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의 발병과 치유(왕하20:1~15)
지난 주에 나선교사님이 오셔서 귀한 말씀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피 바르고 출애굽한 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원받고 그 다음이 광야인데 광야부터는 영적싸움이 필요한 현장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인도 받는 것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였다. 이게 잘 되어야 가나안 정복이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배는 제사이다. 피를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였다. 요19:30절에 보면 이 피 제사를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배 승리는 현장 승리로 연결된다. 그래서 공예배와, 개인예배와 생활예배에 승리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히스기야 왕의 발병과 치유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히스기야가 앗수르 산헤립 왕을 물리친 사건 이후에 죽을 병에 걸렸다.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 앞에서 성도가 가질 자세와 치유에 대한 필수 조건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1. 히스기야 왕의 치유 사건
1)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히스기야 왕이 병든 시기는 산헤립의 침략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기간으로 보인다. 그 때히스기야는 중년이였고 아직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병에 걸려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죽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는 벽을 향해 통곡하며 기도했던 것이다. 그의 눈물의 기도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15년 생명 연장과 치유에 대한 증거로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은 행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되심을 입증해 주신 것이다. 모든 성도는 치유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바란다.
2) 히스기야 왕의 잘못
그런데 이 사건에 이후 또 한가지 사건이 나온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바벨론 사절단이 찾아온 것이였다. 치유된 히스기야 왕은 왕궁의 무기창고와 보물창고를 다 보여주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보여준 모든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 가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하32장에 보면 그 보충 설명이 나온다. 대32:20~23부터 보자. 히스기야가 당시 초강대국인 앗수르를 물리친 것은 대단한 사건이였다. 이것은 주변 모든 나라를 살린 역할을 한 셈이였다. 그래서 축하사절단의 내왕을 받았던 것이다. 23절에 보니깐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했다. 히스기야 왕이 이럴수록 하나님만 높이고 교만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를 겸비케 하기 위해서 죽을 병이 걸리게 하신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가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하자 하나님은 근방 응답해 주셨고 큰 이적까지 보여주셨던 것이였다. 그러면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했겠는가? 막바로 감사 고백하며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이였다. 그런데 이어 24~26, 31절에 보니깐 그렇지 못했다.‘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이것은 그가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 왕하20장에 나온 것 같이 바벨론 사절단이 왔을 때 자기 군기창고와 보물창고를 보여 주면서 자기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의 문제가 교만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리했을 때, 기적을 체험했을 때 육신의 본성은 교만케 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진노의 선언을 받고나서야 그는 비로소 회개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되 항상 겸비해야 한다. 다윗도 그의 말년에 인구조사하면서 자기 군사력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그 결과 백성 7만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우리가 인생 전환을 하되 완전 전환을 해야 하다. 완전 주객과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2. 신약에 사도바울을 보면 그는 완전 전환의 모델이 된다.
1) 빌1:20,21절에 보면 죽음을 직면해서 바울의 고백이 나온다.
바울사도는 복음 전하다가 순교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고백한 내용이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는 순교라는 죽음을 직면해서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육신의 본성은 자기 생의 동기와 성공의 욕구로 주님을 수단 삼는다. 그러나 바울은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았고 그리스도를 정말 사랑하는 종이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소원을 위해서 자기 속에서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수단이 아니라 자기가 수단이 되어 그리스도께 드려지기 원했던 것이다.
이어서 빌1:22~26절을 보라. 그는 둘 사이에 끼어 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더 원했다. 그러나 내가 죽지 않고 살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사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 더 유익하다고 했다. 죽음의 두려움이 그를 잡지 못했고 천국 입성을 사모했고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육신의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오직 교회의 유익과 복음전파 사명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의 진정한 삶의 이유는 행20:24에 잘 나타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딤후4:7,8절에는 그의 마지막 생의 고백이 나온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했다. 이것이 죽음 앞에서 그의 인생의 진정한 자세요 태도였다. 그는 진정한 전환, 완전한 전환이 되었던 인생인 것이다. 바울은 살고 죽는 것이 관건이 아니였고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케 되는 것이 관건이였다. 여러분도 이렇게 참된 전환, 완전한 전환이 되기 바란다.
3. 우리는 병고침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
1) 제일 먼저 병고치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백프로 믿어야 하겠다.
히스기야 왕을 고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까지 물러나게 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셨다. 시신이 부패될 상황에서 살리신 것이다. 말이 되는가? 그런데 살리셨다. 절대 가능성 없는 38년된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도 고쳐 주셨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는 나면서 앉은뱅이로 40여세 된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고쳤다. 주님이 베드로를 통해 고치신 것이다.
2) 우리는 병고침에 대한 합법적인 근거를 갖고 기도해야 한다.
합법적인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의 속죄는 영생만 얻게 하신 것이 아니다. 죄로 말미암은 저주와 질병도 담당하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져야할 저주와 병을 담당하셨고 대신 우리는 평화와 치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을 해 주셨다. 요14:13~14절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하셨다. 어떤 병이든, 병세든 육신의 본성의 느낌과 생각으로 반응하지 말아라. 합법적인 근거를 갖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3)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응답주시기 전에 확신부터 먼저 주신다. 그래서 확신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순복음교회에서는 눅18장에 나오는 원한 맺힌 과부의 비유를 많이 강조한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겠느냐 했다. 원한이 뭔지 해석해야 되겠지만 확신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뜻을 정해 작정 기도하는 것이 좋다.
4) 병이 주님을 증명시켜 주님이 증거되는 수단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병이란 문제도 하나님 소원을 위해서 주님은 선용하신다. 회개케 하시고 집중케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케 하신다. 그래서 병도 고침받게 하시고 치유의 증인도 되게 만드신다.
백부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신 주님이 여러분의 믿음에 감탄하게 되기를 축원한다.
결론
히스기야 왕은 병고침 받고도 육신의 본성을 극복 못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참된 전환, 완전 전환이 되어졌다. 빌1:20~21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다. 이 세상을 떠나 차라리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바라는 바인데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성도의 유익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성도가 세워져 복음 전파가 되는 것이다. 병고침 받는 이유도, 직장다니는 이유도, 성공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 되어야 한다. 병고침에 대해 4가지 자세를 갖고 계속 기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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