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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9월 20일 주일예배 - 주의 강림과 전도자의 삶 (약 5:7~11)

by 현상금 2026. 9. 20.

주의 강림과 전도자의 삶 (5:7~11)

 

https://youtu.be/kOLuoqaWmZo?si=eFvCRvgsHlo5CX-o

 

 

얼마 전에 노회를 앞두고 시찰 모임을 가졌어요. 제가 1년 동안 시찰회장을 하면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하면서 포항 공대 전도하는 이야기를 목사님들한테 좀 했습니다. 목사님들도 전도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시거든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대에 들어가서 전도하는 게 제 본성으로는 여전히 부담된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실제 전도 현장에서도 사탄의 공격과 방해를 제가 많이 느끼는 편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현장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본성의 느낌이나 감정, 눌림 같은 것들을 극복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극복이 될 뿐만 아니라 충분히 주님이 이 일의 주인 되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을 설득해서 하는 게 절대로 아니고 내 안에서부터 주님이 말씀을 주셔서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게 믿어짐으로 전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믿음의 전도를 성도들이 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자꾸 써야 자라납니다. 믿음을 쓸 수 있는 문제가 우리한테 오히려 유익이 될 수 있어요. 문제없고 편안한 게 다가 아니고 정말 문제없이 편안하기만 하면 육신의 체질로 또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히려 무기력해지기 쉽고 놀 때 무기력해지기 쉽거든요. 사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문제를 믿음을 기를 기회로 보시면 딱 좋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나 일이 다 기회가 됩니다. 누구를 힘입는 기회입니까? 여러분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힘입는 기회이고 성령님을 힘입는 기회가 된단 말입니다. 성령님은 문제 앞에나 일 앞에나 전도나 사역 앞에 밀리시는 법이 없어요. 모든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 이 시간 내게 능력으로, 말씀으로, 지혜로, 영감으로, 감동으로 역사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뚫리면 일 처리가 진짜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믿음의 전도를 배우셔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전도란 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전도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간을 들이고 또 실제 현장까지 가는 것입니다. 현장에 가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맡기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영적인 문제와 현실 문제를 다 갖고 있어요. 누구든지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를 겹치게 해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사탄이 지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을 갖고 있고 또 불신앙의 이성 체질로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빠지게 만든 사탄이 현실 문제가 왔을 때 기도 못 하게 만들고 계속 인본주의 체질로 빠지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충격받고 상처받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받고, 어떤 사람은 미움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돈에 묶이고 이렇게 마귀가 우리를 종 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미 많이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뿌리내려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 "도둑이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적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영이 죽고 사탄에게 눌리고 속아 거짓에 넘어가는 것, 이게 다 영적 문제예요. 그게 우리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거기에 현실 문제가 딱 겹칠 때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믿음의 생각으로 처리 못 하게 해요.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우리 마음과 생각이 사탄에게 잡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탄의 통로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살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런 영적인 실상을 분명하게 봐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전도자가 됩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직 유일한 답이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해 주시고, 우리에게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회복해 주시고, 우리 안에 살아주시는 게 신앙생활이에요. 실제로 살아주시니까 영적 회복이 되고 마음과 생각이 회복됩니다. 불신앙이 꺾이고 잘못된 생각이 이제는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잡히는구나. 이런 식으로 연약해지는구나" 하는 것들이 깨달아진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통치, 인도와 역사가 있을 때 그게 보여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면 그냥 내 생각밖에 못 합니다. 항상 창세기 3, 6, 11장에 지배받는 합리적인 이성의 생각밖에는 못 해요. 그러니까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이게 바뀌면 바뀔수록 증인이 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렇게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 아니냐? 지금 마귀한테 속아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깔린 거 아니냐? 그래서 지금 이 정확한 복음을 전하라고 하지 않느냐?" "너희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택한 백성을 거듭나게 하고 구원하는 일에 너를 쓰고자 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부터 지속할 현장을 정하시고 지속할 방법을 정하세요. 방법이라는 게 딴 게 아니라 전도를 해보면 어린이한테는 어떻게 전도해야 하겠다는 어린이 메시지가 자꾸 훈련됩니다. 중고등학생이면 중고등 메시지가 훈련되고, 저같이 대학생들한테 전도하면 거기에 맞게 메시지가 훈련된다고요. 예를 들어서 대학에 우리 권사님들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잖아요. 문화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나는 어떻게 전도하면 좋을까?", "나는 아파트 전도를 하자" 하고 자기가 정하는 것입니다. 아파트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할까? 전략을 짜는 거예요. 나름대로 짜고 그것을 위한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은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속할 방법이 생기게 되고 지속할 시간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것을 한 번 하고 끝내는 게 아니고, 내가 이제는 이것을 지속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나를 길러주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이 기쁘고 행복해지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처지지 않습니다. 계속 성장해요. 사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전도 대상자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과 직업과 돈이 여기에 쓰여야 한다는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저는 복음이란 창세기 3장의 결과로 잘못된 것을 다 뒤집는 거라고 여겨집니다.

