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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메세지

2024년 8월 21일 수요예배 - 말씀에 붙잡힌 바울 사도 2 (행 18:1~17)

by 현상금 2024. 8. 21.

말씀에 붙잡힌 바울 사도 2 (18:1~17)

 

서론)

1. 다락방 초창기 때 목사님들이 다락방 메시지 받고 기뻐했다.

다락방 메시지는 기존 교회에서 약했던 것을 보강해 주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 기존 교회 약했던 영적 문제와 그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와 해결책인 그리스도를 강조해 주었다. 전도 방법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과 특히 성도에게 주어진 권세를 강조했다. 보통 장로교회에서는 복음을 말하긴 하나 인간 행위와 열심을 더 많이 강조한다. 안 되는 나를 발견하고 한계를 느낀다. 그러던 차에 단순히 전도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는 다다, 복음 누리면 전도는 된다. 이런 말이 굉장히 신선했었다. 저도 이런 말씀이 좋아 다락방에 들어왔고 이런 복음 운동이라면 한국 교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2. 그러면 여러분은 그동안 들은 말씀만큼 복음 누리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저는 다락방에서 강조하고 있는 영적 문제와 그걸 해결하시는 그리스도는 너무 맞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도에게 주어진 축복과 권세(지금 말하는 7 망대 성삼위, 보좌의 능력, 삼시대, 오력, 공중 권세 꺾는 능력, 미리 누리는 CVDIP, 세 가지 뜰)도 너무 맞고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이걸 진짜 누려야 한다.

3.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이제 염려하지 않아도 될 신분 권세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전에 형성된 체질로 자꾸 반응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지난 주일 메시지였다. 우리가 받은 성도의 축복과 권세는 확실하다. 그렇기에 영이 죽어서 형성된 체질로 반응하지 않고 성령으로 반응하면 복음의 능력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형성된 것을 의외로 잘 모른다. 그러니 거기에 자꾸 빠지다 보니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한다. 이미 포맷되어 있고 사탄이 깔아놓은 시스템 을 바로 알고 그걸 극복하면 주어진 축복과 권세를 누리게 된다. 이게 승리의 관건이다.

 

본론)

1. 먼저 알 것은 우리는 이긴 싸움을 하도록 보장되어 있다.

1) 가나안 전쟁은 이긴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1)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싸워주시겠다는 말씀에 붙잡혀 믿음의 전쟁을 했다. - 실제 가나안 전쟁을 직면했을 때 여러분 같으면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겠는가? 보이는 것에서부터 오는 두려움 무시 못 한다. 인본주의 합리적 이성에 의한 계산이 들어간다. 3,6,11장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과 감정과 생각에 잡히게 된다. 현장에서 말씀에 붙잡히기보다 현실에 붙잡힌다. 실제 문제의 현장을 당하면 믿음과 의탁과 순종이 안 된다.

(2) 바울도 인본주의 이성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3,6,11장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붙잡혔다. - 성령께서 이것이 가능케 하신다. 결국 우리의 싸움은 인본주의 이성과 눈에 보이는 것과 3,6,11장의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생각에 잡히느냐, 아니면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과 말씀과 확신에 잡히느냐의 싸움이다.

(3) 저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도의 3단계를 거쳤다. - 구분하는 단계, 극복하는 단계, 주객을 바꾸어 승리하며 24시로 나가는 단계가 터득된다. 여호수아나 갈렙, 다윗이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 싸움에서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말씀에 잡힌 것이다. 극복하며 승리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2) 대부분 이 싸움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아담이 사탄에게 문을 열어 주어 3,6,11장의 본성을 따라가는 세상을 만들었다. 6:3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게 되었다.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이성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창 3,6,11장의 본성에 빠져 눈에 보이는 것에만 꽂혀 산다. 맨날 현실, 현실 하며 산다. 하나님의 배경과 능력은 못 믿고 산다. 우리가 완전한 신분 권세를 받았음에도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탄이 깔아 놓은 시스템에 자꾸 빠지는 것이다.

 

2. 말씀에 붙잡힌 바울은 고린도에서 16개월 전도 운동을 했다.

1) 성령께서는 인본주의 이성에 갇히고 눈에 보이는 것에 꽂히고 3,6,11장 본성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에 빠지는 것을 극복 할 수 있게 해 주신다.

아담도 실패했고 이스라엘도 말씀에 잡히는 것에 실패했는데, 여러분은 승리하게 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여러분 속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승리케 하신다. 이제까지 형성된 체질로 반응하지 말고, 성령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다.

2) 바울 사도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했고 대적하고 비방하는 자들 앞에서도 눌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다.

말씀에 잡히니깐 그렇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고린도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 대적자는 대적하지만 믿을 자는 믿고 많이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직접적인 음성을 들려주셨다. 9,10절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다. 이런 단계는 주께서 성령으로 붙잡고 쓰시는 단계이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1) 계속 주객을 바꾸어서 믿음의 전도, 믿음의 직장 일, 믿음의 사역을 배워야 한다.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봐라. 내 수준과 능력으로 힘들 것 같으면 본능적인 눌림과 염려가 들어온다. 그럴 때 자신의 동기에 잡히면서 애쓰며 걱정한다. 이것이 사탄이 그간 이미 형성시켜 놓은 인본주의 체질이다. 이게 그간 영이 죽은 이성과 보이는 것에 꽂혀 살며, 3,6,11장의 본성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체질이다.

이러면 우리도 이스라엘 민족과 다를 바 없다. 실패의 전철을 똑같이 밟게 된다. 이것을 극복하도록 주님이 보좌 통치하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성령 통치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만 이 체질을 극복하게 만드신다. 삼위 하나님의 배경과 능력과 하시는 일이 믿어지게 하신다. 그래서 내 동기에 안 빠지고 내 속에 주시는 힘으로 행하게 된다. 주님이 나를 붙잡고 나를 통해서 행하시는 것이다.

2) 이렇게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는 역량이 길러지면 정복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1) 구약의 가나안 정복은 땅을 정복하기 위한 싸움이었고 지금은 영적 가나안 정복이다.

(2) 사탄, , 저주, 지옥 운명에 빠진 자를 건져내는 싸움이다. - 이 일을 우리 능력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 전도의 주체가 되셨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여러분 통해서 행하시는 것이다.

 

결론)

 하는 직장 일, 만나는 문제, 대인 관계 다 믿음으로 처리해라. 3,6,11장으로 반응하지 말고 성령으로 반응해라. 믿음과 순종하는 종들만 나오면 지금도 하나님의 소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성령으로 싸워주신다. 성도의 권세를 누리게 된다.