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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3년 5월 7일 주일예배 - 하나님 사랑,예수님 사랑(눅22:39~46, 23:26~38 )

by 별종외계오동 2023. 5. 7.

하나님 사랑,예수님 사랑  (눅22:39~46, 23:26~38 )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22:39~46, 23:26~38)

 

마귀는 성도에게 빈틈만 있다면 24시 공격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을 때가 빈 틈이다. 마귀가 공격하는 목표는 우리로 주님을 놓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면 사탄은 지게 된다. 그러니 여러분을 주님 밖에서 행하도록 하여 주님으로부터 떨어뜨리는 것이 마귀의 소원이다. 바빠서 너무 일들이 많아서, 또 육신적으로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주님 밖에서 행하게 되면 사탄은 여러분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다. 반대로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만나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행하면 승리하게 된다. 그래서 여러분의 체질이 하루 세 번 뚫리는 정시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므로 성령의 통치를 받는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이걸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것이라 해도 그것은 사탄의 통로가 된다. 아무리 일이 잘 돼서 바빠도 그것 때문에 기도 못 한다면 사탄의 통로가 된다. 여러분이 누릴 축복과 권세를 빼앗는 것이 된다. 어떡하든지 하루 세 번 정시기도의 체질을 만들어 가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 앞에 극도의 심적 부담을 갖고 고뇌하는 기도를 하신다. 얼마나 고뇌 깊은 기도를 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혼신의 기도를 하신다. 그의 영은 믿음과 순종의 길을 결단하는 기도를 드리신 것이다. 오늘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알아야 할 하나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오늘 어린이 주일인데 우리는 이걸 우리 후대에게 올바로 전달해야 한다.

 

1.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

1) 구약에서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두 속성의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실제 구약 역사는 인간이 반복해서 짓는 죄로 인해서 심판의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공의의 하나님이 되신다. 구약의 하나님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보다는 신약의 예수님을 선호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허물 많은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발도 씻어 주시고 그들의 죗값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도 당해 주셨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사랑이 많아 더 친근한 반면 하나님은 좀 두려운 분으로 느끼는 수가 있다. 사랑의 하나님만이 아니시다. 구약의 하나님은 크고 두렵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거룩하셔서 죄인이 근접할 수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면서도 죄에 대해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맞다. 지금 세상은 죄악에 대해 무감각증에 빠져 살고 있다. 반드시 앞으로 세상에 대해 대심판이 있게 된다.

그런데 그 공의로우신 분이 자기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하나도 감하지 않고 고스란히 겪으면서 처형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성자 예수님을 타락한 인간이 고안한 최고 저주와 고통의 십자가형에 죽게 하셨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극도의 부담감을 가지고 기도하시는데도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를 피하도록 하지 않으셨다. 냉담하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그 모든 과정의 형벌을 고스란히 당하게 하셨다. 아들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시는데도 아버지는 그를 외면하셨다. 왜 그리하셨는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공의의 형벌이 크기 때문이다. 그 형벌을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벌을 면하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사랑을 받게 해 주셨다. 아들을 희생시킬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공의로운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에 대한 측량치 못할 아가페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2) 자기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5:8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셨다. 이 사랑을 제가 조금 전 설교 한 하나님 공의와 사랑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요일 4:9~10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였다. 화목 제물이란 말 속에는 인간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과 적대 관계가 된 것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노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노여움을 푸시고 다시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 주시는 그 일을 위해 아들을 화목 제물 삼으셨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아는 요 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다.

오늘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 사랑과 아들 예수님의 사랑을 깊게 묵상하기 바란다. 그런데 십자가 지신 것으로만 그 사랑을 다 끝내신 것이 아니다. 지금도 나타내 주고 계시다. 어떻게?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로 성령님을 통해 알고 믿도록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보좌에서 응답해 주신다.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어 놓은 것을 우리가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실제 적용, 응답, 체험, 확인하도록 해 주신다. 증인 되게 해 주신다. 그 사랑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7가지 권세를 누리도록 해 주신다. 여러분의 영이 더 강해지고 충만해지도록 해주신다. 육신의 생각을 이기고 기도 응답을 받게 해 주신다. 영벌을 면하고 영생만 얻은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지금 우리 속에서 주님이 살아 통치 인도하신다. 그러니 이런 축복을 주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깊게 감사해야 한다. 여러분이 매주 부르는 복음 송가 하나님의 눈물을 마음에 음미해서 불러 보라. 그리고 이어서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 찬송을 불러봐라. 왜 더욱 사랑하게 되는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이 우리를 고아처럼 두지 않고 다시 오겠다고 하셨는데 성령으로 우리 속에 오신 것이다. 영적 삶이 되게 해 주시고 3,6,11장의 함정과 체질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문제나 일 앞에서 이기게 만드시고 7가지 권세 누리게 하시고 사명 감당하게 하시는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 하신 것이 된다. 그러니 주님을 더욱 사랑한다는 찬송을 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창 3,6,11장의 본성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

1) 분명히 그 근거를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다.

2:14~15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하였다. 앞부분은 율법의 저주를 끝내셨다는 말씀이고 뒷부분은 사탄을 완전 패배시키셨다는 말씀이다. 사탄의 지배 권세는 깨졌고 우리는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사탄은 그리스도 앞에서 패배케 된 존재이다.

12:9~11에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구약에서 보면 사탄은 천상에서 욥을 고소하고 스가랴서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고소했다. 그런 사탄을 더 이상 고소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천상에서 내쫓으셨다. 내쫓으신 것은 언제 일어난 일이겠는가? 십자가 사건을 다 이루시고 주님이 보좌에 오르실 때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었고 구원과 하나님 통치하시는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세상에 있는 성도에게 나타났다는 말이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로써 그를 이겼으니(성령께서 확실히 믿게 하시므로)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3,6,11장의 본성을 갖고 있지만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 요일 2:14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하셨다. 요일 5:4~5에 무릇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였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의 사례는 모델이 된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수 1장 언약을 이루어주셨다면 우리에겐 주님이 행 1장의 언약을 이루어주신다.

2) 우리가 할 일은 롬 12:1~2의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다. 3,6,11장의 내가 더 이상 안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다. 어릴 때 문제와 고통, 상처를 지금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3,6,11장의 나로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와 고통과 상처가 기회가 될 수 있다. 뒤집을 수 있다. 모든 문제와 인간관계에서 승리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복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있기에 그렇다. 여러분 속에 계신 주님으로 승리할 수 있다. 오늘이 어린이 주일인데 부모가 후대를 위해 중대한 일을 할 수 있다. 23:28에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다.

 

결론 - 우리는 우리 후대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1. 오늘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맛보며 체험하면서 전달하기 바란다.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가르쳐라.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셨고 그것을 근거로 우리에게 보장된 권세를 알고 누리도록 가르쳐야 한다.

2. 여러분이 삶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지를 전달하기 바란다.

후대에게도 3,6,11장의 나로 반응하지 않고 그리스도로 반응하는 법을 전달하기 바란다.

3. 모든 문제가 기회고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바란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이긴 싸움을 할 수 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며 주님의 정복과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