1) 우리는 세상 문제의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진짜 문제를 알고 이것으로 인해서 초래된 결과를 아는 거예요. 그 결과 전체를 다시 뒤집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복음은 유일한 해결책인데 전체를 뒤집습니다. 사탄은 인간을 속임수와 욕심으로 하나님 자리에 앉게 했고, 자기 기준으로 사는 죄에 빠뜨린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기준대로 안 살잖아요. 우리의 이성이 척도가 되고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양심이 기준이 되어서 자기 기준의 의를 세우는 거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죄를 영적인 죄라고 했고, 세상은 이 영적인 죄를 알지 못한 채 지금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하는 말이 윤리·도덕적으로만 살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여러분, 사람들은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과 그것에 지배당하는 영이 죽은 이성에 빠져 있습니다. 이성주의, 합리주의 그러는데 영이 죽은 게 문제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느낍니까? 못 느껴요.

요한계시록 129절을 읽어볼까요?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저는 여기서 '온 천하를 꾀는 자'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영적인 눈을 감았기 때문에 다 속고 산다는 이 말입니다. 하나님 없다 그러죠, 하나님의 주권과 왕권과 통치권 모르죠, 하나님 말씀의 권위 인정 안 하죠, 인간 기준으로 다 살잖아요. 인본주의가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거라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속는 거 아니겠습니까? 개인의 일생을 속여 먹고 세상 전체를 속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까지도 속이고자 애쓰고 있어요. 교회도 이 영적인 죄에 대해서 잘 모르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같은 경우도 보면 도덕·윤리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과 영적 관계의 선상에서 인간관계에서도 도덕·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라는 것이지, 하나님을 배제하고 도덕·윤리적으로 올바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왜 살인하면 안 됩니까? 하나님께 범죄하기 때문에 살인하면 안 되는 게 맞습니다. 왜 간음하면 안 됩니까? 그게 하나님 앞에 짓는 죄예요.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다음에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51:4) 이런 고백을 합니다. 물론 사람에게 죄를 지었지만,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 지은 죄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을 강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지금 종교인들이 그 인식이 됩니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눈뜨게 해줘야 한다니까요. 이런 메시지가 여러분의 것이 되어 답을 줘야 한다니까요. 말하는 거 힘들다고 "나 불편해서 말 못 해, 나는 체질이 아니야" 그러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전도 방법을 생각하라는 이 말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일생을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온 천하를 속이고 있습니다. 나중에 요한계시록을 보겠지만, 결국 요한계시록을 보면 교회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아까 본 계시록 129절의 말씀이 나온단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구속을 완성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사탄이 내쫓긴 것입니다. 더 이상 정죄를 못 하도록 쫓아낸 거예요.

