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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2년10월5일 수요예배 - 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가?

by 현상금 2022. 10. 5.

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가?(5:36~6:11)

 

세상에는 안식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다. 14:26~27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다.

- 문제, , 전도현장에서..여기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이 대조된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실제 누릴 수 있다. 성령께서 참 하나님 아버지와 참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증거해 주시고 누리게 해주신다. 이것은 영혼으로부터 누려지는 평안인데 마음과 생각과 전인에 영향을 미친다. 사건과 문제와 어려움과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평안이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이런 평안을 주지 못된다. 육신적인 평안이고 문제와 어려움과 사탄의 공격 앞에서 깨지는 평안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은 원천에서 계속 공급받을 수 있는 평안이기 때문에 의지만 하면 계속 마르지 않고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육신적인 평안은 쉬없어지고 보장이 되지 않는 평안이다. 성령님을 통해 이런 평안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셨다.

 

1. 안식일 규례로 충돌한 바리새인에 대한 이해

1) 이 종파의 기원은 신구약 중간기라고 했다.

(1) B.C.168- 안티오커스 4세가 제사를 금지하고 성전을 더럽힌 사건이 시작되었다.

(2) 이것이 마카비 혁명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 제사장 맛다디아가 그 아들 5명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3) 이 저항운동의 중심에는 하시딤이란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안티오쿠스 4세의 잔인한 종교탄압을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 보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 사람들이 바리새파의 원조라고 여겨진다.

(4) B.C l64-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 유다 마카비가 성전을 다시 탈환하여 정화시켰다. 마카비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이것을 기념하는 절을 하누카(수전절)라고 한다.

(5) B.C.142- 둘째 시몬이 마침내 유대의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 B.C 63년에 로마가 점령할 때까지(79년간) 마카비의 후손들이 다스렸는데 이를 하스몬 왕조라고 부른다.

(6) 하스몬 왕조는 둘째 시몬의 아들들이 다스렸는데 첫째 때가 최고 전성기로 정치적 안정과 부를 누릴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시딤(경건한 유대인)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마카비 후손들이 대제사장을 다 해먹고 신앙을 정치의 도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 반발하는 무리가 바리새파다. 반면 이런 정책을 지지한 무리가 있었는데 사두개파였다. 이때부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간에 첨예한 대립이 생겼다. 바리새파는 후대 탈무드가 된 구전 율법과 모세오경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성경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오직 모세오경만을 인정하고 부활이나 영적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이 율법주의를 주장하면서 형식주의, 외식주의로 빠졌다. 여기에 반발하여 금욕주의 경건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이들이 엣센파다. 이들은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2) 서기관은 바리새파의 지도자였다.

성경을 필사하고 연구 해석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다. 이들을 율법사 또는 율법선생 또는 랍비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613가지 율법을 해석하고 그것의 세칙을 만들어 삶에 적용시키는 일을 했다. 안식일 세칙만도 수없이 많았다. 이런 세칙들이 율법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이 문제였다. 율법을 영적으로, 내면적으로부터 지켜야 하는데 이들은 규칙들을 많이 만들어내어 사람들을 올가매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율법적 의를 세울려고 했던 것이였다. 그러나 규칙에는 자유롭고 율법의 철저한 정신을 강조하는 예수님과 충돌이 일어났다.

 

2. 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가?

1) 십자가에서 모든 걸 이루셨기 때문에 그렇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대속의 사업을 다이루셨다. 3장의 원죄로 전 인류를 지배 군림하던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이다. 사탄은 지금도 인간과 하나님과 영적 소통을 막고 있다. 영적으로 죽게 만들어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배경과 그 능력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살게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을 못만나고 어마어마한 하나님과 분리시켜 12가지 운명에 빠져살게 만들고 있다. 이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사탄과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2)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보내시는 권세까지 받으셨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시급한 하나님 백성을 전 인류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일을 먼저 하시는 것이다. 사탄을 정복하고 그 속에 빠져있는 하나님 백성을 구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 일을 땅에 있는 교회와 자기 종들을 통해서 하신다.

3) 우리에게는 이미 사탄과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

주어진 권세를 사용하며, 보장된 정복과 구원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이다. 그래서 24시 믿음과 순종의 체질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일을 대행하는 것이다.

4) 우리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 이 의미는 예수님의 천국 복음은 유대교의 전통의 틀에 맞지 않다는 비유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보다는 세칙을 잘 지키므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던 종교인들이였다. 우리도 창3,6,11장에 입각한 생각을 빨리 깨뜨리는 것이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주의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있게 된다.

 

3. 우리는 참 안식과 참 승리를 누려야 하겠다.

1) 그것은 우리가 항상 주님의 핏 값의 결과 위에 서므로 가능하다.

주님이 대속하신 결과 위에, 주님이 승리하신 결과 위에, 주님이 십자가로 보장해 놓으신 축복과 권세 위에 서야 한다.

2) 3:1~4의 교훈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야 한다.

가나안 족속들을 다 진멸하지 않고 남겨두신 이유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려고 남겨 두셨다고 했다. 그러나 창3,6,11장의 육신의 본성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졌다. 이 영적문제를 이기는 길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결론

우리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