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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1월 25일 -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딤후2:14~28)

by 별종외계오동 2026. 1. 25.

주인의 쓰임데 합당한 그릇(딤후 2:14~28)

 

 

 

 

요새 계속 류 목사님 아침 낮 밤 기도에 대한 강조를 하고 계십니다. 아침 낮 밤 정시 기도가 체질이 되어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분 손 들어보세요. 만약에 여러분이 매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기를 원한다면 이걸 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 하루하루 은혜를 맛보고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사람이 기도가 된다는 건 자기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3,6,11장의 본성의 내 생각, 내 느낌대로 살지 않고 그게 극복되는 삶을 사는 거죠. 옛날에 우리가 얼마나 성질나면 성질도 잘 내고 답답하면 예민해지고 또 순간적으로 내 느낌에 의한 판단으로 행동하고 그럴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제 이런 것들이 다 성령께서 통치해 주시고 생각을 붙들어 주시는 삶이 되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삶의 방법이 자꾸 바뀌는 거예요. 믿음의 삶의 방법으로, 기도의 삶의 방법으로, 이전에 그렇게 안 살았던 사람이 이제 바뀌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실 자기가 느껴요. “내가 변화되는구나, 내가 이렇게 바뀌는구나. 이제 기도 응답을 이런 식으로 받게 되는구나이런 것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실 그러면 성령을 거스리는 삶을 살기보다는 본성에서 올라오는 체질을 꺾어내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여러분이 현장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 내가 살지 않고 주님이 살아주시는 삶을 맛보면서 승리하게 되는 거죠.

 

만약에 여러분 속에 성령님이 안 계시다면 어떻다고 그랬어요? 성령님이 안 계시면 이 삶이 절대 불가능하고 기도조차 안 된다고 그랬어요. 영적인 감각도 없는 거고 믿음의 감각도 안 생기고 기도도 안 되는 삶이 되는 거죠. 사실 그렇게 되면 신자는 지옥 같은 거죠. 그게 신자에게는 지옥 같은 삶이에요. 성령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 되고 또 양자의 영이 되고 보혜사가 되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믿도록 하시면서 아버지 뜻을 행하도록 이끄시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기뻐지고 감사가 나오고 행복해지고 이런 삶을 체험하게 되는 거죠. 성령님이 이런 변화된 삶을 이끄시는 주체가 되신다는 것과 또 마지막 휴거할 때는 여러분의 죽을 몸, 썩을 몸도 신령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간다고 했어요. 그렇게 하시는 분이 여러분 속에 계시는 성령이십니다.

 

1. 신앙생활에서 제일 필요한 것이 뭡니까?

1) 1:17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이다.

항상 내 안에 지금 주님이 통치하신다 이걸 인식하는 게 일단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내 안에 지금 주님이 계시다. 그분이 실제 모든 상황과 사건에서 인도하실 수 있다. 이거를 일단 늘 기억하고 있어야 히잖아요. 그래서 첫 번째 필요한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이다. 이 사람이 기도를 계속하게 되면 능력으로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내가 인격체잖아요. 그런데 성령님도 인격체, 인격자가 되셔요. 그래서 모든 상황 가운데서 내 감정, 내 생각, 내 판단이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도 자기 감정, 자기의 생각, 자기 판단을 갖고 계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문제가 되고 염려가 되고 처리해야 될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 여러분의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판단이 있는 것처럼 성령님도 감정 생각 판단을 갖고 계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라는 게 뭐예요? 내 생각 내 감정, 내 판단을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 느낌 판단으로 바꾸는 겁니다. 기도란 내가 살지 않고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는 거죠. 그래서 진짜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반대구나” “내 느낌에 내가 참 잡혀서 속았던 삶이 너무나 많구나이런 것을 자꾸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은 기도 안 하면 3, 6, 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그 느낌대로 살게 돼요. 이거를 바꾸는 게 기도인데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 소원에 인생 방향을 딱 맞추어 살기로 작정하게 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소원에 방향 맞췄기 때문에 여러분은 계속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을 받고 모든 상황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 회복되는 방법이 하루 세 번 정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이 정시 기도를 통해서 문제 처리, 일 처리, 삶 처리가 되면 계속 영적 성장하게 돼요. 어느 순간에는 진짜 인생의 주체가 바뀌게 되고, 도와달라는 식으로 기도하지 않고 정말로 삶의 주체를 바꾸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삶이 체질로 들어가게 되는 거거든요.

