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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10월 4일 주일예배 -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벧전1:1~2)

by 별종외계오동 2026. 10. 4.

https://youtu.be/uWvOaM8PcA4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벧전 1:1~2)

 

지난주 말씀이 '창세기 3장의 결과를 뒤집어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제 설교를 듣다 보면 서론은 좀 다른데 내용을 보면 늘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지금 계속 같은 문제 속에 있고 해결책도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의 케이스는 달라도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이제 여러분이 문제의 본질을 얼마나 더 깊게 깨닫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얼마나 더 확실하게 믿느냐가 관건입니다. 말씀을 그냥 이론으로 들으면 식상해요. 진짜 문제를 깨닫고 그 해결책을 계속 누리다 보면 식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점점 더 확신이 생겨요. 내가 믿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해져요. 기쁨이 오게 됩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그리스도로 다 해결할 수 있구나, 이런 확신이 온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세기 3장의 결과로 잘못된 것을 하나씩 뒤집게 돼요. 여러분이 이런 단계가 되면 행복해져요. 행복해지니까 거기에 더더욱 인생을 걸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창세기 3장이 뒤집혀서 내가 승리하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증인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이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우리가 이 단계에 다 진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메시지를 그냥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그걸 뛰어넘는 역량 있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올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데 그런 시대는 역사적으로 반복됐어요.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도 또 그런 일들이 올 수 있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어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오게 된다면 지금 말씀드린 단계를 거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육신의 본성하고 막 싸우겠죠.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미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세상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게 해 주신 거예요. 아직 우리가 이런 세상 속에 살지는 않고 있지만, 지금 세상 속에서 핍박을 당하는 그런 나라도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어요. 베드로전서는 그런 핍박 속에 있는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쓴 서신이에요. 베드로전서는 이미 세상 속에서 핍박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쓴 서신이에요. 앞을 보시면 기록 연대가 나오는데 야고보서는 AD 45년에서 48년경이라고 그랬고, 베드로전서는 62년에서 64~65년으로 추정합니다. 근데 로마 대화재가 64년에 일어났다고 그래요. 로마 대화재 때 네로 황제는 방화범으로 기독교인을 지목하였어요, 그러나 누가? 사실 로마의 화재를 일으켰다고 역사가들이 얘기합니까? 네로 황제 자신이라고 얘기해요. 그것을 누구한테 누명을 씌웠냐 하면 기독교인들한테 누명을 씌워서 대박해가 그때부터 일어나거든요. 바로 그 직전 상황이에요. 지금 베드로전서가 그러니까 이미 기독교에 대한 배척이 있고 기독교인들이 시련을 겪고 있는 그런 상황이에요. 그 상황에서 이 베드로전서를 쓴 거예요.

 

1. 저자는 누구겠습니까?

1) 저자는 1절에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5장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느니라." 여기 바벨론에 있는 교회란 어디 있는 교회를 말하는 걸까요? 이 바벨론은 로마를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핍박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로마를 은어적으로 숨기는 말로 바벨론이라고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이때 로마에 있었다고 보통 역사가들이 얘기해요.

그럼 누구한테 이 편지를 썼냐 하면, 1절에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이렇게 얘기했어요. 이게 수신자죠. 여기 보면 지도가 나오는데 여기가 흑해죠. 그다음에 비두니아와 본도가 있고 여기를 당시에는 아시아라고 그랬어요. 갈라디아 또 갑바도기아에요. 이 지역들 전체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는 누구를 얘기하는 걸까요? 크리스천들, 성도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이 지역 전체가 터키예요. 튀르키에 입니다. 여기에 흩어진 성도들한테 편지를 쓴 거예요.

