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요 13:1~17)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이것은 제자들의 어떤 상황에서 발을 씻기셨다고 했는가? 서로 누가 크냐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씻기신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육신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을 씻기신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예수님이 종의 역할을 하신 것이다. - 당시에 손님이나 주인이 오면 종들이 그 발을 씻어 주었다.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발을 씻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종과 같이 되셔서 인간의 죄악의 발을 씻기신 것이다. 세상 군왕은 정복하고 부리러 오지만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 세상 최고 범죄자까지 살리기 위해 종보다 못한 자리에까지 오셨다.
2. 본을 보이기 위해 발을 씻어 주셨다. -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다. 목욕하는 것은 중생이라고 했고 발 씻어 주는 것은 매일 짓는 죄를 용서해 주는 거라 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다 해주시는 것이다. 내가 주와 선생으로 발을 씻기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 아직 남아있는 죄를 서로 용서해 주라는 것이다.
→ 이런 삶이 실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창조주 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부터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1. 환경, 현실 조건을 믿느냐, 창조주의 능력을 믿느냐?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어디까지 훈련하기 원하시는가 하면, 이성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과 절망 상황에서까지 창조주를 믿기 원하신다. 창조주께 대한 믿음이 회복되기 원하신다.
1) 아브라함
75세 때 씨에 대한 언약을 받았다. 그러나 고대하고 갈망하던 후사는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얘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조주의 능력을 믿기 원하셨다. 사람들은 환경과 경험과 이성에 근거해서 산다. 그렇다면 이것이 믿기 쉬웠겠는가? 또 이삭이 십여 세가 되었을 때 창 22장에 보면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경우에 아브라함이 느끼는 충격과 황당함과 심적 부담은 얼마나 컸겠는가? 지금 말한 두 경우 다 이성적 논리와 계산과 판단으로는 믿음과 순종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2) 요셉
형들에게 죽을뻔하다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 거기서 또 누명을 써서 감옥 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의 운명은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 그가 겪었을 두려움과 한계와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누명 쓰고 감옥에 갔을 때 언제 풀려날지 보장이 없었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성적 논리나 계산으로 한다면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이 잘 믿어졌겠는가? 사실 육신의 본성으로는 눌리고 절망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 다윗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해서 추격하며 끝까지 쫓아다녔다. 도망 다닐 곳이 없어서 블레셋 적국에 거짓 망명하기까지 하였다. 블레셋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의심하니깐 침을 흘리며 미친체해서 위기 모면을 했었던 적이 있다. (삼상 21:10~15)
또 한번은 아기스 왕의 신복 노릇하여 출전 한 중에, 본거지 시글락이 아말렉의 습격을 받았다. 돌아와 보니 본거지가 불타고 여자들과 자녀들이 다 잡혀가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때 백성들이 돌로 치고자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때 다윗의 상황이 나온다. (삼상 30:1~6)
4) 다니엘과 세 친구
바벨론 고위직에 올랐지만 큰 위기를 만났다. 세 친구는 느브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 속에 던져지는 상황에 봉착했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자기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지는 상항에 직면했다.
→ 지금까지 네 가지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극한 상황을 만났던 것처럼 이들도 극한 상황을 만났다. 이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이성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일지라도 그 상황까지도 주관 통치 연출하시는 하나님이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과 영의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인본주의 합리적 이성은 본능적으로 불안과 절망과 심한 눌림과 압박감과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그들 속에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과 믿음을 갖도록 해 주셨다. 이들이 이런 체험 없이 합리적 이성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절대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절대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비교적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다니엘은 자기 민족의 운명과 메시아가 언제 오시는 것과 역사 종말까지 계시를 받았던 인물이다.
2. 우리는 창조주 되신 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1)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 창조자요, 역사의 주관자시다. 대상 29:11~12, 사 40장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백성에게 신 8:3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이시다.
2) 예수님은 어떤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 창조자시며 구속자 되시고 지금도 만유와 만물과 만민과 만사를 주관 통치 연출하시는 그리스도시다.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 성도들에게 분여하셔서 성령으로 현재적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시다. 아버지 절대 소원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상황과 문제와 일에 주인 되시고 해결자 되시고 언약성취자 되시는 그리스도시다.
3) 성령님은 어떤 보혜사이신가? -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하신다.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성령이시다. 영의 생각과 영의 말씀과 영의 확신으로 인도해 주신다. 이성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내면에 말씀을 주셔서 승리하고 창조주의 능력을 체험케 하신다. 그래서 증인 되게 하시는 성령이시다.
3. 창조주께 대한 믿음을 가진 자는 말씀 따라 갈 수 있다.
1) 성도에 대해 - 발을 씻길 수 있으며 중보 기도하며 그를 세울 수 있다.
2) 불신자에 대해 - 창조주의 배경 보장을 누리면서 불신자에 대해 전도자 삶을 살 수 있다
결론
1. 바울은 그의 기쁨의 여부가 환경과 경제와 현실 조건에 있지 않고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있었다.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하였다. 그는 서론에 말한 예수님의 두 가지 모범을 따를 수 있었다.
2.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기막힌 상황을 만났다면 혼의 이성이 깨지고 영적 체질로 만드시는 기회가 된다. 창조주를 체험하는 기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모본을 따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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