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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6년 10월 11일 주일예배 - 성도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벧전 1:3~7)

by 현상금 2026. 10. 11.

성도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벧전 1:3~7)

 

오늘 밤 비행기로 보홀 사역을 다녀오게 된다. 성민이가 지난주에 갑작스러운 일로 영주에 내려갔다.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지금 돌보고 있다. 함께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여러분이 기도로 동역해 주기 바란다. 사탄과 영적 싸움의 현장이다. 보홀섬에 있는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대상이고 제가 1차 합숙 강의를 이틀간 한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영적 메시지와 복음 메시지가 전달되어 저들이 세워지는 것이 얼마나 싫겠는가? 사탄은 지금도 교회가 전도하면 안 된다. 그냥 자기 하나만 믿고 자기 응답에만 신경 쓰기를 원한다. 분명히 지금 이 세상 임금은 사탄이다. 가나안 정복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가나안에 정복당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하니깐 오히려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다. 이번 집중훈련 방향과 목표가 여러분이 개인 전도와 다락방하는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현장을 매주 한 번씩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영적 근육이 생긴다. 여러분이 성장한다. 실제 현장에서 사탄의 세력과 3, 6, 11장의 본성을 이기고 전도자로 세움을 받는다.

오늘 제목이‘성도가 승리할 이유’이다. 우리가 세상 본질을 알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전도다. 시급히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세우는 것이다.

 

1. 베드로전서의 시대 상황

베드로가 본서를 기록할 당시(AD 62~63년경),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향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때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 행 27:24에 보면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했는데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였다(바울 1차 투옥 60~62). 베드로전서를 쓸 당시는 62~63년 경이니깐, 네로 황제 통치 중반(54~68년) 넘어설 때다. 베드로는 이런 상황에서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베드로전서를 썼다. 로마 전역에는 이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혐오가 많았다. 로마인들은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고 로마 제국의 전통과 질서를 위협하는 불온한 종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은 황제 숭배와 신전의 우상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독교인을 '무신론자' 라고 불렀다. 성찬식을 오해하여 '식인하는 자들', 이라 하였다. 성도 간의 거룩한 입맞춤 한다는 말을 문제 삼아 '근친상간하는 자들'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오해로부터 기독교인은 고발당하고 괴롭힘을 겪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성도들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2. 성도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오늘 본문에는 그 얘기를 하고 있다.

1) 3~5절에 보면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이유가 나온다.

(1) 거듭남과 산 소망을 선포한다. - 3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므로 편지의 본론을 시작한다. 성도가 시련을 극복하는 첫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분명히 안다. 하나님은 많은 긍휼이 있으시다. 베드로는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복음의 핵심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이 승리할 수 있는 이유이다. 세 번째는 산 소망에 대한 확신이다.“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고 하였다.

(2) 산 소망에 대해 부연하고 있다. - 4절,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며 하늘에 간직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죽어 영혼이 가는 천당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도 생각해야 한다. 제가 지난번 소개했던 ‘제임스 투어’나노 과학자는 과학자면서 전도자였다. 전도하다가 공격당하면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제가 전도하는데 누군가가 조롱한다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임스 투어에게 축복을 더 부어줘야 하겠다. 이는 누군가 그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이 자기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5절에 보면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했다. 믿음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이다. 요일 5:4~5에,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했다. 비상적 상황에서는 주님의 비상적 개입 역사가 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2) 우리는 잠깐 근심할 수 있다.

(1) 6절에 보면 베드로는‘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라는 말을 쓴다. - 성도도 본성으로는 얼마든지 근심할 수 있다. 전도할 때도 부담과 눌림이 작용한다. 그러니 여기서 참 중요한 것이, 육신의 본성을 성령께서 극복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육신의 본성은 육신의 느낌과 육신의 생각을 갖게 한다. 성령께서는 영의 느낌과 영의 생각을 갖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이걸 구분하게 하면서 극복하게 하신다. 역사적으로 보면 네로 황제 때부터 250년간 대박해가 있었다고 한다. 근데 313년 기독교 공인 직전에 통계를 보면 기독교 숫자가 늘어났다. 로마 제국 전체 인구가 6,000만 명인데 10 프로가 넘는 600만 명 이상이 기독교를 믿었다고 한다. 10년마다 약 40%라는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성령께서 박해를 능가하는 은혜를 주셨다는 말이 된다.

베드로는 왜‘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라는 말을 썼을까? 영원한 나라 입장에서 보면 '길어도 잠깐' 이다. 그래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크게 기뻐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과다. 성령께서 히 11장의 믿음의 인물들이 가졌던 두 가지 믿음을 그들에게도 가지게 하신 것이다.

(2)‘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지게 하신다(7절). - 이 말의 뜻은 ‘너희 믿음이, 불로 연단하지만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이렇게 해석하면 뜻이 더 분명해진다. 왜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시는가? 저주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소속이 다르기에 성도가 신분상 당하는 시험이다. 이것을 허락하심은 세상에 대해서는 심판이 근거가 되고 성도에겐 축복의 근거다. 금은 불로 제련해서 순금으로 만든다. 순금도 물질이기 때문에 결국은 없어진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다. 시련을 겪을 때 성령께서 성도의 불순물들은 제거하신다. 세상 욕망이나, 자기 의, 교만이나, 세상을 사랑하고 물질을 의지했던 것이나, 인본주의 체질 등이 제련 된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들은 영적 문제에 빠져있는 세상 본질을 정말 이해하고, 더욱 언약의 사실을 붙잡게 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신다.

 

3.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세상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

1) 세상의 본질을 영적으로 항상 볼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창 3, 6, 11장의 성격과 본질을 그대로 갖고 따른다. 세상 성공자나 실패자나 양심가나 범죄자나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영적 근본 문제는 똑같다고 했다. 그들은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 현실 이익만 좇으며 인본주의나 우상 숭배로 산다. 이런 것이 집단화되고 국가화될 때 자기 이해와 안 맞는 교회를 핍박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시대마다 있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 벌어지고 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과 목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환란이 아직 오지 않았다. 미리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삶에 안주하라는 말도 아니다. 성도는 세상 본질을 알고 하나님 소원에 절대 맞추어야 한다. 우리의 방향은 하나님 나라와 세계 복음화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전도밖에 없다. 사람을 살리고 길러내는 일을 하게 되면 방향이 제대로 맞게 된다. 믿음의 바른 성장이 된다.

 

결론

성도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과 산 소망이 있고 성령께서 불 같은 시험에서도 잡아주시기 때문이다. 교회 방에 올린 20차 집중훈련 기도 제목을 여러분은 결론으로 붙잡으라.

1. 갈 2:20이 되도록 - 주객과 체질이 180도 바뀌도록

2. 하나님 소원(하나님 나라, 세,복) 위해 청지기,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자, 전도자의 삶을 살도록

3. 지속할 현장, 지속할 방법, 지속할 시간 정해서 실천하는 지속할 전도 제자 되도록

(개인 전도와 다락방을 위해) 주 1회 현장을 체험해라. 이번 주에 꼭 현장을 나가라.

4. 이번 주 보홀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