 

2) 시대 상황

시대 상황은 아직 이들의 숫자는 소수에요. 초대 교회의 핍박은 언제부터 일어났냐 하면 스데반 때부터 일어났잖아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죽이는 그 일을 필두로 해서 대대적인 핍박을 시작하거든요. 그때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데 어디까지 흩어지냐 하면 로마 제국까지 흩어지게 되는 거예요. 아까 야고보서가 45~48년경 쓰였다고 그랬는데 한 15년 정도 기간이 지난 시점이 베드로전서가 쓰인 시기가 되는 거예요. 흩어진 성도는 뭐 했겠어요?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로마 제국에도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수 믿게 되었던 거예요. 이 베드로전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도 쓴 거고, 함께 믿게 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쓴 거예요. 이방인 성도들이 예수 믿게 된 다음에 황제 숭배나 자기들이 관행으로 했던 우상숭배를 계속했을까요? 안 하게 됐겠죠. 그렇게 안 하다 보니까 그 시대는 지금처럼 신앙의 자유가 있었던 때가 아니에요. 그 시대일수록 집단적으로 믿는 그런 분위기잖아요. 개인적으로 개종을 하게 되면 표시 나요. 그리고 가족이나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 갈등이 생겨버려요. 반사회적 집단으로 기독교인들이 몰리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황제 숭배 안 하죠. 그거는 국가적인 의식이고 국가에 충성하는 황제의 신민이 하는 거거든요. 근데 황제한테 절을 안 해, 그리고 정말로 대대로 절했던 신들에게 절을 안 해. 지금처럼 뭐 아무거나 믿어도 되는 시대가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반사회적 집단으로 몰리게 되고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거예요. 사회적 배척도 당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시련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본서가 기록됐다는 말이에요.

 

3) 기록 목적

어떤 목적으로 이 베드로전서를 썼냐 하면, 너희들에게 첫째는 '하늘에 산 소망이 있다' 이거를 밝힙니다. 하늘에 산 소망이 없으면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이길 수 있는 대책이 없는 거죠. 그러면서 시련 당하는 성도가 가질 자세를 설명하고 있어요. 이 자세는 지금도 우리가 명심하고 우리도 이 기준에 맞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거든요. 그 자세가 뭐냐?

(1)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올바른 해석입니다. - 우리가 예수 이름을 믿는 이유 때문에 고난 당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해석을 해야 하죠. 어떤 해석입니까? 성도의 죄 때문이 아니라 신분 때문에 겪는 고난이에요.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일찍이 핍박에 대한 예고를 많이 하셨어요. 정체성에 대한 부분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겁니다,

(2) 이런 고난을 통해서 성도는 성령의 깊은 통치를 더 맛보게 됩니다. - 결과적으로 성령의 더 깊은 통치 속으로 성도가 들어가도록 이 시련을 사용하시게 됩니다. 본성적으로는 불안하고 두렵고 갈등이 막 오겠죠. 그런데 거듭난 성도가 기도를 안 하겠습니까? 기도하게 될 때 이 불안과 두려움을 능가하는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하시는 거예요. 성도를 붙잡아 주시는 겁니다.

(3) 세상이 비난할수록 오히려 선한 행실과 정결한 삶을 보여주라고 본서를 쓰고 있어요. - 무슨 말이에요? 오히려 핍박하는데 선한 행실과 너희의 정결한 삶을 보여주라는 거예요. 같이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고 성령으로 반응하라는 거예요. 그게 지는 게 아니고 그게 이기는 거라는 거예요. 그것이 신자의 정체성이에요.

 

2. 삼위 하나님의 구원

오늘 내용 2절을 읽겠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오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수신자들에게 그들이 받은 구원이 ‘삼위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1) 성부의 택하심(선택)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 보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오니"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첫 번째가 성부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성도의 구원의 기원이 하나님 아버지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에베소서 1장 5절을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 예정했다고 해서 우리의 자유 의지나 책임성이 무시되는 말은 아니에요. 자유 의지나 책임성은 그대로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이 죽고 흑암 세력에 잡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심이 우리 구원의 기원이 되는 거예요.

 

2)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입니다.

2절에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았다"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라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시어서 구별되게 해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 대한 인식과 그리고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해 믿음을 성령께서 갖게 해 주시는 거예요.

