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 (벧전 1:13~21)
https://www.youtube.com/watch?v=17WEnaqi4_k
지난주에는 건축 헌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말씀 받았습니다. 오늘 다시 베드로전서를 보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로마 황제 통치하에서 고난 받는 상황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준 서신이라는 말씀드렸어요.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은 세상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영적으로 볼 수 있으면 우리는 정말로 이 싸움이 내 싸움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싸워주셔야 할 싸움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세상을 봐야 세상이 지금 과학이 발달해도 왜 타락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도 영적인 눈이 있어야지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여전히 핍박이 있는 나라들이 있다고 그랬어요. 타 종교권, 특별히 이슬람권 또 심한 불교권 다 핍박하거든요. 그리고 심한 공산권 지금 많이 핍박하고 있고 최고 핍박하는 데가 북한이죠. 반면 핍박하지 않는 자유주의 나라들은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기독교 박해는 안 하지만 지금 동성애나 방종이나 범죄와 수많은 타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영적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냥 문화 현상으로 보는 게 아니고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흑암 세력이 이 세상을 아주 캄캄한 가운데 빠뜨리는구나 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새 연일 보도 나오죠. 프랑스는 사실 국가 순위가 높은 나라인데 지금 국가 부도 위기에 놓였다 이렇게 돼 있죠. 연일 시위가 난리 났죠. 군인들을 동원해서 사회 안정시키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반도체 수출로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입니다. 누가 이렇게 많이 죽어요? 우리나라에. 10대도 죽고 20대도 죽고 40~50대도 죽고 자살률이 높아요. 그리고 통계를 보니까 우리나라 정신병과 마약 사범 1위 연령층을 보니까 2~30대예요. 2~30대가 정신병하고 마약 사범이 제일 많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청년들이 취업이 안 돼서 현실적인 문제에 짓눌려서, 이게 굉장히 큰 이유가 되고. 마약 사범은 왜 많냐 하면 요새 마약 유통이 전부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돼요. 그 인터넷 할 수 있는 계층이 20~30대거든요. 물론 더 어린 자녀들도 할 수 있지만, 마약을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거는 10대는 어렵잖아요. 2~30대가 제일 마약을 쉽게 구해요. 지금 집사람이 어떤 50대 마약 사범인 여자분을 만나고 있어요. 두 번째 만났어요. 완전히 무너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현실 문제가 이유가 돼요. 현실이 압박감을 주면 정신병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 문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영적인 것을 같이 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항상 그래요.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칠 때 마음과 생각을 사단이 지배한다는 겁니다. 직접 사단이 막 나타나서 지배하느냐? 그건 아니고, 이미 깔아놓은 게 있잖아요. 영은 죽고 창세기 3장, 6장 본성에 빠져서 합리적 이성으로 살잖아요. 그러니까 현실 문제에 압박당하게 될 때 너무 힘들거든요. 약을 먹어야 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단은 그쪽으로 유도를 하는 거예요. 현실 문제 앞에서 이미 영적 상태가 죽어 있는 불신자 상태, 또 신자라도 영이 굉장히 약하고 눌려 있으면 신자도 정신병 걸릴 수 있어요. 그럴 때 잘못된 생각, 느낌에 빠지게 만들어요. 그러면서 오판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냥 단순히 그 사람의 잘못이다, 그 사람의 죄성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서만은 안 돼요. 분명히 본인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해요.
