살았을 때가 참 많았으니까요. 영적 상태가 일단 중요하잖아요. 구원받은 사람은 일단 영적인 감각은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영적 상태가 눌리면 답답한 거예요. 기도가 되면 그 답답함이 제거되고 그렇죠. 이런 영적인 상태의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말씀을 알아듣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뭐가 돼야 합니까? 성령께서 실제 이끄시는 기도가 돼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근데 이 기도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요. 첫 번째가 자신이죠. 자신 이때까지 사단의 통로가 되어 주었던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거예요. 두 번째는 우리를 그렇게 빠뜨리는 사단이라는 놈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교단에서는 죄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않고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세력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죠. 저는 기존 교회에서 사단에 대한 설교를 많이 안 들었어요. 우리 교단에 들어와서 사단에 대해서 들으면서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 같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도 사단이 그렇게 지배할까?” 이런 생각을 제가 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없었던 체험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한 번씩 실제 그냥 눌린다. 답답하다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명치 끝이 꾹 눌리는 체험을 하는 거예요. 명치 끝이 눌리든지 복부 쪽이 눌린다든지 이런 체험을 하는 거예요. 누가 손을 대나? 손대는 거 아니잖아요. 근데 실제로 이렇게 꽉 누르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때로는 돌아다녀요. 가슴이 눌렸다가 복부가 눌렸다가 이런 체험을 하면서 이게 뭐지? 사실 기존 교회에서 그런 체험이 없었어요. 근데 이게 기도가 되면 풀려요. 그런 증상이 없어져요. 사실 제가 목사인데 설교도 해야 하는데 이런 자꾸 영적인 눌림이나 압박이 오면 제가 설교를 제대로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내 상태에 대해서 염려하고 긴장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대표 기도 하려고 그러면 긴장하시잖아요. 그런데 대표 기도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압박감이 온다든지 눌린다든지 그러면 그것 때문에 또 긴장하게 되잖아요. 그렇죠?
한 번은 제가 기도회 인도를 해야 하는데, 아마 그때가 집중 훈련 때일 것 같아요. 초창기 집중 훈련 때 한동대에서 사역하고 오는데 기도회에 대한 눌림이 오는 거예요. “이게 또 오네” 이런 느낌이었어요. 이런 눌림이 오는 거예요. 근데 한편에서는 제 속에서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 그때 딱 들어오는 거예요. 어떤 생각을 주시냐 하면 “기도회를 하는데 왜 염려하고 눌리냐”? 이러는 거에요. 기도회는 성도들이 은혜받는 시간이고 영적으로 보면 기뻐해야 할 시간이잖아요. 행복한 시간이 돼야 정상이잖아요. 근데 기도회를 인도한다는 거에 대해서 눌림이 오는 거는 정상적인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이 저에게 왔어요. 사실은 성령님은 니가 눌리고 압박 당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오히려 내가 기도회나 설교에 대해서 눌리는 게 아니라 성도들이 살아나는 거에 대해서 기뻐하고 오히려 즐거움이 와야 되잖아요. 그게 성령이 주시는 생각인데 아무튼 저는 구원받아 놓고도 이렇게 심령이 눌리고 답답하고 염려가 오는 게 많았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역할 때도 이거 잘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긴장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깨달은 바가 있어요. “이거는 영적인 거다, 이런 증상이 그냥 생리적인 거나 일반 육신적인 게 아니다.” 이거는 여태까지 내가 염려하고 놀리고 긴장하는 게 영적인 거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사단이 창세기 3장 6장 11장에 함정에 빠뜨려 놨잖아요. 그리고 영의 죽고 육신의 본성으로 인간의 열심으로 사는 체질로 만들어 놨잖아요. 그러면서 사단은 누르고 압박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염려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드는 거예요. 성령님이 다스리신다면 오히려 기뻐해야 되거든요.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과 감사를 주면서 즐거움을 주는 게 맞잖아요. 