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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4월 21일 주일예배- “전도자의 눈"( 행 11:1~18)

by 별종외계오동 2024. 4. 21.

 

 

 

전도자의 눈 (11:1~18)

 

17절에 보면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는 말이 나온다.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보고하면서 한 말이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는데 막을 자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주님이 이루시는 전도 운동을 막을 자가 없다는 말이 된다. 여러분은 주님의 전도 운동에 믿음의 통로가 되기 바란다. 사도행전을 이해만 해서는 안 되고 동일한 성령께서 임하셔서 여러분을 통해 사탄의 운명에 빠진 자들을 건지는 역사를 체험해야 하겠다. 나의 과거 상태 곧 나의 불신자 상태를 보는 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상태가 이해된다. 지금 내가 복음 누리는 상태가 불분명하면 복음 이전의 내 과거 상태가 잘 안 보인다. 내가 복음 이전의 내 모습이 정확히 보이고 거기서 빠져 나온 사람이 불신자 전도할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여러분은 전도를 위해 3 가지 눈이 열려야 하겠다.

 

1. 불신자 보는 눈이다.

1) 불신자는 모두 엡 2:1~3 운명이다.

여기에서 보면 불신자는 상태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분명히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다. 영이 죽은 거다. 영이 죽으면 하나님께 대한 인식도 영적 교제도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실로 인정하고 오감에 의한 정보만 받아들인다. 영이 죽은 채로 인본주의 합리적 이성으로만 계산하고 산다. 합리성을 발전시켜 얼마든지 과학 발전을 이룬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머리는 좋아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무지와 불신앙에 빠진 사람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대신 이 세상 풍조를 따르게 된다. 이 세상 풍조가 뭔가? 3,6,11장과 행 13,16,19장의 풍조다. 인본주의 사상과 철학과 신념 속에서 인생관,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를 빙자한 각종 우상숭배의 사상과 관습을 따르게 된다. 자기를 위한 신을 만들어 자기 필요를 구하는 것이다. 영이 죽었으면 어쩔 수 없다.

둘째 사탄의 종노릇 하는 상태다. 2절 말씀대로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다. 사탄이 부리는 귀신들의 지배를 받는다. 실제 모든 불신자는 귀신하고 교제하고 있다(고전 10:20). 이게 많이 드러나는 사람이 귀신이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한다. 이게 안 들리는 사람은 귀신과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불신자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가룟 유다는 못 느낄 뿐 귀신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의 전인격을 지배하고 있었다. 못 느낄 뿐이다.

셋째 그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산다. 여기서 육체란 단순히 몸이라는 개념보다는 창 3,6,11장 본성의 지배받는, 표출되는 몸을 말한다. 6:6에서 말하는 죄의 몸이다. 죄의 몸은 아직 있지만 여전히 죽은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불신자 세 가지 상태를 통찰하기 바란다. 세 가지 상태는 영이 죽은 상태, 사탄의 종 된 상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상태이다.

2) 영이 죽으면 반드시 육체화 된다.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보는 현상이다. 4:17~19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여기에는 인간이 육체화 되는 단계를 차례대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한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허망하다. 하나님 형상인데 영이 죽고 육신의 욕구대로만 살면 그렇게 된다. 본래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영적 교제 속에서 오는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삶의 의미, 만족함이 누려졌다. 우리는 TV에 나오는 산에서 사는 자연인과 같지 않다. 그들의 영적 상태는 허망하다.

허망함의 결과 엡 4:18절부터 타락의 단계적 설명이 나온다. 먼저 총명이 어두워진다. 영적 진리나, 하나님을 아는 총명이 없어진다. 그래서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진다. 세상 창조나,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나, 인간의 사명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것이다. 굳어진다는 말은 딱딱해진다. 가인과 같이 된다. 마치 씨뿌리는 비유에서 길 가와 같은 것이다. 말씀의 씨가 뿌려져도 딱딱하기에 결국 새가 와서 주어, 먹어 버린다. 여기서 새는 마귀다. 1:28에는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되어있다. 철저히 3,6,11장의 본성으로 산다. 그리고 고후 4:3~4 말씀에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는 것을 영적으로 봐야 한다. 사탄이 못 듣도록 하는 것이다. 전부 사탄의 피해자다. 중보기도 할 때 보이는 현상대로 기도하려고 하면, 육신의 생각에 빠지기 때문에 중보기도가 안 된다. 영적인 눈으로, 주님이 눈으로 봐야 기도가 된다. 불신자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불신자는 엡 4:19절처럼 된다. 영적 감각이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 영적인 감각이 없는 자는 영적인 행복이 없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망을 두지 않는다. 육신의 것으로만 살게 된다. 회사 마치고 술자리를 갖는 것이 행복이다. 1, 2, 3차 그러다가 성매매하는 자리까지 간다. 영이 죽으면 갈 5:16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고 했다. 우리는 타락의 끝판왕을 보여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죄악이 만연해져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현장을 영적으로 봐야 한다.

 

2. 개인이 어떻게 불신자 상태가 형성되었는지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한다.