 

개혁주의 신학을 우리가 하고 있거든요. 개혁주의 신학에서 창세기 3장의 죄를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하나님 자리를 찬탈한 죄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건 참 정확하게 이야기를 잘했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교회가 지금 사탄이 인간을 속이고 선악의 기준점을 왜곡시킨 것을 별로 이야기 안 하는 것이죠. 삶의 방향이 지금 완전히 왜곡됐단 말입니다. 제가 말씀 공부 할 때는 주로 많이 이야기하는데, 북한에서 성실하고 근면하고 도덕·윤리적인 것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도덕·윤리적으로 북한에서 아무리 잘해도 그건 어디에다 충성하는 것입니까? 북한 정권에 충성하는 거잖아요. 남한 정권에 충성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남한 정권과 북한 정권은 주적 관계입니다. 서로 잡히면 간첩죄가 적용돼요. 여러분, 속지 마세요. 세상은 자꾸 도덕·윤리만 논한다니까요. 실제 도덕·윤리적으로도 잘 못 살면서도 그래요.

 

천주교를 제가 정확하게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지난번 우리가 천주교에 대해 이야기했잖아요. 인간이 원죄에 빠졌지만, 이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죄 사함받은 것 가지고만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은 자범죄에 대한 죄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책은 다 선행이나 성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자범죄에 해당하는 죄가 씻겨 나간다는 거예요. 그게 덜 씻겨 나가면 연옥 가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요 예배 때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들의 최종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모든 죄가 속죄함을 받고 구원받는다고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죄를 속죄받고 선행과 성례를 잘해서 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최종적으로 죽어봐야 구원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천주교회가 모든 종교를 향해서 문을 열어놨어요. 모든 종교에는 양심이라는 게 있기에 선한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각기 구원의 길이 있다고 문을 열어놓아 버렸어요. 이게 사도 바울이 들으면 진짜 격노할 내용이죠.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인간을 속이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그 해결책인 복음을 정확히 말해주어야 한다는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쭈뼛쭈뼛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데 시작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잖아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나?", "내가 이런데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나?" 이런 것들에 대한 자기 점검이 되잖아요. "나는 내가 믿는 걸 진짜 진리로 믿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필요할 때만 믿나?" 이런 게 점검이 되잖아요. 이것이 여러분 중심이 하나님과 통하는 중심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것도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이에요.

 