오늘 초등부 아이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는데, 사실은 우리가 갖는 믿음은 우리 영에 성령이 주시는 믿음으로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우리 영에 성령님이 깨달음을 주시고 교훈하시고 감동하시는 이런 역사가 우리한테 있는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감동하시거나 깨닫게 하시거나 믿어지게 할 때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제가 되는 거예요. 근데 성령의 교통하심이 끊어지거나 약화 되면 깨달음이 점점 희미해져요. 믿음의 힘이 쭉 빠지는 경우들을 우리는 느껴요. 이게 머리로 그냥 이해하는 거랑 왜 다른 거냐 하면, 머리로 이해하는 건 지적으로 이해하는 거예요. 근데 성령님이 믿어지게 하는 것은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영을 살리고 영에 감각을 주시는 거예요. 믿음을 주시는 거라고요. 그래서 성령님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죄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알고 믿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구별되게 하셔서 거룩하게 살도록 만드는 거예요.

 

3) 성자의 사역이 나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결과적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게 됩니다." 성령께서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하니까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주신 것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효력이 발생하게 만드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의 구원은 성부 성령 성자의 사역이십니다.

전도는 우리의 언변이나 설득력으로 믿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죠. 상대 이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에요. 지적으로 이해시켜도 "내 마음으로는 안 믿어진다" 이런 얘기 종종 하거든요. 단지 이성으로는 영에 감동을 줄 수 없고. 영을 살릴 수 없고. 영에 믿음을 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영이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임재, 통치, 인도, 역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해요. 인간은 지금 영적인 문제가 와 있잖아요. 죄에 빠졌기 때문에 그 결과 영이 죽고 사탄에게 지배받는 걸 영적 문제라고 그랬어요. 영적 문제가 와 있고 현실 문제가 와 있어요. 지금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 현실의 고난이 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친다고 그랬어요. 겹칠 때 우리 안에 성령의 통치를 받으면 우리는 말씀으로 나의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근데 만약에 성령의 통치를 안 받으면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쳐서 내가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본성과 합리적 이성으로 반응해 버려요. 그러니까 현실 문제가 오면 당장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세게 들어오면 충격을 받는 거예요. 그리고 일이 계속 안 풀리고 조이면 진짜 시달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님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복음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현실은 이럴지라도 그 현실을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이 믿어지게 하시고 언약이 믿어지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기도 속에서 이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말씀과 믿음이 공급되게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이 생명 있는 신자의 모습이잖아요. 불신자 같은 경우는 지금 이렇게 성령의 통치를 받는 게 아니라 그 마음과 생각이 사단의 지배를 받아요. 이미 사단이 깔아놓은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본성과 합리적인 이성으로 살게 만들면서 사단의 지배를 당하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가 정확한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이 전도 받는 자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전도할 때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전도하는 거죠. 삼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우리가 도구 되는 게 전도예요. 여러분이 전도할 때 내 언변이나 설득력으로 애쓰고 노력해서 믿게 하겠다는 생각하지 마세요. 100% 이거는 선명하게 삼위 하나님의 역사다, 이렇게 믿으셔야 해요. 성부께서 택하시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그래서 성자의 복음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전도하러 들어갈 때마다 어떻게 기도하냐 하면 "내가 현장에 들어갑니다" 이게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현장에 들어가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영원한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현장에 들어가십니다.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쳐서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그 인생을 주님이 흑암 세력을 꺾어주시고 죽은 영을 살리고 구원하시러 들어가십니다." 이게 올바른 전도 이해예요. "그 일에 주님이 성령의 감동과 충만으로 저를 붙들어 주시고 저에게 담대함과 당당함을 주옵소서. 전해야 할 복음의 말씀을 주시옵소서." 누구를 의지하는 거예요? 성령을 의지하는 거잖아요. "상대방도 주님이 개입, 간섭하셔서 그 마음 문이 열리게 하시고 귀가 열리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믿음의 전도를 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전도하러 나갈 때 먼저 영적 상태를 바꾸는 거잖아요. 만약 상대가 복음을 깨닫고 믿고 영접하면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는 거죠. 왜 바뀌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인생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는 겁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다시 사귐을 갖게 되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신분 권세를 얻잖아요. 그러니까 영원한 운명, 소속, 신분 다 바뀌는 거죠.

 

3. 영접하면 저주가 다 끝난 겁니다.

1) 소속, 운명이 바뀌었어요.