그래서 이 시대는 현실 문제와 영적 문제가 가면 갈수록 더 세지게 됩니다. 가속화됩니다. 그러나 답을 가진 자에게는 이게 기회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지난주에 말한 것처럼 가데스 바네아에서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현장을 봐야 한다고 그랬어요. 가나안 현장이 지금 불신 세상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이런 정신병이 많이 생기는 이 시대에 답을 가진 자로서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보셔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은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도록 지금 훈련을 받는 겁니다. 한 사람을 전도해서 그 사람과 다락방 말씀 운동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거 하도록 베드로전서도 그런 관점으로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도 전도 제자의 관점으로 이 본문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
1)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합니다.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가 뭡니까? 첫째가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한다는 말씀이 나와요. 1장 13절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그랬어요. 베드로전서 시대 상황에서 핍박받고 있는 기독교인에게 주는 말씀이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면서.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도 지금 마음을 동이고 근신해야 합니까? 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핍박이 없을 때는 또 어떻게 사단이 역사하느냐 하면 성도가 세상 풍속과 문화에 빠지기 쉽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요새 초등부에서 사사기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사기는 항상 평안할 때가 문제였어요. 평안할 때 그들은 또 가나안 문화에 빠져요.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하고, 그러니까 상대방이 자기가 섬기던 가나안 신들을 가지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든 아내든 같이 우상화되게 만드는 거예요. 편안하면 죄짓기 쉬워요. 왜? 우리에게 여전히 육신의 본성이 남아 있기에 그래요. 세상 문화에 빠지기 쉽다고 그랬는데, 세상 문화가 맘몬 주의고 또 인본주의고 또 우상숭배 문화죠. 그래서 세상 문화 따라가기가 쉬워요. 세상이 편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과학 시대일수록 여러분은 오히려 마음의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건 마음의 혁대를 졸라매야 하는 거예요. 그 말은 우리가 더 영적 싸움 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 말이에요. 먹고사는 것만 쫓아가는 사람들은 진짜 신앙생활 잘 못 하는 거예요. 성장이 안 돼요. 근신한다는 말이 뭐예요? 근신한다는 말은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거예요. 우리는 영적으로 방심하면 곧바로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욕구를 쫓아 세상 문화에 빠지게 돼요. 요새 얼마나 콘텐츠들이 많아요? 여러분의 손안에 다 있잖아요. 옛날에는 TV를 봐도 채널이 몇 개밖에 없었잖아요. 요새는 온갖 게 다 있어요. 한쪽으로 빠지면 계속 그것만 보게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돼 있어요. 세상이 즐거울수록 성도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잊고 삽니다. 여기에 대해서 깨어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 이 말이에요.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베드로전서에 있는 성도들한테 하는 말이지만, 이 과학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으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골인 지점으로 여기면서 늘 사셔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참된 전도 제자의 자세예요. 첫 번째 허리를 동이라는 겁니다.
2) 두 번째는 부르심에 따라 구별되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구별되라는 말을 본문이 많이 강조하고 있거든요. 14절, 1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 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절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전에 너희가 본받았던 사욕이 뭐예요? 개인적인 욕심이잖아요. 창세기 3장, 6장, 11장에서 나오는 사욕을 말하는 거예요. 나 중심적인 이기적인 것들과 또 물질적인 것에 대한 탐심, 세상 명예와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그 사욕을 본받지 말고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너희를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라고 돼 있어요. 레위기에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 말씀이 레위기에만 다섯 번 나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가 구별된 백성을 삼기 위한 거예요. 뭐에 대한 구별일까요? 죄악, 불순종, 타락, 우상숭배 이런 것들로부터 구별되라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영적인 죄가 뿌리가 되어서 윤리, 도덕적인 죄도 짓는다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지금 기준이기 때문에 이 기준은 자주 변동해요. 인간이 기준이다 보니까 시대마다 기준이 자꾸 바뀌어요. 자기 좋은 대로 해요. 사사기의 특징이 뭐예요?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렇게 사람들이 가는 거죠. 모든 죄의 뿌리가 영적인 죄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가 뿌리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단의 속임수와 욕심에 빠져서 인간은 자기중심과 자기 기준대로 사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육체대로 살아요. 그리고 두 가지 기본 욕구를 위해서 욕심부리고 투쟁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근데 왜 못 깨달아요? 