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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1년9월12일 주일예배 - 다윗의 서밋훈련(삼상21:10~22:2)

by 현상금 2021. 9. 12.

다윗의 서밋훈련(삼상18:6~16, 28~29, 21:10~22:2)

 

 

다윗의 서밋훈련(삼상18:6~16, 28~29, 21:10~22:2)

 

다윗처럼 하나님이 강하게 훈련시킨 사람이 없다. 언약이 잡은 사람에게도 고난이 오지만 성격이 다르다. 그건 분명히 서밋훈련과정이 된다. 그건 7대 여정을 가기 위한 과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능력이 있으신데 왜 자기 자녀들에게 문제와 어려움을 허락하시겠는가? 최고 자녀 삼고 거기에 합당한 그릇 삼기 위해서다. 류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녀들에게 재산 상속해 줄려고 하지 말아라. 그것보다 올바른 복음을 심으라. 부모 재산 의지하는 자녀라면 이미 훌륭한 인물되기 어렵다. 복음을 물려주고 복음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인물로 키워야지 그런 자식이 237살릴 렘넌트가 되는 것이다. 부모가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으면 자녀들을 볼 때 저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복음의 능력을 부모가 모르고 있으면 자녀도 불안 염려로 바라보게 된다. 부모가 염려 불안 전달하고 있으면 안된다. 자녀들이 복음 제대로 알고 복음 바로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오늘은 다윗이 받은 서밋훈련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1. 골리앗 이후 사건

1) 고난 당하는 다윗

오늘 읽은 18장에 보면 사울왕이 완전 악령에 점령당하게 된다. 악령들려 정신병에 걸렸다.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일려고 했는데 두 번이나 피했다.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이 번뇌케 하니깐 심한 불안, 초조, 시기,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급기야 컨트롤이 안된다. 사울이 보니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고 높이는 것이다. 다윗이 없어야 자기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는데 다윗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 죽여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를 죽일려고 집요하게 따라 다니는 내용이 19장부터 26장까지 나온다. 사울 평생 따라 다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블레셋으로 망명가는 일도 있었다. 거기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침 흘리며 미친 체 하기도 했다. 27장에 보면 또 한번 블레셋으로 망명가게 된다. 물론 진짜 망명간 건 아니였다. 망명간 체하여 블레셋의 아기스왕의 부하가 된다. 다윗이 그런 이중생활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였다. 거기서 14개월 동안 지냈다(삼상27:7)

2) 고난 당하는 진정한 이유

사울왕 때문에 고난 당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왜 허락하셨겠는가? 죄를 범해서? 믿음이 없어서? 아니다. 목동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체험을 했다. 양을 지키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어가면 좇아가서 곰을 때려잡고 양을 구해온 체험을 했다. 그런 상태에서 16:13에 보면 여호와의 영이 크게 감동되는 체험도 한 것이다. 그래서 골리앗을 만났을 때 믿음의 행동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인생의 최고 고난의 시작이 되었다. 사울왕을 통해 근 10년을 피말리는 도망자 생활을 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을 하나님은 허락하신 것일까? 서밋훈련 과정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더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아직 많이 겪어 보지 못했다. 그는 장차 수많은 백성들을 보살피는 왕이 될 사람이였다. 그걸 감당하기 위해서 사울왕도 필요한 것이였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도 더 깊게 체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윗의 고난의 과정을 통해 조금도 자기 자신이나 눈에 보이는 환경을 의지할 수 없었다. 우리의 보통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 자신과 환경에 있다. 믿음이 좋아도 그렇다. 그런데 다윗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만드셨고 그러면 된다는 것을 터득하도록 만드셨던 것이였다. 하나님께 집중케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의 삶의 주객과 체질이 완전히 바뀌게 만드셨던 것이다. 실제 믿음의 현주소가 바뀌는 것이였다. 인본주의 체질이 바뀌는 과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언약잡은 자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절대 손해가 아니다. 인본주의 체질이 치유되고 하나님께 뿌리내리는 기회가 된다. 다윗이 인간관계를 이렇게까지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의 고난은 그를 굉장히 낮추어지도록 만들었고 지금 말로 하자면 갈2:20이 되는 과정이 되게 한 것이였다.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일에 다윗이 쓰임받게 하셨던 것이다. 문제를 당할 때 내가 언약을 바로 잡고 문제를 당하는가? 아니면 언약이 희미한 상태에서 문제를 당하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

 

2. 9가지 흐름

1) 류목사님은 9가지 흐름을 강조하신다.

이걸 9가지 균형 또는 9가지 배려와 소통이라고도 한다. 높이 깊이 넓이/ 위 아래 옆/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9가지가 있다. 높이, 깊이, 넓이란 문제나 사물이나 세상을 볼 때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높이 있게, 깊이 있게, 넓이 있게 보라는 것이다. 그 만큼 생각을 넓히는 것이다. 생각이 좁은 사람이 많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 생각이 좁아지는 사람이 많다.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가정밖에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문제를 통해서 더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면 생각이 넓혀진다. 자기를 능가하게 된다.