신분이 바뀌었어요. 그러면 저주가 끝난 거예요. 그러면 현실적인 고난은 뭐예요? 세상의 핍박도 오잖아요. 그래도 이거는 우리에게 저주의 성격이 아니에요. 신분상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세상은 지금 사탄에게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에 올 수밖에 없는 갈등과 공격이란 말이에요. 근데 예수님이 성령으로 그걸 이기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는 더 깊게 성령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뿌리내리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이게 저주가 아니고 주님이 선용하시는 거고 이것도 주님의 계획 속에 있는 거예요.

 

오늘 베드로전서는 핍박당하는 성도들한테 주어진 편지인데 분위기가 어둡잖아요. 좀 눌리잖아요. 눌리지 말기 바랍니다. 오히려 오늘 우리가 정말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제대로 갖추어야 하는 겁니다. 저주가 끝났기 때문에 성도에게 남은 문제는 해결되거나 선용됩니다. 기도하면 기도 속에서 그 문제를 해결 받거나, 아니면 나에게 중대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전도하거나 다락방 말씀 운동을 할 때 새 신자에게 이 부분을 분명하게 답 줄 수 있어야 해요. "당신 질병 이거 다 끝난 거다. 이 질병 이제 당신 거 아니다. 주님이 주인이고 책임자시다." 이렇게 말씀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셔야 해요. 하나님이 진짜 이 질병을 치료하시든지, 이 질병 때문에 더 기도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영혼이 점점 더 성장하게 만들어요.

 

저도 대구에서 암 말기로 병원에서는 안 된다는 분, 불교 가정이었는데 그 가정을 다락방 들어갔어요. 암 걸린 사람이 장녀예요. 처녀 아가씨예요. 뇌암에 걸려서 머리 다 빠지고, 마지막이 돼서 이 가정이 예수님 믿기로 작정하고 제가 다락방 들어갔거든요. 제대로 못 먹어서 앙상한 상태에서 누워 있는 상태로 했어요. 아버지 엄마 옆에 앉고. 그 장녀는 예수님 믿고 결국 소천했어요. 그때 엄마 아빠가 믿음이 들어가 버렸어요. 그 아빠가 지금 장로예요. 그 엄마가 권사예요. 온 가족 구원을 이루고 그 장례도 담담하게 치르고 보냈어요. 지금도 연결돼요. 제가 전화하면 “아이고 목사님” 그러면서 참 저에게 너무 잘해주세요. 하나님이 해결하시든지 선용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저주 운명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제는 빠져나온 거예요. 사단의 종이 아니에요. 멸망 당할 운명이 아니라 이 말이에요. 이걸 새신자에게 다락방 할 때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어떻게 선언하고 있습니까? 롬 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랬는데 정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저주가 다 끝난 게 아니에요. 우리의 죄가 완전히 속죄함을 받고 칭의까지 해 주시거든요.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완전한 신분 권세를 얻는 거고 그러니까 저주가 완전히 끝난 거예요. 이제는 주님이 24시 함께하셔요.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셔요.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님의 생각으로 들어가면 다 승리예요. 그게 기도예요. 오늘, 이 권사님이 기도하셨는데 얼마나 탄식하면서 기도하셨는지 몰라요. 저도 마음이 짠합니다. 근데 진짜 오늘 말씀처럼 내 생각으로 안 들어가고 주님의 생각으로 들어가면 다 승리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생각으로 들어갑니까? 성령님이 내 본성에서 올라오는 합리적인 생각, 이성적인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으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인데, 어디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여기서 법이란 통치법이에요. 그 법 속에 우리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상속자로서 성령이 다스리는 통치법 속에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죄와 사망의 법은 어디에 있는 법일까요? 로마서 7장과 연결시켜서 해석하면 율법 아래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이에요. 근데 이 통치법이 바뀌어 버렸어요. 여러분, 북한 정권 속에서 통치받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망할 정권이잖아요. 같이 망하게 되는 운명이란 말이에요. 근데 만약에 탈북해서 대한민국 국적을 얻고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어떻게 돼요? 통치법이 바뀌어 버렸어요. 그걸 운명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요새 유튜브 보면 탈북자들의 그런 영상을 올려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세계에 나가면 여권 파워가 높다고 자랑해요. 그 여권 가지고 중국 공안 앞에 가도 하나도 안 무섭대요. 공안 앞에 맨날 벌벌 떨었거든요. 두만강, 압록강까지 가서 북한을 보는 거예요. 누가 안 잡아가요. 왜요? 대한민국이 지키기 때문에. 당당한 신분 권세가 있기 때문에 문제 생기면 대사관에 연락하면 돼요. 그러면 "이 사람은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우리가 책임진다" 고 해요.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에 송명희 시인의 '너의 쓴 잔을' 이런 복음성가 있잖아요. 그 찬양에 보면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쓴 잔을 다 마시고 우리에게는 단 잔을 주셨다고 돼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우리에게는 생명을 주셨다. 또 그가 근심을 당하시고 우리에게는 평안을 주셨다고 돼 있어요. 악착같이 이걸 믿으셔야 해요. 고린도전서 2장 12절, "우리가 세상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로 주신 게 복음이에요. 복음 안에 있는 신자의 축복이에요. 신분 권세예요. 이거를 하나님께로 온 영, 곧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신다는 거예요.