근데 저는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사역을 하려고 하면 사람 의식하고 그게 워낙 어릴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당연한 줄로 생각하고, 잘 못하면 어떡하나 창피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또 긴장하했어요. 이걸 영적으로 봐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이제 영적인 눈과 사실로 바로 보는 게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영적 상태를 뒤집을 수 있었던 거든요. 하루 세 번 정식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집중 기도하는 체질이 만들어지면서 이런 눌리는 것들이 꺾여져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평안함을 누리는 체험을 하는 거예요. 영적인 거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영적인 거예요. 기도할 때는 내 생각이 아니에요. 영의 생각이 떠오르면서 영의 말씀으로 인도받는 겁니다. 믿음이 생기고 말씀이 깨달아지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배경이시고,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이 있으시다 이런 게 믿어지니까 평안해지는 거예요. 영적인 세력이 꺾여져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뭐가 보입니까? 과거에 내가 늘 익숙했던 그 영적 상태가 올바른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불신자 상태에 내가 어떻게 빠졌고 어떤 영적 문제 속에 있었고 그 속에서 내 체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런 거를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너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기존 교회에서 별로 안 하거든요. ‘그냥 잘 믿어라. 열심히 해라.’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이걸 깨닫고 보는 눈이 열리는 만큼 내 영적인 문제, 내 불신자 상태, 거기서 형성된 것들을 보는 눈이 열려요. 그것 보는 만큼 그것을 극복하고 따라가는 게 아니고 성령님이 그것을 분별도 하고 극복도 하고 뒤집기가 되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그냥 인본주의 체질로 살 수밖에 없구나.” 깨달아져요. 사실 성령으로 안 살면 모든 게 인본주의 체질입니다. 그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도 내 열심과 내 노력과 내 의지력, 정신력으로 잘 믿으려고 하는 것이 상당히 많았어요. 예수 믿는 거는 자기 열심과 정신력으로 믿는 게 아니에요. 그야말로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오히려 인본주의 체질 속에서 뭐든지 잘하려면 들어갔던 그 긴장이나 그 힘은 빼야 해요. 왜냐하면 인간의 육신적인 노력으로는 영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내 힘은 빼고 바른 신앙 고백을 하셔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른 신앙 고백을 하게 될 때 사단이 힘을 잃어요. 바른 신앙 고백하면서 그분이 내 안에 지금 성령으로 통치하시잖아요. 내 안에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는 거예요. “모든 진리와 모든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으로 임재, 통치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거에요.
요새도 한 번씩 기도가 방해되면 “사단아 고맙다”이거 기도해요. “눌러줘서 고맙다. 내 힘으로 하지 않는다. 나를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네 머리통을 박살내시고 하늘에서 너를 내쫓아내시고 이 땅에서도 정복당하고 패배 당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뿌리내린다. 너는 그리스도 앞에 절대 항복하며 벌벌 떨며 떠나가는 존재인 것을 나는 믿는다”. 사탄한테 이걸 선포하는 거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 시간 모든 진리 생명 능력의 성령으로 임재 통치의 인도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지금도 해요. 근데 효과가 있어요. 제가 슬기 자매한테 이 기도를 하라고 여러 번 얘기했거든요. 근데 못해요. 그것조차 안 돼요. 그러니까 이런 고백하는 것 자체도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정말 예수님을 손님처럼 두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손님으로 두면 역사를 못하셔요. 그래서 주객과 체질을 바꾸라는 거예요. 믿음의 체질이 되라는 거에요. 의탁의 체질이 되라는 거예요. 순종의 체질이 되라는 거예요.