2) 우리는 세상 문제에 진짜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지금 영적인 죄와 영적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에서 영적 문제만 말하는 게 아니라, 그 결과로 인간이 어떻게 죄에 종노릇하며 마귀 종노릇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회복하느냐 하면 일단 속죄가 필요해요. 그다음에 칭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우리한테 전가해 주는 것을 칭의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그것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얻는 축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파산할 배와 같고, 나는 가능성이 없는 죄인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여,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 내 인생 주인의 자리에 오시옵소서" 이것만 했는데도 기독교는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죄의 본성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의를 전가시켜 준다니까요. 그래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렇게 해주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을 살리고 우리 전인을 살리기 위해서 살아주시는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들어와서 살아주시는 분이 되시는 거예요. 이게 복음의 핵심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시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을 근거로 한 이성이 주체가 되어서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주인이 아님을 고백하고 내 삶의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는 믿음의 나로 바뀌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갈라디아서 220절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모든 일, 문제, 사건이 다 그분의 일이 됩니다. 경제 문제도 그분의 일이 돼요. 인간관계도 여러분이 주인 되면 계속 힘들어집니다. 참는 것 가지고 안 됩니다. 나중에 폭발해요. 그런데 주님이 성령으로 주인 되셔서 인간관계 처리하는 법을 배우면 승리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참는 게 아니에요. 견디는 게 아니에요. 그냥 힘드니까 말하지 말고 살자, 이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누리는데 상대방은 그리스도를 못 누려요. 자꾸 불쌍히 여겨지는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살아주셔야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은 창세기 3장의 범죄로 인해서 잘못된 모든 것을 뒤집는 거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뒤집을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구 초대교회 조인주 장로님 간증을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우상숭배가 심각한 집안에서 자기는 소아마비로 태어났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부모 원망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자기가 장애인이니까 자기가 잡아야 할 것은 오직 경제다, 돈이다, 거기에 꽂혔어요. 그래서 일찍 장사를 시작했잖아요. 처음에 향수 장사 하고 나중에 네일숍을 하게 되었잖아요. 돈을 목적으로 이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우환이 들이닥치는 것입니다. 암으로 누가 죽고, 암으로 또 누가 죽고 이러면서 집안이 아주 풍비박산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사업마저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간증 들어보면 자살하기 위해 약 가지고 다녔다고 했잖아요. 그러다가 용케 자살 직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말씀 공부 현장, 다락방 현장에서 메시지 듣는데 불신자 상태가 딱 들린 것입니다. 그게 자기 문제인 줄 깨달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날 그리스도를 영접했어요. 성령께서 진짜 영접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락방 참여할 때는 죽을 맛이었는데, 영접한 다음에 진짜 성령님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그런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몇 날 며칠 그게 안 없어지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했잖아요. 구 초대교회가 그때 개척교회였는데 그 멤버가 됐잖아요. 때마침 자기 가게가 좀 넓었는데, 교회 예배당을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는데 갈 곳이 없어서 자기 사업처에다가 예배당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시작하고 나서부터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자기 사업도 안 되고 자기가 아직 초신자인데 자기한테 재정을 맡겼다고 해요. 그런데 교회도 계속 빚지니까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러는 가운데 한 번은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자기를 쳐다보면서 한마디를 내뱉었는데 그게 그냥 시험에 들어버렸어요. 그래서 "이 교회만 교회인가?" 그러면서 교회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날 밤에 씩씩대고 있는 그 가운데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죠. 찾아왔는데 그 내면에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그동안 못 먹었냐? 네가 못 다녔냐? 너에게 돈이 우상이다" 그러더라는 겁니다. "돈이 우상이다"라고 여기며 사는 교인은 없어요. 그러나 교인들도 돈에 대한 집착은 우상만큼 셉니다. 여러분이 지금 의지하는 게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돈이에요. 그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인주 성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의지하고 있는 돈이 우상이다. 너는 어릴 때부터 그게 우상이었다." 정확하잖아요. 그 말씀이 들리면서 자기 상처의 근본 뿌리를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내면을 터치하게 되니까 자기 그 뿌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시키시는 회개가 몇 날 며칠 되더라는 겁니다. 그 후부터 사업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업장을 확장하게 되고 이분이 많은 헌신을 했죠. 자기는 돈 버는 목적이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걸로 이분은 작정했어요. 그래서 많은 헌신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교회 건축할 때 건축위원장이 되었거든요. 그 교회가 지금 입당이 됐어요. 크게 입당이 잘됐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와 자기 업을 통해서 계속 전도 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 운동 할 수 있는 제자로 세워졌고 자기를 통해서 제자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쓰신 것이죠. 한 사람이 바로 세워지니까 일이 회복되고 천명, 사명까지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문제에 진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은 준비시키는 거예요. 이 내용은 우리 교회에 와서 한 간증 내용에 지금 있는 내용이거든요. 여러분 다시 보고 싶으면 그 간증 동영상을 보기 바랍니다. 복음은 뭐라고요? 창세기 3장의 범죄로 인해서 잘못된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이다. 회복이죠. 진짜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거예요. 관계가 회복되는 거예요. 일을 경영하는 것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자세가 회복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은 하나님의 소원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천명,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를 보세요. 여러분 다 천명, 사명은 있습니다. 맞죠? 우리가 세상 문제의 진짜 이유와 진짜 해결책을 알고 내 문제의 근본 뿌리까지 치유받으면요, 각자의 위치에서 천명, 사명 감당하는 날이 옵니다.