 

사실 여러분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님 눈물찬양 가사처럼 내가 진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놀라운 축복을 누리다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영혼 내 마음 그들의 아픔 느끼네그러니까 앞부분이 안 되면 뒷부분이 안 돼요. “내가 예수 믿고 기쁘고 감사하고 모든 능력의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이제 내 인생에 내가 염려할 인생이 아니구나.” 그래서 실제 주님이 통치하는 삶이 누려질 때, 이 가사처럼 구원받아 놀라운 축복을 누리다 보니 이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영혼 내 마음 깊이 그들의 아픔 느끼네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찬양을 매주 부르잖아요. 그냥 부르지만 말고 점검 되길 바래요. 왜 나는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다 보니 이 고백이 잘 안 될까? 이게 내면에서부터 고백이 나와야 하는데, 이게 안 된다면 주님과 동행의 삶이 아직 안 돼서 그런 거거든요. 기도로 사는 삶이 안 돼서 그런 거거든요. 주객이 아직 안 바뀌어서 그런 거거든요. 주객이 바뀌면 반드시 이 삶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자기 하는 일에 승리하면서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2) 올해 꼭 아침 점심 낮 기도가 되어 24 체질로 들어가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다 이렇게 들어가야 돼요. 만약에 이렇게 들어가게 되면 각자가 받은 사명도 감당하게 돼요. 여러분 각자에게 다 사명이 있거든요. 그 사명을 내 힘으로 감당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부터 변화시켜서, 회복시켜서 주님이 성령으로 통치하는 삶을 힘입어서 사명 감당이 됩니다. 인간관계에 승리하고 문제 처리되면서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므로 각자에게 주어진 미션을 감당하게 되어요. 그래서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게 되어요. 우리가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됐을 때 주님이 우리의 삶을 각각 심판하세요. 주님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리를 심판하지 않고 전부 다 각각의 미션이 있고 각각의 부르심이 있기에 각각을 심판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비교 의식을 가졌거나 교만하거나 또 열등감을 가지거나 이런 거는 다 치유 받아야 할 부분이에요. 우리가 자기 포지션에서 자기의 역할과 자기 본분과 사명을 알고 충성하게 되면 주님은 각각의 상을 주시는 거예요그래서 자기 포지션에서 자기 역할과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믿음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증명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증명되는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결국 누가 드러납니까? 주님이 나를 바꾸셨고 나를 치유했고 회복했고 열매 맺게 하셨습니다. 사명 감당도 주님이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하셨다는 고백을 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에 내가 통로 되고 손발이 되는 거죠. 오늘 본문에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 깨끗한 사람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2. 주인의 집에 있는 여러 그릇

1) 주인이 쓰시는 그릇

오늘 본문에 보면 주인의 집에 여러 그릇이 있어요. 20~21절 두 절이 오늘 핵심 구절입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주인의 집에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질그릇도 있다 이 말씀이죠? 주인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 이런 말씀이에요. 근데 잘 들어보세요. 이것은 금 그릇을 부러워하라 이런 말이 아니에요. 핵심은 뭐냐 하면 얼마나 값비싼 그릇이냐가 아니라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냐 이 부분이 초점이에요. 지금 얼마짜리냐? 이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요. 주인 집에 금 그릇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밥 그릇도 있어야 되고 먹다 남은 거 담을 그릇도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그릇이 필요하잖아요. 다 쓸모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 초점은 얼마나 값비싼 그릇이냐가 아니고 주인이 쓰시는데 편리하고 거기에 부합한 그릇이냐 이 말이에요. 그걸 여기서 깨끗한 그릇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교회에 목사님도 계시고 또 장로님도 계시고 집사님도 계시고 일반 성도들도 있어요. 또 사회에는 대통령부터 청소부까지 여러 직종이 있잖아요. 하나님은 각자의 기능과 역할과 사명을 주신 거예요. 우리는 죄의 본성 가운데 빠져서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을 딱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사회에서 지위가 있는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일단 부러워하고 또 내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거죠? 근데 성경은 그렇게 보지 않아요. 성경에 예수님은 높은 자가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가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이런 말씀을 하고 있거든요. 기능과 역할과 사명을 주신 것은 주님을 향해서 충성하고 사람에게 봉사하고 섬기라고 주신 거에요. 전부 다 그런 직분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이 교만에 빠져서 자기 영광만 받고 있으면 이 사람이 대통령을 했을지라도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됩니까? 세상 말로 나가리 되는 거에요. 근데 이 사람이 청소부인데 이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요. 청소를 통해서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해요. 그럼 이 사람은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떻게 될까요? 이 사람이 면류관을 얻게 되는 거예요.