이게 절대 한꺼번에 안 돼요. 여러분이 안 됐던 기도가 뚫리고 또 기도가 막혔다가 또 바르게 믿음 고백을 했더니 기도가 또 뚫리고 이런 거를 반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한 건 한 건 내 생각으로 들어가지 말고 내 힘으로 들어가지 말고 내가 성령님을 힘입어서 처리해 봐야 되겠다. 이런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 체험이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이 체험이 되면 진짜 주객과 체질이 바뀌어요. 이 기도 체질 훈련이 되면 여러분 주객과 체질이 바뀌게 되고 정말로 살전 5장 16~18절의 고백이 내 고백이 돼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영으로 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단계에 들어가면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기도가 이제 나의 삶이 돼요. 물론 영적 상태가 나빠지면 또 연약해질 수 있어요. 저도 기도 안 하고 육신적으로 살아버리면 영적 상태가 나빠져요. 그러나 이제 감각이 있잖아요. 감각이 있으니까 저는 계속 발전시킬 수 있어요. 살전 5장 16~18절이 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을 자꾸 처리해 나간다고요.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이 와요. 그리스도 때문에 진짜 일 처리가 돼요. 이게 경험의 영역이기 때문에 지금 압박당하는 사람한테 제가 설명해도 압박당하는 느낌 속에 있는 사람은 이게 극복이 잘 안돼요. 계속 압박이 오는데도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 사단이 꺾여져 나가면서 기도 회복되는 걸 체험하면 “신기하네”이런 생각을 한다니까요. 심령이 꽉 눌렸어도 기도가 딱 되면서 그게 없어져요. 그러면 어느 단계까지 갈 수 있냐 하면 24시 나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 하는 쪽으로 나갈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지니까, 삶의 처리가 되니까, 현장을 영적으로 보고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게 전도자가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이 예수님을 성령으로 깨닫고 영접하면 생명을 얻게 되잖아요. 그럼 양육해야 되잖아요. 그때 내가 체험했던 것이 전부 그 사람에게 답이 될 수 있어요. 내가 어떻게 빠져나와서 어떻게 치유되고 회복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승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는지 나의 스토리가 있으면 양육할 수 있다니까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저의 체험을 얘기한 것은 객관화할 수는 없어요. 신앙은 정말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저의 성향과 저의 체질과 저의 배경 속에서 이렇게 인도받았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이 여러 사람의 간증을 들어볼 이유가 있어요. 왜 들어봐야 될까요? 다양한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을 통해서 알게 돼요. 다양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어봐야 할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은 참 다양하게 인생을 인도하시거든요. “저 사람은 저렇게 은혜받아서 저렇게 하나님이 쓰시는구나” 이게 들어봐야 할 이유에요.
1.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한다는 말이 나와요.
1) 먼저 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재생산하는 제자 삼을 교훈을 합니다.
2절을 읽어볼까요?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게 무슨 말씀이에요? 지금 디모데에게 재생산하는 제자 삼을 것을 명령하는 거지요. “재생산하는 제자를 삼으라”이 말이에요. 많은 교인이 있어도 그중에서 충성된 재생산할 수 있는 제자를 삼으라 이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먼저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하라”합니다. 이게 단순히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네가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있으려면 네가 계속 주인 되면 절대 안 된다. 주객과 체질을 바꾸고 기도 체질로 바꿔라” 이 말이에요. 그래야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강해집니다. 여러분은 올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속 강해지는 삶을 사셔야 돼요. 그러려면 문제가 기회가 돼야 합니다. 문제를 통해서,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강하게 되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문제가 계속 오는데도 계속 인본주의 체질로 해결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안 바뀌는 사람이죠. 반드시 매 순간 영적 상태를 바꾸어서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 상태를 바꾸면 마음의 상태, 생각의 상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체험하셔야 돼요. 마음 상태, 생각의 상태가 딱 바뀌면 염려하던 게 꺾인다니까요. 염려하던 생각이 주님을 믿는 생각으로 바뀐다니까요. 또 인간관계에 걸려서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왔는데 그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니까요. 오히려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 눈으로 사람 보는 그런 기도가 되게 하신다니까요. 이런 게 진짜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메시지 들어도 다 이론입니다. 지식일 뿐 여러분의 영적 체질은 안 바뀝니다. 그래서 이번 원단 메시지에 아침 낮 밤 기도를 다시 강조하신 거예요.