영이 죽어서 못 깨닫는 것과 이미 기준점이 옮겨졌기 때문에, 하나님 기준이 아니고 자기가 기준이 되다 보니까 자기는 옹호하고 그 기준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그러면서 또 자기 의를 세우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진짜 지옥 갈 만한 죄인이라고 인식 절대 못 해요. 사실은 대역 죄인인데. 하나님께 못 돌아가고 안 돌아가는 거예요. 사실은 우리도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잖아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거는 우리가 거듭나서 감각이 있는 자가 됐기 때문에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우리에게 진리가 되고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라는 말씀을 우리가 따르는 거예요. 우리가 출애굽 백성이 됐잖아요. 세상에서 우리는 불러내심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지난주 말씀에 신명기 8장 광야 훈련을 우리도 받는 셈 아닙니까? 이 훈련을 받고 나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해요. 지금 가나안이 불신 세상이에요. 불신 세상에 우리가 들어와서 하나님 나라 통치 실현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신명기 8장 3절 훈련을 우리는 제대로 체득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도 불신 세상에서 똑같이 이익을 위해서 싸우게 되고 자기 명예, 자존심 때문에 싸워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 좀 자존심이 건드려져도 괜찮으신 것 같습니까? 저도 항상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준비하고 있지 않는데, 푹 들어오면 그냥 반사적으로 반응해요. 본능적으로 반응해요. 그러니까 항상 우리가 이런 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라, 깨어 있어라는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의 루틴이 없으면 영적으로 못 살아요. 내가 기도의 루틴이 있어서 아침 기도가 되고 낮 기도가 되고 밤 기도가 돼야지 영적 리듬을 계속 타거든요. 그리고 뭘 잘못했더라도 금방 느껴요. 복구가 빨리빨리 돼요. 안 그런 사람은 감정이 건드려지면 그냥 씩씩대는 사람, 하루 종일 그 감정을 품고 있어요. 어떤 사람한테 꽂히면 굉장히 오래가는 거예요. 그 사람에 대해 미움과 안 좋은 생각이 굉장히 오래가는 거예요. 우리가 과거에 그랬던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고 어디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로마서 12장 1, 2절처럼 살아야 해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산 제물로 드리라. 그 말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는 거라고 설명을 했어요. 내가 살지 않고 나는 죽은 걸로, 내가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나로 주인 되어 살지 말고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삶을 사는 게 매 순간 나를 산 제물로 드리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거예요. 이게 사명의식을 갖고 살아야 가능해요. 첫 번째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 두 번째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 말씀처럼 우리는 구별돼서 사명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전도 제자의 자세입니다.
3) 세 번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17절을 읽어볼까요?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여기 보면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다고 돼 있고, 외모로 보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한다고 그랬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대로만 보지 않고 진짜 하나님은 그 사람의 전인을 보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런 말씀을 하잖아요. 우리는 지금 나그네로, 이 세상이 지금 본향은 아니잖아요. 이 세상은 영원히 살 세상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심판이 있게 되고 진짜 우리가 유업으로 얻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지금 우리는 나그네 인생이 맞아요. 과도기적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 거는 상대적 가치로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적 가치. 절대 가치로 여기면 안 되고 세상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것으로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어때요? 여러분이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지금 전도 제자의 자세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 목표가 분명한 인생을 살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7포인트 제자로 살라는 거예요. 남은 자, 순례자, 정복자, 흩어진 자, 파수꾼, 정탐꾼, 기를 든 자(대로를 수축하는 자). 우리는 전도 제자의 자세로서 7포인트 제자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2. 전도 제자로 살아야 할 근거
우리가 진짜 이 전도 제자로 살아야 할 근거는 뭘까요?
1) 첫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18절, 19절을 읽어볼까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찬송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구속함 받은 것 아니요,” 그 찬송 가사인 거 맞죠?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는 거예요. 대속(代贖)이라는 말이 이 대자가 대신할 대자예요. 속자가 값을 치를 속자예요. 대신해서 우리를 속죄하셨다는 말이에요. 값을 치렀다는 말이 대속이에요. 어린 양의 피로 대속했다는 거예요. 구속(救贖)은 뭐냐 하면 이 구 자는 구원할 구예요. 속자는 값을 치를 속 자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속죄해서 구원했다는 말이 구속이에요. 대속이랑 유사한 의미죠. 그다음에 또 한 가지 속량(贖良)이라는 말을 쓰거든요. 근데 속 자는 값을 치를 속 자인데 양 자가 어질 양 자예요. 말이 좀 안 맞잖아요. 근데 이게 의미가 있어요. 조선 시대에 천민을 양인으로 돈 주고 산 거예요. 로마 시대에도 노예를 돈을 지불하고 자유케 하는 것을 속량이라 그러는 거예요.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천민을 신분을 바꿔주기 위해서, 양인으로 바꿀 때 쓰는 것을 속량이라고 썼대요.