 

세상의 가치 원리가 지금 뒤집혀(전도) 있거든요. 어떤 그릇이든 자기를 깨끗게 하면 주인이 쓰시는 그릇에 합당케 된다는 말씀을 지금 하고 있어요. 초점은 자기를 깨끗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릇을 깨끗히 하는 거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쉽게 생각하면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사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불교인도 도덕 윤리적으로 살아요. 모든 종교인들 도덕 윤리 강조한다고 그랬잖아요. 제가 했던 말처럼 인간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선악의 기준이 된다면 도덕 윤리적으로 살았어도 사단의 속임수와 사단의 욕심에 빠진 인생이에요. 오늘 이 초점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깨끗하다 그러면 자꾸 사회 윤리적인 개념, 도덕 윤리적인 개념으로 자꾸 생각한단 말이에요. 근데 그런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인간의 방향이 틀렸어요, 지금 자기 포지션을 떠났어요. 자기가 하나님이 돼 있어요. 선악의 기준이 인간이 돼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아요, 자기 두 가지 소욕을 위해서 살잖아요? 도덕 윤리적 기준에서 말하고 있는 게 깨끗한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이건 윤리 도덕적으로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 되어서 자연이 윤리 도덕적으로 산다면 이 사람은 주님이 주인 되고 주님의 왕권이 인정되는 사람이잖아요. 이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에요. 주님 밖에서 만약에 그러고 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오늘 개념을 잘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고 나서도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나도 못 박혔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내가 주인 되지 아니한 삶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깨달아야 하는 거예요. 3,6,11 장의 본성과 거기서 형성된 체질로 계속 사는 것은 내가 계속 주인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의 통치권, 왕권, 주권과 그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로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선악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생사 화복의 기준이라는 걸 믿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의 능력과 배경과 그분의 보장을 믿기 때문에 말씀 따라 사는 인생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끗게 되는 방법은 뭐냐 하면 불신자는 영이 살아나는 게 아니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참고 극기하고 자기가 절제하는 게 깨끗해 되는 방법이라고 여긴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빠졌던 삶이 사단의 함정과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이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보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내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영이 죽은 이성으로 살았고 내가 주인 되어서 창 3, 6, 11장의 본성과 그 속에서 형성된 인본주의 체질로 살아왔던 거예요. 이게 뒤집히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분이 우리 속에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삶이 회복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는 이게 회복 불가능한 해요. 우리가 그동안 사단의 종 노릇 했고 사단의 통로로 살았던 거기서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분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통치하는 통치권을 회복하기 원하시는 거예요. 이때 비로소 우리의 포지션을 바로 되찾는 거예요.