 

2.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은 하나님의 소원을 위한 삶입니다.

1) 천명, 사명을 감당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뭡니까? 계속 강조했잖아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거, 하나님 소원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시급히 하나님 백성부터 회복시키는 일을 지금 행하고 계신다는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어야 청지기의 삶을 살고,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의 삶을 살고,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죠. 그 사람이 계명을 지키고 말씀 따라 살게 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아요. 그래서 이게 다 하나님의 소원에 들어가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언약 백성인데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이제 나이 들었으니까 그냥 일반 노인처럼 그렇게 살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라고요.

 

2) 진정한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과도기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맞죠?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이라는 땅 자체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그 땅에서 계명에 순종하면 레위기 26, 신명기 28장의 축복을 그대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축복을 그대로 주님이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욥이 헷갈렸던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면 복을 받는 게 당연한데 내가 왜 고난이 왔느냐, 그게 헷갈렸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 욥의 인내에 대해서 나오거든요. , 우리는요, 지금 우리 신약 성도들은 이 땅이 지금 세상 나라지 하나님 나라가 아니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처럼 가나안 땅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는 과도기적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고 물질은 수단이라는 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게 없어질까 봐, 내가 그것이 부족해서 세상에서 어려움 당할까 봐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 그거는 지금 우리한테 마땅치 않아요. 계속 꺾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기준으로 사셔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이런 말씀 했잖아요. 디모데전서 같이 한 번 더 읽을까요? 시작.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장래에 좋은 터를 어디다 쌓는 것입니까?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이성으로 인정을 하더라도요, 본성과 욕구가 더 세기 때문에 본성과 욕구에 집니다. 그래서 주님이 살아주셔야 여러분이 본성과 욕구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성은요, 설명 들으면 5분이면 알아들어요. 그런데 이 체질이 안 바뀌어요. 우리가 지금 청지기로,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자로, 전도자로 살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3. 주의 강림이 가깝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죠. 우리 7, 8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57, 8절 시작.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여기에 보면은요, 이제 주의 강림이 가깝다는 이 말씀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가깝다고 느껴지십니까? , 지금 어쩌면 최고로 가까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도 보니까 AI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런 영상이 많이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지금 AI 개발자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거 지금 안전장치를 안 하면 AI 시대에 내 아이가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겠다고 실제 이야기해요. 실제 이야기입니다. AI 시대는요, 지금처럼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정보를 얻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자가 된답니다. 이 데이터가 많을수록 그만큼 AI를 잘 크게 쓸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AI 회사가 발전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AI로 다 연결되어서 통합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시대에 그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이 일단 독재해도 다 지배를 받아야 될 그런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최고로 주의 강림에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시다고 했습니다. 2천 년 전에 그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그렇게 간주하고 살도록 요구받은 것이죠. 성도들은 항상 주의 강림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런 마음의 상태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바라보고 살지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야 될 세 가지 삶을 야고보서가 지금 권면합니다.

 

1) 농부처럼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으라는 것입니다.

농부는 단숨에 수확 안 하잖아요. 우리도 아직 기다려야 될 부분들이 많잖아요. 디모데후서에 이런 말씀 있죠? 같이 읽어볼까요?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똑같은 본문은 아니지만 우리를 지금 여기서는 병사, 경기자, 농부라고 이야기하는데, 공통적인 특징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길이 참는 거예요. 맞아요, 안 맞아요? 경기자도 참아야 되잖아요. 그 시합 때까지 참으면서 훈련해야 되잖아요. 그렇죠? 병사가 참아야죠, 병사가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되죠. 우리도 최후 승리할 때까지, 열매를 거둘 때까지 길이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7가지 포인트 제자로 살라는 것은 정말 우리한테 맞습니다. 맞잖아요. 우리가 진짜 남은 자잖아요, 순례자잖아요, 정복자, 흩어진 자, 파수꾼, 길을 닦는 자, 대로를 넓히기 위해서 길을 닦는 자, 이것은 정말 우리한테 딱 맞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세상 기준과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철저히 하나님 나라 기준과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사셔야 합니다.