지난 1월 1일 신정 때 신정 다음 날 금요 기도회를 마치고 우리 어머니와 집사람과 형상이 내외랑 모두 반영이 집에 갔어요. 하룻밤 자고 오기로 하고 갔어요. 저는 사위랑 대화를 좀 했어요. 사위가 개인 영어 학원을 하거든요. 근데 조금 아이들이 많아져서 지금 교사를 쓰고 있어요. 사위가 하는 말이 “아버님, 아직 일 처리할 때 기도 안 하고 순간 자기 생각으로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고백 하더라구요. 아이들이 많아지니까 복잡한 일들이 더 생긴다는 겁니다. 애들이 요구하는 것도 더 많아지고 또 그 부모들도 요구 사항도 많아지고 또 어떤 일 처리해야 될 일들이 더 많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 처리할 때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잖아요. 오너는 결정 잘해야 된다고요. 그래서 자기는 매일 아침 주로 오전 시간이 좀 여유가 되거든요. 왜냐하면 오후부터 학원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학원을 근무하고 돌아오거든요. 그래서 오전에 1시간 정도 말씀과 기도 시간을 갖는다는 거예요. 그 시간이 하나님을 매일 만나는 시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가 더 주인이 되실까? 이거 생각하셔야 돼요.
어떻게 하면 기도로 더 처리할 수 있을까? 여기에 여러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목마름이 있어야 돼요. 안 그러면 여태까지 살아왔던 패턴대로 그냥 살아요. 그러니까 보통 패턴이 안 바뀌니까 하나님이 문제를 주시는 거예요. 사위가 하는 말이 바빠지니까, 애들이 많아지면 바빠지잖아요. 강의도 더 뛰어야 되고 바빠지니까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복음 전할 여유를 못 가진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황금어장입니까? 게네들 하나 하나씩 상담해 주면서 건드려 보면 참 좋잖아요. 제가 그걸 하라고 하거든요. 근데 바빠지니까 여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영적인 역량이 길러지면 그 일도 가능해진다고 그런 대화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올해 현장 전문인 제자로 세워져야 되는 거예요. 현장 전문업을 가진 제자로 세워져야 된다 이 말이에요. 하는 일에 승리하면서 전도자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올해 목표예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요. 여러분은 법대로 경계하는 경기자요. 수고하고 인내하는 농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거예요. 맞습니까? 그래서 진짜 여러분의 정체성과 인생 방향과 사명을 확인하시고 거기에 걸맞은 인생을 사셔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걸맞은 기도가 계속 돼야 되는 거예요.
2) 8~9절에 보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복음은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8~9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아니하니라”. 이건 바울이 실제 체험했던 부분입니다. 2차 여행 때 빌립보에 가거든요. 빌립보에서 점 하는 귀신을 내쫓았다고 그 이익이 끊어진 주인이 고소해서 바울이 감옥에 갔잖아요. 빌립보 감옥에 매이잖아요. 근데 빌립보 감옥에서 어떤 일이 생겨요? 간수가 복음 받는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자기는 매였는데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역사를 해서 간수 가족들까지 싹 다 믿게 돼요. 이런 거는 성령님이 붙들고 쓰시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1차 로마 감금 때, 연금 당했을 때 매어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주님이 많은 사역자를 보내주셨잖아요. 바울에게 오히려 보내주셨어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단 말이에요. 그때 오네시모도 만났잖아요. 오네시모가 제자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는 매여 있었지만,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는 거예요. 지금도 2차 투옥되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순교를 앞두고 있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밖에 있는 성도들이 더욱 기도하면서 그들을 통한 성령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거든요. 바울의 순교는 그래서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됩니다. 순교자의 피가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돼요.
