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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8월 11일 주일예배 - "아덴 전도"(행17:16~34)

by 별종외계오동 2024. 8. 11.

 

 

 

아덴 전도(17:16~34)

 

신앙생활은 지식과 이해력으로 해서는 안 된다. 지식과 이해력을 통해 깨닫는 은혜는 받는다. 그러나 실제 살려고 할 때는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에 임재하셔서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시는 힘을 누려야 한다. 성령님의 임재, 통치가 있음으로 영의 생각과 영의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럴 때 환경도 이기고 자신의 본성도 극복하게 된다. 이것이 안 되면 내가 많이 알고 있음에도, 영적인 힘이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느낀다. 왜 그런가? 성령님은 이론이 아니고 인격자시기 때문에 현재적으로 의지하고 힘입지 않으면 그렇다. 신앙생활은 내가 깨달은 것 가지고 내가 주를 위해서 살려고 애쓰는 게 아니다. 성령님이 실제 매 순간 임재 통치 인도 역사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거다. 그런 사람이 3 집중 체질을 만들고 24시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럴 때 지속 성령님의 임재 통치를 맛보게 된다. 오늘 본문에는 아덴 전도가 나온다. 아덴은 어려운 전도 현장이었다.

 

1. 아덴은 철학과 우상의 도시였다.

1) 바울은 문화적 충격을 받으면서 전도하였다.

아덴은 그리스의 수도이며, 문학과 예술과 신들의 도시이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여러 철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처음엔 그들과 변론을 하다 보니깐 지혜로운 말로 설득하려는 시도를 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십자가의 도가 이 세상의 지혜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 바울은 본문에서 세 가지 핵심을 전했다.

24~29절이 그 내용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관, 회개하고 우상으로부터 돌아오라는 내용, 정하신 사람으로 심판하실 날이 작정 되었으니 그 정하신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걸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첫째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 가를 전했다. 사람의 손의 재주로 만든 우상이 아니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였다. 둘째 하나님은 이제 어디든지 명하사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라고 하신다는 것이었다(30). 셋째 정하신 사람으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였다(31). 그 정하신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그분이 구원자요 심판자이시다.

바울은 불신자에게 이 세 가지 핵심을 전한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들은 사람 중에는 조롱하는 자들도 있었고 다시 듣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32~34). 믿는 사람도 몇 사람 나왔다. 그런데 아덴에서는 핍박이 없었는데 말씀 운동을 조기 종료하고 그곳을 떠났다. 바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밭의 문제였다. 전한 복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도 밭의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예비 된 자를 찾으라. 갈급한 자를 찾으라는 말을 한다. 아덴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의지했고 갈급함도 없었다. 바울은 그곳을 떠나 시급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아덴에서 전한 말씀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다.

 

2. 하나님이 작정하신 날

1) 31절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으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다고 하였다.

아덴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하신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다. 간혹 심판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하나님은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왜 사탄이 인간을 유혹하도록 두셨는가? 유혹하지 못하도록 했으면 범죄도 안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심판도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장로교의 기본 교리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이렇게 답이 되어있다. 61항에 우리의 시조들은 사탄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을 받아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한 이 죄를 그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을 따라 기쁘게 허용하셨는데 이는 그것을 명령하시어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로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그림에 어두운 부분이 있어 밝은 면이 드러나도록 하듯이 악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기여한다. 하나님의 주권의 큰 틀에서 볼 때 악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와 사랑을 더 뚜렷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런 걸 하나님 주권 신앙이라고 한다. 하나님 주권 신앙은 어거스틴이나 마틴 루터, 칼빈 등이 다 고백한 것이다. 45:7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삼상 16:14에는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9:18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는 자를 완악(강퍅)하게 하시느니라 했다. 그래서 바로 왕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나타내고자 하셨다. 이스라엘을 징계할 때 더 악한 앗수르와 바벨론을 쓰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기 위해서 사탄도, 악도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2) 어떤 부자 아버지와 아들의 예

어떤 부자 아버지가 외동 아들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돈을 달라고 하면 다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 아들이 돈의 귀중함을 모른 채 돈 때문에 방종하고 타락하였다고 한다. 돈의 가치를 모르고 돈에 싸여 살면 돈 때문에 타락한다. 그러면 지혜로운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돈의 가치를 알 때까지는 가난도 체험시켜야 하고 노동의 수고도 알게 해야 한다. 일해서 돈을 받게 하므로 노동의 가치도, 돈의 가치도 경험시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사랑 속에서 크다가 타락하면 길이 없다. 부모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것이 선인 줄도 모르면 버린 자식이 된다. 부모의 은혜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아이가 될 수 있다. 그런 자식은 커서 효도는커녕, 자기 원한대로 안 들어 준다고 행패를 부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한경직 목사님(영락교회 담임/ 숭실대학교 총장)이라고 계셨다. 이분이 은퇴하고 큰딸 내외 집에 계셨다고 한다. 그 집에 오랫동안 가정부로 수고한 자매가 있었다. 시집 가게 되어서 한경직 목사님과 큰딸 내외가 혼수 감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집간 후 자주 찾아와서 필요한 것을 요구하였다. 딸처럼 여겨 계속 응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남편이 와서 개인택시를 하고 싶으니, 개인택시 할 수 있도록 해주고 택시도 뽑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사위가 거절했다. 여러 번 요청해도 거절했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이 평생 사랑 운운하더니 이거 사랑도 없고, 이 부탁 하나도 못 들어주냐고 원망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 들어주니깐 나중엔 교회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그 부부는 사랑으로 타락한 사람이다.