우리는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요새 금값이 좀 떨어졌습니다. 막 올라가다가 지금 많이 떨어지고 있어요. 아무리 금값이 비싸다 할지라도 없어질 금으로 구속함을 받은 게 아니고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아무튼 언제나 어디서부터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항상 기억해야 해요. 기도할 때마다 그 고백을 우리는 하는 거죠. 그런 사람은 세상을 티미하게 살 수가 없어요. 인생을 그렇게 살 수가 없단 말이에요. 우리가 세상 본질을 알고 영적인 눈이 열려 있죠. 내가 그 운명 가운데서 빠져나와서 나를 하나님이 구별하셨어요. 무얼 위해서 구별했어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자로 구별하셨어요.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구별하셨어요.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할 자로 구별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삶의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달라져야 돼요.
우리 청년들이 취업하기 위해서 애쓰잖아요. 취업하면 또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승진하고 경제 이익을 많이 얻기 위해서 정말 애쓰면서 일하잖아요. 지금 세상 사람들 다 그게 목적이고 그것 때문에 맨날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그럼 돈이 필요 없나요? 돈 필요해요. 그런데 분명히 주님은 “보좌의 축복을 믿어라.”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음을 믿어라.”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는 살지 말고 그것을 수단으로 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 안 바뀌었으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속해 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삶의 이유와 목적이 바뀌었죠? 안 바뀌었으면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세상 따라가는 자예요. 그래서 우리가 전도 제자로 살아야 할 근거는 보배로운 피예요.
2) 둘째 우리가 전도 제자로 살아야 할 근거가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와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함께 임하게 되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와 소망의 현주소가 있는 거예요. 20절 21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고 돼 있어요. 근데 여기 보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그랬는데 이거 누구 설명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죠.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랬어요. 선지자들이 연구한 것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죠?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고 그랬어요.
근데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말씀은 로마서 16장 25절에서 27절 말씀하고 유사하죠.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죠. 영세 전부터 감추었던 걸 왜 나타내셨어요?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려고. 그런데 이거는 사람이 연구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로 나타낸 거예요. 근데 시점은 영세 전부터 감춰져 있었다고 해요. 그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셔서 이 구원을 이룰 것을 하나님은 이 세상 창조 전부터 계획하고 계셨다는 말씀이에요.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했고 저도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데, 공대 가서 전도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좀 교회 다녔는데 안 믿는 친구들이 어떤 얘기를 하냐 하면 예정론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요. 영세 전에 다 계획해 놨으면 창세기 3장의 타락도 계획된 거 아니냐고. 그러면 누가 책임자가 돼요? 하나님께 책임을 두는 발언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근데 여기에 대한 답변을 좀 드릴게요. “영세 전에 계획하셨다면 창세기 3장에 지은 죄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네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영세 전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책임성은 시간의 제약성을 갖는 인간 논리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인간은 항상 인과율이라는 논리가 있어요. 왜 그래요? 우리는 시간성이 있어서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시공간을 창조했고 우리는 시간의 제약을 받잖아요. 우리 논리는 항상 인과율이 있어요. 무슨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이 시간성을 뛰어넘어서 우리는 논리를 펼 수가 없어요. 근데 하나님은 이 시간성에 제약을 안 받아요. 하나님은 항상 영원한 현재예요.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보셔요. 그러니까 우리 같은 인과율이 없어요. 우리는 시간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인과율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밖에 설명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일이 생기려면 원인이 여기 있었기 때문에 생기는 거 잖아요, 그렇다면 창세기 3장의 원인도 하나님이 계획해 놨기 때문에 하나님이 혐의가 있으신 거라는 게 우리 논리예요. 다시 말해서 이게 우리 논리의 한계라는 겁니다. 우리 이성의 한계라는 겁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성을 우리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안 되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을 할 때 어떻게 가르치냐 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계획성 100%. 