 

우리가 과거 영이 죽고 마귀에게 지배를 받으면서 죄의 종노릇하는 인생이 됐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가치와 체계가 다 뒤집혀잖아요. 가치 체계가 다 전도 돼버렸어요. 하나님이 주인인 인생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인 인생으로 뒤집혔다 이 말이에요. 이걸 바르게 회복하는 게 깨끗하게 되는 거예요. 삶의 가치와 체제가 다 전도돼 버리게 되니까 우리가 인본주의 동기로 살고 인본주의 기준으로 살고 인본주의 방법으로 살고 인본주의 잘못된 믿음의 현주소로 살게 되는데 그게 잘못됐는지조차 잘 모르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걸 보는 영적인 눈이 자꾸 열려야 된다니까요. 예수님이 주인이시다는 고백은 하는데 이 부분의 눈이 안 열리면 그 인생이 안 바뀌는 거예요. 자꾸 종교적으로 참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말씀대로 살고자 자기가 몸부림치라는 게 아니에요. 그건 종교 체질이라고 얘기했잖아요. 정말로 예수님이 주인이 되도록 아침 낮 밤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판단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고 내가 결정하는 모든 부분에 이제 성령께서 내 영적 상태를 붙들어 주시면서 마음 생각을 붙들어 주시는 겁니다. 염려 걱정에 밀리지 않게 만들어 주시면서 실제 평안함과 주님이 하실 일들이 믿어지게 하세요.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과 능력을 공급받으면서 일 처리가 되어요. 진짜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바뀌는 것이 느껴지게 되어요. 다시 얘기하자면 비로소 불신자 상태의 뿌리까지가 보이면서 거기서 빠져나와서 전환이 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다메섹 체험 이전에도 굉장히 열심히, 부지런히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리스도 만나기 전에 성실히 안 살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난 양심적으로 살았어.”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을 거예요. “나는 경건하게 살았어!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줄로 알고 살았어.” 율법 선생이었잖아요. 자기는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한다고 여기면서 살았던 사람이에요. 근데 뭐가 문제예요? 영적 눈이 하나도 안 열린 거예요. 영이 죽어 있었던 겁니다. 자신의 영이 죽어 있었고 자기 의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자기 영적 문제를 몰랐던 거예요. 자기가 어떻게 사단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져 있는 창 3장의 후손인지를 모르고 있는 거예요. 이거에 대한 눈이 열려야 되는 겁니다. 예배 생활을 하면서도 참 종교인이 많은 거예요. 실제적으로 내 인생이 전환되는 삶을 안 살고 있으면 종교인의 삶을 사는 거예요. 그게 깨끗하지 못한 인생이에요. 지금 북한 정권에서 충성하는 주민이 다 속고 있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모든 체제와 가치가 다 전도돼 있잖아요. 북한 주민들이 속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사도 바울에게 내가 너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서 첫 번째가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해야 되는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려 함이라했어요. 영의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가 기도라는 게 계속 주객을 바꾸는 거예요. 내 본성에서 올라온 느낀 감정 생각에 빠지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을 계속 공급받는 삶을 사는 게 기도예요. 그렇게 되면 남편을 보는 시선과 남편에 대한 자세가 달라져요. 아내에 대해 비록 내 본성이 있기 때문에 부딪치고 또 갈등하지만, 눈이 열려서 내가 왜 여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고, 내가 여기서 왜 상처가 올라올 수밖에 없는지를 안다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의 체질이 결국 바뀌어요. 자기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더 인정하고 뿌리내리고 그리스도가 주인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된다고요. 그리스도가 주인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내가 참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정말로 남편이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 본성은 도무지 사랑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향해서도 여러분 간증 보지 않았습니까? 박효진 장로님 간증 보지 않았습니까? 성령님은 그냥 불쌍히 여겨지는 마음을 주시고 눈물이 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을 하시잖아요. 이거 내가 만들어낼 수 없거든요.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자기 영이 죽어 있었고 자기 의를 계속 쌓는 인생을 살았단 말이에요. 영적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사단의 욕심과 속임수에 빠져 있었는지 그거 보는 눈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자기가 의롭게 애쓰면 된다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여러분 과거에 상처 입고 여러분이 형성된 것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때 들어온 감정과 느낌과 생각이 지금도 나를 잡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다 주님은 드러내어 치유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했는데 사도바울은 사실 눈 뜨는 체험을 다메섹에서 한 거죠. 실제로 예수님이 사울아, 사울아불렀을 때 해보다 밝은 빛이 쫙 비춰잖아요. 그때 소경이 되고 앞이 안 보여 3일 동안 인도자를 구하고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서 칩거하게 되잖아요. 3일 동안 아무것도 못 보는 거예요. 그때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자기는 지금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을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도대체 자기가 지금 믿었던 율법은 뭡니까? 지금 대혼란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때 예수님이 아나니아를 보내잖아요. 아나니아가 네가 길에서 만난 그 예수가 나를 보냈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명이 있다는 걸 전달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안수하니까 눈을 뜨면서 성령 충만을 같이 받아버려요.