 

2)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서가 주의 강림이 가까운데 우리가 살아야 될 세 가지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첫째 길이 참으라, 두 번째가 원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여러분, 왜 원망하는 것이 심판당할 내용인 것처럼 이야기를 할까요? 사실 원망이 불신앙이거든요. 맞아요, 안 맞아요? 내가 살면 원망해요. 그런데 내가 살지 않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면 원망을 안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불신앙 안 하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그러니까 원망하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고 불신앙하는 것이고 그게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을 수 있어요. 그렇게 하지 말아야 심판을 면한다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비판 잘하잖아요. 정죄 많이 하잖아요. 원망의 뿌리는 하나님을 못 믿는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원망 대신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3) 우리가 가져야 할 세 번째가 욥의 인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11절을 읽어볼까요? 시작.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에게 중요한 걸 깨닫게 만들고 결말은 또 하나님이 복되게 처리해 주셨다고 되어 있거든요.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했는데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욥은 자기 이해력으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그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이해력, 자기 인간 수준의 문제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 지금 이성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래도 하나님을 신앙하라는 것이 욥기의 주제입니다. 그것을 이제 깨달은 거예요. "내 이 부족한 이성으로 하나님을 다 납득해서 그 하나님의 위치를 다 깨달아야 하나님을 믿을 것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따졌는데, 그 죄를 회개합니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말씀처럼 11절에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의 삶을 그렇게 처리하신 것입니다.

 

결론

오늘 제목이 뭐였죠? '주의 강림과 전도자의 삶'입니다. 제가 서론에 믿음의 전도를 하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매주마다 믿음의 역량이 길러져야 하거든요. 매주마다 믿음의 역량이 길러지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똑같은 것 같습니까? 작년하고 올해하고 여러분 믿음의 역량이 길러진 것 같습니까, 똑같은 것 같습니까? 아니면 수년째 한번 비교해 보세요. 해마다, 달마다, 주마다 이렇게 믿음이 자라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똑같은 것 같습니까? 아니면 자라났다가 푹 꺼졌다가, 자라났다가 푹 꺼졌다가 이렇게 하십니까?

 

아까도 이야기했죠. 하는 일이나 한 주간의 모든 삶을요, 여러분이 믿음의 역량이 길러지는 기회로 삼으면 믿음이 자라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모든 삶을 내가 내 힘으로, 내 머리로 처리하지 말고, 그냥 내 본성과 내 합리적인 이성으로 애써서 처리하지 말고, 여러분 속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불안, 눌림, 걱정, 이것을 극복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게 하신단 말입니다. 하나님 능력 안 믿어지면 사람 미워할 수 있습니다. 맞아요, 이권에 잡힐 수 있어요. 이권 분쟁과 이권 싸움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면 이권이 걸렸는데도 손해 볼 수 있어요.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100만 원을 떼였는데도 "만나면 죽여버린다" 이렇게 보통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배경이 하나님이라면 "100만 원 안 받아도 나는 살 수 있다" 이렇게 들어갈 수 있다고요.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아요. 얼마나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한테 상처받은 사람 있습니까? 굉장히 여러분을 무시하고 상처를 줬단 말이에요. 내가 복음 모를 때는 그게 평생 한이었단 말이에요, 상처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내가 복음 깨닫고 보니까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예요. 사랑을 입은 자이고, 나를 이렇게 바꿔주시다니 내 속에 막 은혜가 올라와요, 감동이 올라와요. 그렇게 되면 요셉처럼 됩니다. 형들을 용서한다니까요. 그 철천지원수였던 사람, 그 부분까지 성령이 건드리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려요. 이 복음이 얼마나 우리를 바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세상 살리는 자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증인으로 삼으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우리의 천명, 사명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