하나님이 분명히 세상을 계획을 가지고 지으셨다는 겁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성 100%. 이게 신학의 정답입니다. 근데 논리적으로 안 맞습니다. 논리적으로 이 두 가지를 우리가 납득 되게 설명을 못 하지만 이게 우리의 한계인 줄 알고 두 가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믿음이에요. 나의 논리성의 한계를 겸손하게 주님 앞에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책임적 존재입니다. 배후에 사단이 역사해서 죄를 지었지만, 인간 책임성 없습니까? 우리 행위대로 심판한다고 돼 있잖아요. 분명히 책임적 존재예요. 그것을 인정하면서 또 한 가지는, 정말로 내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영세 전에 나를 택해 주셨구나. 이걸 믿음으로 감사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행위와 여러분의 조건으로 구원받았습니까? 아니잖아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행위로 죄 사함 받았고 죽은 영을 살렸고 여러분의 소속과 운명을 여러분의 행위로 바꾸었습니까? 아니죠. 주님이 성령으로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자다가 깨서 구원에 감사해야 해요. 나를 어떻게 하나님이 이 구원의이 반열에 나를 택해 주셨나요? 저 사람들은 지금 못 믿고, 믿으려고 해도 못 믿고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을 믿게 해 주셨다면 정말 감사한 겁니다. 그러면 교만한 자세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는 자세로 전도자의 마인드를 가지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신명기 29장 29절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리고 모세는 성막에서 하나님과 직접 대화했다는 말씀이 있어요. 그 모세가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까요? 근데 많이 알지 못해요. 아까 말했지만 시 공간성의 제한을 받는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뭐라고 얘기하냐면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본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옛날에 거울은 지금 거울이 아니에요. 구리거울이에요. 그냥 흐릿흐릿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정도가 그것밖에는 안 된다고 사도 바울도 그렇게 고백을 했어요. 그게 왜 그래요? 우리의 육체의 한계성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모세가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감추어진 일, 옛날 개역 성경에는 오묘한 일이라고 돼 있었어요.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단 말입니다. 신비한 일, 감추어진 오묘한 일, 인간이 몰라요. 나타난 일, 계시 된 일, 이거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했어요. 하나님이 말씀을 계시해 주신 거예요. 율법을 계시해 주신 거예요. 왜요? 그거 믿고 순종하고 따르라고. 맞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는 거 진짜 조금밖에 안 돼요. 많이 아십니까? 정말 조금밖에 몰라요. 그러나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감추어진 일, 오묘한 일은 극히 모르지만 우리는 나타난 거, 계시 된 것을 깨닫고 그것을 적용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미 우리에게 확실히 나타난 것, 계시 된 것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여러분이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지만, 이 나타난 거, 계시 된 거, 이건 지금 우리에게 나타난 거예요. 첫 번째 하나님 창조 확실해요. 두 번째 삼위 하나님이 게신 거 확실해요. 세 번째 인간 타락과 그 결과 확실해요. 네 번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회복 확실해요. 우리의 사명 확실해요. 천국 지옥 있는 거 확실해요. 이건 지금 우리에게 확실히 나타난 거예요. 이거 확실히 믿고 본분을 다 하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사실을 계시하신 하나님 앞에 설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있는 거예요.
3. 여러분은 전도 운동을 하는데 두 가지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1) 첫 번째 나의 영적인 상태가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가 있잖아요. 이거는 육신의 열심 상태 하고는 달라요. 영이 죽은 사람도 육신의 열심은 낼 수 있어요, 불신자가 얼마나 열심을 내는데. 근데 영적 상태는 죽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구분하셔야 합니다. 내 육신의 열심 상태와 영적 상태는 다른 거다. 영이 죽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서 육신 열심 더 내요. 기도는 재미없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육신의 열심 얼마나 내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에게 육신의 열심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영적 상태를 회복해서 우리 안에 주님이 살아주시고 실제 성령의 역사를 알고 살라는 거예요. 여러분 영적 상태라는 말이 뭐예요? 성령님이 통치, 인도하시는 그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성령의 통치 받는 상태가 영적 상태예요. 그래서 영적 상태가 나쁘면 우리는 창세기 3장, 6장, 11장의 본성과 그 체질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 되라는 것이 아니에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맞잖아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모든 것에 대해서 간구하라고 돼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돼라. 그게 우리 영적 상태가 돼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18절이 되면 여러분이 전도 운동의 플랫폼이 됩니다. 여러분 영적 상태가 플랫폼이 돼요.