 

우리는 점진적으로 성화 되는 삶이 있는가 반면에 어느 시점에 순간적으로 성령의 세례를 부을 수도 있어요. 막바로 믿을 때 성령을 강하게 받을 수도 있어요. 이건 다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어떤 경험을 특정화해서 객관화시킬 수는 없어요. 아무튼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체험하고 아나니아가 안수했을 때 성령 충만까지 받아버렸어요. 그래서 막 바로 다메섹에서 전도했어요. 그때부터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이 고백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고백이 되죠. 여러분 인생에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고백이 진정으로 되십니까? 이런 걸 점검을 하시라고요. 그때부터 사도 바울은 본격적인 성령의 인도를 받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연히 오직 그리스도께 믿음과 의탁과 순종, 순종의 24 체질이 되는 거죠. 저와 여러분의 이런 전환이 중요한 거죠. 이런 진정한 전환이 되는 거를 깨끗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전환이 되어야 할 현장이 가정 현장이고 직장 현장이고 그 현장이 여러분이 인간관계 하는 현장들이에요. 인간관계를 하면서 저 원수이렇게 보면 그건 내 시각이고 내 본성이라고 한다면 기도할 때 주는 마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시각에 머물러 있지 말고 계속 빠져나와야 해요. 그래야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는 거예요.

 

2) 우리는 고린도후서 47절의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이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에요. “나는 죽을 때까지 질그릇이다.” 질그릇 자체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게 종교입니다. 종교의 주체는 누굽니까? 자신이 그러니까 종교는 종교적인 의를 세울 수밖에 없어요. 주님이 제일 싫어했던 대상이 바리새인들이에요. 그 바리새인과 똑같은 겁니다. 여러분이 종교적인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나, 나의 것, 나의 성공의 동기를 하나도 못 바꿔요. 우리가 체질 중에서 가장 센 체질이 동기거든요. 근데 동기 못 바꾸면 사람도 하나님도 내 동기의 수단으로 끌어당겨요. 이런 사람은 깨끗하게 된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깨끗하게 된 사람은 내가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원망 시비가 없어요. 여러분 원망 시비가 많습니까? 한번 가만히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 속에 독이 있어요? 아주 센 비판이 있어요? 내가 사는 겁니다. 내 욕구 불만에 잡혀 있어요? 주님이 사시면 욕구 불만이라는 게 없어져요. 진짜 갈 220절이 되고 살전 516~18절이 됩니다. 교회 제자가 되고 현장 제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219절에 보면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경고한 터는 예수 그리스도죠. “인침이 있어 이르시되성령이 우리를 인쳐서 이르시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돼 있어요.

 

결론.

오늘 본문의 금 그릇, 질그릇은 세상이 평가하는 학벌 아닙니다. 세상이 평가하는 기능 능력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말하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아니에요. 15절을 보십시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게 깨끗게 된 사람이 사는 삶의 모습이죠.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며 하나님께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인정된 자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자다. 이렇게 돼 있어요. 삶의 체질을 아침 낮 밤 기도부터 하고 24 시로 발전시키세요.