2. 바울이 모든 것을 참는 이유
1)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하니라”. 오늘 제목이 뭐예요? 바울의 모든 것을 참는 이유라고 그랬어요. 여기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고 그 일을 위해서 나는 모든 걸 참는다는 말입니다. 전도자의 고백이에요. 뿐만 아니라 택함 받은 한 영혼이 구원받고 양육되어서 제자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세우는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이 참은 거예요. 재생산을 위해서 참은 거예요. 그리고 그 재생산을 지금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거예요. 저도 이 일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의 흐름을 타서 저랑 보조를 맞추면 여러분은 그렇게 성장할 거예요. 진짜 여러분이 말씀이 공감되고 영적 흐름을 타게 되면 여러분을 하나님이 그렇게 세워 주세요. 여러분은 지금 성경적 전도 운동의 대열에 들어와 있어요. 진정으로 자기 전환이 되는 사람은 전도 제자로 세워집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언약적 인도를 하시는 분이에요. “목사님 저는요. 이래서 못 하고, 저래서 못해요” 아니에요. 그거는 여러분이 속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게 다 본성이고 자기 성향에 잡혀 있는 거 아닙니까? 성령님이 주인 돼야지, 왜 여러분의 부끄러운 마음이 주인 되고, 사람 의식하고 늘리는 내가 주인 되고 그거 아니죠. 제가 사람 의식 많이 하는 사람 아닙니까? 제가 아까 눌리는 얘기 많이 하지 않았나요? 이제는 그게 극복이 된다니까요. 저는 제가 바뀐 것들이 엄청 많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현장에는 복음 받을 자 구원받을 자 제자 될 자가 있어요.
지난주에 공대를 갔는데 학생회관 식당에서 어떤 여학생이 뭘 먹고 있는데 등치가 좋아요. 얼굴이 뭐 이렇게 예쁘장한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건드렸는데 종교성을 갖고 있어요. 근데 복음 다 듣고 나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아마 이 친구가 부모에 대해서 아주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자기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진짜 이거 아니다. 상처가 있는 거예요. 심지어 자기가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그런 표현을 하는 거예요. 얼마나 가정에서 피해를 입었으면 이렇겠어요. 그러면서 제가 아담의 원죄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저주 가운데 태어나고 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얘기를 하니까, 이 친구가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대물림이 된다는 표현이 싫대요. 인간이 자유 의지가 있어서 자살하고 싶으면 자살도 할 수 있는 거지. 자기가 이렇게 대물림의 운명 속에 있다는 그 말 자체가 듣기 싫다는 거에요. 근데 하나님이 너무 거기에 맞추어서 제게 할 대답을 주시는 거예요. 제가 전하면서도 성령님의 말씀을 주시는 거를 느낄 수 있었어요. 나중에 이 친구가 잠잠해졌어요. 그리고 많이 수긍하는 거예요. 1시간 10분 정도 얘기를 했더라고요. 제가 일방적으로 얘기했다면 그렇게 대화 안 되거든요. 진지하게 묻고 답하고 1시간 10분 정도 얘기를 하고 마지막에 얘기했어요. “너랑 성경 공부했으면 좋겠다. 성경이 텍스트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뭐라고 얘기하는지를 좀 보면 좋겠다. 그래서 한두 번만 만나자. 한두 번만 만나면 더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네가 느낄 거다.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까 니가 나한테 문자해라. 일주일 동안 네가 연락 없으면 네가 안 하는 줄로 알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저는 그날 감사했어요. 이런 친구를 만나게 해 주셨다는 거에 감사했고 또 성령님이 정확하게 답이 나가도록 하시는 거에 대해서 저는 감사가 됐어요. 그리고 이 친구에 대해서 오늘도 기도했어요. 이런 친구에게 복음이 제대로 들어가면 이런 친구는 사명자가 돼요.
2) 분명히 현장에는 구원받아야 할 자가 있어요.