, 공의, 사랑을 같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사탄이 있게 하고 유혹하게 하셨는가? 사탄의 존재와 그 악함을 알 때 우리가 영적 싸움을 하게 된다. 죄의 결과를 알 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은혜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의 큰 틀 속에서 사탄의 유혹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순간 두 가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사탄의 유혹을 허락하신 것은 구원받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첫째로 제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한 것이다. 죄와 적당히 타협하고 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적당히 육신대로 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둘째로 주님의 구원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통해 이들은 율법의 저주를 체험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영적 문제와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그 결과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신 것이다. 성령을 보내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다. 두 번째 죄에 대한 인식이다. 성령님은 반드시 죄에 대한 회개를 이끄신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죄가 가로막는다. 기도가 안 될 때 회개를 이끄신다. 나를 점검하게 만드신다. 기존신자라면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확인케 하시고 구원받았으니 너는 이제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구원받았다면 이제 성령으로 계명을 지키게 만드신다. 구별해서 거룩한 삶을 살게 만드신다.

물론 우상숭배로 워낙 영적 문제가 많은 사람에게는 죄 배후에 있는 사탄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을 우리 다락방에서 아주 강조한다. 다락방에서는 영적 문제에 대해 강조한다. 그래서 이렇게 몰고 가는 놈이 사탄이라는 것을 밝힌다. 다락방 이전에 기존 교회에서 이걸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 다락방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우리 책임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항상 사탄에게 문호를 개방해 준다. 우리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책임성이 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우리 본성으로, 인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적 문제와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신다. 말씀대로 살 힘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게 해주신다. 죄를 지으면 능력이 안 나타난다. 우리를 성령의 인도 통치받는 체질로 자꾸 인도하신다. 그래서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길 원하신다. 우리 본성으로,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신다.

사탄이 유혹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결국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를 더욱 실감해서 사탄과 죄가 어떻게 인간을 멸망시키는지를 알고, 우리가 어떤 구원의 은혜를 받았는지를 알고,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실감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3. 그렇다면 은혜로 구원받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20:11~12에 보면 흰 보좌 심판이 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무론 하고 그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된다. 흰 보좌에서 심판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두 종류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행위를 기록한 책들이고 또 하나는 생명책이다. 심판은 책들에 쓰인 행위대로 받게 된다. 물론 생명책도 있어 구원받은 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신자도 행위에 대한 심판이 없지 않다. 고후 5:10에 보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다. 신자도 믿음의 행위에 대한 보상과 책망이 있다.

2) 오늘 본문에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날을 작정하였다고 했다.

5:25~29에 보면 아들에게는 생명을 주시는 권세와 심판하는 권세가 다 있으시다. 이때 불신자는 불신앙에 따른 행위를 심판받게 된다. 그래서 영벌에 이르게 된다. 신자는 믿음에 따른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아 영생과 상급을 얻게 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골인 지점으로 알고 경주자 같이 살아야 한다. 신자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믿는다고 한다.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믿느냐고 물으면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안 믿는 것 같이 산다. 안 믿는 것 같이 거의 현실 위주로 산다. 여러분은 청지기 인생이다. 결산의 날이 있다. 여러분 인생을 부르신 소명에 합한 천명과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것은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게 아니다. 각자 하나님 앞에 자기가 받은 포지션과 역할과 사명에 대해 그리스도 앞에서 1:1로 계산하는 것이다. 누구 때문에... 이런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돈을 이 만큼 벌어놨으니 나머지 인생은 그 돈 갖고 누리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은 주님과 안 맞는 생각이다.

 

결론

숨이 넘어가는 날까지 하나님 소원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 파수 망대와 플랫폼과 안테나의 삶이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걸리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답 주며 불쌍히 여기며 중보기도하며 살아야 할 인생이다. 그것이 영적인 힘이다. 목사님과 사모님 중에는 벌써 은퇴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전도자의 삶을 사는 분들과 아닌 분들이 차이가 난다. 전도자의 삶을 안 사는 분들은 은퇴하면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런데 전도자의 삶을 살다가 은퇴하는 분들은, 전도자의 삶에는 은퇴가 없다는 것을 안다. (경주 소망교회 이창재 목사님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늘 베트남 선교에 힘쓰고 계시다. 은퇴 후에도 태국에 세운 센터에서 베트남 소수 민족의 지도자를 훈련시킬 계획을 갖고 계시다.)

바울은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하였다. 그는 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며 골인 지점을 바라보며 살았다. 777 망대 여정 이정표를 간 것이다. 3.6.11장의 본성으로 살지 말고 성령으로 살아라. 24시로 발전시켜야 한다. 새롭게 결단하기 바란다. 바울이 증거 한 세 가지 핵심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