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하는 복음 (벧전 1:8~12)
지난주에 필리핀을 잘 다녀왔습니다. 세부 섬은 선교사님이 계신 지역이죠. 그곳에는 10여 명의 필리핀 현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페마 선교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벌써 수년 동안 집중 훈련을 해왔고, 저 앞서 다른 목사님이 섬겨서 훈련이 계속 진행되어 왔습니다. 지금 세부 선교는 선교사님이 목회자 제자를 세우는 일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필리핀에는 세부 섬 외에도 보홀 섬과 민다나오 섬이 있는데, 이번에 제가 보홀 섬에 다녀왔습니다. 가서 보니 세부 섬만큼이나 크고 상당히 규모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현지 목회자 부부 동반으로 21명이 모여 집중 훈련을 했습니다. 제가 1차 합숙 훈련을 인도했고, 알준 선교사님이 구원의 길을 현지어(세부아노)로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이후 두 명씩 짝을 지어 구원의 길을 전하는 워크숍도 진행했습니다. 훈련 마지막에는 선교사님이 나오셔서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나누셨습니다. 보홀 섬의 대표 목회자이신 안떠 목사님은 선교사님을 계속 따라붙으며 동역하시는 분인데, 앞으로 이분의 교회에서 전도 학교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곳으로 사역자들이 모여 계속 메시지를 공급받고 훈련하자는 내용으로 이번 집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또 한 군데 거점을 잡고 전도 운동을 하고자 하는 곳이 민다나오 섬입니다. 민다나오 섬은 훨씬 더 멀고 크기도 더 큽니다. 이슬람 회교가 장악한 일부 위험 지역이 있어 여행 금지 구역도 있지만, 나머지 지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의 대표적 목사님이 '알버트' 목사님입니다. 다음 달에는 선교사님이 민다나오 섬에 가서 알버트 목사님을 중심으로 집회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알준 목사님은 항상 선교사님과 동행하십니다. 통역자가 따로 없을 때는 선교사님이 영어로 하시고, 알준 목사님이 필리핀 현지어로 통역을 하십니다. 그래서 알존 목사님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현지인들에게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확신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알준 목사님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더라고요. 이번 훈련 중 식사 시간에 한 현지 목사님이 제 옆에 오셔서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목사님, 1차 합숙은 필리핀 목회자들이 정말 다 받아야 하는 훈련입니다." 그만큼 합숙의 내용이 현지에 제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자세한 선교 보고는 오후 시간에 다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본질을 알수록 전도 마인드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지식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심령에 직접 가르치셔야 합니다. 모든 메시지가 심령에서부터 믿어지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과 교회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사단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더욱 발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금이 전도하기에 가장 좋은 적기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핍박한다면, 영적인 면에서 볼 때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도가 죄를 지었거나 무언가 잘못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받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성도의 소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일찍이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너희가 핍박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도 그렇게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 영적 본질을 똑바로 보셔야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반면에 육신적으로는 힘들지라도 그 핍박은 성도에게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 이름 때문에 겪는 핍박은 가장 큰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 핍박이라는 비상적 상황이 벌어지면 주님도 비상적으로 사역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주님이 비상적으로 개입하실 것을 믿기 바랍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증거를 가지고 초대교회가 핍박 속에서도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독교 박해
지난주에 네로 황제 때부터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약 250년간 극심한 핍박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 소멸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 놀라운 수치적 성장
로마 제국 내 기독교 성장의 수치를 보십시오. 예수님 승천 후 10년 정도 지난 AD 40년경에는 로마 제국 내 기독교인이 약 1천 명(0.0017%)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00년경에는 약 7,500명, 200년경에는 약 22만 명, 250년경에는 100만 명으로 늘어났고, 300년경에는 무려 600만 명 이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인구가 약 6천만 명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된 것입니다. 매 10년마다 약 40%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결코 평안할 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에는 기독교를 잔혹하게 박해했던 10대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AD 64년 네로 황제의 로마 대화재 때부터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는 그 핍박받는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 부분적인 핍박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국가 통치력과 행정력을 동원한 전국적이고 조직적인 대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떻게 그토록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2) 교부들의 증언
터툴리안이라는 유명한 교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를 베어 보십시오. 우리가 베임을 당할수록 우리의 수는 더 늘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교회의 씨앗입니다." 죽일수록 더 늘어난다는 무서운 고백입니다. 순교자 저스틴 역시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극복하는 용기와 그 거룩함이 수많은 이교도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회심시켰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3) 역사가들은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을 몇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순교 시 보여준 모습입니다. -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불태워지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을 죽이는 황제와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죽어갔습니다. 죽고 난 후의 얼굴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로마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신 분이구나." 이 깨달음이 로마인들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둘째, 전염병 속에서 보여준 사랑입니다. - 2~3세기에 무서운 전염병이 로마 제국을 휩쓸어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갈 때,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며 음식을 먹여주었습니다.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심령에 부어졌기에 가능한 희생이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의 헌신 덕분에 전염병에서 살아남는 불신자들이 많아졌고, 이 헌신적인 사랑이 로마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셋째,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 당시 로마는 철저한 무력 중심의 세상이었습니다. 여아가 태어나면 버리는 영아 유기가 만연했고, 노예 학대와 여성 천대가 당연시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라고 가르쳤습니다. 인격의 소중성을 강조하는 복음 앞에 여성, 노예, 가난한 사람들이 기독교로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넷째, 확고한 내세의 산 소망입니다. - 기독교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부활 신앙과 영생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믿던 다신교나 그들의 뛰어난 철학도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는 아무런 위로나 평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핍박을 피하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 핍박을 능히 이기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도 "로마 제국의 250년 박해 기간 동안 기독교는 오히려 더욱 강하게 성장했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문헌과 역사적 통계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 박해를 이겨냈을까요? 인간적인 인내나 참을성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이 강력하게 붙잡아 주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박해는 성도의 육신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성도의 믿음은 결국 로마 제국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정확히 이해됩니다.
