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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4월10일 수요예배 - 전도는 주님의 일이다2 (행 10:1~33)

by 현상금 2024. 4. 10.

전도는 주님의 일이다2 (10:1~33)

 

김시온과 동행 캠프

231학기 만남, 동행 캠프 두 번 했음. 첫 번째 나갔을 때 신천지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함. 두 번 다 시온이 아는 친구들을 만났다. 시온이를 위해 그런만남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온이가 사명자라고 생각하고 제가 사역자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나와 똑같이 전도도 하고 다락방도 하고 그도 사명자 나오면 동행 캠프해서 재생산하도록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동행 캠프하면서 시온에게 제가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게 있다. 전도하는데 내 부담을 안 갖을수록 좋다. 주님이 전도의 주인이신 것을 믿기에 내 동기를 갖고 어떻게 할까 염려하지 않는 거다. 결과에 따라 좋아하고 낙심하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 계속 주님을 기뻐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준다. 왜 그런가? 주님은 아버지 소원을 교회를 통해 이루실 수밖에 없고 나는 거기에 쓰이는 거다. 나는 운명 바꾸어 주는 자라는 생각을 갖고 나가는 것이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믿음의 전도를 하는 거다. 붙이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메시지도 주시고 상대가 믿게 하시는 것도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1. 전도는 주님의 일이다.

1) 구약에서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일이었고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것이었다.

(1) 가나안 정복 전에 광야에서 배워야 할 것 - 8:3을 터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레 26장과 신 28장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명령과 계명을 준행할 수 있는 백성이 될 수 있다.

(2) 이걸 배워야 가나안 전쟁을 치를 수 있고 들어가서도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다.

-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이 가나안 정복을 해 주시는 것이었다.

(3) 23장과 24장에는 여호수아의 고별설교 곧 유언이 나온다. - 너희 보는 바와 같이 이제까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싸워 주셨다. 남아있는 족속도 정녕히 싸워주실 것이니 너희는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였다. 24:25~27에 보면 여호수아가 다시 언약 체결하게 하였다. 그랬는데도 사사기에 보면 초반에는 좀 정복하다가 더 이상 하지 못한다. 갈렙은 사위 옷니엘을 통해 아낙 산지를 정복한다. 그러나 나머지 족속들은 골짜기의 철병거 때문에 정복하지 못한다. 결국 현실 안주하다가 거꾸로 정복당한다. 믿음과 순종이 안 되므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4)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영적 가나안 정복이다. - 영적 아낙 산지와 골짜기 철병거까지 정복해야 한다. 절대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의 성령으로 아버지 소원을 위해 행 1:8 언약을 이루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이다. 1:8의 성령의 세례가 임하면 성령께서 진두 지휘하신다. 주님께 모든 능력이 있으셔서 얼마든지 전도 문, 다락방 문, 제자 문, 재생산의 문을 여실 수 있으시다. 이걸 믿는 것이 믿음의 전도다. 우리가 가질 동기는 무엇이겠는가? 15:9~10절이다.

 

2. 복음 전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가 중요하다.

1) 힘 빠지거나 낙심해서는 안 된다. - 이때도 주님께 대한 믿음에 딱 서 있어야 한다. 여전히 주님을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렇겠는가? 내 동기나 욕구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이 아버지 소원을 이루시는 전도라는 것을 철저히 믿는 것이다.

) 위덕대 전도 간증 지난주 만남이 되었던 자매 재 만남이 안 되었다. 사탄이 방해하여 복음을 못 듣게 하고 사명자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다. 내 동기에 의해 잡히지 않는다. 주님은 얼마든지 문 여실 수 있음을 여전히 믿는 것이다. 상대가 애석한 것이지 나는 당당한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운명을 바꾸어 주는 자라는 확신 갖고 나가는 것이다.

2) 내가 체질을 버려야 한다. - 내가 이루려고 하는 것이 본래 우리 체질이었다. 믿음과 순종의 체질은 창 3장의 본성에 안 맞다. 우리는 내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만물의 척도가 되어 내 동기로, 내 힘으로 이루려고 했던 사람이다. 3,6,11장의 체질로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객과 체질을 180도 바꾸어야 한다. 인본주의 동기, 인본주의 믿음의 현주소, 인본주의 방법을 주님의 동기, 주님께 대한 믿음의 현주소, 믿음의 방법으로 뒤집어야 한다.

 

3, 이런 사람이 성경적 전도 운동 속으로 들어간다.

1) 주님의 전도기 때문에 주님이 전도자에게 사람을 붙이신다.

빌립에게 이디오피아 내시를 붙이셨고 아나니아에게 핍박자 사울을 붙이셨고 베드로에게 고넬료를 붙이셨다. 이 둘이 만나도록 양쪽에 다 환상을 보여주셨고 지시까지 하셨다.

2) 고넬료 가정을 통해 다락방 전도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

(1)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사역자다.

(2) 고넬료는 지역 사명자고, 친척과 가까운 친구를 초청해 온 조장 역할을 했다.

(3) 고넬료 가정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영접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그도 복음 듣도록 초청해 온다.

(4) 초청된 사람 중에 사명자가 나오면 다락방 확산이 된다.

다락방에서 사명자가 나와서 확산되는 것을 다락방 전도 운동이라고 한다. 재 생산이 되는 것이다. 다락방 전도는 성령께서 사역자를 붙들고 전도 문, 다락방 문, 제자 문, 재생산의 문을 여시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역자로 세워지는 것이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이다.

3) 하나님의 소원과 관심과 생각에 맞추어 24 믿음과 순종하면 안 쓰일 사람이 없다.

주의 소원에 방향 맞추면 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고민하면서 내가 몸부림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베드로 행복의 비결이 환경과 상황과 현실 조건에 있지 않았다. 주 안에 있었고 주님께 있었다. 항상 주님을 늘 기뻐하는 것이 우리가 가질 영적 상태다.

 

결론

1. 이제 바야흐로 믿음의 전도할 시간표다.

여러분 속에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로 모든 것을 할 시간표이다.

2. 믿음의 전도, 믿음의 사역, 믿음의 일, 믿음의 경제활동, 믿음의 모든 삶을 살기 바란다. 이것이 갈 2:20, 살전 5:16~18이며 포도나무 가지의 삶이다.

3. 이때 성령의 역사로 다락방 전도 운동이 이루어진다.

새 계명과 대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