제자 될 자가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항상 여기에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전도 규례를 세우고 실천하라는 거예요. “아무리 맞아” 해도 여러분이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을 끌고 있는 그 방향으로 인도받지 않는다면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실제 지금 전도 시간표가 아닌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분명히 성령님은 세밀하게, 정확하게 각 사람의 시간표를 가지고 이끄신다니까요.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는데 제자리 걸음이다. 이건 절대로 아니고 영적 싸움 안 한다는 얘기죠. 믿음의 전도는 삼위 하나님이 전도하시는 일을 믿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통로를 드리는 거예요. 근데 난 부끄러워서 못 드리겠고, 저 사람들이 무서워서 못 드리겠고, 나는 이러이러해서 못 드리겠고 이제 그런 거를 처리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새롭게 하소서 박효진 장로님 간증을 봤습니까? 그 마지막에 보면 용필이라는 사람이 나와요. 안 본 사람 꼭 보시기 바랍니다. 교도관 중에 예수님 믿는 분들이 많아요. 박효진 장로들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용필이를 전도하려고 시도했다는 거예요. 근데 꿈쩍도 안 해요. 그래서 한 번은 박효진 장로님이 가셔서 꼬셨대요. “니가 예수만 믿으면 내가 좋은 후원자랑 연결시켜 줄게. 그럼 영치금을 넣어줘. 그러니까 너 믿는다고 약속만 해”. 아무튼 꼬셔 갖고 약속을 했는데 그러면 복음 전하고 영접을 시켜야 되잖아요. 근데 그걸 못하고 3주가 지났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사형 집행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그때 박효진 장로님이 후회되는 거에요. 아직 복음도 모르고 있고 영접도 안 했으니까 이대로 죽으면 지옥인데 너무 양심에 가책이 되는 거예요. 영상에 그 마지막 장면 얘기가 나오거든요. 그 사형 집행 직전에 사형수들은 반 죽어요. 용필이도 제정신이 아니었대요. 그랬는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요. 이 사람이 완전히 성령의 강권하는 역사로 주님을 시인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사형을 당해요. 박효진 장로님의 궁금증은 “그 찬송을 쟤가 어떻게 아냐?” 그게 궁금증이래요. “어떻게 알고 그때 그 찬송을 부르지?” 그 내용을 보면 100%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 역사입니다. 지금도 이런 은혜를 내리시고 계세요. 우리는 누가 택함 받았는지 몰라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들을 위한 전도자로, 사역자로 저와 여러분과 우리 교회를 세우신 거예요. 사도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서 내가 모든 것을 참는다고 얘기하잖아요.
결론입니다.
우리 11절에서 13절을 읽겠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 함께 살 것이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여기 11절에 보면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오.”그랬잖아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주와 함께 지금 다시 살아난 거거든요. 예수 생명을 얻은 거예요. 이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되는 거예요.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 함께 살 것이오. 이 말은 영원한 생명까지 포함돼 있다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또 12절에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이거는 그리스도 때문에 바울처럼 참고 수고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면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여기 보면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오” 이 말씀이 있잖아요.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탁 뿌리치는 거예요. 여기서 그 사람이 진짜 생명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판가름 납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내팽개친 사람은 주님도 나는 너 모른다 이렇게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 생명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아니 목사님 베드로도 부인했잖아요.’ 그거는 예수 생명이 없어서 부인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나라 신사 참배 때 신사 참배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근데 다 지옥 갔을까요?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 후에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참 많아요. “하나님 그때 내가 너무 연약해서 제가 주님을 부인했는데요. 용서해 주세요.” 그래서 하나님께 울면서 회개하고 다시 예수 믿는 사람들 많아요. 지금 이거는 그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님은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돼 있죠. 주님은 약속에 대해서 미쁘셔요. 믿음직스러운 분이에요. “신실한 분이다”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님의 약속에 대해서 철저히 지키신다는 거예요.
오늘부터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어요. 오늘 설교를 다시 한 번 좀 들으세요. 체질을 어떻게 바꾸느냐를 오늘 제가 세밀하게 얘기를 했거든요. 따라 하시기 바래요. 하고 있는 사람은 더 발전시키기를 바래요. 오늘 돌아가셔서 강단 말씀을 정리하시고 정리를 하되 기도할 때 딱 잡을 수 있도록 정리하기 바래요. 내일부터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루 세 번 정시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로 모든 삶을 처리하는 체제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야 삶의 전환이 되고 그래야 이제 성령의 다스리시는 역량이 계속 길러지는 거예요. 성령님이 못 처리할 일은 없거든요. 성령님이 “아이고 깜짝이야, 아이고 큰일 났어.”성령님은 “나는 너무 눌려”그런 법 없어요. 다 내 본성이 그런 거지. 기도는 성령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을 받는 시간이에요. 영적 상태를 확 뒤집는다니까요.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일에 승리하면서 전도자로 세워지는 축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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