 

이번에 집중 훈련을 할 때, 초창기 메시지 들으면서 여러분이 뭘 유심히 듣는가 하면, '류 목사님이 당시에 가졌던 그 확신과 충만함이 내게 지금 얼마만큼 들어와 있는지' 이걸 확인해 보시기 바라요. '아는 메시지네' 이러지 마시고 불신자 6가지 상태가 이제 얼마만큼 더 확실하게 보이는지 그걸 확인해 보시라고요. 저는 장족의 발전을 했어요. 저는 계속 발전을 했어요. 이 메시지가 성령께서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고 확신하게 만들어 주셔서 이제 내 걸로 다 바뀐 거예요. 그걸 확인하시라 이 말이에요.

 

2) 주님이 살아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거예요.

성령으로 살아주시는 게 신앙생활이고, 기도는 주인을 바꾸는 거고 주님의 살아주심을 체험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의 삶의 체제와 운명이 바뀐 거예요. 어떤 문제를 만나도 문제는 선용이 돼버려요. 성령께서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문제에 대한 해석을 바르게 하도록 만드십니다. 기도가 안 되면 다 밀려버려요. 본성에 입각한 합리적인 생각에 다 빠져요. 환경을 못 이겨요. 근데 베드로전서에 보면 이 핍박을 이기는 메시지 하고 있거든요.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여러분 받을 텐데, 현재 어떤 문제도 저주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 사건은 주님이 주인 되시고 언약 성취의 일환이 되게 해 주셔요. 그래서 성도는 삼 응답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회다. 갈등은 갱신의 기회다. 위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고 또 반전의 기회다.' 베드로전서와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성도에게 세상이 주는 시련과 고난이 오더라도 그 상황 속에 계신 성령께서 결코 그를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거예요. 복음이란 창세기 3장의 결과를 뒤집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걸 체험하고 이것의 증인으로 서는 이번 집중 훈련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정말 여러분 이번 집중훈련하면서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확인바랍니다. 영접의 단계인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단계인지, 뿌리내려서 세움을 받은 단계인지,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단계인지 점검하기를 바라요. 사실 여러분이 매주 당하는 문제를 나의 믿음의 역량이 길러지는 기회로 삼으라고 그랬잖아요. 근데 대부분 기도는 안 한 채 자기 힘으로 감당하려고 애쓴다고요. 그게 믿음의 역량이 길러지는 기회입니까? 인본주의 체질이 더 각인되는 기회로 삼고 있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힘들다는 소리만 하고 있고, 내가 다 했다는 소리 하고 있는 거예요. 매일 하던 일 똑같이 하고 있는데 그걸로 믿음이 자라나겠습니까? 자라납니다. 남편 관계, 아내 관계, 자녀 관계, 이웃 관계, 직장 일 처리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하면 매주 믿음이 자라나요. 똑같은 체질로 살고 있어서 문제지, 직장 생활하는 데도 역량이 자꾸 길러진다니까요.

이번 집중 훈련을 놓고 '교회가 훈련받는 중요한 기회인데 나도 거기에 동참해서 나의 시간표 인도를 받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번 목표는 개인 전도자로 여러분이 세움을 받고 다락방 사역자로 길러지는 게 목표예요. 그걸 놓고 기도합시다. 말씀 붙잡고 우리 합심해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