2) 두 번째는 교회의 영적 상태가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지금도 너무 많아요. 지금 토요일 날 다락방 하고 있는 친구가, 공대 대학원생이고 다음 학기면 박사 학위 받을 것 같아요. 근데 그 친구는 기독교 집안입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닌 친구인데 인격적인 영접이 안 됐어요. 그래서 대학 와서 지금 한 30살 정도 되는 것 같은데 10년이 넘게 신앙생활 안 하고 불신자처럼 살고 있는 친구예요. 근데 공대에서 만났어요. 어제까지 다섯 번 다락방을 했어요. 지난주에 정식으로 영접을 했어요. 영접하는데 성령님이 감동을 주는 거예요. 영접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영접 기도를 따라 하게 만들고, 기도 끝난 다음에 그가 하는 말이 영접 기도가 좋았데요. 어제도 만났거든요. 근데 이 친구가 초등학교 때부터 무기력과 우울증이 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래서 무기력이 오면 예를 들어서 어떤 시험이 있다고 그러면 거기에 압박감이 확 오는 겁니다. 압박감과 함께 무기력이 와서 그걸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루나 하루 반 전에 그때는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억지로 하는 겁니다. 억지로. 근데 머리가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억지로 했는데 성적이 반 이상은 가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여태까지 해온 겁니다. 이 친구에게 "너는 진짜 힘들게 살아왔다." 지금도 서울대학병원 다녀요. 약 타고 다닌다고. 그래서 내가 어제 얘기를 분명히 해 줬어요. 영적 상태, 마음 상태, 정신 상태, 육신 상태, 생활 상태 다 연결돼 있다. 그래서 내가 영적 상태가 회복되면 어떻게 마음 상태, 생각 상태 여기에 영향을 주는지 그 얘기를 제가 자세히 설명했어요. 그래서 영적 상태가 좋아지면 무기력 없어진다. 저는 체험했거든요.
영광교회 장로님 얘기한 적이 있어요. 대인기피증으로 서울대학 다닐 때, CCC 만났는데 대표 기도시켜서 그 기피증 때문에 CCC 그만두었다고 했잖아요. 미국 가서 또 교회 다니다가 또 대표 기도시키는 바람에 교회 그만두려고 하다가, 금식 기도 작정했다고 했어요. 대표 기도 직전에 눈 감고 있는데 누가 손을 딱 댔다고 그 얘기 예전에 했잖아요. 댔는데 눈 떠 보니까 아무도 없었어요. 대인기피증이나 공황증은 어떠냐 하면 심장 박동이 감당이 안 돼요. 죽을 것 같아요. 장로님도 기도 직전까지 오니까 너무 심해서 뛰쳐나가고 싶은 거였습니다. 예배고 대표 기도고 뭐고 빨리 뛰쳐나가고 싶은데, 근데 누가 손을 딱 대줬는데 그때 심장 박동이 뚝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날 대표 기도했잖아요. 그때부터 그 불안이 꺾여서 나았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어제 그 얘기를 공대생에게 했어요. 심각하게 듣는 겁니다.
사람은 영적인 문제와 현실 문제가 겹칠 때 마음과 생각을, 이미 깔아놓은 창세기 3, 6, 11장의 본성과 인간이 이성으로 열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체질이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문제가 세면 우리도 정신병원 가요. 그런데 원래 상태가 그게 아니잖아요. 원래 상태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상태였어요. 요셉과 다윗이 감당해 내는 그 수준이 원래 우리 상태란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공대생에게 네 불안한 거, 네 압박감 당하는 거 꺾인다, 어제 그 얘기를 제가 했어요. 제가 매일 기도하면서 억압이 풀려요. 현실 문제에서 오는 억압도 풀리고영적 세력이 공격하는 억압도 풀려요. 그래서 제가 그 공대생에게 고칠 수 있다고 했어요, 어제 그런 다락방을 했어요. 왜 이 얘기를 하냐면 여러분이 이에 대해 경험자가 되어지면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플랫폼이 되고, 우리 교회도 영적 상태가 플랫폼이 돼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들을 이제는 감당할 수 있으니까 주님이 보내신다고요. 붙인다고요. 하나님이 이렇게 쓰고자 하십니다. 앞으로 정신병원 더 많아져요.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플랫폼으로 쓰기를 원해요. 교회만큼 이런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첫째는 여러분 개인의 영적 상태가 플랫폼이 되기 바라고, 우리 교회가 이런 플랫폼이 되는 영적 상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오늘 결론으로 여러분이 전도 제자로서 오늘 전도 제자가 가질 자세와 그 근거를 얘기했어요. 여러분이 이번 주 목요일부터 10일 기도회, 늘 했던 거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교회가 집중할 때 같이 집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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