, 아래, 옆이란 인간관계에 있어서 윗 사람은 섬길 줄 알고 아랫 사람에게는 배려할 줄 알고 옆으로는 함께 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윗 사람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기 쉽다. 뭐 존경할만 해야지 존경하지.. 위 사람이 잘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까지 잘못할 필요는 없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마지막에 심사하고 계산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윗 사람이 악하다고 나까지 악해지면 안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상황 속에서 더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게 하는 인생으로 들어가야 된다. 그러면 나는 복음을 누리게 되고 상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윗 사람에 대해서 아부하고 아랫 사람에 대해서는 거만하고 함부로 하는 사람도 있다. 3장의 태생으로 성장하면서 겪는 문제와 기질이 합쳐져서 그런 체질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빠져서는 안되고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본성의 느낌과 감정을 따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관계에서 그럴 수도 있다. 시어머니가 이상하고 잘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본성은 싫어지고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신의 본성으로 빠지지 말고 성령으로 반응해야 한다. 기도체질이 안되면 이것을 못바꾸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란 지적인 눈과 함께 영적인 눈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보라는 말이다.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믿음은 좋은데 배려와 소통이 안되는 사람이 있다. 굉장히 절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굉장히 붙잡게 된다. 그러나 상처가 있어서 수평관계는 잘 안되는 사람이 있다. 혼자 있을 때 분명히 믿음이 좋다. 근데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약한 사람이 있다. 다윗의 고난은 하나님께만 아니라 상하 좌우관계 훈련과정이 되었던 것이다.

2) 22장에 보면 아둘람에 모여든 사람들이 나온다.

22:1~2에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여 들었다.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한 400명 가량이 모여들었다. 처음엔 400명이었는데 나중엔 600명이 된다. 그들과 같이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다니면서 동고동락하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거친 사람들도 있고 상처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불량배들도 있었다. 또 그들 중에는 충성된 제자도 있었다. 그들 중에 건국 공신이 나오고 충신들이 나온다. 그들이 같이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함께 하나님을 체험해 나갔던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함께 세계복음화 하려면 함께 복음을 체험하면서 힘든 것도 경험하면서 하나 되어야 한다. 복음이 약하면 어려움 속에 교회가 갈라지게 된다.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도 두 번 있었다. 부하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죽일 기회를 주시니 이 참에 죽이자고 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 하여 다윗이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런 것들이 상하, 좌우 관계 훈련을 다 경험하는 것들이다. 이 모든 고난이 알고 봤더니 그가 왕이 되기 위한 서밋훈련 과정이였다.

 

3. 시대 살릴 렘넌트

청년들은 시대 살릴 삼서밋 훈련받기 바란다. 우리는 과거 3,6,11장의 내가 주인되어 나중심으로 살면서 믿음의 현주소가 자신과 환경에 있었다. 그러니깐 문제 만날 때마다 불안 염려 긴장 조급 같은 육신의 본성과 체질들이 자꾸 형성되는 것이다. 불안하고 눌리고 여유없게 되면 생각이 좁아진다. 시야도 관계도 좁아진다. 청년 때 복음을 통해 이걸 뒤집으면 최고의 축복을 받는다. 성령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면 이것이 뒤집힌다. 오히려 문제와 어려움이 이걸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열심히 사는 것 가지고는 안뒤집힌다. 열심내도 불안 긴장 속에서 열심내는 것이다. 이런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되면 이것이 바뀐다. 성령께서만 평안과 말씀과 깨달음과 기도가 되도록 인도하신다. 다윗이 이런 성령의 통치 인도를 받을 수 있었기에 신경쇠약이나 불안증, 의심증, 미운 감정에 안 빠졌던 것이다. 오히려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나님의 소원읕 아는 사람이 성령의 통치 인도를 받으면 영적 서밋이 된다. 오히려 고난이 영적 서밋이 될 수 있도록 더 기여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고백을 했다. 하나님 소원을 아는 사람이 성령의 통치 인도를 받으면 영적서밋이 되고 기능서밋이 된다. 그리고 그는 전도 선교 위해 사는 문화서밋이 된다. 날마다 기대하면서 신나하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다. 영적서밋이 안된 채 인본주의로 기능서밋과 문화서밋이 되면 세상서밋이 되어 사탄에게 쓰임받게 된다. 청년의 때가 참 중요하다. 영적서밋이 되면 지혜와 진리와 은사와 능력의 원천이신 성령으로 살게 된다. 자기 지혜와 머리와 능력을 짜내는 인본주의 방식을 내려놓게 된다. 성령께서 평안과 힘과 기쁨으로 마음과 생각을 잡아주시니 집중력과 지혜가 주어진다. 이유있는 공부와 일을 할 수 있고 기쁨으로 할 수 있다. 보좌 배경을 누리므로 자기 이익과 자존심의 동기에 안잡히고 하나님 통치가 실현되는 삶을 살 수 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다윗이 당한 고난의 이유를 살펴 보았다. 그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밋훈련과정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첫째가 하나님과 관계훈련인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영적 서밋이 되는 체질훈련이 계속 필요하다. 다윗이 자기와 환경을 의지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세계가 열렸던 것이다. 우리는 렘넌트 보는 눈도 달라져야 한다. 그 아이의 수준으로만 보지 않고 렘넌트 속에 무한하신 주의 성령께서 계신 것을 봐야 한다. 그 성령께서 그 아이를 시대 살릴 렘넌트로 바꿀 수 있다는 눈으로 봐야 한다. 서밋훈련의 둘째가 인간관계 훈련인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인간관계 훈련이 필요하다. 9가지 소통과 배려 훈련이 필요하다. 상하 좌우 관계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을 직정 속에서, 사람 모임 속에서, 교회 관계 속에서 훈련받아야 한다. 비판은 잘하는데 품을 수 없고 살릴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된다. 하나님은 훈련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를 위해 진정한 기도가 되기 바란다. 그게 영의 생각이다. 여러분은 확실히 언약 잡은 자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가 다윗처럼 서밋훈련과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