2. 오늘 본문
1)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고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내면 깊은 곳을 터치하시고 감동하시며 통치하시기에 가능한 기쁨입니다.
인간의 원래 상태를 아십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의 대리 통치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몸과 영혼'을 모두 가진 존재입니다. 육신을 통해 물질세계와 자연을 접하고 다스리도록 육신(뇌)를 주셨고, 동시에 영혼을 주셔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관이고, 혼은 지정의(인격)를 담당합니다. 영이 죽으면 혼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원래 인간은 영으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며 그분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도록, 그리고 육신으로는 자연을 다스리며 누리도록 지음 받은 이중 구조의 존재입니다. 지금도 영이 살아 있는 성도는 성령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가 가능합니다. 세상이 핍박해도 성령님은 그 핍박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그분이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 내 본성이나 내 힘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이길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이기게 하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책임자가 되셔서 세상을 이기도록 내면에 말씀과 감동과 충만함을 주십니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현재 튀르키예)의 교회에는 소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다수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육신으로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예수님과 깊은 교제가 가능했기에, 보이지 않아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다'고 베드로는 선언한 것입니다.
2) 믿음의 결국은 영혼이 구원입니다.
9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왜 영혼의 구원을 강조했을까요? 비록 지금 육체는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지라도, 영혼은 영원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구원받으면 장차 육체의 영광스러운 부활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산 소망입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28)
핍박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허락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가 그 핍박에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보호하듯 하나님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당할 때,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영을 성령님이 강력하게 붙들어주십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허용된 것이며, 성도를 연단하고 세상을 향한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가 영적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 세상에 홀리게 됩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삶의 가치관은 세상의 것을 따라갑니다. 이 세속적 가치관이 빨리 깨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물질과 육신이 전부입니다. 모든 가치의 기준이 그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과 영적 세계를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결코 물질이나 육신의 문제로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번 1차 합숙 훈련에서도 현지 목회자들에게 이 불신자 상태의 영적 근본 문제와 초래된 결과, 그리고 하나님의 해결책인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연륜이 있는 목회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첫 시간부터 집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기쁨의 근거는 소유나 환경,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삼위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와 현주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짜 신자이며, 이런 자들이 시련 속에서도 결국 승리합니다.
10절부터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천사들조차 살펴보기 원할 만큼 놀라운 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구원과 복음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구원에 대해 부지런히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들의 시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을 위한 것임을 계시로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장차 그리스도가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미리 증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이 놀라운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받은 이 구원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사상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디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지혜,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기업으로 상속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만으로 예수를 나의 주로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구원을 받은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승리해야 할까요?
3.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세상의 영적 본질을 정확히 아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세상이 왜 멸망으로 가는지, 왜 세상에 구원이 그토록 필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진짜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을 단순히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도구로 쓰겠습니까? 아닙니다. 기업의 목적을 하나님의 소원에 맞추고, 기업의 진정한 주인을 그리스도로 모시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왜 성도를 핍박하고 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 본질을 안다면, 우리의 사명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여러분, 매일 그럭저럭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축복의 통로가 될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진정한 행복이 밀려옵니다. 돈 걱정에 얽매여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머리로는 이것을 다 알면서도 현실 앞에서는 육신의 본성과 합리적 이성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의 현장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전도자'로 사는 것뿐입니다.
2) 매일 영적인 체질 훈련이 되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안다고 하면서 매일 인본주의 체질로 살면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한 말씀을 보십시오. "육체의 연단(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8)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식단을 관리하는 육체의 연습도 유익하지만, 그것은 '약간의 유익'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 경건의 훈련, 즉 말씀, 기도, 전도, 삼오늘의 훈련은 이생만 아니라 내생에 약속이 있습니다.
전도의 마인드가 있어야 삼오늘(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이 내 삶에 제대로 세팅됩니다. 이 영적 훈련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을 쓰면 삐뚤빼뚤하듯, 인본주의로 살아온 우리의 오랜 체질을 성령의 인도로 뒤집는 훈련은 현실 문제와 사단의 공격 앞에서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히며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깊은 교제를 통해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믿음과 임마누엘, '원니스'의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원니스가 무엇입니까? 내 과거가 어떠했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실패나 실수조차 성령님이 즉시 깨닫게 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축복입니다. 고난, 위기, 실패, 성공까지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이루고 그 소원에 쓰임 받게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끊임없이 이끌고 계십니다.
결론
우리는 천사들도 부러워하고 살펴보기를 원하는 그 영광스러운 복음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세상을 능히 이기신 전능하신 주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감당하지 못할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삶의 모든 일, 모든 문제, 모든 스케줄을 여러분의 '믿음의 역량'을 기르는 최고의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영적 본질을 똑바로 보았다면, 남은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밖에 답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이해한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실제로 삶의 체질을 바꾸는 영적 훈련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의 고백과 함께 청지기,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자, 전도자의 삶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향해 자신을 훈련하며 참된 제자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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