 

한동대 졸업한 친구가 한 2년 좀 더 지났는데 일부러 포항에 내려왔어요. 내려왔는데 이유는 목사님께 밥 사주고 또 이종선 장로님에게도 밥 사주고 그러면서 자기가 그동안 있었던 일과 자기 직장생활하면서 체험하는 것을 제게 보고하고 싶어서 왔다는 거예요. 일부러 차 렌트 포항에 왔어요. 저를 낮에 만나고 저녁에는 이종선 장로님을 따로 만나고 포럼을 했어요. 이 친구가 일산 영광교회 다니는 친구예요. 재학 때 지교회를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안 빠지고 참여한 친구예요. 근데 고백을 하더라고요. 1 2학년 때는 사실 말씀이 자기랑 잘 안 맞았데요. 목사님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사실 이중적인 생활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다시 지교회에 와서 그때부터 말씀의 흐름을 타는 거예요. 자기한테 맞으니까, 실제 체험하니까 제게 감사의 표현을 여러 번 했거든요.

그 친구가 한국카본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게 LNG 보온제 를 독점으로 공급하는 회사래요. 영업이익이 한 일천억 되는 회사래요. 근데 거기서 회계 재무를 지금 담당하고 있어요. 그런데 회사생활 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회사 일이 엄청 많대요. 일이 밀릴 때는 뭐 세네 개 일이 같이 오니까 진짜 숨이 찰 정도로 힘들데요. 그때마다 지교회 때부터 배웠던 기도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답답하고 쪼이는 것 기도가 되면 풀리면서 성령님이 지혜도 믿음도 주시면서 일 처리하는데 일 처리가 되는 거예요. 이걸 계속 맛보는 거예요. 제가 너 언제 기도하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침에 출근할 때 지하철이 1시간 10분 걸린대요. 1시간 10분이 자기는 제일 귀한 시간이라는 거예요. 그 시간에 묵상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루 일을 맡기면서 질문식으로 한대요. 오늘 이런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는대요. 그러면 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감당이 된데요. 또 이런 기도를 한 대요. ”주님 제가 예민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힘으로 감당하게 해 주옵소서그래서 아침에는 지하철에서 기도하고 낮에는 적용하고 밤에는 하루 인도를 감사하면서 한 15분 정도 감사 기도를 한다는 거예요. 회사 처음 들어갔을 때 술 마셔야 되잖아요. 고민하다가 선한 거짓말을 했대요. ”제가 술 먹으면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서 술을 못 먹습니다.”그렇게 얘기를 했대요. 그랬더니 그냥 쉽게 통과를 하고 그때부터 저 친구는 술 먹이면 안 될 친구 이래갖고 술을 안 먹고 그냥 지금까지 생활을 해요. 그 대신에 자기가 굉장히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이렇게 사람들을 대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수용하고 초월하려고 애를 쓴다는 거예요. 직장 선임들하고 식사 자리를 가졌는데 얘기하다 기독교 얘기가 나오고 헌금 얘기가 나왔데요. ”너도 헌금하냐?” 11조도 한다니까 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 그거를 헌금하냐 그거를 적금하면 다 자기한테 남는 돈이 될 텐데 왜 그거를 하냐는 식으로 신기해하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얘기했대요. 저는 저의 주인이 제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얘기하기 힘들잖아요. 그러면서 저는 기도하면 그 기도에 응답받아서 일 처리를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아 신기해 여기더래요. “이상한 별종이다이런 느낌이에요. 아무튼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지교회 때 받은 메시지가 정립된 것이 현장에서 적용된다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사실 제가 지교회 때 여러분이 학교 때 영적 생활보다 현장 들어가면 진짜로 그 현장은 전쟁터다 그래서 거기서 진짜 승리하기는 너무 힘들다 그런 얘기 지교회 때 많이 했거든요. 근데 그때 이 친구가 은혜를 받고 그런 부분에 말씀 흐름 타는 거를 그때부터 했단 말이거든요. 제가 마지막에 그런 얘기를 했어요. “현장 모델이 너무 필요하다. 지금 현장 모델이 너무 없다. 니가 진짜 전문인 제자로 현장 모델 돼라. 그럼 목사님보다도 너를 통해서 더 많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그랬더니 알겠대요. 이 친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미국 회계사 시험 준비까지 해요. 그거를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데 목사님 제가 너무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제 육신적인 시간은 다 접어버렸데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예요. 아침 낮 밤 기도가 안 되면 주객 체질이 안 바뀌어요. 안 바뀌는 시간은 다 인본주의 체질로 사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적용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