1) 3장의 흑암 세력이 가문 배경, 부모 배경, 성장 배경과 그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통해 어떻게 각 사람을 형성시켜 놓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삶의 배경과 경험한 것과 그 사람의 기질이 합쳐져서 지금의 그 사람의 인격이나 체질을 형성시켜 놓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굳어져 있는 상태이다. 사탄이 엡 2:1~3을 만들어 낸 주범이다. 사탄도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이 있다. 그것은 인간을 창 3,6,11장과 행 13,16,19장의 운명에서 인본주의와 우상숭배 체질로 만들어서 일평생 자기 종노릇 하다가 지옥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2) 이에 대한 하나님의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어서 이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고 그 결과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 사탄의 소속 신분 운명 통치 체제에서 빠져나와서 하나님 자녀의 신분 권세를 얻게 하신다. 그때부터 그리스도는 보좌 통치하시며 동시에 그 사람 속에 성령 통치해 주신다. 영은 살아났으나 체질은 한 번에 안 바뀐다. 불신자는 허망함 속에서 총명이 없어지고 무지와 마음에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 했다. 이 속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속에서 나 중심, 육신 중심으로 반응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말씀의 빛이 들어오지 않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심령으로 말씀이 부닥치고 은혜를 받아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이고 치유, 회복된다. 그렇지 못 하면 항상 내 기준으로 살게 된다. 상대는 이해 못 하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만 잘한다. 반면 주님은 사탄이 빠뜨려 놓았던 함정과 그 속에서 형성된 체질에서 빠져나와 치유 회복되게 하시고 증인 되게 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이다. 여러분은 창 3장의 흑암 세력이 어떻게 가문, 집안, 부모, 성장 배경 속에서 사람을 형성시켜 놓았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의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한 사람도 못 살린다.

 

3. 사람의 반대편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1) 지금은 불신자 상태에 빠져있지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는 것이 사람의 반대편을 보는 것이다.

일단 그 사람에게 있는 영적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문제 속에 역사하는 사탄과 귀신 역사가 있다. 여러분은 반대편에 사탄의 역사까지도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기 바란다.

요셉과 그 형들을 봐라. 형들이 웅덩이에 처넣었다. 얼마나 잡혔으면 동생에게 그렇게 하려고 했겠는가? 그러다 애굽으로 가는 노예상이 오니깐 동생을 팔아 버렸다. 마귀가 가롯 유다에게 예수 팔 생각을 넣었는데, 이 형들도 유다처럼 자기 생각인 줄로만 알고 행한 것이다. 사탄은 사람의 뇌에 미움을 각인시켜 놓고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다. 형들이 복음 가진 가문인데도 복음이 각인 안 되니깐 실제적인 영적 상태의 주인은 사탄이다. 형들은 여전히 엡 2:2~3의 불신자 상태였다. 요셉은 어떻게 되었는가? 애굽으로 팔려간 일 배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이게 반대편을 보는 눈이다. 하나님은 세계 살리기 위한 복음, 기도, 전도가 각인 되도록 요셉이 팔려가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요셉이 자신이 어떻게 불신자 상태에서 빠져나왔는지,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체험하게 되니깐 불신자 상태가 보이는 것이다. 형들의 영적 상태가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형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에 안 잡히고 복수 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셉이 팔려 갔는데 보디발 집으로 갔다. 보디발 집에서 잘 될 줄 알았는데 누명 쓰고 감옥에 갔다. 그것도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사탄이 분명히 역사한 것이다. 사탄은 이때 요셉에게 어떤 마음을 주었겠는가? “하나님은 너를 돌보지 않어. 하나님을 신뢰하지 말어. 니가 살아나거든 반드시 형들에게 복수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팔려 가게 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30세를 채우고 총리 될 때까지 감옥에서 세계를 이끌 수 있는 믿음(영성)과 정치와 경제의 그릇을 만들도록 하였다. 감옥에서 요셉은 집중했고 해몽할 정도로 깊은 은혜를 받았다고 여겨진다.

2) 복음은 사고 전환시키고 틀을 깨뜨린다.

그러니 반대편을 볼 수 있다. 오늘 본문 얘기를 좀 하겠다. 고넬료 가정 전도 이후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이방인의 집에서 머물고 먹었던 일로 비난을 받았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율법의 관점, 민족주의 관점에서 여전히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였다. 가게 된 이유와 가서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말씀 전할 때 어떻게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내려오시고 부어지셨는지를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였다. 18,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중대한 사고의 전환, 관점의 전환이다. 여러분이 지속적인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늘 말씀 드린 세 가지 눈이 열려야 한다. 그러면 지속적인 전도자의 마인드를 가지게 된다. 복음으로 봐야 사고 전환도 되고 반대편도 볼 수 있게 된다.

 

결론

오늘 전도자의 눈, 세 가지 부분을 말씀드렸다. 첫째 불신자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둘째 개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한다. 셋째 사람의 반대편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불신자를 전부 이 눈으로 봐야 한다. 여러분 자신이 이렇게 계속 눈이 열리고 치유되면 그 내용 가지고 영접한 사람과 함께 다락방 할 수 있다. 다락방 할 때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 그 사람이 확립되고 치유 회복되면 미션과 사명까지 줄 수 있다. 사명자를 사역자로 키울 수 있다. 이번 주에도 이런 인도를 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